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05년5월23일(월)
* 날씨: 매우 맑음 * 달린거리:140km
* 출발시간:오전 8시45분 * 목적지 도착 시간:오후 6시
* 라이딩 코스: 수원-안중-아산-문금-유구-공주-유성
수원에서 목포까지의 장거리 자전거 여행 첫 날.
이것저것 준비물을 챙기는데 여기저기서 전화들이 들어온다.
어머니를 비롯해서 아내와 형님 그리고 주변 동료들의 문자 메시지가.
나이 50을 바라보며 자전거 입문 6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장거리 라이딩을 떠나게 되니 걱정들이 많이 되는가 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보다 출발을 목전에 두면서 마음의 안정이 되어갔다.
하지만 생애 처음 장거리 라이딩이기도 하고 혼자가는 길이라
어떤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을때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마음 속으로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마인드 컨트럴을 통해
자신감을 불어 넣으며 손길을 재촉했다.
원래 출발계획은 오전 7시로 세웠는데 준비가 미비해 자꾸 시간이 지체되는 것이었다.
라이딩에 대한 준비 소홀이 아니라
가족과 주말 부부로 혼자 사는 사람이 여러 날 집을 비우려면 처리해야 하는 것이 많은 법이다.
모든 것을 혼자 준비해야 하는 것 때문에.....
오전 8시경 다시 사무실로 나왔다.
짐을 확인하고 준비된 것들을 배낭에 차곡차곡 넣었다.
그리고 전날 스포츠 음료를 넣어 냉장고에서 얼린 물빽도 배낭에 장착을 했다.
주변 사람에게 출발 기념사진을 부탁을 했다.
날씨는 아주 청명하고 기온도 많이 올라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사무실 옆 둔덕에 심겨진 아카시아 나무가 풍기는
꽃 향기를 콧끝으로 느끼며 출발했는데 그때가 2005년5월23일 월요일 오전 8시45분이었다.
형제 한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하는 길이었지만 전혀 외롭게 느껴지지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그리고 전화를 통해 이미 많은이들의 격려를 받은 몸이라...
이제 바다지기의 수원에서 목포까지의 역사적인 장거리 라이딩이 시작된 것이다.
<수원,목포간 장거리 라이딩의 장도에 오르기 직전.
이마로 흐르는 땀을 막기위해 머리에 두건을 착용한 모습이다.
두건의 색깔이 연해서 마치 대머리처럼 보이는게 좀 우숩다.>
<출발 직전 자전거에 부착된 누적 거리계는 124km를 가르치고 있었다.>
사무실 정문을 빠져 나오는데 내 특이한 복장에 일하던 이들이 고개를 좌우로 젓는 것 같았다.
아마 월요일을 맞아 새롭게 업무를 시작하는데 특이한 복장에
얼굴까지 마스크로 완전히 가린채 자전거를 타고 빠져 나가니 이상하게 생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근속 20주년을 맞아 목포까지 장거리 라이딩길에 올랐음을 그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사무실을 빠져나온 자전거는 금방 수원에서 안중으로 이어지는 국도로 들어섰다.
출근길이 아직 끝나지 않아 차들로 도로는 약간 붐비기는 했지만
라이딩에 큰 지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제부터는 혼자서 모든 문제를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긴장하며 페달에 힘을 가했다.
금방 발안을 지나고 안중을 향해서 나간다.
고속도로 진입을 위해서는 청북 인터체인지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 자주 지나던 길이고 이틀 전 예비 연습으로 안중까지 다녀 온 경험 때문인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인데 어렵지 않게 앞으로 나갈 수 가 있었다.
갓길이 잘 만들어져 있어서 위험도 별로 느겨지지 않았다.
1시간 정도 라이딩을 거쳐 안중과 아산으로 나누어지는 분깃점에 도착을 했다.
배낭에 담긴 물빽에서 이어진 호스를 통해 스포츠 음료로 목을 추기고 과자를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출발이후 휴대폰을 통해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해 보았다.
‘문제없이 준비는 잘 됐겠지. 날이 좀 흐렸네. 조심해서 잘 다녀와.
여러분이 기도드린다. 화팅!’ 형님의 격려 메시지 였다.
포토메일을 보내주신 분도 계시는데 내 전화기가 구형이라 볼 수 없었고
바람이 친구가 되어서 외롭지 않을것이라며 길을 나선 용기가 부럽다고 메시지를 보낸 분도 있었다.
아내는 이런 메세지를 보내 주었다.
"아자 홧팅! 날씨도 적당한것 같고 예정대로 진행이 된다니 감사하고요.
