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 사진 : 이태리 꾸르마이어 가는 길의 TMB 지도
아래사진: 프랑스 몽블랑 끄와(Croix) 고개를 넘기위해 빙하를 건너서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Elena – Grand Col Ferret – Champex – Bovine – Col Forclaz - Chamonix)
2005년 7월 20일
오늘은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일찍부터 서둘렀다. 7시15분 해발 2,062미터 엘레나산장을 출발하여 근 40도 각도 경사를 넘어 해발 2,537미터의 페레고개(Col Ferret)로 향한다. 낑낑대기는 하였지만 이제 2시간의 급경사 정도는 인이 박혔나 보다. 오를 땐 분명 욕을 하면서 올랐는데 어느 덧 정상에 오르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마 이곳이 이태리와 스위스의 국경이지. 다음은 내리막이다. 15분을 내려와 스위스국기가 펄럭이는 산장을 지나 신나는 내리막이 계속되었다. 근 한 시간을 포장된 도로를 포함 기분좋게 내려왔지만 분명 다시 오르막 갈 것을 생각하니 내리막도 그다지 신나지 않는다. 샴페호수(Lac de Champex)까지 9키로의 아스팔트 오르막인데 얼마나 걸리려나.
1시간20분이 걸렸습니다. 앞에 1단, 뒤에 3단을 놓고 토크와 마력을 유지하며 평속 7키로로 저었습니다. 중간에 딱 한번 쉬었으므로 9키로의 언덕길 1시간 20분이 맞습니다. 해발 1,466미터 샴페호수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 동안엔 설원의 봉우리가 우리를 감탄시켰는데 이번에 산 위의 맑고 넓은 호수가 우리를 기분 좋게 합니다.
양광이 제일 따뜻하게 비치는 노천 카페로 갔습니다. 감자튀김과 닭가슴살 튀김을 먹었는데 제법 맛이 좋았습니다. 성격 좋은 임선생은 뻔히 영어를 할 줄 알면서 프랑스어를 고집하는 그것도 스위스 카페의 웨이트리스가 불친절하다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어쨌든 음식이 맛있었으니 다행입니다. 영규가 좋아하는 그리고 나도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시켜먹었습니다. 이곳에도 카드가 되는 군요. 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끝내니 오후 12시50분입니다.
이곳에서 포크라즈(Forclaz)고개까지 가는 길은 세 갈래인데 허도사는 그 중 두 갈래 길을 가봤답니다. 나머지 중간구간을 가보지 않았는데 지도상으로는 그곳이 지름길 같다고 하는군요. 처음엔 완만한 돌길을 피곤하지만 잔차를 밀고 갔습니다. 조금 지나니 더 이상 밀수가 없고 경사가 그리 높지 않은데도 잔차를 들어야 했습니다. 물론 나는 등에 지고 갔지요.
이거 길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최영규군이 허긍열프로를 부릅니다. 물소리 때문인지 아무리 불러도 앞으로 치고 나간 허도사는 대답이 없습니다. 산길은 점점 험해집니다. 경사는 물론 급해지고 길은 좁아지고 돌도 더 많아 졌습니다. 최영규군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습니다. ‘미쳤다, 미쳤어 이런 길을 잔차를 메고 어떻게 올라가라고..’
우리의 영규도 힘들 때가 있나 봅니다. 계속 중얼거리며 이곳에 잔차부대 몰고 왔으면 거의 맞아 죽었을 거랍니다. 허긍열프로는 있을 수 있는 불평에 아마 악소리 못하고 쫓아 오게 하려는지 한참을 가도 보이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일행이 조금 떨어지면 위에서 기다려 주곤 하였는데. 세 선수 중 이번엔 내가 맨 앞이고 그 다음이 최영규선수 그리고 임덕용선수가 맨 뒤에서 올라 옵니다.
