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욕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2003.05.19 22:43조회 수 339추천 수 8댓글 5

    • 글자 크기


얼마전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가 민망해서 죽을 뻔했다
하긴 영화 제목이 <품행제로>라는 희망제로의 싸가지 없는 제목이었으니
할 말이 없다고 할 수도 있으나 대사 중에 난무하는 욕설이 스크린을 가득 뒤덮어
흥남부두의 북풍한설 뺨치도록 난분분 하였다

<씨발> 정도는 예의바른 청년이 의례 하는 욕이고
<죳까네> <씹 새끼>를 위시하여...<니미> <빠구리>...등..
우리 어렸을 적에는 감히 문자화 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극한 욕설인
<보지><자지>등은 그야말로 욕 측에 들지도 못하는 분위기였다

뭐 나도 내숭스럽게 욕 하나 모르고 자란 타잎은 아니지만
영화 상영시간 내내 영화 내용보다는 또 욕이 나올까 봐
가족들에게 신경 쓰느라고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새삼스레 짚어 말할 필요도 없겠으나 우리가 자란 시절은 자지라는 단어 하나에도
어쩌다 문맥상 피할 수 없는 상황이고 아무리 순결한 동정남의 성기라 해도
죄 없는 자지에 복면을 뒤집어 씌워 -x지-라고 쓸 수밖에 없는 사회상황이었다

군대에 처음 갔을 때 조교가 나와서 소총 쥐는 법을 알려 주며
<소총 파지법>이라는 명칭이 원래는 <소총보지법>이었다고 알려주며
은밀한 비밀이라도 알려 주는 듯 킬킬대곤 했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나이 차가 큰형만큼 나는 동급생들이 많아서
성에 대한 야릇한 지식들을 자의 반 타의 반 얻어듣곤 했는데
어느 날 맨 뒷자리의 형이 쪽지를 주며 수수께끼를 풀어 보라고 하였다

그 종이에는<니노지> 라는 글과, 한문으로 <一. 八. 六>의 숫자가 써 있었는데
그 형의 표정을 보아서 예사 내용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옆자리의 몇몇은 대강 답을 아는 듯이 묘한 표정으로 비실비실 웃었으나
끝내 답은 알려주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어 궁금함을 참다 못해
앞 자리의 여자아이에게 쪽지를 보여주며 물어보는데 눈에서 번갯불이 튀었다

내 <아구통>을 사정없이 날린 사람은 뒷 쪽에 앉는 다른 형이었다
그 여자아이를 좋아하던 그 형은 벌개진 얼굴로 쪽지를 빼앗아 찢어 버리더니
마무리로 냅따 배를 걷어 차고 가는 바람에 나는 책상과 함께 뒤로 굴러 버렸다

며칠이 지난 후 나중에서야 어렵사리 주워 들은 해답은..
그때 기준으로는 <맞아도 싼> 짓을 내가 한 것이었다

니노지..라는 글을 세로로 바짝 붙여서 쓰면 두자 짜리 단어가 되고
한문 역시 바짝 세로로 붙여 쓰면 한자 짜리 단어가 된다
뭐..말하자면 ..보지와 좃..이라는 건데..맞아도 싸긴 하지...?

전후 50-60년대에 지성인들에게 사랑받던 (思想界)라는 잡지가 있었는데
골수 독자이신 어머님 덕분에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회람독자였다

그 잡지의 뒷부분에는 당시의 수준높은 문학작품에 목마르던 독자들에게
마치 오아시스와도 같은 단편들이 여러작품 실려 갈증을 달래주곤 했었다

나도 작품의 깊은 의미야 모른다해도 덩달아 어린 나이에 열심히 읽었는데
작가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 단편중 하나의 제목이 < ㄴ ㄱ ㅁ > 이었다

동떨어져 있는 자음 세 개만으로도 역전노장들은 거의 무의식중에
떠 오르는 욕설이 있을 터인데..놀랍게도 그 제목이 바로 그 욕설이었다
니기미...

그 시대를 뛰어넘는 제목을 지은 그 작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적어도 그 제목에서는 욕설 본연의 무망함이나 뻔뻔함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작품의 특성상 그 제목을 쓸 수 밖에 없어 죄송스러워하는 수줍음이 느껴졌었다

얼마 전엔 도올 선생이 생방송에 나와 보지 자지를 마구 떠들어 댄 적도 있고
인터넷 방송에서는 신해철이 동네 뒷골목에서 하는 육두문자를 유쾌한 듯이
지꺼려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기중의 유해요소들보다 더 다양하고 지랄같은 욕설이 난무하는 세상..
가족들과 영화한편 보려면 미리 가서 대사를 점검해 보기라도 해야 하는 세상..
소위 글 팔아서 먹고 살고 있는 나는
대사에 어떤 욕을 팔아 먹고 있는지 되 돌아 봐야겠다...



    • 글자 크기
화,수,목요일 (by ducati81) 비도 오능게.. (by onbike)

댓글 달기

댓글 5
  • 글쓴이
    2003.5.19 22:53 댓글추천 0비추천 0
    크크크~ 왈바사상 가장 많은 욕을 올린 것 같네요..^^
    짱구님이...나를 욕하나 못하는 바보로 알까 봐 ..전에 쓴 글 올려봅니다...- -v
  • 2.3 게시판은 욕에 대한 금지 풀었다더니..진짜네요^^
    왈앵글 게시판에 오셨으면 아마 글쓰기 누르면 다 날아가 버릴 글이네요^^;;
    왈앵글도 금지단어 지울까 봅니다..ㅎㅎㅎ
  • 글쓴이
    2003.5.19 23:43 댓글추천 0비추천 0
    아들놈이 품행제로 보자고 그러는데 아직 어려서 품행이 단정해야 할것 같아 미루고 있었는데 않보길 잘했네요
  • 욕으로도 멋진 글 한편이 되는군요. 타기옹님 언제 술한잔 올리겠습니다.^^
  • 글쓴이
    2003.5.20 20:47 댓글추천 0비추천 0
    가온님..나때문에..이거 이거....^^;
    왕창님 안 보시길 잘했습니다..보지 마세요
    온바님 적어두겠습니다..온바님의 술한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356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습니다만....5 날으는짱돌 2007.04.15 373
11355 이번 주말5 듀카티 2012.07.29 1821
11354 에~~~이5 onbike 2008.06.17 666
11353 정병호님.....카니발 출동불가입니다...5 onbike 2008.07.11 697
11352 백암산 산불예방...5 onbike 2007.11.19 529
11351 인디 사진 몇장 5 jericho 2007.10.16 781
11350 요즘 DSlr들5 빠이어 2008.10.28 909
11349 다시한번5 ........ 2003.03.02 314
11348 화,수,목요일5 ducati81 2009.01.22 808
욕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5 ........ 2003.05.19 339
11346 비도 오능게..5 onbike 2005.06.10 330
11345 우면산에서.. 오다리는 오데가고 완벽한 몸매가..ㅋㅋㅋ5 onbike 2007.04.30 503
11344 단풍놀이5 정병호 2007.11.01 404
11343 하하하...5 ducati81 2008.06.18 991
11342 10월의 축제..^^5 ducati81 2008.09.24 758
11341 아,아, 수원파들께 아뢰옵니다.5 onbike 2003.04.18 400
11340 아으... 도둑 고양이가 옥체를!5 정병호 2008.03.18 941
11339 3막45 ducati81 2008.08.03 868
11338 천방지축 개척기....- -v5 ........ 2003.07.25 518
11337 까치 까치~ 설날~~5 정병호 2010.02.11 1927
이전 1 ...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626다음
첨부 (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