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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밤(Night)을 먹다. <황혼에서 새벽까지 그리고...> (2)

ARAGORN2004.08.15 16:16조회 수 1233추천 수 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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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밤(Night)을 먹다. <황혼에서 새벽까지 그리고...> (2)



새벽 3시...

서귀포시를 뒤로하고 남원을 목표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몸은 한계에 다다른 것만 같았다.

나의 두 다리는 서귀포의 내리막길을 달릴때 보다 점점 무거워지고

눈꺼풀은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자꾸만 자꾸만 아래로 처지는 것이었다.



얼마 동안을 졸면서 달렸다.정말 위험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주변에 차량이 없어서 망정이지 잘못했으면 제주도에 영원히 뼈를 묻었을지도...

심야 라이딩의 어려움을 톡톡히 맛보는 순간이었다.



서귀포에서처럼 가로등의 지원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다.

환하게 웃어주던 달마저도 구름 속 저편으로 숨어버려

본능에 의지한 채 어둠 속을 헤치며 풀벌레와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를 벗삼아 달려야만 했다.



그런데 남원을 5킬로 남겨두고 갑자기 자전거가 이상해졌다.

핸들 균형이 안잡히길래 잠시 내려서 살펴보니 커헉! 스템의 나사가 풀려서 핸들이 제멋대로였던 것이다.

제정신이 아닌 상황에서 만약 나사가 빠졌더라면 나는 큰 사고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스템의 이상을 일찍 발견하긴 했지만 짐의 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이겠다고 공구를 준비하지 않았던게 큰 실수였다.

'가지고 다닐땐 아무 일도 없더니... -.-;'



이번 일을 계기로 '어떤 경우에도 공구는 꼭 챙기자'고 다짐을 했다.

손으로 나사를 돌려 임시처방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흔들리는건 어쩔 수 없었다.

피곤함과 졸림에 이젠 불안감까지 3고를 안고 가야만했다.



새벽 4시...

혹시라도 나사가 풀릴까 싶어 몸의 중심이 핸들쪽으로 쏠리지 않게 하기 위해

상체는 바로 세우고 오른쪽 손가락 끝으로 핸들과 접촉해서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하며 남원을 지났다.

가끔씩 왼팔과 교대를 하며 사용하지 않는 팔은 리듬에 맞춰 앞뒤로 움직여 주며 피로를 분산시키려 애썼다.

지금까지 라이딩 하면서 이렇게 곡예운전을 해보긴 처음이었다.



아침이 가까워지니 영업 차량들의 굉음소리가 나의 신경을 자극했다.

또다시 차량에 대한 공포감이 나를 엄습해왔다.

'아! 진짜 포기하고 싶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게 너무 아까워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만약 다시 이런 야간 일주를 하게 된다면 그때는 일주를 중단하고 민박집에서 잠을 청할 것이다.



새벽 5시...

표선을 지나니까 서서히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성산의 일출은 한번도 보지 못했는데 잘하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출을 기대하며 달리니 페달질이 더 가벼워졌다.느낌만...

그런데 갑자기 심장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헉 이러다 심장마비로 쓰러지는거 아냐?' 이런 불길한 상상까지 하면서 나는 위태로운 곡예운전을 계속했다.



핸들이 불안해서 라이딩 하는데 더욱 힘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길가의 카센터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들렀는데 아직 출근 전이라 사람이 안보였다.

혹시나 하고 공구함 쪽으로 가서 이것 저것 뒤지는데 스템 나사를 조일만한 6각렌치를 발견하지 못했다.-.-

실망을 안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아침 6시...

저 멀리 성산의 일출봉이 보였다.

그리고 덤으로 붉은 빛도 찬란한 태양이 나를 보고 미소 짓는 것이었다.

'이~야호~' 마음속으로 환호를 했다.

그렇게 보기 힘들다던 성산의 일출을 드디어 보고야 말았으니...

조금 전 까지의 피로와 졸음이 한번에 씻겨나가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정말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아침에 보는 제주도의 풍경 역시 다른 시간대와 다름없는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나의 정신을 더욱 맑게 만들어 주었다.

멀리 보이는 웅장한 한라산의 자태와 그 아래로 드넓게 펼쳐진 들판은 답답한 나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 주는 것 같았고

이름 모르는 형형색색의 꽃들과 나무들로 부터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향긋한 내음들은

무더운 여름의 열기를 식힘과 동시에 멀리서 온 한 이방인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침 7시...

구좌를 지나 조천을 향해 달렸다.

아침 7시가 넘으면서 강렬한 태양이 나의 심신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엉덩이는 통증으로 쓰라렸고 통증 부위는 토마토가 짓눌려 그 내용물이 주변으로 퍼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이제는 시원함과 낭만을 느낄 수 없는 고통의 시간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핸들의 불안함을 안고 달리고 있는데 마침 한 철물점이 막 오픈을 한것이 보였다.

나는 거기서 6각렌치를 빌려 스템의 나사를 조이고 핸들의 불안감을 말끔히 떨쳐버렸다.

