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
종아리로, 목 덜미로, 팔꿈치로
지금도 휘돌아 치는 그 바람을 잊을 수 없다.
왜!
속초를 3주간 연속으로 가야했는지 모르지만...
때마다 속초가 주는 의미는 달랐다.
장거리 투어의 의미는 어느 라이딩보다,
팀웍과 자신의 투지가 어우러져 쾌감이 배가 되는 느낌이 온다.
첫 라이딩이다.
올 들어 장거리뿐만 아니라, 연습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로 출발한다.
선두구릅에 신경 쓰지 말고 제 속도로 가라는 락헤드님의 지휘아래 출발한다.
작년과 일주일 차이인데 기온으로는 많은 온기가 온다.
팔당을 건너기전 입고 온 덧바지를 벗었다.
가슴이 두근 거리며 첫 패달을 시작했던 것이, 걱정으로 다가온다.
새벽 요기를 대강 했기는 했지만, 양평 해장국까지 가기엔 시장기가 돈다.
(해장국 대신 돌솥 비빔밥으로 선택한 것은 탁월했다.)
늘 그랬듯이,
선두진과 사이를 좁히기 위해 먼저 출발한다.
모두가 연습 라이딩으로 호흡을 맞쳐 온 터라,
20대에서 50대까지 한 형제처럼 척척이다.
내 기억에 그들은 이러했다.
...
미시령을 시속3km로 올라갈 정도의 경사라고 엄포(공갈), 선포 하고나니 속초 초보자들 그것은 스탠딩 자세 아니냐고 더욱 믿거나 말거나 긴장함이 보인다. (후에 땀뻘뻘님 “어~잉 이게 다~야! )
미시령 정상까지 락헤드님 기압소리로 메아리가 울린다.
이슬에게 기를 불어넣으신다나...
정상에서 듣고 있던 우리 용사들 신기 해 한다.
...
무적의 용사들을 몸과 마음에 아무런 탈 없이 완주하기 위해 페이스 조절해가며
이끌어 주신 락헤드님.
무릎에 비상으로 타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겠지만 차량지원과 사진기사와 기타등등의
잡일도 마다하지 않고 희생한 EF님.
동갑내기 페토야님, 작년만 해도 미시령을 넘은 것이 꿈만 같다했건만, 벌써 세 번째
돌파 하고 내년을 기약하는 귀여운 분이다.
서울남자님, 나지막한 언덕에 지루함도 잊어버리도록 락헤드님과 뚜엣으로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이슬을 위로해 주시던 분이시다.
락헤드님 강의에 귀 기울였다 그대로 실천하는 모범생에다, 락헤드님에 이어 후미가 든든한 땀뻘뻘님.
쉬는 시간마다 작업을 궁리하지만, 마음만큼은 여리기가 어린아이 같은 마이클님.
푸우(?) 몸매에 제비같이 날쌘 패달링으로 미시령을 눌러버렸던 야마돌님.
전후좌우를 누비며 비행하는 라이더들의 모습을 촬영하기위해 수고하신 파젼님.
뒤처지지 않기 위해 쉬는 시간을 단축하여 앞서거니 출발한, 이슬을 추월하라고 외치신 감독의 말씀에 충실하고자, 열심히 이슬을 추월하고 넘어서 페토야의 선두진까지 추월하여 웃지못할 해프닝을 일으키시도록 실력 좋으신 사계절님.
(마이클님의 말에 의하자면 사계졀님의 몸매라면 자전거를 버리고 압구정동으로 진출하신다는 아리삼삼한 뉘앙스를 던진 바 있다)
양아파라는 애칭으로도 친근감이 있으시고, 라이딩내내 근육이 뭉침에도 미시령을 사뿐이 오르신 김영종님.
홀로 라이딩을 버리고 잠시 말바에 젖어 함께했던 토이님.
tera, pluszone님 자전거 실력도 좋으시지만 수면 실력도 만만치 않으셨다.
알콜 기운이 번지는 것도 마다하고 ‘용사들은 내가 책임진다’ 라는 신념하에 끝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으신 왈바짱 홀릭님.
추적추적 오시는 길마다 용사들의 땀과 눈물과 용기와 생각하며, 그들의 앞날에 미지의 동경에서 얻은 희망으로 살아가는데 작은 디딤돌이 되길 기도하며 왔을 그,
줄지어 호흡을 섞어가며 달렸을 용사들을 상상하며 흡족해하며 가슴 뿌듯했을 퀵실버님.
바람에 휘날리는 폭포를 배경으로 포토제닉의 영광을 안겨주심에 내심 감사할 뿐이다.
두 번의 출발!
잠실을 조금 벗어나서 출발한 조건인지 처음부터 지치지는 않는다.
야마돌님의 이유식이 두통이나 공수되었다 ( 다른 간식이 필요 없이 이것으로 용대리까지
달렸다 )
조금은 느낌이 다른 분들과의 라이딩.
간격도 조금은 벌어지고, 속도도 조금은 쎄다.
