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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목포간 자전거 여행(둘쨋날)-지치고 힘들게 지난 백제 문화권

vyjang2005.06.10 08:34조회 수 1394추천 수 2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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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05년5월24일(화)
* 날씨: 매우 맑음                    * 달린 거리:92km
* 출발 시간: 오전 8시30분         * 목적지 도착 시간: 오후 6시30분
* 라이딩 코스: 유성-두계-논산-강경-익산-김제(부용)



<전날 모임에 참여한 동료들의 격려를 받으며 시작된 둘째날 라이딩 >


라이딩 두 번째 날.
전날 유성에 도착을 해서 온천물이 몸을 닮고 뭉친 근육을 풀고
햇살에 붉게 익은 몸도 찬 물로 마사지를 한다고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무거운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피곤을 느낀 것은 자정이 넘도록 계속된 모임과
이어서 잠자리에서 장갑차(?)를 밤새 운전하시는 분이 계셔서
잠을 설친 이유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 졌다.

계룡스파텔에서 올갱이 해장국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챙기고  
전날의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 양팔과 다리 그리고 얼굴에
썬크림을 듬뿍 바르고 배낭을 단단하게 챙겼다.
출발전에 홈페이지와 메일을 체크했더니 여러 지인들로부터 격려의 글들이 쇄도해 있었다.
한 문장 문장을 읽으면서 힘이 생기고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오전 8시30분경  두 번째 날 라이딩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모임에 참여했던 동료들 20여명이 출발 모습을 직접 지켜보면 뜨겁게 격려를 해 주는 것이었다.
악수를 나누고 덕담을 뒤로하며 숙소를 출발했다.

유성 온천단지에서 가수원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미 쏟아져 나온 출근 차량들로 인해서 앞으로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아침부터 내리 쪼이는 햇살이
오늘 하루도 쉽지않은 라이딩이 될것이라는 생각을 갖게했다.

그러나 쉼없이 복잡한 출근 차량 사이를 빠져서 가수원으로 나오니 한결 라이딩이 수월해 졌다.
길도 넓어지고 상대적으로 차량 통행도 적어서....
서대전 인터체인지를 지나니 전에 서너 번 식사를 위해 찾았던 방동저수지가 다가온다.
물빛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자전거를 멈추고 물속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지만
일정을 생각에 페달에 힘을 가했다.

몇 번의 업힐과 다운힐을 거친 후 계룡대 입구에 도달했다.
오른쪽은 계룡대 왼쪽은 논산으로 가는 삼거리 였다.
스포츠 음료로 목을 적시고 주유소 직원에게 사진을 한 장 부탁을 하고는 논산을 향해서 출발.

천호산 기슭에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토벌한 기념으로 세웠다는 개태사 앞을 지나고
호남선 철도와 나란히 가는 길이 라이더의 힘을 덜어 주는 듯 했다.
백제의 충신이었던 계백장군의 묘와 그 흔적들이 논산으로 향하는 주변에 많이 있지만
전에 이미 방문해 보았던 곳들이어서 그냥 패스.

논산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된 끝없는 논들은 그 이후로 강경 김제까지 펼쳐지고
이미 모내기를 마친 곳들이 많았고 그렇지 않은곳은 기계를 이용해 모내기가 한창들이었다.
아마 논에서 모내기를 하는 농부들이 한가하게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면
속으로 야단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논산을 지나고 강경을 향했다.

그런데 전날 보다 몸도 무겁고 통행하는 사람의 그림자를
전혀 볼 수 없는 곳이어서 그런지  힘이 드는것이 느껴진다.
라이딩 코스도 전날에 비해서 훨씬 수월한 곳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휴식을 취하며 논산에서 이른 점심을 먹을까 생각을 하다가
강경에서 하기로 마음을 바꾸고는 논산시를 우회해서 강경으로 향했다.

