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구간 : <1> - <2> - <3> - <4> - <5> - <3> - <2> - <1>
- 9 -
“저 미친XX, 어딜 끼어들고 X랄이여!”
왕창님의 벽력같은 육두문자에 가물가물 피로와 졸음으로 멀어져가던 온바이크의 의식이 번개같이 되돌아왔다. 차창 밖으로는 어디서 어떻게 주말을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제각각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그야말로 욕먹을 만큼 마구잡이로 질주하고있었다. 다행히도 주말 정체는 생각만큼 극심하지 않았다. 소나기 한테 감사해야 할 일이다. 왕창님의 육두문자와 미친 듯 난폭한 자동차들의 질주가 절묘하게 어울려, 욕하고 욕먹으면서 살아가야할 온바이크의 어지러운 한 주가 내일부터 또 시작될 것임을 담담하게 예고해주었다. 다사다난했던 일요일 하루가 이렇게 저물고 있다.
-8-
빗방울은 어린애 주먹만한 크기로 허름한 식당집 처마를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식당집 아주머니의 사람 그리움이 절절이 베인 환대를 쉽게 떨치고 일어서지 못하는 따스한 마음씨의 남정내들은 올타꾸나 이 좋은 핑계거리를 그냥 넘기지 않는다.
“천상 비그칠때까지 있다 가야겠네.”
“막걸리에 파전하나 더 묵어야지”
“거, 차에 먼저간 사람들 다 불러”
“아줌마 여기 파전 점 부쳐줘요”
상황은 순식간에 내일 월차를 내는 한이 있더라도 이 좋은 곳에서 흥취의 뿌리를 뽑고야 말겠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슬바님의 차에서 시동이 걸리더니 차창밖으로 슬바님이 머리를 내밀고 먼저가야겠다는 아쉬움의 인사를 던진다. 쏟아지는 소나기를 뚫고 차는 유유히 식당을 빠져나간다. 이 따스한 마음씨의 사내들은 그제서야 자제심이 발동한다. 좋은 사람들과 흥겨운 술자리를 뉘라서 잘라버리고 싶을까 만은, 그래서 갑작스런 소나기를 핑계삼아 더 거나하게 이어질 막걸리판을 너도나도 부추겼겠지마는, 그래도 그들의 가슴 속 한 켠에는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에 대한 배려와 월요일부터 이어져야 하는 일상에 대한 책임감이 씻겨지질 않았을 것이다. 겉으로는 파전과 막걸리를 연호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이래두 되나? 누가 먼저 집에가잔 소리 안해주나?” 하고 내심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이 마음씨 따뜻한 사내들은 이내 자리를 정리하고 각자 차에 올라 작별 인사를 나눈다. 아쉬운, 그야말로 아쉬운 인사를... 우산을 받치고 사립문 밖까지 배웅 나오신 주인 아주머니의 환한 미소가 왠지 슬퍼보였다. 집으로 되돌아오는 차안에서 온바이크는 하루의 흥취와 잔차질의 뻑적지근함에 압도되어 연신 쏟아지는 졸음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7-
뒤돌아 서서 성벽처럼 높이 솟은 가리왕산 줄기를 바라보았다. 여덟시간 동안 그들은 저 속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회포에 젖어있기에는 갈길이 바쁘다. 이미 시계는 오후 다섯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그들은 다시 변한 것 없는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서둘러 잔차를 차에 싣고 식당으로 향한다. 20여분 차를 달려 진부 읍내의 그 식당에 도착하니, 메뉴에도 없는 토종 닭백숙을 오직 우리를 위해 특별히 요리해주신, 할머니라고 하기엔 아직 주름이 덜한 주인 아주머니의 떡벌어진 저녁상이 차려져있었다. 외아들은 멀리 일본에 건너가서 살고있고, 그래서 어디서 참한 수양딸 하나 들여서 말벗이나 삼으며 살고 싶으시다는 그 아주머니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깊으셨는지 자리 하나를 내드리자 주저 없이 합석하셔서 그 왁자한 술판을 구수한 입담으로 더욱 왁자하게 만드셨다. 너무 취해서 계산 잘못하믄 안된다시면서도 권해드리는 술잔을 훌쩍 훌쩍 비우시고는, 참으로 애틋한 사연이 깃든 밀주(!) 한병을 들고 나오셔서 열두 명 모두에게 면면각각이 덕담과 함께 한잔씩 돌리셨다. 특별히 온바이크에게는 “대머리 총각”이라는 덕담을(참고로 슬바님은 두건을 쓰고계셨다), 짱구님께는 “열두명 중에 제일 어려보인다”는 덕담을 해주셨다. 그 밀주에 담긴 애틋한 사연이란 이런 것이다. 30여년 전 아주머님이 첨 진부땅에 흘러드셨을 때 진부 토박이 약초꾼 할아버지 한분과 친한 사이가 되셨는데, 어느날 그 할아버지께 딱한 사정이 생겨 아주머님은 수년 걸려 모아두었던 돈 20여만원을 선뜻 내드렸단다. 