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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대초원 6박7일의 단독 라이딩기 화보편<4, 완>

mandolin2006.07.29 12:14조회 수 2676추천 수 7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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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찌는 한 더위 때 서늘한 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바로 여행자들의 꿈이기도 하다.
올 여름역시 원래 북쪽인 일본 북해도 북부로 갈 예정이었으나 여의치 않아 몽골로 가게 됐다.
말하자면 피서도 겸하는 더블 프레이 효과까지 노린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태풍에다 장마기간이 너무 길어져 계속 궂은 날씨가 계속됨에 따라 피서의 효과가 거의 없게 된 셈이고 또 우리나라 곳곳에 엄청난 수해까지 생겨 주위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떠나야 했었다.
이날 밤 본의 아니게 불청객이 되어 하루밤 신세를 진, 유목민 겔의 주인장(36, 도근 낙상정씨는 부인보다 한 살 아래다.)은 목소리가 남성우보다 더 좋은 건장한 미남인데다  겔밖의 무거운 철도레일 토막을 한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리는 장사다.
뿐만 아니다. 그는 나무 조각술이 대단해 내가 잠잤던 아들 침상의 앞 판자에 반짝이까지 넣은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을 하는 등 집안의 각종 용품에 그의 조각품이 많아 부인이 자랑하기도 했다.
또 내 베낭속에서 오가피주를 꺼내 맛을 보여 주자 두번째 잔은 부인에게 건네는 다정다감한 남성이기도 했으며 언젠가 우리나라도 가보고 싶다고 해 이미 건네 준 내 명함을 상기 시켰다.(이별을 고하며 찍은 위 기념 사진의 왼쪽 아래 부위에 외아들이 새벽에 풀어 놓은 3마리의 병아리 식구도 신통하게 보인다.)



겔의 일가족과 작별, 주인장이 가르쳐 준 야트막한 야산 너머의 스태프 노매츠 캠프를 찾아 나서자 아들 바강이 아줌마뻘 되는 소녀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길 안내역을 맡아 앞장 서준다.
멀리 보이는 그의 겔과 옆집 겔, 그리고 컨테이너 박스가 초원위의 조그만 점처럼 작아지더니 구릉으로 올라가자 사라진다. 이제 그만 돌아가라고 했음에도 몇 개의 갈림길을 거쳐 오느라고 2키로나 좋이 왔을 무렵에야 작별을 고하고 오토바이는 돌아섰는데 지평선위서 사라질 때까지 나와 그 소녀는 손을 흔들었고... 다시 고적한 나그네가 되어 야산 모퉁이를 돌아 달렸다.



지렛대 식 개폐기가 있는 사도를 지나 야트막한 고개를 넘으니 다시 광활한 초원이 눈앞에 펼쳐지고 바로 언덕 밑에 인터넷서 본, 몽골 관광청 추천의 그 캠프가 보인다.
바로 징기스칸의 태생지라는 곳이다.
캠프 안으로 달려 들어가자 아마 처음 본 듯한 MTB맨이 신기하듯 이 호텔 홈피에서 본 중년 여성 지배인을 비롯한 여직원들이 2층 난간에서 환성을 올리며 맞아준다.
호텔 겔은 크기는 엊저녁의 유목민 겔과 비슷했지만 가상자리에 침상 네개와 옷걸이대와 등판없는 의자 네개 그리고 장작이 가득 쌓인 양은 통과 철판 난로가 전부다.
종업원은 10명 가까이나 되는 데 손님은 10명정도여서 경영상태가 별로 인듯..



낮 11시도 안되었는데도, 스피커는 싸구려지만 제법 들은적이 있는 팝크래식 곡이 흘러 나오는 2층 카페에 올라가 맥주부터 시켜 놓고 지배인을 불러 방값을 흥정, 세끼 식사까지 30달러요구에 20달러로 안 해주면 어제 밤 이 곳을 찾느라고 헤매다 들어 간 유목민 겔로 가겠다고 했다. 홈피에서의 엉터리 약도와 실제로 진입도로의 안내에 미흡했던 것에 치밀었던 화가 아직 풀리지 않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국 할인해서 본부 겸 서비스 건물 코앞 겔을 한 채를 내줬다.
도합 10달러인 세 끼니는 메뉴 선택이 불가능 한 단일 요리로 몽골식이여선지 런치에 정식이 나오고 디너에는 스파게티, 아침에는 샌드위치식 이었다.  
몇명의 외국인 관광객들과 양정식 스타일의 점심을 먹고는 호텔 시설을 최대한 활용, 땀 냄새가 나는 의류들을 세탁하고, 캐른 강변을 좀 달려본 뒤 지정시간인 디너 직전에 미지근한 물로 나마 샤워도 했다. 몽골여성 관광객 몇은 강에서 수영을 하고 오기도 했다.



