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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목포 라이딩(마지막 날)-"다시 떠나야지!!"

vyjang2005.06.29 06:31조회 수 1175추천 수 1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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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원,목포간 라이딩의 마지막 날.
오늘 주파해야 하는 영광에서 목포를 거쳐 종착지인
압해도의 압해중앙교회까지는 지도상으로 볼때 그렇게 긴 거리가 아닌듯 해서
아침 기상이 평소보다 많이 늦었다.
그리고 거의 한시간 동안 숙소의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놓고 목욕을 즐겼다.
중간에 욕조 안에서 잠깐 잠도 들었던것 같다.
아마 지난 밤 낯선 환경때문에 여러번 잠이 깨었던 관계로 숙면을 하지 못한것이 그 이유 같았다.
세면 후 모델 앞 깨끗하게 단장한 식당에서 곰탕으로 늦은 아침을 했다.
어차피 점심을 먹지 않을 생각이기 때문에.....

숙소를 출발한 시간이 오전 10시40분경.
평소보다 아주 많이 늦은 출발이지만 발거음은 대단히  가벼웠다.
아마 라이딩의 끝날이고 좋은 벗의 기다림이 있다는 생각때문에....
이미 날은 많이 더워져 있었다.
라이딩 첫날 썬크림도 제대로 바르지 않고 반팔 져지를 입어 양팔과 다리가 탄것을 생각해
긴팔 상의를 착용하고 다리에는 썬크림을 듬뿍 발라 무장을 했다.
첫 목적지는 함평.

영광에서 함평으로 향하는 길에도 차량의 행렬이 뜸해서 라이딩은 아주 편안했다.
오히려 가끔 마주치는 차량의 운전자가 반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도로 주변으로는 이제 곧 수확을 앞둔 양파와 마늘 그리고 담배 농사를 지은 밭과
모내기를 거의 마쳐가는 논들이 그득해 외로운 라이더를 격려해 주는듯 했다.
함평으로 향하는 길도 전날과 같이 별 오르막이 없어서 어려움을 느낄수가 없는 코스였다.
그렇다고 어디 들어가서 구경할 만한 것도 별로.....

1시간 정도를 여유롭게 페달을 밟아 함평에 도착을 했다.
함평은 아주 오래 전 함평 고구마 사건으로 뇌리 속에 남아있는 고장이었다
아마 고구마 농사를 짓는 농부의 실종 사건에 천주교와 반정부 그룹이 개입되면서
국내외를 아주 시끄러웠던 사건이었던 기억이....
그런데 함평 초입새 부터 그 느낌이 아주 다르게 다가왔다.
곳곳에 나비 그림과 조형물들이 나그네의 발걸음을 반겨준다.

조그마한 읍에 불과하지만 지역을 온 국민에게 나비의 도시로 각인을 시키고
나비 축제가 열리면 전국으로 부터 구름 관객을 모으는 곳이 함평이였다.
그런 이유때문인지 상점의 간판, 차량, 벽과 인도와 차도, 교량에도 온통 나비의 그림과 조형물들이다.
심지어는 숙박시설도 나비를 형상화 해서 간판도 만들고 사람에게 관심을 끌도록 해 놓았다.
그야말로 나비의 천국이다.
무심결에 넘어갈수 있는 나비를 통해서 지방의 조그만 읍의 지명도를 높인 아름다운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비의 도시 함평읍의 여러가지 모습입니다.
완전히 나비의 천국입니다. 도로에도 산위에도 나비들이 살아 움직입니다.
한 사람의 생각으로 시작되었을 이 일이 도시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평을 둘러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사람의 비젼이 불씨가 되어 거대한 시대의 물결을 이룰수 있다는 점이었다.
어떤 단체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리더쉽과
헌신적인 동역자들의 협력에 의해서 이루어 진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하고있는 우리 앞의 현실이다.
공연히 무작정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것을 어떻게 하면 더 개발할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즉 이 시대는 자신의 존재 긍정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이룰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함평을 떠나 무안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 50분경.
라이딩의 종착점이 점점 가까워 오는데 몸은 지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힘이 나는것이었다.
날씨도 무덥고 햇살도 뜨겁게 내리 쪼이지만 별반 라이딩을 어렵게 하지 않았다.
아마 목포가 가까워 온다는 사실때문인듯 싶었다.

무안에 도착하여 둘러 갈곳이 있는가 살펴 보았지만 별로.
아쉬운 마음에 시장통에 들어 가 보았지만 그곳에도 볼것이 거의 없었다.
초여름 날 뜨거운 오후 시간이라....
초당대학교를 둘렀다.
교문 밖에서 볼때는 규모가 커 보이지 않았는데 초입에 있는 건물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제법 여러 동의 건물들이 산재해 있고 학생들도 분주하게 오 간다.