라이딩의 후유증인지 엉덩이도 아파오고 특히 손이 무척이나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하루종일 핸들을 힘을 주어 잡고 있다 보니 손바닥도 아프고
가죽 장갑을 낀 손가락 끝이 저려 오기 시작을 했다.
그래도 손의 위치를 연신 바꿔가면서 끊임없이 앞으로.
강경읍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30여분경.


<강경읍 입구>


<젓갈이 유명한 강경읍. 수많은 간판들이 손님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강경은 이제는 젓갈로 유명해져서 이곳저곳에 젓갈 상점들이 눈에 들어오고
울굿 불굿한 간판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자전거 샆을 찾아 체인에 오일을 바르고 상태를 점검했다.
별 문제가 업다고 한다.
점심식사를 위해 음식점 추천을 부탁했더니 장거리 가까운 곳에 위치한 칼국수 집을 소개해 준다.
장거리 라이딩을 하는데 칼국수로 될까 모르겠다고 하면서.

‘강경 칼국수’
그간 집에서 어머니와 아내가 만들어 줘서 먹어 보았던 칼국수말고
음식점에서 이제까지 먹어 본 칼국수로는 가장 맛이 칼국수였던것 같다.
물론 점심시간이어서 붐비기도 했지만 7-8평 되는 방은 물론이고
3평 남짓되는 홀도 사람으로 넘친다. 대기하지 않고 먹으면 미안할 정도로....

육수에 먼저 새우, 굴, 꼬막을 넣어서 푹 끓이고
뒤에 직접 밀어서 만든 국수와 송이 버섯을 넣어서 다시 한번 끓여 먹는데
정말 그 맛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해물이 많이 들어가서 국물도 시원하고 아주 진하다.
그리고 해물들은 살짝 익혀서 미리 초 고추장에 찍어 먹는데
그 양이 많아서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었다. 4,000원을 내고 먹는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국수의 면발도 특이할 정도로 매우 쫄깃했다.
겉저리 김치에 감아서 먹어보니 금새 포만감이 느껴진다.

주인으로 보이는 젊은 부부 내외가 직접 주방 일을 보면서
밝은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고 서빙을 하는 분들도 아주 친절하게 손님을 맞이하고
식사를 돕는데 조그만 시골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넘쳐나는 이유가
맛있는 칼국수와 친절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신 음식을 카메라에 담았더니 여 주인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강경 경찰서 건너편에 위치한 허름한 집인데 강경을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시식해 보기를 강력히 권해보고 싶은 집이다. (강경칼국수:745-3940)


<손수 밀어 만든 국수와 송이버섯 그리고 맛있는 겉절이>



<육수에 살짝 끓인 후 초 고추장에 찍어 먹도록 건져진 해물들. 그 양이 아주 풍성하다>


<끓여서 건져진 국수발과 각종 해물과 버섯들. 국수발이 참 쫀듯쫀듯해서 입맛을 더욱 돋운다>


<강경 칼국수 전경. 강경을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시식해 보기를 강력 권하고 싶다>

맛있는 칼국수로 점심을 하고 나니 포만감은 느껴져서 좋은데 몸은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몸의 무거움은 오후까지 계속 되었다.
아마 전날 잠이 부족했던 것도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그리고 라이딩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충남과 전북의 경계선에 서게 되었다.

“보석과 문화의 도시 익산시”,
“맛, 멋, 소리의 고장 관광전북”이라는 입간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번 라이딩중 충남에 이어 두번째로 도 경계선을 넘는 셈이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 방문해 보는 도시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다.
도 경계선을 넘어서니 ‘나바위 성지’라는 안내판이 바로 들어왔다.
아마 천주교 성지인듯 한데 방문해 보기로 마음을 먹고 국도에서 방향을 바꿨다.