당신의 모습을 보며 큰 도전이 되고 자랑스럽습니다"
아산쪽으로 접어 들면서 오른쪽으로 서해 대교가 멀리 눈에 들어 오는데
바닷바람인지 거센 바람 때문에 자전거의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것을 느낄수 있었다.
반면에 뜸해진 차량의 통행 때문에 여유를 갖고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는 얼마 달리지 않아 아산 방조제를 건너는데 이곳이 경기도와 충남의 경계였다.
라이딩중 첫 번째로 도 경계선을 넘게 된 것이다.
그냥 지나칠 수 가 없어서 자전거를 세우고 셀프 사진으로 자신을 담았다.
<경기도와 충남의 경계선인 아산 방조제를 넘으면서.
라이딩 기간 내내 얼굴은 검은 색 마스크로 가렸다.
첫째는 매연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 다음은 얼굴이 햇살에 그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오른쪽 어깨에서 흘러 내려온 푸른색 호스는 라이딩중 스포츠 음료를 마시도록 만들어진 물백의 호스이다.>
방조제를 건너 우회전을 하면 당진으로 향하고
직진은 아산 시내로 향하게 됨을 이정표가 안내해 준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해안을 따라 남하하고픈 마음이 있었지만
이날 저녁 유성에서 모임이 예정되어 있어서 단거리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계획은 아산에 도착한 다음에 천안과 조치원을 거쳐 유성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산 시내가 가까워 올 ,무렵 먼저 발견된 안내판에
공주까지 남은 거리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 아산에서 공주까지의 도로에 오르막이 많지만
그래도 짧은 코스로 변경하기로 마음을 먹고는 아산 시내로 자전거를 힘차게 몰아갔다.
그리고 출발 2시간 10분이 좀 지날 무렵 전에는 온양으로 불리던 아산시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아산 시내를 둘러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오후 7시까지는 유성에 도착을 해서 공식 스케쥴에 참여를 해야 하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페달링을 계속해야만 했다.
아산 시내를 벗어나서 금방 전원풍경이 시야에 들어 오기 시작을 했다.
펼쳐진 밭과 모내기가 한창인 논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한곳을 지나다가 보니 길옆 논둑에 철가방이 덩그마니 놓여있는 것이었다.
아마 농사를 짓던 분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주문한 음식이 배달 된 모양이었다.
예전 같으면 집에서 아낙네들이 준비해온 음식을 왁자지껄 소란함 속에 식사했을텐데....
마침 휴식시간이 되어서 자전거를 멈췄는데
일하시던 분들도 식사를 위해 논둑으로 나오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바다지기를 보더니 함께 식사를 하자고 권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다지기는 그런 권고에 덥석 좌중에 끼여들수있는 넉넉한 성격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웃으며 정중하게 사양을 하고는 사진을 찍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분들은 아주 즐거워하시며 포즈까지 잡아 주시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만들어 보여 주시면서.....
아마 인터넷 사진을 많이 보신듯 했다.
<아직도 살아있는 우리네 인심을 보여 주셨던 세분.
모내기를 하시다가 주문해온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계시는데 얼굴들이 매우 환하셨다>
사진을 몇장 찍고는 아직도 메마르지 않은 시골인심을 느끼며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소지한 지도를 통해 보면 아산에서 공주까지는
오르막과 네리막 길이 자주 있음을 알수있었는데 마음 가짐을 다져먹으면서...
오늘 코스중에서 아마 가장 어려운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예상을 하면서.
넉넉한 마음을 갖고 계시는 농부분들을 뒤로 하고 공주를 향해서 출발.
한결 차량의 소통도 적고 불어오는 초여름의 시원한 바람만이 라이더의 친구가 되어 주고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들이 아주 평화롭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발걸음을 재촉한지 얼마 되지않아 '아산 외암리 마을'이라는
일종의 민속촌과 같은 마을의 입간판을 만나게 되었다.
이번 라이딩이 단순히 목포까지만 가는데 목적이 있는것이 아니고
시간이 허락되는대로 주변의 이름모를 유적지를 돌아 보는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계획을 했기에 주저하지 않고 자전거의 방향을 돌렸다.
'아산 외암리 마을'은 예안 이씨의 집성촌이다.
조선 명종때 예안 이씨 일가가 낙향, 집성촌을 이뤘다니까 400년도 더 된 마을이다.
이태형, 이이병, 이의현, 이장현 등이 과거를 통해 벼슬자리에 오르며 명문 마을로 자리잡았다.