밤이 되었으나 이 날은 날씨가 몹시 흐려 하늘의 별도 볼 수 없었고 카페서 맥주 한 병을 더 마시고 돌아와 홀로 겔 난로에 장작을 때며 옷을 말리면서 겔 안에 들여 놓은 애마와 잠이 들었는데 밤중에 비가 내려 겔의 천막 지붕에 떨어지는, 기분 좋게 재글재글 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고 약간 추워진데다 옷을 빨리 말릴 겸 꺼진 난로 불도 다시 피워 장작이 탁탁거리며 타는 소리도 즐겼다.
그리고 이른 새벽 또 잠이 깨어보니 먼동이 환상적일 정도로 신비롭게 발갛게 물들어  셔팅을 해봤다. 이 날은 하루 종일 구름이 짙은 날씨였으나 비가 안와 다행이었다.



새벽에 다시 장작을 태우며 떠 올린 조선일보기자와의 인터뷰건에 아무래도 미덥지가 않아 귀로에 그 행사장으로 가서 그를 만나기로 작정하고 아침 식사후 바로 체크 아웃, 서둘러 빠가눌행의 포장국도를 향해 달리는데 귀로역시 호텔측의 불성실로 표지석이 전혀 없어 또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세번째로 초원을 헤매야 했다.
마음이 좀 조급해져 타이어 코트 자국의 도로 사이를 가로 질러 가느라고 길아닌 풀밭을 달리기도 했는데 풀이 있어 평탄하게만 보이는 초원을 막상 잔차로 달려 보면 예상외로 요철이 심해 라이딩 감도 안 좋고 잔차도 잘 나가지를 않는다.
한번도 아닌 세번씩이나 겪고 있는 이 혼돈에 자책과 후회의 감정까지 더 해 완전히 멍청한 바보같은 사람이 된 느낌이고 이래서 정신적으로 더욱 혼란에 빠져 한동안 당황하고 있을 무렵 멀리서 미국 서부사나이 차림 그대로인 청바지 저고리에 모자까지 쓴 사나이가 말을 달려 왔는데 그는 바로 신세 진 그 유목민 겔의 15살 소년 바강 토닥가.
정말 할애비같이 반가웠던 그는 빙그레 웃고 있었고 그의 말도 나를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놀리는 것 같았다. 그는 좀 떨어진 곳에서 그의 집 소 50마리 정도를 돌보고 있다가 먼 곳의 점같은 나를 알아보고 달려 온것이다.



귀로의 울란바트로 행 국도변의 양떼, 이들은 물론 소떼도 건너편 초원으로 건너가느라고 자주 국도로 내려와 차량 통행이 잠시 두절되기도 했다.
또 근교를 오가는 버스들은 모두가 항상 대만원인데다 그 운행도 제대로 잘 안되어선지 무거운 짐을 들고 정류장에 나와 버스를 기다리던 어떤 주민은 참다못해 집으로 되돌아가버리는 진풍경이 목격되기도 했다.
일반 차량은 좌석이 있으면 대개 세워 주는 것 같았는데 대신 부르는 것이 요금인것 같았다. 하루에 두번씩이나 미로를 헤매고는 유목민 겔에 가던날 해안에 도착키 위해 포장 국도 약 30여 키로를 고물 트럭의 비좁은 좌석에 겨우 끼어 앉아 갔을 때는 10달러를 줬고 귀로에도 훼스티발장에 다시 갈 시간에 쫒겨 빠가눌과 날락 국도 한 중간의 30여키로를 마이크로버스로 갔을때도 10달러 달라는 것을 5달러로 깎았다.



날락에서 시원찮은 끼니와 잠자리로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 즉 몽골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던 공항 동네 쇼스 부얀트 모텔, 주인 시누 올케 사이인듯한 슈레기티양(22)과 이쎄씨(30), 그리고 종업원 담버양(20)과 1층 국수가게서 국수를 기계로 뽑는 소녀 빡보인양(17, 왼쪽부터의  순서)이 이 이방인을 구경하러 2충 모텔 로비에 모였다.
이 이방인이 부근에 식당이 없음을 알고는 직접 저녁을 마련 해보려는 시도를 하자 캔 맥주 몇 개를 함께 마셔 친해진 덕분인지 빡보인양이 국수 한 팩을 줘서  담버양의 안내로 1층의 휴업중인 카페 주방으로 내려가서 주방의 소금과 내 배낭속에 비상식량으로 넣고 다니는 조미된 소고기 육포까지 찢어서 집어 넣어 우동을 끓이자  올케가 3층집에서 각종 양념이 든 팩들과 양파 한 개를 가져 왔는데 결국 우동아닌 스파케티가 되었지만 그래도 요리가 절로 잘 돼 모처럼 맛있는 저녁을 직접 만들어 먹은 셈.