<강경에서 칼국수로 점심을 하고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아 만난 도 경계선.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서 그런지 방문하는 지방마다 자신의 고장을 잘 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바위 성지'는 사적 제318호인 ‘화산천주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화산천주교회는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신부 서품 받고
황산 나룻터로 상륙한 것을 기념하여 1906년에 건립된 것으로
몇 회의 증개축을 거쳤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전도하던 곳이다.
그래서 천주교의 유입과 발전 과정에서 볼때 서구식 성당 건축 양식과 우리나라 전통 건축양식을
잘 절충시킨 초기의 성당이라는 의미를 부여 할수 있는 곳으로 여겨졌다.
그런 이유인지 아주 고풍스럽고 주변 환경도 잘 조성이 되어서
찾아 간 이들의 마음에 평화로움을 선사해 줄만한 곳이었다.
나바위라는 호칭은 성당 근처에 '화산(華山)' 이라는 산이 있는데
산이 너무 아름답다고 해서 우암 송시열이 붙여준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산의 줄기가 끝나는 지점에는 광장같이 너른 바위가 있으며
화산위에 자리잡고 있는 '나바위 성당' 은 이 너른 바위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천주교회 초대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화산천주교회의 전경.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서품후 처음 도착해서 전도활동을 벌인곳으로 이를 기념키 위해 세워진 성당이다>


성당을 돌아보고 익산시를 향해서 옮겨진 발걸음은 그야말로 외로움 그 자체였다.
주변에 지나는 사람도 없고 차량도 빠른 속도로 굉음과 바람을 내며 옆을 스쳐간다.
자주 지나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형 트럭이 지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착각도 찾아왔다.
점심을 잘 먹어서 배는 포만감이 느껴지지만 약간의 업힐 코스도
전날보다 힘이 들고  몸이 자꾸 처지는 것이 느껴졌다.
더구나 오전부터 아파오기 시작하던 손바닥의 통증은 자전거 핸들을 제대로 잡을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리저리 손의 위치를 바꿔보지만 손가락 끝이 때로는 저려오는것이 느껴진다.
염려했던 엉덩이의 아픔은 견딜만 했다. 다른이들은 엉덩이의 아픔때문에 고통을 많이 당했다는데.....
아마 출발전에 작은 안장으로 교체한것과 패드가 달린  shorts 착용이 효과를 보는듯 했다.
이럴때는 휴식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서 외딴 버스 정류소에 자전거를 세웠다.
준비해온 스포츠 음료와 과자를 먹으며 정류소 벤취에 길게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자전거가 걱정이 되었지만 누가 그새 그것을 갖고 가겠는가?
오가는 차량의 소음과 먼지가 날리는 듯 느껴졌지만 이내 잠속에 빠져들었다.
물론 자동차의 소음 때문에 숙면을 취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인기척이 나서 눈을 뜰 때까지 아주 잠깐의 눈 붙임이었는데 깨어나니 정신이 맑아지는 듯 했다.
인기척은 버스를 타고 출타하는데 할머니의 짐을 갖고 나와서 배웅하는 할아버지셨는데
내 자전거를 보시더니 흥미롭다며 이것저것을 질문하시는 것이었다.
잠깐동안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다가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리시로 전에 알고 있었던 익산시에 도착했다.
익산시는 한눈에 원불교 흔적들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곳이었다.
후에 임찬규목사님을 통해 들은 바로는 원불교 재단의 교육시설이 곳곳에 있는데,
신룡동에 원불교 세계 총본부가 있고 의료기관으로는 종합병원 2개소, 병원 3개소,
의원 110개소, 치과의원 60개소, 한의원 45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43개소가 있다고 한다.
아마 익산시의 경제력에 많은 영향을 미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광대학교 못미쳐 위치한 원불교 본부를 방문해 보았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있었는데 잘 꾸며진 정원들과 질서있게 건립된 여러동의 건물들,
마치 바다위의 섬처럼 조용하고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공간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 미안해서 천천히 걸으며 이곳 저곳을 돌아 보았다.
마치 중세의 수도원을 방문한 그런 느낌이었다.