낯선 복장에 자전거를 끌고 나타난 이방인(?)을 학생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 본다.
그리고 오랜만에 젊은이들이 있는 곳에 가 보니 자신도 젊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늘이 드리워진 벤취에 앉아서 스포츠 음료로 목을 추기고 간식도 먹어 본다.
오늘도 점심을 별도로 먹지 않기로 했기 때문인지 입맛을 돋아준다.
학생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어 보고 그간의 일정도 수첩에 메모를 하며 휴식을 취했다.
인근에 있는 국립 목포대학교도 둘러 보았는데 초당대학교 보다는 좀 더 활기가 느껴졌다.
캠퍼스 곳곳에는 광주사태에 대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오래 전 기억을 되 살리게 해 주었다.



(라이딩 기간중 힘을 내도록 도와준 연양갱.
요즘은 안에 밤이 들어간 것도 있고 고구마로 만든 것둘도 있어서 먹기가 아주 수월하고 좋았다.)


목포대학교를 나와서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목포를 향해서 페달을 밟았다.
몇번의 오르막이 앞을 막고 도심이 가까워 오면서 대형 트럭들이 이동이 있었지만
바다지기의 라이딩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휴대전화로 문자도 들어 온다.
"지금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겠지요 내성이 강한 분이니 꼭 해내리라고 믿습니다.
물드시고 하이팅!"
어느 분은 포토메일을 보내 주셨는데 구형 핸드폰을 갖고는 볼수가.....

오후 4시가 약간 넘은 시간 목포 시가가 내려다 보이는 시의 입구에 서게 되었다.
직진을 하면 목포 시내로 들어 갈수가 있지만 유달산을 가르치는 쪽으로 우회전을 했다.
아마도 우회로인듯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계속되는 오르막이지만 400km를 달려 온 라이더를 힘들게 하지는 못했다.
한참을 올랐다고 생각을 했는데 예상대로 내리막.
신나는 시간이다.

압해도로 향하기 위해서는 북항으로 가는 길로 접어드니
멀리 압해도와 목포를 연결하는 교량의 공사중인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이미 교각들이 세워져 있었고 상판 공사를 기다리는듯 했다.
지금까지는 북항에서 배를 이용해서 사람과 차량이 건너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으면 이제 섬이라는 이름을 떼어 버리게 될듯 싶었다.



(목포로 진입하여 북항을 향해 라이딩중 휴식시간.
도로는 아주 좋은데 왕래하는 차량이 없어 도로는 한적했다)


전에도 압해도 방문을 위해 여러번 와 본 북항에 도착을 해 보니 길 양편으로 횟집이 즐비하다.
공중에는 만국기가 휘날리고 음악소리가 크게 들리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그리 많아 보이질 않는다.
아마도 좋지 않은 경기때문이 아닐까?
물론 식사시간으로는 이른 시간이기는 했지만 왠지 활기를 잃어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배에 오르기 전에 압해중앙교회 신현파 목사님에게 도착을 알리는 전화를 했다.
배터로 마중을 나오겠다는 것을 말렸다.
배를 타려고 선창에 대기하고 있으니 택시 기사들이 다가와서는 자전거를 보고 말을 건다.
자전거가 비싸 보인다고 기념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분도 있다.
절대 비싼 자전거가 아닌데....
어느 분은 서울에서 출발해서 왔다니까 거짓말이라며 믿어 주질 않는다.
그분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이 될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국기가 펄럭이는 목포 북항의 힛집타운의 모습)



(횟집은 길 양편으로 즐비했지만 한산하기만 했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가.....)



압해도로 향하는 배를 타기 전에 만난 택시기사.
자전거를 보더니 기념 사진을 찍어 달라며 포즈를 잡아 주셨다. 재미있으신 분이었다.)



(목포 북항에 도착한 기념사진. 뒤에 보이는 선박이 차와 사람을 싫고 압해도로 들어가는 배이다)


(차량이 가득 실린 모습. 물동량이 많아서 계속해서 배가 움직인다.
바다지기의 자전거도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압해도로 향하는 중 배에서 바라본 목포 북항의 모습.
오른쪽의 산이 유명한 유달산이다)



눈앞에 보이는 압해도로 가는  배에 올랐다.
10여분도 걸리지 않은 도선 거리는 배를 탔다는 기분도 느끼지 못하게 한다.
배에서 자전거와 함께 내리는데 돈도 받질 않는다.
섬을 나갈때 일괄적으로 계산을 한다는 것이었다.
배에서 내려 다시 복장을 갖추고 20여분 달려갈 생각으로 페달에 힘을 가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생각을 하니 몸도 마음도 날아갈듯한 느낌이었다.

선착장을 빠져나와 커브길을 도는데 좀 높은 곳에 누구가 서 있었다.
무심결에 지나려고 하는데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는 신현파 목사님이었다.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압해도 도착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주려고 손수 차를 몰아 나온 것이었다.
반갑게 악수를 했다.
라이딩 첫날 유성에서 함께 잠을 자기는 했지만 또 다른 느낌의 악수였다.
고마운 친구였다.