그 할아버지는 달리 보은할 길이 없어 해마다 철마다 진귀한 약초를 캐다 아주머니께 갖다드리는 것으로 보답을 해왔는데, 중간에 아주머니께서 사정이 생겨 진부를 떠나 살게 된 10여 년 동안에도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계시다가 몇 해전 진부에 다시 터를 잡은 아주머니를 찾아서 이 약주의 주재료인 산열매를 선물로 드리고 약주의 제조법을 알려주셨다는 것이다. 그 할아버지가 시키시는 대로 3년의 세월 동안 묵힌 것이 바로 이 밀주였다. 할아버지는 얼마전에 고인이 되셨다고 하니, 이제 이 밀주는 다시는 담글 수 없는 세상에 딱 한 병 밖에 안남은 술이 되고 말았다. 그 맛이란, 알싸한 당귀향과 더불어 입안 가득히 스며들다 위장 깊숙한 곳을 뜨뜻하게 휘돌아 나와 코끝으로 찡한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는 그 맛이란, 세월의 풍상을 넘어 고스란히 정제되고 농축된 사람사이의 정의 맛 바로 그것이었다. 시간도 취했는지 시계바늘은 벌써 저녁 7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온바이크가 돌아갈 일을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을 무렵, 고맙게도 토담님께서 “이제 그만 일어나시죠” 하신다. 모두들 아쉬운 마음을 헬멧 속에 구겨넣고 밖으로 나오는려는데,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으...
- 6 -
산의 울음소리는 순간 온바이크의 가슴을 쓸고지나갔다. 세상살이에 지쳐 검버섯처럼 피어올랐던 온갖 배신감과 복수심과 분노와 울화들이 그 소리의 샤워에 씻은 듯 사라졌다. 온바이크는 그 자리에서 한참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얼마후 제정신을 차린 온바이크는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한다. 아니 재촉이랄 것도 없다. 페달질이 힘들면 언제라도 기꺼이 내려 끌었다. 잠시 후 뒤쫓아오신 짱구님과 나란히 ‘부라리 부라더스’를 이루어 느림의 미학을 만끽하며 타다 걷다를 반복하니 어느덧 세시간 반 전에 기고만장한 자신감으로 기어올랐던 장구목이골 사거리에 도착한다. 그후부텀은 줄창 신나는 내리막이다. 온 천지가 바퀴 아래서 요동치고 우리는 순식간에 차를 세워둔 숙암분교앞에 도착한다. 길건너 구멍가게에서 찬 맥주가 공수되고 먹다남은 행동식으로 안주 삼아 장장 8시간에 걸친 대장정의 완성을 자축한다. 진부 읍내 식당에서는 네시간 남짓 전에 가리왕산 정상에서 전화로 주문한 닭백숙이 이제 그 마지막 국물맛을 더하기 위해 가마솥에서 끓고있을 것이다. 머리 위로 쏟아질 듯 솟아있는 가리왕산의 등줄기를 올려다보면서, 일행은 식당집에서 끓고있을 닭백숙의 오묘한 맛을 상상한다.
- 5 -
마항치에서의 풍광은 언제 보아도 ‘자연’스럽다. 이 곳으로 내려서기 불과 수초전에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뻔한 절대절명의 위기를 모면했던 터라 온바이크에게는 마항치의 풍광이 주는 감동과 안위가 더없이 새삼스러웠다. 정상에서 마항치까지 3킬로에 달하는 천금같은 싱글 다운힐을 자축하는 환호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와 마항치의 적막을 깨트렸다.
“이제는 임도 다운힐만 남았서”
그러나 이미 장구목이골 오름길에서 반죽음이 된 온바이크에게 임도는 결코 녹녹치 않은 상대였다. 2년 전 호리호리 XC자전거로 이곳을 찾았을 때는 거의 미친 듯 내리질렀던 길인데도, 약간의 오르막만 나오면 페달질하기가 죽기보다 힘이 든다. 그런데도 온바이크는 무슨 오기에서였는지 이를 악물고 안장에서 내리지 않았다. 이미 일행들은 도무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듯이 쉭쉭 속도를 내어 온바이크의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그의 뇌리 속에는 지난 한주간 동안 겪었던 온갖 분통터지고 실망스럽고 서글픈 사건의 기억들이 덜그럭 거리는 잔차 소음과 함께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그다지 오르막이랄 것도 없는 오르막에 숨이 턱에 찬 온바이크는 결국 안장에서 내려왔다. 그때였다. 잔차의 소음이 사라지자 갑자기 세상은 정말정말 믿지 못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온바이크는 임도 가장자리로 다가가 발아래 펼쳐져있는 아득한 계곡을 내려다 보았다. 속세의 소리가 끊어지고 난 뒤의 그 적막을 뚫고, 저 아래 푸르고 깊은 심연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쏴아아아아....”
