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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도 - 완결편 -

........2002.08.21 22:43조회 수 327추천 수 3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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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개요>
큰무리 선착장 - 국사봉 - 구름다리 - 호룡곡산 - 샘꾸미



영종대교를 건넌다. 새벽의 빛깔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바다가 이쁘다. 30분 일찍 잠진도 주차장에 도착하니 짱구님이 벌써 와계신다. 평패달로 바꾼 짱구님 잔거를 가지고 요리조리 장난치다 자빠져서 팔꿈치가 까진다. 오널 조심해야겠따...



조금 더 있으니 하늘소님 입장. 밤을 꼴딱 새워 야근하고 바로 오신 터라 그 멋진 얼굴이 까칠하다. 으례 화이팅이라도 함 외치고 출발해야지만, 모두들 아침 바다의 반짝이는 잔물결에 이끌려 바로 휘휘 선착장으로 잔차를 몬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차지한다고, 그 시간에 문 연 딱 한군데 식당에 들어가서 시원한 칼국수를 맛나게 들이킨다. 아주머니, 인상이 참 좋으시다. 배가 너무 부른게 아닌가 염려하면서 바다를 가로질러 난 콘크리트 2차선 도로를 달린다. 왼쪽을 돌아보면 아침 햇살이 살살이 부서지는 잔물결이 한 눈 가득히 들어온다. 황홀하지만 눈부시지 않는 풍경이다. 오른쪽을 돌아보면 번쩍이는 물결들은 어디가고 바다 전체가 맑은 여름 아침의 엷은 코발트빛으로 차분히 가라앉아있다.

무의도 들어가는 배를 기다리며(뒷편 왼쪽이 국사봉)


배를 탄지 1-2분 만에 무의도 큰무리 선착장에 도착한다. 국사봉을 넘고 갈대밭 구름다리를 지나서 다시 호룡곡산을 넘고 샘꾸미 선착장으로 내려서려고 하는 일행의 머리 위로 아침햇살은 벌써부터 따갑게 내리쏜다. 초입을 찾지 못해 약간 헤매다가, 끈져~억한 콘크리트 업힐을 하나 한 후에 드디어 국사봉 등산로 초입을 발견한다. 

국사봉 등산로 초입


오름길은 평이하다. 이름모를 짧게 자란 관목들이 그 억센 가지로 잔차와 옷가지를 잡아끌지만 않는다면, 2.3 사상 가장 편안한 오름길이 될 뻔 했다. 탁 트인 바위 전망대에서 멋진 섬의 전경을 내려다 보면서 쉰다. 아일랫님의 디카로 사진 몇장 찍고 수다떤다. 남자 넷이서 떠는 수다도 여간 재미나지 않다. 그래서 2.3 잔차질은 4명만 되어도 대박인 것이다.

국사봉 오름길의 전망대


국사봉 정상


힘겨운 오름길이 끝나고 드디어 정상에 선다. 내려갈 일에 가슴이 뛴다. 정상부에서 꺽어 돌아나오기 힘들 것 같은 바위 내리막 코스가 하나 있어 아일랫님한테 사진 한방 부탁드리고 시도하다, 결국 앞-뒤바퀴가 코너에 꽉 끼어 실패한다. 다음부터 시작되는 내리막질은 ... 인왕산이나 아차산의 바위들이 얼마나 신사적인 넘들이었나 깨닫게 해 주었다. 일단 바위와 바위 사이에는 작은 넘은 주먹만하고 큰 넘은 내 머리통 만한 삐죽이 돌들이 마사토 위에서 줄줄 흘러내린다. 그나마 박혀있는 넘들은 지네들끼리 잔차는 절때 통과시키지 말자는 동맹을 맺었는지 희한한 각도로들 엉켜 붙어서 좀처럼 길을 내주지 않는다. 게다가 길 폭은 50센티 정도밖에 안되게 좁고 경사는 뒷골이 당길 정도로 급하다.

미끄러져 내려오다 잔차가 바위에 찍혀고 걸려 서고 또서고...다시 시도하려고 안장 위에 앉았다가 얼마 못가 또 걸려 서고....땀으로 범벅이 된 가운데 안장에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해서 그런가 집에와서 샤워하다 엉둥짝 계곡(?)부분이 쓰라려 거울로 비춰 봤더니 벌겋게 부어 오르고 진무르기 일보 직전이다. 색시가 봤으면, 잔차 안타고 어느 넘이랑 붙어먹다 왔어 그랬을 것이다^^.(충격받는 독자가 있을까봐 변명을 하자면 우리 부부는 서로 이렇게 동성애자라고 놀리면서 논다 -- 이게 더 충격적인가? ㅡ.ㅡ;;).

여하튼 국사봉 딴힐은 이렇게 짜증이 좀 난다. 허지만 중간중간 탁 트인 능선에서 내려다 보이는 하나개 해수욕장의 멋진 풍광 덕분에 짜증은 많이 가라앉는다. (물론 거리가 너무 멀어서 비키니는 보기 어렵다.ㅋㅋㅋ)  거의 반 이상을 내려오고 나면 그제서야 좀 터프하게 내달릴 수 있는 구간이 시작되고 조금 더 내려오면 숫제 임도같은 넓고 좋은 길이 나온다. 군데군데 길 가로 바위가 튀어나와 있어 점프하기도 재미나다.

국사봉 하산길의 전망


가을이었으면 정말 멋있었을 갈대밭을 지나 국사봉 탐험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이 날이 어떤 날이냐... 무려 인천지방 수은주가 37도까지 치솟은 날이다. 국사봉 하나를 끝낸 우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거의 체력이 바닥나고 있음을 느낀다.