정말 힘들더군요. ‘갈수록 태산’이라던데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라고 했지 않습니까? 등이 휘고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 옛날 머슴들이 이렇게 서럽고 힘들게 짐을 지고 날랐을까요? 잔차계의 내 예명인 ‘머슴’을 다른 것으로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다시는 머슴 짓 안 한다고 굳게 마음도 먹었습니다. 최형석군의 예명 ‘뽄드, 제임스뽄드’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동안의 여정을 가만히 돌아보니 삼식이를 찾으러 삼순이가 올랐던 한라산을 다섯 번은 넘은 것 같고, 백두산도 두 번은 넘은 것 같습니다. 정상에서는 딸랑 딸랑 종을 목에 매고우락 부락 검은 소들이 우리의 앞길을 턱 하니 막고 있습니다. 꼼짝 못하고 임선수와 제가 서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꼬마 아가씨가 회초리를 들고 소들을 물리칩니다.
3시간을 올라간 정상부근 능선에는 보바인(Bovine)이란 이름의 낡은 산장이 있었습니다. 해발 2,100미터는 될 것 같습니다. 오래된 산장인 듯한데 주인 아줌마는 벤치에 나와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고 할머니는 우리에게 오렌지쥬스를 날라주었습니다. 아까 그 롱다리 꼬마아가씨의 손에는 들꽃이 한 줌 들려있었는데 아마 뜨게 아줌마의 딸인 듯 싶습니다. 낡은 탁자 위의 화병에 물을 담아 꽃을 꽂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3시50분, 5분간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쏜살같이 다음 목적지를 향해 내 달립니다. 아슬아슬 다운힐하여 해발 1,527미터 포크라즈(Forclaz) 고개에 도착한 시간이 5시입니다. 마침 목이 말랐었는데 다운힐 실력이 엄청 향상된, 물론 최고급 산타쿠르즈(Santa Cruz) 풀샥의 덕도 보았겠지만, 영규가 먼저 내려와 살구인지 복숭아인지를 한 바구니 사두어 맛나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저 아래 뜨리엥(Trient)마을에서 파리에서 날아 온 남동건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래 나머지 네 사람과 뜨루 드 몽블랑을 같이 하기로 했었는데 e-Bay를 통해 산 중고 잔차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이번 여행에 합류하지 못한 것을 매우 아쉬워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가게에서 구했는지 TMB 구간이 그려져 있는 판박이를 자전거 앞에 붙이고 있어 우리 모두를 부럽게 하더군요.
열심히 페달질을 하여 스위스 국경을 넘어 예상보다 일찍 6시45분에 샤모니에 도착하였습니다. 영규는 불고기가 먹고 싶답니다. 샤워를 하고 불고기에 상추쌈, 순창고추장, 김치, 미역무침, 오이무침, 그리고 남사장이 가져온 물김치까지 배가 터지도록 밥을 먹었습니다. 몽블랑 빙하의 물로 만들었다는 Mont Blanc 맥주를 마시고 론(Rhone)강 유역의 맛난 포도주도 마셨습니다. 최영규군은 그 동안 해외에서 여행이나 모험을 하면서 한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은 처음 해 본답니다. 흐 흐 녀석도 늙어 간다는 증거겠지요.
여러분, 이번에 우리가 고생 고생하며 넘은 알프스의 TMB(Tour de Mont Blanc)코스는 산악자전거(MTB)로는 한국인 초등이랍니다. 그전엔 아무도 한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아마 등반을 한 경우도 별로 없을 거라는 군요. 등반을 한다면 10-12일은 걸리는 코스거든요. 물론 몽블랑 산사나이인 허긍열선수가 한번 돌기는 했답니다.
어떤가요. 우리 박수를 받아도 되겠지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앞에서 끌어 준 최영규군, 뒤에서 밀어 준 임덕용님, 그리고 묵묵히 일행을 돌봐 준 허긍열님, 대단히 고맙습니다.
에필로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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