한켠에 연못이 있고 정자가 있기에 다시 몸을 그곳에 누이고 잠시 잠을 청했다.
먼저 버스 정거장에서 누웠을때 보다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조용하고 편하고 선선하고, 누가 보는 사람도 별로 없고.....
진작에 이곳에서 쉴것을....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일부터는 점심을 먹지말고 열량이 높은 연양갱이나 과자 그리고 초코렛으로 대체하기로.

잠깐 눈을 붙였는데 오늘 잠자리를 제공해 주기로 한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현재의 위치를 알렸더니 익산과 김제를 이어주는 다리까지 마중을 나오겠단다.
극구 사양을 하고 혼자 찾아 가겠노라고 말을 전했다.
이것도 출발전에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약속중에 하나였다.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 길을 물을수는 있지만 누구의 도움을 받지않고 지도를 보고 혼자 찾아가기로...

원불교 본부를 떠나 익산역으로 가 보았다.
아직 오후의 해가 뜨겁게 내리 쪼이는 시간이었는데 역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며 활기차 보였다.
이곳을 와 보고자 했던것은 오래전에 이리역 폭발사고로 인해
역은 물론이고 많은 건물이 폭파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당연하겠지만 폭발 흔적은 찾아 볼수도 없고 현대식 역의 모습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익산역 앞에 자리한 분수의 모습. 활기차 보이는 익산시의 느낌을 잘 펴현해 주는 것 같았다>


<새로 잘 다듬어져서 오래전의 엄청난 폭발사고의 기억을 할수없게 만들어준 익산역.
초 여름날 오후 햇살가루가 역광장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익산을 빠져나와 다리를 건너니 바로 김제시라는 팻말이 보이고
오늘의 라이딩 종착지인 백구면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용중앙교회가 자리한 월봉리를 찾아 들어가는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모내기를 마치거나 한창 진행중인 드넓은 논들을 가로 질러 월봉리에 도착을 하니 부용역이 자리한 동네였다.

그러나 부락은 아주 한산했다.
500여호가 자리하고 있다고 하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워가는 농촌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듯 했다.
목사님 댁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삼계탕을 사 주셔서 저녁을 배부르게 먹었다.
계산을 해 보니 오늘의 라이딩 거리는 90km였고  이틀간의 총 누적 거리를 230km를 기록하고 있었다.



<부용중앙교회 전경>


<부용리에 자리한 보리밭의 모습. 보리가 이제는 많이 익어 추수할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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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사진이 깨끗하고 글도 같이 달리는 것처럼 잘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멋진 라이딩이셨군요. 그런데 질문 하나만
    혹시 쓰고 계신 스포츠글라스가 딥스의 카멜레온인지요?
  • 잘보앗습니다 열정이 존경스럽습니다
  • vyjang글쓴이
    2005.6.11 00:05 댓글추천 0비추천 0
    훈이아빠님//jycjhm님//
    격려의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도 생활 자전거 입문 6개월만에 용감하게 도전해 보았던 장거리 라이딩이었습니다. 많은 도전과 감동이 제게 있었지요.
    좋게 읽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제 고글은 좀 비싼것입니다.
    샾을 운영하는 젊은 주인의 꼬임(?)에 넘어가서 덜컷 구입을 했는데 Rudy사에서 만든 것으로
    눈이 나빠서 안쪽에 돗수가 있는 안경을 별도로 부착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만원이 훨씬 넘는 가격으로 구입을 했는데 좋긴 합니다.
    nosta18님//제가 국사책을 손에서 놓은지가 벌써 30년이 넘어서....
  • 그렇게 통일 신라 문화권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면
    조선 문화권이 맞는 논리 아니겠습니까?
    그냥 심심해서 한 글자 적어봤습니다.
  • 맛깔스러운 글과 멋진 사진 잘 봤습니다.
  • 역시 사진이 있으니까 스크롤의 압박도 견디겠군요...
    재밌는 라이딩이었겠습니다...
용용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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