압해중앙교회까지 향하는 마지막 라이딩.
신목사님은 차로 앞질러 나가서는 대기하고 있다가 내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아 준다.
그것도 여러차례.
참 좋은 친구이다.
길 옆으로는 담배밭도 보이고 수확을 기다리는 양파 밭도 즐비하다.
바다도 보이고 멀리 드넓은 갯벌도 눈에 들어 온다.
아름다운 섬 압해도이다.

압해중앙교회는 면사무소가 위치해 있는 섬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도 위치해 있고 여러 행정기관도 있다.
교회는 70여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며 지역을 위해서도 여러 일들을 하고 있다.
금년 봄에는 노인대학을 개교했다.
노인 학생들의 숫자가  300여명이 넘는다는 것을 보아서는 노동력이 떨어진 어른들이 모두 오신듯 하다.
신목사님과 교회는 이를위해 커다란 대중 목욕탕과 식당을 넣어서 2층짜리
선교봉사관을  지난 가을에 완공해서 대비를 했고 교인들도 훈련을 시켜서 준비를 해 왔었다.
목사님이 부임하셔서 몇해전 교회도 새로 건축을 했고 지금은 목사관을 새로 짓고 있었다.

교회에 도착을 하니 자전거의 계측기가 543.4km를 가르킨다.
120.5km에서 출발을 했으니까 총 라이딩 거리가 423km 이었다.
시작할때부터 생각하지도 못했던 거리다.
가슴이 뛰고 어딘가를 향해서 마구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이런 장거리를 아무런 사고없이 달릴수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더우기 처음 나서 본 완전 초보에 혼자 이뤄 낸 일이 아니었던가.
신목사님의 축하의 악수를 받으며 마음에 뭉쿨함이 넘쳤다.
아내에게 도착 소식을 알리니 함께 기뻐해 주는것이 전화 너머로 느껴졌다.
역시 가족이 참 좋은 것을 새삼 확인케 된다.
자전거를 들고 환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너무 오바하는 느낌이 들어서....
건강하게 잘 라이딩을 마친 자신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총 420km가 넘는 거리의 라이딩을 마치고 압해중앙교회에 도착한 모습.
하루종일 헬멧을 썻다가 벗으니 머리 스타일이 우스워서 모자로 갈아 썼다.
이때 느낌 감동과 감격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느낄수 있는 아주 귀한 것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때 계측기의 숫자. 총 423km를 달렸음을 증언하고 있다)



(신 목사님 사모님이 마련해 주신 저녁 식탁.
병어 회에 낙지볶음등이 준비되었고 세발 낙지회가 아직 오르지 않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과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때문에 저절로 포만감이 느껴졌다)  


  

식당의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사모님이 환한 미소로 검둥이를 맞아 주신다.
두분은 20년전 바다지기의 중매로 부부가 되었는데 슬하의 남매는 영국에 유학중이다.
딸은 대학에 진학을 했고 아들은 고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다.
두분만이 생활하고 있어서 그런지 더 정겨워 보인다.
목사님이 대형 목욕탕에 뜨거운 물을 받아 주셔서 몸을 담았다.
양팔과 양 다리에 검게 탄 모습이 그렇지 않은 부분과 완연하게 대비가 된다.
거울속에 몸을 비춰보니 얼굴은 늘상 마스크로 가린 덕에 햇살속에서  장거리를 달려 온 사람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양팔과 다리는 흑백의 조화가 완연한것이 지난 나흘간의 라이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듯 싶었다.

세발 낙지와 병어 회로 배를 빈틈없이 채웠다.
특히 낙지가 기력을 회복하는데는 최고라며 목사님 내외가 자꾸 권해서
볶움과 회로 오랜만에 포식을 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특히 식당에서 내다보이는 전경은 서울의 어느 스카이 라운지가 부럽지 않았다.
바다와 멀리 보이는 갯벌 그리고 올망졸망하게 자리한 그림같은 집들.
어느 유럽의 한 해안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이 있을듯 싶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랜 시간 식사를 하고 과일도 먹고 차도 마셨다.
유리창 밖으로 어둠이 스물스물 밀려 왔지만 마음 속에는 흥분의 파도가 계속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잠자리에 들지 않아도 전혀 피곤할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친구 목사님은 선교 봉사관에 잠자리와 컴퓨터를 연결해 주고는 일찍 쉬란다.
아마 몹시 피곤하고 지쳐서 피곤할것라는 배려 때문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남매를 유학 보내놓고 두분이 생활하시는 신 목사님 내외.
20여년 전에 바다지기의 중매로 부부가 되었는데 아름답게 국토의 남단을 지키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라이딩을 마치고 5월 27일 상경길.
목사님이 손수 운전을 해서 잔차와 바다지기를 데려다 주셨다. 고마운 친구......)



그러나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잘 오질 않았다.
몸은 피곤함이 느껴졌는데.....계획한 바를 이루었다는 흥분때문인듯 싶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금년 가을에 이번에는 부산을 목표로 떠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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