신경을 쓰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었지만, 페달에 무리가 가는 듯이 무거워지고 있다.
아침을 먹을 때까지 그들은 그렇게 조용했다.
그러나 적막도 잠시 후엔 꽁무니를 내뺐다.
어디서나 그랬듯이 이번도 수고하시는 분이 계셨다.(레이님-실력이 수준급 같다)
한주 전에 똥꼬(?)가 아파서 힘이 들었던 원인이 바람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대포항 근처로 숙소를 잡은 운치도 괜찮았다.
대게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고, 해안선 따라 아침공기 맡으며 산보하는 맛도 좋았다.
(그래도 첫 번째의 땀뻘뻘님 라면 맛하고는 비교할 수 없다 - 방문 하나 사이와, 쇼파에 누워 자고 있는 분들을 아량 곳 하지 않고 먹었던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세 번째길!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뉘어놓고, 운전사 뒷좌석에 배치를 받아 출발한다.
4시간 정도 걸려 가는 길인데도 엉덩이가 아파 이리뒤척 저리뒤척 거린다.
‘자전거 안장보다 의자가 몇 배 큰데, 엉덩이가 왜 이리 아픈거야!’
...
‘저~기 저곳이 강릉에서 오는 길에 길에서 자던 곳이야’
락헤드님, 버스가 강릉을 통해 가는 길이라 작년의 힘들었던 기억을 상기 시켜주신다.
대관령이 보일쯤엔 거리의 푯말에도 강풍을 조심하라는 간판이 더러 있는 것이 보인다.
찬 바람에 고생했던 일이다.
( 그 바람은 다음날 서울까지 계속되었다)
숙소까지 11km까지 자전거로 이동한다.
4:00
모닝콜 소리가 들린다.
빵, 우유, 커피, 먹다 남은 회로 배를 채운다.
동이 트기 전 미시령 정상을 올라가려는 계산에 서둘러 보지만, 생리현상으로 지체된다.
아침 공기가 사뭇 싱그럽고, 전율이 느껴진다.
첫 패달에 힘을 준다.
어디서 나왔는지 새끼 다람쥐 내 속도에 맞추어 종종종 옆으로 달린다.
미시령에서 왠 호사인지.
새 소리도 또렷이 지지거린다.
이른 새벽이라 차도 뜸하니 울산암 장관에 함성도 질러본다.
미시령 초입에서 바람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어 별 생각이 없었는데,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자전거 몸체가 오른쪽 절벽으로 바람에 못 이겨 이동을 한다.
사지 육신이 달달 떨리기 시작하고, 핸들이 중앙선을 가운데 두고 오른다.
미시령 정상에서는 바람이 더욱 심해 난간에 기대지 않고는 버팀이 어렵다.
헬멧이 날아갈까 싶어 사진 한 장 찍고는 바로 내려가자고 재촉한다.
내리막에서도 무서움도 있지만 자전거가 나가질 않는다.
벌써부터 마음이 지쳐버린다.
아마도
속초를 다녀온 중 가장 많은 휴게소를 들렀을 것이다.
작년에 퀵실버님, 명지아빠님, 투윈파파님, 페토야님, 레드맨님이 이길을 달리고,
락헤드님과 차량으로 돌아오던 길의 추억이 휴게소에 쉴 때마다 얘기를 나눈다.
또 다른 흥밋거리다.
머릿속의 기억과 마음의 느낌이 곳곳마다 새롭게 일어난다.
힘이 들 때마다 그렇게 라이딩을 했다.
...
홍천쯤에서야 낮 익은 길이어서 인지 바람의 저항과 상관없이 패달이 움직인다.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터널을 통과하는 일은 마음이 답답하다.
세 번째 터널을 통과할 즈음 안장에 앉은 쿳션의 움직임이 심각하다.
뒷바퀴에 이상이 온 것이 감지된다.
빵구가 난채로 터널을 마저 통과하고 새것으로 교체한다.
하남을 통과할 무렵, 새 튜브가 불량인 것 탓에 다시 한번 빵구를 때우고 교체를 한다.
바람과의 투쟁.
락헤드님, 바람을 이기려 하지 말고 저항에 패달을 맡기면 몸에 무리가 안 간다고 말씀을
하셨지만, 그땐 그것을 몰랐다.
....
...
첫 번째 길엔 힘이 너무 들어 다시는 속초를 안 가리라 말해버렸고,
두 번째 길에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에 가버렸고,
세 번째 길엔 영원한 나와의 싸움이 거기 있었다.
그 길에 동지도 있었고, 사랑과 우정과 삶의 윤활류가 있었다.
...
적지 않은 나이에 내게 있어 자전거는,
좋은 사람들의 마음을 전해 받은 매체였다.
애물단지란 말도 맞을 것 같고...
...
아마도
나의 속초행은 자전거와 함께 하는 날까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라이딩을 함께한 한분 한분 모두는 내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다.
그것으로도 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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