6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지금도 예안 이씨들이 절반이상을 차지하며
대부분 집들도 옛날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외암 이간선생이 출생한 건재고택의 안뜰은 전형적인 양반집의
아담한 정원형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현존하는 고택중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손꼽힌다.
<마을에 들어서면 돌담들이 매우 길게 조성되어 있어서 눈길을 모은다.
사람의 통행은 적지만 많은 집들이 생활을 직접 하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중 박물관처럼 조성된 '외암 민속관'의 모습. 마을 앞을 흐르는 시내와 어울려 한폭의 그림을 보는듯 하다>
<많은 영화가 이곳에서 제작된 것을 보여주는 '태극기 휘날리며'와 '취화선'의 포스터>
마을 전체를 감싼 나지막한 돌담도 운치를 더한다.
담장 길이만 5㎞를 넘는다. 담장과 어우러지는 봄꽃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안동 하회마을, 순천 낙안읍성에 비해 유명세를 덜 타 영화촬영지로도 자주 활용되고 있다.
‘취화선’ ‘태극기 휘날리며’‘장길산’‘야인시대’ 등이 이 곳을 배경으로 찍었다.
최근에는 마을 주민들이 팜스테이(Farm Stay)프로그램을 운영, 관광객몰이에 나서고 있다.
전통 두부만들기, 떡메치기, 제기차기 등 놀이와 모내기,
콩, 호박심기, 나물채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행사에 참여하면 전통고가에서 하룻밤을 청할 수도 있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외암리 마을은 안동 하회마을, 순천 낙안읍성, 경주 양동마을 등과 함께
비교적 보전이 잘 된 마을 중에 하나다.
특히 이 마을은 관광용으로 변질되지 않아 옛 마을의 정취가 그대로 살아 있다.
빈집들도 물론 눈에 많이 보이지만 60여 호의 주민들이 실제로 살고 있어
마을을 산책할 때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고, 고샅길에서 마을 주민이라도 만나면 왠지 어색한 웃음을 짓게한다.
외암리 마을을 빠져 나온 다음부터는 오르막길이 자주 등장을 하면서 그야말로 고행길이었다.
특히 12시 45분경 길 옆에 자리한 기사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계속된 라이딩은
정말로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참고로 기사 식당은 어디가나 음식맛이 좋은줄 알았는데 이날 드른 식당은 그렇지 못했다.
<점심식사후 고개를 넘느라고 힘이 들었는데 반가움을 느끼게 했던 공주를 알리는 이정표.
이 길도 무척 오르막이 심한곳이라 더욱 이정표가 반가웠던것 같다>
그러나 힘든 오르막길을 해결하고 나면 순식간에 내려가는 내리막길이 분명히 자리하고 있어서
그 내리막길을 생각하며 발에 힘을 더하며 한고개 한고개를 넘어갔다.
물론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갈수도 있고 지나가는 차량의 도움을 받을수도 있겠지만
라이딩을 계획하면서 세워논 기준 가운데 이런것들이 있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자전거를 끌고가지는 말자. 혹시 힘이 들면 쉬었다가 가더라도.
또 한가지는 주변에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차량을 지원하겠다고 해도
웃으면서 사양하자. 이마에 땀이 흐르고 발이 부릅튼다고 해도....
물론 차량을 지원해 주겠다는 제안도 받지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아산에서 유구까지의 어려운 코스를 넘어섰다.
유구를 지난 다음부터 동대라는 지역에 도달하기까지는
맞바람이 많이 불어와서 힘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견딜만한 정도였다.
<유구읍의 모습. 이곳에서 예산 그리고 공주 ,부여 길로 갈라진다>
청양이나 부여를 가기위해서 길이 나누어 지는 동대에 도착을 하니 눈에 익숙한 곳이었다.
대전에서 근무할 당시 대천이나 안면도를 찾아갈때 스쳐 지나갔던 곳이어서....
이곳까지 도착을 하니까 오늘의 목적지인 유성과 점차 거리를 좁혀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전거에서 내려 준비해간 연양갱과 과자를 먹으며 힘을 재 충전하고 자전거도 체크를 했다.
오후 6시까지 도착을 목표로 했는데 예정대로 도달할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마 얼굴까지 완전히 가린 내 모습이 이상한지 쳐다보지만
신경에 거슬리거나 시선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은것도 변화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휴식을 취하면서 양팔과 다리를 보니 하루종일 햇빛을 직접 받아 빨갛게 익어 있었다.
준비한 썬크림을 출발 직전에 바른다고 했지만 꼼꼼히 바르지 않은것이 그 이유였다.