“쏴아아아아....”
그것은 산의 울음이었다.
- 4 -
“여기서 뒤집에지면 내 잔차인생은 이걸로 종친다”
필사적으로 브레이크를 잡은 손가락과 체중을 실은 허벅지에 온 신경과 힘을 집중시키고 있던 온바이크의 등꼴에는 식은 땀이 흘렀다. 몸을 최대한 낮추고 엉덩이를 내리깔았다. 꼬꾸라질 듯 하던 잔차와 몸은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이제는 뒷바퀴가 좌우로 미끄러지면서 요동치기 시작한다. 뒷바퀴가 왼쪽으로 쏠리면서 계단 왼쪽 끄트머리의 철제 난간을 향해 돌진한다. 필사적으로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면서 엉덩이로 뒷바퀴를 오른쪽으로 밀어붙인다. 그러자 이번에는 뒷바퀴가 오른쪽 난간을 향해 돌진한다. 그때 뒤따라 계단에 접어들다 그 광경을 보신 왕창님의 외마디 고함소리가 들린다.
“어어어어어.......온바!!!”
뒷바퀴가 오른쪽 난간과 충돌하기 직전에 온바이크는 가까스로 -- 그러나 분명 제 능력으로 그리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조상의 음덕이었거나 장모님의 평소 불공 덕분이었을 것이다 -- 중심을 되찾고 잔차도 지그재그 요동을 멈췄다.
“미쳤서? 잔차 그만타고 싶은거?”
왕창님의 충심어린 책망을 뒤로 들으면서 계단의 마지막 부분을 박차고 내려서니... 마항치다.
- 3 -
결코 회복될 것 같지 않던 체력이 그나마 대한민국 육군의 영양가 높은 전투식량과 짤막한 휴식 덕택에 조금씩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제서야 눈이 빤히 뜨인 온바이크는 해발 1560미터 높이에 펼쳐진 장엄한 풍광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이 첩첩 산중 오지에 웬만한 동네 공원보다도 사람이 더 많다. 이제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계획했던 숙암리 방향으로의 하산로는 장구목이골에서 올라온 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며, 정상에서 중봉방향으로의 능선길도 중간중간 시루떡 바위들로 치장되어있어 이미 체력을 많이 소진한 우리들로서는 많은 무리가 따를 것이라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결국 계획했던 중봉을 거쳐 숙암리 방향으로 하산하는 루트는 만장일치로 포기하고, 정상에서 마항치로 곧바로 내려가기로 결정한다. 마항치로 향하는 길의 상태 또한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으나, 가리왕산 북쪽 사면의 이끼 낀 시루떡 바위들에 학을 떼고 난 후라 모두들 아무런 미련없이 마항치 방향으로 내리달렸다. 예상은 적중했다. 길 한가운데 줄줄 흘러내리는 시루떡 바위의 파편들만 조심하면 전구간을 신나게 내리지를 수 있는 3킬로 짜리 꼬불탕 오솔길이 이어졌다. 2년전에 가리왕산 순환임도를 돌았던 온바이크는 그 길의 끝에 엄청난 경사의 계단이 버티고 있다는 걸 알고있었다. 마항치가 가까울 수록 온바이크는 과연 그 계단을 타고내려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에 온 사지를 긴장시키고있었다. 마항치가 가까워올 수록 길의 경사는 더 급해지고 흥분도 따라서 커지고 있었다. 드디어 기념비가 시야에 들어오고, 기념비를 부드럽게 뒷바퀴를 끌면서 돌아나온 온바이크의 시야에 가파른 계단의 지평선과 그 아래편에 탁 트인 마항치의 공터가 들어왔다. 앞바퀴를 계단에 진입시키면서 온바이크는 동물적인 자신감을 느낀다. 한껏 체중을 뒤로 빼고 뒷바퀴를 잠근다. 잔차와 몸뚱이는 이미 첫 나무계단을 내리지르고 있다. 속도가 심상찮다. 그러나 뒷바퀴를 지긋이 잡아주는 듯한 나무계단의 거친 질감은 장구목이골에서의 고통을 보상받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온바이크에게 안정감과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문제는 나무계단을 벗어나서 경사가 더 가팔라지는 콘크리트 계단에 접어들면서 시작됐다.