구름다리 위에서 지친 몸을 세우고 잠시 하나개 해수욕장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해수욕장 진입로 치고는 너무나 한적하고 소박하고 담담하다. 길이 예쁘다. 수줍은 시골 소녀가 금방이라도 깔깔거리며 수줍게 뛰어 달아날 것만 같다. 이 길이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그냥 밭갈고 논가는 시골마을로 가는 길, 아니믄 방파제 뒤에 숨어서 평화롭게 자리를 튼 고즈녁한 어촌마을로 들어서는 길, 소박한 사람들이 일터나 집으로 갈 때 타박타박 걸으며 온갖 상념에 잠길 법한 그런 길 같다. 설사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그런 길 끝에 나오는 해수욕장에는 비키니 입은 쭉쭉빵빵 아가씨들은 하나도 없을 것 같은....

구름다리 위에서 바라본 하나개 해수욕장 길(박영춘의 산행정보에서)


길의 소담함에 잠시 피로를 잊었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서 기진맥진한 몸을 추스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하늘소님이 비약(?)을 꺼내시더니 일행에게 두알씩 돌리기 시작하셨다. 직장에서 땀을 많이 흘리는 직원들에게 공급해주는 이름하야 전해질 보충제! 심인성 효과일지는 모르지만, 그걸 먹고나니 정말 피로와 갈증이 한결 풀리고 힘이 샘솟는 것 같았다. 일행은 하늘소님의 비약 처방 덕분에 다시 힘을 짜내 이름도 찌뿌드드한 호룡곡산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오름길은 국사봉보다 훨씬 더 수월하다. 완만한 경사에, 팔다리를 잡아끄는 삐끼 잡목들도 없다. 다만 우거진 나무들이 없어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는 뒷덜미가 익기 십상이다. 꼬불꼬불한 좁은 길에 간간이 나오는 바위 턱들... 요리로 내려와도 재미가 쏠쏠하겠다는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으며 쉬고 오르고 쉬고 오르고... 6부 능선쯤을 넘어서니 나무가 울창해져 하늘을 가린다. 경사도 가팔라지고 바위덩이들이 위용을 자랑하기 시작한다. 정상 직전에 약간 힘들 만한 바위 하나를 기어 오르고 나면 드디어 호룡곡산의 정상에 닿는다. 바닥난 체력을 무릅쓰고 비약의 효험에 의지해 오른 정상이니 그 감격이 오죽했으랴!

호룡곡산 정상


걸어 올라온 사람들과 탈 것을 끌고 올라온 사람들 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오고간 후, 우리는 걸어올라온 사람들의 탄성을 등뒤로 하고 대망의 호룡곡산-샘꾸미 내리막질을 시작한다.

눈을 조금만 들어 보면 낮게 자란 소나무들 너머로 멋진 능선과 그 너머 펼쳐진 쪽빛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건만, 길과의 싸움에 혈안이 된 나는 잔차 앞 몇 미터에만 눈을 박아 그 멋진 풍광을 보지 못한다. 길이 험하면서도 좋다. 자연의 푸근함, 풍광이 주는 안위, 이런 서정적 심상을 버리고 오직 험한 바위 내리막질에 탐닉하는 파괴적 욕망만 가지고 덤벼든다고 하더라도, 그 욕망을 다 채워주면서도 결국에는 서정적 심상까지도 되돌려주는 그런 길이다. 중간에서 길을 가로막고있는 너럭바위 하나를 만나는데, 표면에 엄청난 굴곡과 뒤틀림이 있어 처음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반사적으로 잔차에서 내리고 싶게 만드는 그런 눔이다. 좌측은 바다쪽의 가파른 비탈이다. 그러나 침착하게 바위에 들어서는 길을 찾는다. 앞바퀴를 바위 위에 올려놓은 다음 부터는 잔차를 콘트롤하는 게 나인지 바위인지 헷갈리게 된다. 마치 키질하듯이 바위는 자기 손아귀 안에서 이리저리 잔차와 잔차꾼을 까부르다가, 용케도 안자빠지고 잘 버티고 있으면 '그래 너 합격'이란 듯 툭 하고 길위로 던져놓는다. 절반 정도 이런 바위와의 유희를 즐기고 나면 굵은 날선 돌들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상당히 속도를 낼 만한 편한 길이 등장한다. 떼지어 올라오는 등산객들과 한가운데 길을 따라 패인 골을 피해가면서 내리지르고 나면 아담한 샘꾸미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평지에 도달한다. 소나무들이 만들어주는 그늘에 잔차를 누이고 내리막질의 흥분을 가라앉힌다. 이게 행복이다.

비록 생기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무관하게 오직 나 혼자만 느끼는, 그야말로 비생산적이고 이기적인 행복이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호룡곡산을 거의 다 내려와서 샘꾸미 마을(박영춘의 산행정보에서)


샘꾸미 마을에 들어선 일행은 허겁지겁 맥주를 찾는다. '히야시' '이빠이' 된 걸로.. 잔차질 후에 같이 땀흘린 동료들과 시원한 맥주한잔에 세상사는 이야기... 이것도 정말 빼놓을 수 없는 '비생산적이고 이기적이지만' 그러나 행복한 짓꺼리가 아닐 수 없다.

낮술에 몽롱해진 팔다리로 체온과 맞먹는 더위 속에 콘크리트 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여 큰무리 선착장으로 돌아온다. 다시 서슬 퍼런 작두 위를 걷는 듯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지만, 나는, 아니 우리는, 그날 잔차탔으므로 행복하였네라...

* 출처 표시가 없는 사진들은 eyelet님의 '무의도 사진전'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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