정말 다행이었다.



3고중 1고가 줄었으니 라이딩의 부담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그러나 두 다리는 점점 감각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다시 힘을 내어 다음 목적지인 조천으로 향했다.



아침 8시...

제주도의 무더운 여름은 아침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아침 7시경 부터 시작된 무더위는 마지막 남은 나의 정신력마저 무력화 시켜버렸다.

이때 부터는 내가 무슨 힘으로 달렸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본능적인 몸부림 이었다고나 할까...



머릿속엔 제주시에 도착하면 바로 자야지 하는 그 일념 뿐이었다.

그리고 몸만 자전거에 의지한 채 두 다리는 감각을 상실한지 꽤 되었다.

다리에 감각을 상실한 후 몸으로 페달링을 했다.

몸이 왼쪽으로 기울어지면 왼쪽으로 페달을 밟고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면 오른쪽으로 밟으며 달렸다.-.-;



잠 못자고 무리한 결과가 결국은 이런 고통으로 나타났다.

이번 라이딩을 계기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즐겁게 해야할 라이딩이 운동이 아닌 노동이 되어버린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무리해서 감행하는 라이딩은 미련한 짓이라는 것을...



고행을 하는 동안 어느새 조천에 도착했다.

여기서 나는 잠시 쉬며 마지막 남은 물을 마셨다.

그런데 물사러 가기 귀찮아서 준비를 안한 것이 제주시까지 지옥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이 되었으니...

사실 몸도 피곤했을 뿐더러 얼마 가지않아 슈퍼가 나올것으로 오판한 나의 어리석음 때문에

또다시 3고에 시달리며 달려야만 했다.



조천에서 물을 마신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목이 타기 시작했다.

입안의 침을 삼키며 겨우 갈증을 해소했다.

머릿속엔 제주시에 도착해서 잠잘 생각 뿐이었지만 한편으론 오전 9시에 제주항에 도착해 배에서 잠을 잘까 하고 생각도 했다.

제주 일주를 거의 마쳤기에 제주도에 더 이상 머문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각없는 다리에 힘을 줘 보고 속도를 좀 올렸다.

그러나 마음만 그렇고 몸은 그대로 였다.-.-;



가도 가도 슈퍼가 보이지 않았다.

물을 얻기 위해 민가에 들르고 싶었지만 마땅한 민가가 보이지 않았고 또한 오전배를 타기 위해서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마른침을 삼키며 갈증을 해소할 수밖에 없었다.

'슈퍼는 왜 안나오는 거야! 2~ C~~~'

이렇게 혼자 불평을 해 보지만 나중엔 불평할 힘도 없게 되었다.



위에서 내리쬐는 태양의 폭열과 땅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 그리고 더운 바람까지 합세해 나를 괴롭게 했다.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다.

어느새 삼킬 침도 바닥이 나고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시야는 가물가물하고 머리도 어지러웠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여기서 쓰러지고 마는 것인가?'

거의 다 도착해서 실패한다면 그 동안의 고생이 물거품이 될 것 같았다.'아~~~악'



나는 슈퍼가 나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사력을 다해 페달을 돌렸다.

'슈퍼야 나와라~ 슈퍼야 나와라~'

잠시 후 나의 주문이 효력을 발휘한 것일까? 저 멀리서 XX슈퍼란 간판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 오는 것이었다.

이 순간의 감격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정말 오아시스였다.



나는 슈퍼에서 2리터 짜리 생수를 사자마자 숨도 안쉬고 벌컥벌컥 마셨다.

이 순간에는 이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아~ 이제 살겠다~'

잠시 쉬면서 슈퍼 아저씨랑 세상 돌아가는 얘기 좀 나누다 제주항으로 가기 위해 길을 서둘렀다.



물을 마시고 좀 쉬고 났더니 몸에서 생기가 도는 것이었다.

감각이 없던 다리에도 힘이 나고 정신력도 되살아나 제주시로의 페달질을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그러나 더위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서웠다.



천신만고 끝에 제주시에 도착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어떤 성취감은 들지 않았다.

우선은 빨리 자야겠다는 것과 다시는 이런 미련한 짓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조천부근에서 제주시까지의 지옥 같았던 1시간은 24시간 같은 느낌이었다.



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제주항까지 죽어라 달렸다.

그러나 시간은 이미 오전 9시를 경과하여 오전배를 타기 힘들어 졌다.

그래서 집으로 가는건 다음 날로 미루고 일단 자는게 급해서 항구에서 가까운 부근에 숙소를 정하고

약 6시간 동안 꿀맛 같은 잠을 잤다.



전날 저녁 8시부터 시작된 제주 일주는 다음날 오전 9시에 마무리가 되었다.

날 수로 따지면 1박2일이었지만 해안도로를 제외하고 총 13시간동안 잠도 안자고 미친짓을 했다.



일주의 성취감과 하이킹의 묘미를 느끼고자 하는 사람은 건강한 상태에서 낮에 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여름은 피하라...제주의 여름은 정말 살인적이다.

그래도 해야겠다면 안말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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