“브으윽”
짧은 마찰음과 함께 뒷바퀴가 사정없이 미끄러지면서 속도를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온바이크와 그의 자전거는 빨려들 듯이 가파른 계단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 2 -
칠흙같던 하늘이 포도빛으로 변할 무렵, 온바이크는 불면의 밤을 보낸 피로도 말끔히 잊은채 왕창님과 아일렛님과 너스레 섞인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캐리어를 옮기고, 잔차를 싣고, 부산을 떨었다. 동터오는 하늘을 향해 내달리는 일행의 얼굴에는 흥분의 홍조가 좀체 가시질 않는다. 정각 아침 6시, 문막 휴게소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모두 다 칼같이 모여있었다. 다시 대열을 정비하고 진부를 향해 출발, 진부 읍내에서 허름한 식당을 발견하고는 이른 아침을 먹는다(온바이크에게는 7시 아침식사면 무척 이른 편이다). 음식이 걷보기와는 달리 무척 맛깔스럽다.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서면서 뒤뜰에 기르는 토종닭도 잡아준다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에 일행은 나중에 저녁도, 만약 살아돌아온다면, 여기서 해결하자고 굳게 약속한다. 최소한 도착 두시간 전에는 알려줘야 닭을 잡고 끓이고 할 수 있다는 아주머니의 말씀에 리키님, 제까닥 식당 전화번호를 받아적는다. 진부에서 정선으로 난 59번 국도를 타고 20여분 달리니 드디어 북평초등학교 숙암분교가 눈에 들어온다. 잔차를 내리고 힘찬 기합과 함께 출발한다. 임도 초입을 찾지 못해 계곡에서 엄청난 삽질(?)을 한 후에 일행은 드디어 가리왕산의 비단결 같은 임도를 타기 시작한다. 체력에 걸맞지 않은 둔중한 잔차를 끌고 온 덕분에 하염없이 뒤쳐지는 후미조 챙기느라 일행은 두시간 정도 지나서야 비로소 8키로 떨어진 장구목이골 사거리에 도착한다. 여기서 임도를 버리고 장구목이골 계곡 등산로를 오른다. 초입의 형세가 사람의 기를 꺾어놓기에 충분했다. 일일이 묘사하느라 그 죽고싶었던 단말마의 고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1.2킬로밖에 안되는 길을 세시간 걸려 올라갔다.’ 요 한 문장으로 소회를 대신하려고 한다. 온바이크가 꼴찌에서 두 번째, 짱구님이 꼴찌, 이렇게 후미조 중에서도 후미조를 형성한 두사람은 젖먹던 힘, 아니 어머니 골반을 빠져나올때 쓰던 힘까지 다 쏟아서 그 길을 기어올랐다. 중간쯤 걱정이 되어 뒤에 따라오는 짱구님을 기다리던 온바이크는, 잠시 후 실로 감동적인 짱구님의 모습을 보게된다. 한 발 한 발 무겁게 옮겨놓는 발걸음과는 대조적으로,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갈때까지 가보자는 이글거리는 눈빛, 살아 꿈틀거리는 카리스마의 눈빛을 본 것이다. 호시우행! 그건 바로 짱구님을 두고 할 말이다.
“흐으으으”
거의 흐느낌에 가까운 비명을 지른 후에 온바이크와 짱구님을 끝으로 열두 명 전원이 마침내 해발 1560미터 가리왕산의 정상에 서다.
- 1 -
처가에서 밤늦게 돌아온 온바이크는 속으로 걱정이 컸다. 내일이 대망의 가리왕산 개척질을 떠나기로 한 날이다. 첫새벽에 왕창님과 아일렛님을 만나기로 되어있다. 계방산 이후로 천오백고지 산은 2.3 사상 두 번째 도전이다. 계방산은 1천미터 운두령 정상에서, 호리호리한 XC용 잔차로 시작한 탐험이었지만 이번은 다르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달려들어도 승산이 있을까 말까한 도전이다. 지금 잠들어도 얼추 네시간 정도밖에는 못자는데... 게다가 지난 3일 연이어 크고 작은 술자리를 피하지 못했던 터였다. 얼른 잠자리를 수습하고, 이미 곯아 떨어진 딸아이 옆에 몸을 누인다. 그러나 소풍 전날 쉽게 잠드는 어린아이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는데 온바이크의 아내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빼꼼이 문을 연다. 오랜만에(실로 오랜만이었다) 합방을 청하는 얄궂은 아내에게 온바이크는 짧게 대답한다.