특히 오후 햇살을 계속받은 왼쪽 팔과 다리는 그 정도가 아주 심했다.
동대를 출발하여 공주에 들어가기 위해서 긴 터널을 지나야 했다.
야간 라이딩을 위해 자전거 후미에 경보등을 설치했는데
자전거를 세우고 스위치를 눌러보니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해체를 해서 건전지를 만지고 애를 써 보았지만 변화가 없었다.
하는수없이 그대로 1km정도 되는 굴속으로 진입을 했다.
그런데 뒤에서 달려오는 자동차 소리가 얼마나 크고 위협적인지
그대로 와서 받아 버릴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굴을 통과하는 동안에 머릿끝이
그대로 서 버리는것과 같은 무서운 경험을 해야 했다.
이것은 공주를 벗어나 대전권으로 집입하기 위해 유명한 마티고개 터널을 통과할때도 마찬가지였다.
미리 미리 잘 준비하고 정비를 해야 하는데.....
터널을 통과하고 나니 오른쪽으로 금강이 흐르고 그 건너편으로 공주 시가가 눈에 들어온다.
하교길을 맞이해서 중고등학생들이 지나고 시외로 나가는 버스들이 꼬리를 물고 옆을 스쳐간다.
시종 금강줄기를 오른쪽으로 하고 페달에 힘을 가했다.
목적지인 유성은 점점 가까워오는데 오늘의 가장 난 코스가 눈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마티고개'
마라톤 선수들이 오르막 연습을 위해서 주로 많이 찾는 곳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마티고개이다.
물론 지금은 도로가 새로 뚫리면서 이전처럼 굴곡이 심하거나
오르막이 길게 계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의 코스중에서
가장 난 코스임에는 틀림이없는 곳이었다.
처음 코스를 정하면서 천안 조치원 유성으로 정한것도 이곳을 피하기 위한 생각때문이었으니까.
기아를 변속을 해서 오르기 시작했어도 워낙 거리가 길어서 역시 쉽지않았다.
이럴때는 앞을 보지않고 바퀴가 글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숫자를 센다.
물론 잠시 전방을 살피면서 장애물이 있는가 확인을 하기는 하지만
바퀴가 한 바퀴 돌때마다 숫자를 늘려가고 백회가 지나면 다시 처음부터...
이렇게 100까지 숫자를 세는것을 20여번 하고 나서 터널앞에 도달한것 같다.
물론 중간에 한번 자전거를 세우고 휴식을 취하기도 했는데
그때 마침 어머니께서 전화를 해 주셔서 더욱 힘을 낼수가 있었다.
<가장 난 코스였던 '마티고개를 오르며 휴식하는 모습.
마침 걸려 온 어머니의 격려 전화는 큰 힘이 되었다>
마티고개를 넘어선 다음에는 내리막길을 순식간에 달려서
동학사 입구인 '박정자 삼거리'에 도착을 했다.
시간도 여유가 있어 보이고 늘 자주 다니면서도 내려보지 않고 스쳐 지나던 곳이라
자전거를 멈추고 휴식도 취하고 사진도 몇장 찍어 보았다.
이제는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유성 온천단지 입성만 남은셈이었다.
<동학사 입구에 자리한 박정자 삼거리.
자주 이곳을 지나 다녔지만 차에서 내려 본 것이 이날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목적지인 유성 온천단지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수년 간 암으로 투병하다가
금년 초 별세한 친구의 묘소를 둘러 보기로 하고 국립묘지로 향했다.
그런데 안장한지가 두달이 넘었는데도 아직 묘지 조성이 완전히 끝나있지가 않아
반듯하고 깨긋하게 꾸며진 묘소를 기대한 마음에 다소 실망감이 들었다.
막바지 공사를 하는듯 보였는데 현충일까지 마칠수 있을듯 생각이 되었다.
고인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발길을 옮겼다.
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등진 친구는 생경한 복장에 자전거를 타고 찾아 온 친구가 반가웠을까?
<아직 마무리가 덜 된 친구의 묘 모습>
오후6시.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계룡스파텔에 도착을 했다.
마침 이곳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는 예사목 회원들로 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미 자전거를 이용해서 참석할것을 알린 상태지만 반신반의하고 있던 이들이들이었는데
정말 예고했던 모습으로 나타나니까 깜짝 놀라면서 반가워하고 악수를 청해 오는 것이었다.
자전거의 계측기를 보니 오늘 달린 거리가 무려 140km였다.
한강과 같은 자전거 전용도로가 아닌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는 국도를
이만큼 달려 왔다는 것은 내가 보아도 참 대단하게 생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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