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몽골의 테랫지는 1995년-그러니까 무려 11년전 친구와 페키지 관광으로 다녀 온 곳이다.
그래서 그 기행문도 한글(http://user.chollian.net/~mogab/) 과 영문(http://soback.kornet.net/~mogaby/index.html) 홈피에 올려 놓고 있지만 그 동안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이 넘었고 또 이번에는 단독의 잔차여행인만치 더 샅샅이 돌아 볼 수 있다는 기대로 택했다 할 수 있겠다.
아니나 다를 까.. 테랠지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다.
관광객들가운데 이제 몽골인도 포함 돼 훨씬 많아 진것 같았고 이에따라 초원에는 유목민 겔은 좀처럼 찾기 어렵고 곳곳에 대폭 그 숫자가 늘어 난, 대부분의 겔들이 숙박업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으며 이래선지 여행 알선업을 하는 한 교민은 몽골 사람들도 이제 돈 맛을 알아 옛날의 순진성은 찾기 어렵다는 설명.
허나 잔차로 찾은 이 곳은 옛날 버스편으로 갔을때 느끼지 못했던 주위 산들의 기암 괴석의 그 오묘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위 사진의 절경지를 찾아내지를 못해 재몽동포인 몽랑님이 작년 가을에 이 테랫지 '톨강'에서 찍은 사진을 그대로 올립니다.)
테랫지는 몽골정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있는 만치 상당히 넓은 지역으로 되어 있는 듯 했다. 평지를 달리다 큰 고개를 넘자 저 아래에 공원 정문같은 것이 보이고 수림 지역과 강물도 보여 거의 다 온 것으로 생각했으나 개폐식 차단기까지 있는 초소의 경비원에게 보디랭기지로 '얼마나 더 들어 가야 하느냐?'고 물어 보니 아직도 23키로나 더 가야 한다고 한다.
이 일대에는 겔을 비롯한 별장풍의 소형 건물도 보이고 또 주로 몽골인듯한 휴양객들이 보였으며 물 놀이를 하는 夏童들도 보인다.
또 이 때부터 목제 다리가 등장하는데 상판이 대못질을 한 나무판인데 이런 관광지서는 주위 경관에 잘 어울리는 듯 했고 또 정감이 가는 다리다.
다시 야트막한 고개를 넘자 왼편으로는 산이 계속 되었으나 오른 쪽은 양떼들이 풀을 뜯는 초원이 전개된다. 곳곳에 말, 야크, 순록, 낙타까지 구비(?)하고 관광객들을 부른다.
자가용차로 온 일본인 관광객 가족들이 아이를 순록에 태우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낙타도 구경하고 막 돌아서려는데 누가 아저씨하고 불러 돌아보니 도착 첫날 공항에서 잔차가방을 보관소에 맡길때 말이 안 통해 애를 먹고 있을때 나타나 도와 준 울란의 인문대 후를촐롱(상단 원, 아주 외기가 어렵다.)군. 그는 교환교수인 박태일교수(경남대 국문과)와 관광을 겸해 몽골에 다니러 온 부인과 두 자녀등 가족일행을 안내하고 있었다.
이 통에 내 라이딩 여행 사연에 놀라워 하는 그들과 기념사진(하단 원)도 찍었다.
'몽골'하면 유명한 고비사막이 있어 흔히 사막의 나라로 연상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초원의 나라로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테랫지를 돌아보면 그 인상이 달라진다.
특히 테랫지 일대에는 옛날 패키지 여행때는 보지도 못했던, 그 형상이 묘한 기암들이 많이 목격되어 아주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아름다운 자태의 산들과 초원이 잘 조화를 이뤄 정말 목가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다.
자세히 둘러 보려면 너무 소요시간이 길것 같아 대충 감상하는 수밖에..
24도 정도의 기온이라서 덥지는 않지만 햇볓을 받으며 달리다 숲이 좀 있는 커브길에 이르자 반가운 생각에 잠시 머물고 싶은데 갑자기 아이들이 손에 병이나 컵등을 들고 소리치며 달려 온다. 길 아래쪽 숲가에 앉은 여인들이 아이들의 병들을 가리키며 최고로 좋다는 뜻인양 엄지 손가락을 추겨 세운다. 가까이 다가가 본즉 메주 콩보다 약간 큰 새끼 딸기로 한 병에 2달러 라는데 한개를 집어 먹어보니 신맛뿐이다.