“가리왕산을 우습게 보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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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미친XX, 어딜 끼어들고 X랄이여!”
왕창님의 벽력같은 육두문자에 가물가물 피로와 졸음으로 멀어져가던 온바이크의 의식이 번개같이 되돌아왔다. 차창 밖으로는 어디서 어떻게 주말을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제각각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그야말로 욕먹을 만큼 마구잡이로 질주하고있었다. 다행히도 주말 정체는 생각만큼 극심하지 않았다. 소나기 한테 감사해야 할 일이다. 왕창님의 육두문자와 미친 듯 난폭한 자동차들의 질주가 절묘하게 어울려, 욕하고 욕먹으면서 살아가야할 온바이크의 어지러운 한 주가 내일부터 또 시작될 것임을 담담하게 예고해주었다. 다사다난했던 일요일 하루가 이렇게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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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은 어린애 주먹만한 크기로 허름한 식당집 처마를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식당집 아주머니의 사람 그리움이 절절이 베인 환대를 쉽게 떨치고 일어서지 못하는 따스한 마음씨의 남정내들은 올타꾸나 이 좋은 핑계거리를 그냥 넘기지 않는다.
“천상 비그칠때까지 있다 가야겠네.”
“막걸리에 파전하나 더 묵어야지”
“거, 차에 먼저간 사람들 다 불러”
“아줌마 여기 파전 점 부쳐줘요”
상황은 순식간에 내일 월차를 내는 한이 있더라도 이 좋은 곳에서 흥취의 뿌리를 뽑고야 말겠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슬바님의 차에서 시동이 걸리더니 차창밖으로 슬바님이 머리를 내밀고 먼저가야겠다는 아쉬움의 인사를 던진다. 쏟아지는 소나기를 뚫고 차는 유유히 식당을 빠져나간다. 이 따스한 마음씨의 사내들은 그제서야 자제심이 발동한다. 좋은 사람들과 흥겨운 술자리를 뉘라서 잘라버리고 싶을까 만은, 그래서 갑작스런 소나기를 핑계삼아 더 거나하게 이어질 막걸리판을 너도나도 부추겼겠지마는, 그래도 그들의 가슴 속 한 켠에는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에 대한 배려와 월요일부터 이어져야 하는 일상에 대한 책임감이 씻겨지질 않았을 것이다. 겉으로는 파전과 막걸리를 연호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이래두 되나? 누가 먼저 집에가잔 소리 안해주나?” 하고 내심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이 마음씨 따뜻한 사내들은 이내 자리를 정리하고 각자 차에 올라 작별 인사를 나눈다. 아쉬운, 그야말로 아쉬운 인사를... 우산을 받치고 사립문 밖까지 배웅 나오신 주인 아주머니의 환한 미소가 왠지 슬퍼보였다. 집으로 되돌아오는 차안에서 온바이크는 하루의 흥취와 잔차질의 뻑적지근함에 압도되어 연신 쏟아지는 졸음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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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 서서 성벽처럼 높이 솟은 가리왕산 줄기를 바라보았다. 여덟시간 동안 그들은 저 속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회포에 젖어있기에는 갈길이 바쁘다. 이미 시계는 오후 다섯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그들은 다시 변한 것 없는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서둘러 잔차를 차에 싣고 식당으로 향한다. 20여분 차를 달려 진부 읍내의 그 식당에 도착하니, 메뉴에도 없는 토종 닭백숙을 오직 우리를 위해 특별히 요리해주신, 할머니라고 하기엔 아직 주름이 덜한 주인 아주머니의 떡벌어진 저녁상이 차려져있었다. 외아들은 멀리 일본에 건너가서 살고있고, 그래서 어디서 참한 수양딸 하나 들여서 말벗이나 삼으며 살고 싶으시다는 그 아주머니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깊으셨는지 자리 하나를 내드리자 주저 없이 합석하셔서 그 왁자한 술판을 구수한 입담으로 더욱 왁자하게 만드셨다. 너무 취해서 계산 잘못하믄 안된다시면서도 권해드리는 술잔을 훌쩍 훌쩍 비우시고는, 참으로 애틋한 사연이 깃든 밀주(!) 한병을 들고 나오셔서 열두 명 모두에게 면면각각이 덕담과 함께 한잔씩 돌리셨다. 특별히 온바이크에게는 “대머리 총각”이라는 덕담을(참고로 슬바님은 두건을 쓰고계셨다), 짱구님께는 “열두명 중에 제일 어려보인다”는 덕담을 해주셨다. 그 밀주에 담긴 애틋한 사연이란 이런 것이다. 30여년 전 아주머님이 첨 진부땅에 흘러드셨을 때 진부 토박이 약초꾼 할아버지 한분과 친한 사이가 되셨는데, 어느날 그 할아버지께 딱한 사정이 생겨 아주머님은 수년 걸려 모아두었던 돈 20여만원을 선뜻 내드렸단다. 