떠나는 날 이른 새벽의 공항 청사 쪽에서 본, 동녘 하늘의 먼동이 트는 광경으로 이는 바로 이 나라 몽골의 현실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국 전날 점심은 그 동안 엉망이 된 입맛도 회복시켜 줄 겸 이곳서는 고급이라는 울란바트로의 서울 레스트랑에서 뷔폐(1만4천 투그릭, 1달러=970원=1270투그릭)를, 주로 야채와 과일을 중점적으로 무려 네 접시나 가져다 먹으며 평소 선호하는 칵텔 마가리타(4천 투그릭)까지 곁들였음에도 공항에서 점검해 본 이번 여행의 총 경비는 왕복 항공료 50만원외로는 불과 126달러(투그릭으로 환전한 50달러 포함)에 불과했다.
6박7일 동안 총 300여 키로(청주-공항간과 차량 편승 70키로 제외)의 라이딩을 한, 긴 여행길이었음에도 심지어 펑크 한번도 없었던 무사한 일정을 끝낸데 대해 라마교의 부처님, 그리고 징기스칸이 섬기던 장생신께도 무한한 감사를 보내는 마음으로 청주행 에어로 몽골 비행기에 올랐다.(완)

###출국전 예고와 준비상황은 다음 페이지에 있습니다.  테랫지 방향 약도는 출발 전 스태프 노매츠 캠프 홈피의 약도에 임의로 추가해 그려 넣은 것인데 틀렸더군요###

http://home.megapass.co.kr/~bae106/hotnews.html

###조선 닷컴에 나온 인터뷰 기사와 사진(신문사측서 성씨의 한자를 정정하고 할아버지 호칭을 뺀것임), 그리고 댓글들.###

http://www.chosun.com/international/news/200607/2006072201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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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하늘이 정말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자전거 여행을 준비중인 저에게 정말 소중한 글과사진인거 같습니다.^^ 좋은정보 고맙습니다^^ 좋은주말 되세요~
    그대있음에 올림.
  • mandolin글쓴이
    2006.8.1 15:06 댓글추천 0비추천 0
    몽골 여행꿈으로 사시는 mongolia님, SBS의 새옹지마님, 의왕시의 멋장이 시인 biking님,
    성동구의 음반회사 사장 무성님, 자유주의자이신 서울 옥따리님, 영남대 교수시며 잔차여행가이신 dslee님, 세계 자전거 여행을 꿈꾸는 진주의 '그대 있음에'님 ! 감사합니다.
    조선 닷컴은 너무 가벼운 터치여선지 성도 裵아닌 裴로 써놓는 등 오보가 심하더군요.
    "새는 알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철학자 해르만 헤세의 말을 다시 전하고 싶습니다.
  • 대단하신 몽골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mandolin글쓴이
    2006.8.4 15:43 댓글추천 0비추천 0
    일산 호수MTB 총무 kilo12 님, 서울지하철의 젊은 기관사 manada 님, 공인, 법률중개사 sokang 님 감사합니다. ^)^ 어떤 분이시든지 동행을 희망해 오시면 기회가 닿는대로 어딜 가든지 스포츠형식의 라이딩만 아니라면 가이드역이 되어 드리지요..
  • 앗! 청주 성모병원 근처에서 저에게 조선일보가 어디있냐고 물으셨던... ^^;..
    이렇게 대장정을 마치고 오신 분이신 줄 알았다면
    114에다 전화라도 해서 물어보고 알려드렸어야 할 것을... ㅜㅜ
    죄송합니다.
    작은 횡단보도를 지나 잔차 끌고 오시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유심히 보고 있다가 제게 물어보셨었는데...
    죄송합니다. 물으시는 말씀에 "잘 모르겠습니다." 대답해놓고서도
    가시는 뒷모습 계속 보게 되었었는데...
    내심 마음이 편치 않아 보고 보고 또 보았었습니다.
    힘드셨을텐데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ㅠㅠ
용용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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