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ㅋ 인간은 간사하다 했나요.
겨울이 오고 있지만,
봄이 기다려지는군요.
- 뱀사골에서 쓴 편지
남원에서 섬진강 허리를 지나며
갈대밭에 엎드린 남서풍 너머로
번뜩이며 일어서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 한 자락이 따라와
나의 갈비뼈 사이에 흐르는
축축한 외로움을 들추고
산목련 한 송이 터뜨려놓습니다.
온몸을 싸고도는 이 서늘한 향기,
뱀사골 산정에 푸르게 걸린 뒤
오월의 찬란한 햇빛이
슬픈 깃털을 일으켜세우며
신록 사이로 길게 내려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아득한 능선에 서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레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앞서가는 그대 따라 협곡을 오르면
삼십 년 벗지 못한 끈끈한 어둠이
거대한 여울에 파랗게 씻겨내리고
육천 매듭 풀려나간 모세혈관에서
철철 샘물이 흐르고
더웁게 달궈진 살과 뼈사이
확 만개한 오랑캐꽃 웃음 소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
시인 고정희는 1948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다. 교사,잡지사 기자등을 거쳐 <또 하나의 문화> 창간 동인,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역임한 그는 1991년 6월 장마때 지리산 뱀사골에서 실족, 불의의 사고로 아까운 나이에 타계했다. 비극적인 오월의 봄에서 절망과 더불어 그 절망을 타넘을 열망을 뿜어올리는 그는 恨이로되 그리움의, 분노에 젖었지만 희망으로 진전할, 힘차고 당당한 서정으로 자신의 시적 언어를 고양시키고 있다. 그것은 역사와 현실에 대한 첨예한 대결로 그 자신을 밀고 나아가 우리의 공동체적 삶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어 가려는 그의 실천적 의지와 전망을 그가 보여주고 있음을 뜻한다. 오염되고 타락하는 우리에게 있어 언어를 통한 이 의지와 전망의 형상화는 그가 우리나라 시단에 기여하는 귀중한 문학적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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