그 할아버지는 달리 보은할 길이 없어 해마다 철마다 진귀한 약초를 캐다 아주머니께 갖다드리는 것으로 보답을 해왔는데, 중간에 아주머니께서 사정이 생겨 진부를 떠나 살게 된 10여 년 동안에도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계시다가 몇 해전 진부에 다시 터를 잡은 아주머니를 찾아서 이 약주의 주재료인 산열매를 선물로 드리고 약주의 제조법을 알려주셨다는 것이다. 그 할아버지가 시키시는 대로 3년의 세월 동안 묵힌 것이 바로 이 밀주였다. 할아버지는 얼마전에 고인이 되셨다고 하니, 이제 이 밀주는 다시는 담글 수 없는 세상에 딱 한 병 밖에 안남은 술이 되고 말았다. 그 맛이란, 알싸한 당귀향과 더불어 입안 가득히 스며들다 위장 깊숙한 곳을 뜨뜻하게 휘돌아 나와 코끝으로 찡한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는 그 맛이란, 세월의 풍상을 넘어 고스란히 정제되고 농축된 사람사이의 정의 맛 바로 그것이었다. 시간도 취했는지 시계바늘은 벌써 저녁 7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온바이크가 돌아갈 일을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을 무렵, 고맙게도 토담님께서 “이제 그만 일어나시죠” 하신다. 모두들 아쉬운 마음을 헬멧 속에 구겨넣고 밖으로 나오는려는데,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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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울음소리는 순간 온바이크의 가슴을 쓸고지나갔다. 세상살이에 지쳐 검버섯처럼 피어올랐던 온갖 배신감과 복수심과 분노와 울화들이 그 소리의 샤워에 씻은 듯 사라졌다. 온바이크는 그 자리에서 한참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얼마후 제정신을 차린 온바이크는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한다. 아니 재촉이랄 것도 없다. 페달질이 힘들면 언제라도 기꺼이 내려 끌었다. 잠시 후 뒤쫓아오신 짱구님과 나란히 ‘부라리 부라더스’를 이루어 느림의 미학을 만끽하며 타다 걷다를 반복하니 어느덧 세시간 반 전에 기고만장한 자신감으로 기어올랐던 장구목이골 사거리에 도착한다. 그후부텀은 줄창 신나는 내리막이다. 온 천지가 바퀴 아래서 요동치고 우리는 순식간에 차를 세워둔 숙암분교앞에 도착한다. 길건너 구멍가게에서 찬 맥주가 공수되고 먹다남은 행동식으로 안주 삼아 장장 8시간에 걸친 대장정의 완성을 자축한다. 진부 읍내 식당에서는 네시간 남짓 전에 가리왕산 정상에서 전화로 주문한 닭백숙이 이제 그 마지막 국물맛을 더하기 위해 가마솥에서 끓고있을 것이다. 머리 위로 쏟아질 듯 솟아있는 가리왕산의 등줄기를 올려다보면서, 일행은 식당집에서 끓고있을 닭백숙의 오묘한 맛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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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항치에서의 풍광은 언제 보아도 ‘자연’스럽다. 이 곳으로 내려서기 불과 수초전에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뻔한 절대절명의 위기를 모면했던 터라 온바이크에게는 마항치의 풍광이 주는 감동과 안위가 더없이 새삼스러웠다. 정상에서 마항치까지 3킬로에 달하는 천금같은 싱글 다운힐을 자축하는 환호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와 마항치의 적막을 깨트렸다.
“이제는 임도 다운힐만 남았서”
그러나 이미 장구목이골 오름길에서 반죽음이 된 온바이크에게 임도는 결코 녹녹치 않은 상대였다. 2년 전 호리호리 XC자전거로 이곳을 찾았을 때는 거의 미친 듯 내리질렀던 길인데도, 약간의 오르막만 나오면 페달질하기가 죽기보다 힘이 든다. 그런데도 온바이크는 무슨 오기에서였는지 이를 악물고 안장에서 내리지 않았다. 이미 일행들은 도무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듯이 쉭쉭 속도를 내어 온바이크의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그의 뇌리 속에는 지난 한주간 동안 겪었던 온갖 분통터지고 실망스럽고 서글픈 사건의 기억들이 덜그럭 거리는 잔차 소음과 함께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그다지 오르막이랄 것도 없는 오르막에 숨이 턱에 찬 온바이크는 결국 안장에서 내려왔다. 그때였다. 잔차의 소음이 사라지자 갑자기 세상은 정말정말 믿지 못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온바이크는 임도 가장자리로 다가가 발아래 펼쳐져있는 아득한 계곡을 내려다 보았다. 속세의 소리가 끊어지고 난 뒤의 그 적막을 뚫고, 저 아래 푸르고 깊은 심연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쏴아아아아....”