너무 시어서 못 먹겠다며 거절하자 이 번에는 잔차 주위로 몰려 들어 저마다 부품들을 만져 보려했다.
테랫지 호텔 못미처의 언덕배기 초입서 관광사의 차량이 고장 나 노란 야생화가 만개한 고개 언덕배기의 초원을 가로 질러 걷고 있는 한국인 골퍼들을 만났다. 고장 덕분에 덤(?)으로 야생화 들판을 걷던 이들 가운데 상일동서 온 한 분은 다운힐까지 타는 잔차광이라는 얘기를 듣고 꽃밭 오솔길에서 내 잔차를 좀 타게 해줬드니 '셋팅이 잘 되어 있는 잔차네요..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군요.'라고 했다.
이렇게 친해진 그들은 이날 저녁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때 합석을 끝까지 고사하자 징기스칸 보드카 반병과 한국서 일부러 가져왔다는 족발과 양념장까지 내 식탁으로 보내줬다.
돌아 오는 길에는 관광버스편으로 온 일본의 30여 중년 여성 관광객들이 일부러 버스에서 내려와 이 야생화를 감상하고 있기도 했다.
일부가 포장도 안 된 큰 고개 길을 막판에는 잔차를 끌고 넘어 가 당도한, 옛날 묵었던 그 호텔은 노쇠해선지 매우 황폐되었고 초라했다.
독방 하나를 15달러로 5달러 할인 받았으나 샤워실은 폐쇄되어 있었고 세면기에도 찬물만 나왔다.
변기의 물도 안 나와 맞은 편의 빈방 것을 사용했다. 본 건물에 핀란드식 사우나(5천 투r그릭)가 있지만 화가 나서 외면했다.
그 옛날 이 호텔 밖의 판자촌도 그대로 였으나 그 곳에 방문했을때 빵과 양젖을 대접해주던 건장한 몽골 사나이 빠르트씨는 호텔 주방에서 요리를 하던 칼맨 풍의 부인과 귀여운 처녀였던 처제들과 함께 어디론가 이사간지 오래라는 것이 수소문의 결과다. (원은 호텔 종업원과의 기념 사진.)
이날 저녁과 이튿날 아침 강변의 멋진 풍경을 찾아 나섰지만 온통 철망으로 막아져 있어 진입조차 어려워 실패하자 더욱 이 곳에 대한 정나미가 더 떨어져 서둘러 다시 고개를 넘어 왔는데 이 곳은 해발 2000m가 넘는다지만 호흡에 별 불편은 없었다.
다시 대 초원이 전개되며 멀리 몇 동의 겔이 보이고 양과 말, 그리고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그림같은 풍경이다.
갑자기 오른쪽 언덕위서 말을 탄 목동이 내게 뭐라 소리치며 무섭게 달려 내려와 찰라적으로 좀 섬찍한 느낌도 있었지만 막상 가까이 와서는 시간을 묻고는 담배를 꺼내 권하기까지 했다. 역시 외로운 목동인듯 했다.
국립 공원을 막 벗어 나서 나오는 고개길에 오르자 어느새 점심때가 지나 시장기가 돈다. 마침 고개 정상에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세운 듯한 겔이 3동이나 보여 요기 할것이 없나하고 순방을 했지만 모두가 기념품 점.
곱상한 젊은 부인이 어린 딸내미와 있는 맨 끝 겔에 가서는 배가 고프다는 시늉을 하며 먹을 것을 찾자 들어 오라고 했고 양젖 데운것과 빵조각, 그리고 자두보다 약간 큰 푸른 사과를 권한다. 마유주도 한 사발 권했지만 역시 맛이 너무 시어서 사양했다.
빵 두어 조각과 양젖 한 사발, 그리고 사과 한개를 얻어 먹고는 카메라를 꺼내 몇 커트를 찍고 또 이런 경우를 대비해 가져간 어린이용 사탕, 초코릿 과자 몇개, 그리고 집에서 잉여품으로 남아돌아 가져 간 손톱깎기 겸용 칼과 병따게를 사례품으로 건냈다. (계속)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