“쏴아아아아....”
그것은 산의 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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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뒤집에지면 내 잔차인생은 이걸로 종친다”
필사적으로 브레이크를 잡은 손가락과 체중을 실은 허벅지에 온 신경과 힘을 집중시키고 있던 온바이크의 등꼴에는 식은 땀이 흘렀다. 몸을 최대한 낮추고 엉덩이를 내리깔았다. 꼬꾸라질 듯 하던 잔차와 몸은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이제는 뒷바퀴가 좌우로 미끄러지면서 요동치기 시작한다. 뒷바퀴가 왼쪽으로 쏠리면서 계단 왼쪽 끄트머리의 철제 난간을 향해 돌진한다. 필사적으로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면서 엉덩이로 뒷바퀴를 오른쪽으로 밀어붙인다. 그러자 이번에는 뒷바퀴가 오른쪽 난간을 향해 돌진한다. 그때 뒤따라 계단에 접어들다 그 광경을 보신 왕창님의 외마디 고함소리가 들린다.
“어어어어어.......온바!!!”
뒷바퀴가 오른쪽 난간과 충돌하기 직전에 온바이크는 가까스로 -- 그러나 분명 제 능력으로 그리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조상의 음덕이었거나 장모님의 평소 불공 덕분이었을 것이다 -- 중심을 되찾고 잔차도 지그재그 요동을 멈췄다.
“미쳤서? 잔차 그만타고 싶은거?”
왕창님의 충심어린 책망을 뒤로 들으면서 계단의 마지막 부분을 박차고 내려서니... 마항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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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회복될 것 같지 않던 체력이 그나마 대한민국 육군의 영양가 높은 전투식량과 짤막한 휴식 덕택에 조금씩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제서야 눈이 빤히 뜨인 온바이크는 해발 1560미터 높이에 펼쳐진 장엄한 풍광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이 첩첩 산중 오지에 웬만한 동네 공원보다도 사람이 더 많다. 이제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계획했던 숙암리 방향으로의 하산로는 장구목이골에서 올라온 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며, 정상에서 중봉방향으로의 능선길도 중간중간 시루떡 바위들로 치장되어있어 이미 체력을 많이 소진한 우리들로서는 많은 무리가 따를 것이라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결국 계획했던 중봉을 거쳐 숙암리 방향으로 하산하는 루트는 만장일치로 포기하고, 정상에서 마항치로 곧바로 내려가기로 결정한다. 마항치로 향하는 길의 상태 또한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으나, 가리왕산 북쪽 사면의 이끼 낀 시루떡 바위들에 학을 떼고 난 후라 모두들 아무런 미련없이 마항치 방향으로 내리달렸다. 예상은 적중했다. 길 한가운데 줄줄 흘러내리는 시루떡 바위의 파편들만 조심하면 전구간을 신나게 내리지를 수 있는 3킬로 짜리 꼬불탕 오솔길이 이어졌다. 2년전에 가리왕산 순환임도를 돌았던 온바이크는 그 길의 끝에 엄청난 경사의 계단이 버티고 있다는 걸 알고있었다. 마항치가 가까울 수록 온바이크는 과연 그 계단을 타고내려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에 온 사지를 긴장시키고있었다. 마항치가 가까워올 수록 길의 경사는 더 급해지고 흥분도 따라서 커지고 있었다. 드디어 기념비가 시야에 들어오고, 기념비를 부드럽게 뒷바퀴를 끌면서 돌아나온 온바이크의 시야에 가파른 계단의 지평선과 그 아래편에 탁 트인 마항치의 공터가 들어왔다. 앞바퀴를 계단에 진입시키면서 온바이크는 동물적인 자신감을 느낀다. 한껏 체중을 뒤로 빼고 뒷바퀴를 잠근다. 잔차와 몸뚱이는 이미 첫 나무계단을 내리지르고 있다. 속도가 심상찮다. 그러나 뒷바퀴를 지긋이 잡아주는 듯한 나무계단의 거친 질감은 장구목이골에서의 고통을 보상받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온바이크에게 안정감과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문제는 나무계단을 벗어나서 경사가 더 가팔라지는 콘크리트 계단에 접어들면서 시작됐다.
“브으윽”
짧은 마찰음과 함께 뒷바퀴가 사정없이 미끄러지면서 속도를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온바이크와 그의 자전거는 빨려들 듯이 가파른 계단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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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흙같던 하늘이 포도빛으로 변할 무렵, 온바이크는 불면의 밤을 보낸 피로도 말끔히 잊은채 왕창님과 아일렛님과 너스레 섞인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캐리어를 옮기고, 잔차를 싣고, 부산을 떨었다. 동터오는 하늘을 향해 내달리는 일행의 얼굴에는 흥분의 홍조가 좀체 가시질 않는다. 정각 아침 6시, 문막 휴게소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모두 다 칼같이 모여있었다. 다시 대열을 정비하고 진부를 향해 출발, 진부 읍내에서 허름한 식당을 발견하고는 이른 아침을 먹는다(온바이크에게는 7시 아침식사면 무척 이른 편이다). 음식이 걷보기와는 달리 무척 맛깔스럽다.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서면서 뒤뜰에 기르는 토종닭도 잡아준다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에 일행은 나중에 저녁도, 만약 살아돌아온다면, 여기서 해결하자고 굳게 약속한다. 최소한 도착 두시간 전에는 알려줘야 닭을 잡고 끓이고 할 수 있다는 아주머니의 말씀에 리키님, 제까닥 식당 전화번호를 받아적는다. 진부에서 정선으로 난 59번 국도를 타고 20여분 달리니 드디어 북평초등학교 숙암분교가 눈에 들어온다. 잔차를 내리고 힘찬 기합과 함께 출발한다. 임도 초입을 찾지 못해 계곡에서 엄청난 삽질(?)을 한 후에 일행은 드디어 가리왕산의 비단결 같은 임도를 타기 시작한다. 체력에 걸맞지 않은 둔중한 잔차를 끌고 온 덕분에 하염없이 뒤쳐지는 후미조 챙기느라 일행은 두시간 정도 지나서야 비로소 8키로 떨어진 장구목이골 사거리에 도착한다. 여기서 임도를 버리고 장구목이골 계곡 등산로를 오른다. 초입의 형세가 사람의 기를 꺾어놓기에 충분했다. 일일이 묘사하느라 그 죽고싶었던 단말마의 고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1.2킬로밖에 안되는 길을 세시간 걸려 올라갔다.’ 요 한 문장으로 소회를 대신하려고 한다. 온바이크가 꼴찌에서 두 번째, 짱구님이 꼴찌, 이렇게 후미조 중에서도 후미조를 형성한 두사람은 젖먹던 힘, 아니 어머니 골반을 빠져나올때 쓰던 힘까지 다 쏟아서 그 길을 기어올랐다. 중간쯤 걱정이 되어 뒤에 따라오는 짱구님을 기다리던 온바이크는, 잠시 후 실로 감동적인 짱구님의 모습을 보게된다. 한 발 한 발 무겁게 옮겨놓는 발걸음과는 대조적으로,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갈때까지 가보자는 이글거리는 눈빛, 살아 꿈틀거리는 카리스마의 눈빛을 본 것이다. 호시우행! 그건 바로 짱구님을 두고 할 말이다.
“흐으으으”
거의 흐느낌에 가까운 비명을 지른 후에 온바이크와 짱구님을 끝으로 열두 명 전원이 마침내 해발 1560미터 가리왕산의 정상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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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에서 밤늦게 돌아온 온바이크는 속으로 걱정이 컸다. 내일이 대망의 가리왕산 개척질을 떠나기로 한 날이다. 첫새벽에 왕창님과 아일렛님을 만나기로 되어있다. 계방산 이후로 천오백고지 산은 2.3 사상 두 번째 도전이다. 계방산은 1천미터 운두령 정상에서, 호리호리한 XC용 잔차로 시작한 탐험이었지만 이번은 다르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달려들어도 승산이 있을까 말까한 도전이다. 지금 잠들어도 얼추 네시간 정도밖에는 못자는데... 게다가 지난 3일 연이어 크고 작은 술자리를 피하지 못했던 터였다. 얼른 잠자리를 수습하고, 이미 곯아 떨어진 딸아이 옆에 몸을 누인다. 그러나 소풍 전날 쉽게 잠드는 어린아이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는데 온바이크의 아내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빼꼼이 문을 연다. 오랜만에(실로 오랜만이었다) 합방을 청하는 얄궂은 아내에게 온바이크는 짧게 대답한다.
“가리왕산을 우습게 보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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