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19. 화
날씨 : 맑고 따뜻함.
일행 : 나, onbike
아무리 사는게 돌고 도는 것이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으며 기쁨과 슬픔이 공존한다고는 하지만, 어제 하루는 참 뭐랄까.... 어쨌든 매우 얼척없으며 거시기하면서도 끝내주는 하루였다.
가을 들어 동네주변 산들을 하나하나 올랐다.
그나마 등산로가 좀 괜찮은 산들을 골라 올라서, 올라갈 땐 힘들어도 내려울땐 상당히 재미있는 산들이었다.
매화산, 삿갓봉, 구룡산을 오르고 나니 이제 남은건 태기산, 치악산, 청태-대미산이다.
전부터 양아님이 태기산 갈때 불러주라고 했는데, 온바님도 같이 가자고 해서 어찌 된 일인지 주중이 널널한 세 사람은 19일로 날을 잡는다.
하지만 양아님이 막판에 빠지고 결국 온바님과 나만 가기로 한다.
양아님의 이 선택은 바로 다음날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음이 밝혀진다.
하지만 그 직후, 매우 불행한 선택이었음도 밝혀진다.
이 정도만 되도 어제의 분위기가 대강 파악됐으리라 본다.
흐흐흐...
08:15 횡성휴게소
전날, 날도 꿀꿀하고 해서 장작이나 패려고 엔진톱과 도끼를 마구 휘둘러댔더니 온몸이 뻐근하다.
집에서 가까운 횡성휴게소에서 온바님을 만나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로 한다.
뭐... 사실 말이 가깝지, 갈 때 고개 하나를 넘어야 한다.
좀 기다려 온바님이 도착하고 내 자전거를 캐리어에 싣는데, 내 뒷 타이어가 도로용이란다.
어... 난 자잘한 돌기들이 많이 나있어 산악용인줄 알고 좋아했는데... 거 참.
근데 온바님은 트럭같은 타이어를 달고 오셨다.
멋있다. 폼 난다. 역시 산악자전거는 타이어가 두꺼워야 돼!
온바님이 늦었다며 아침을 사신단다.
이럴땐 가만 있어야 한다. ㅋㅋㅋ
근데, 혹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어딜 가는 분들은 아침을 문막휴게소에서 먹을 것을 권하고 싶다.
거긴 휴게소답지 않게 정성스런 밥이 나오는 곳이다.
아침먹고, 가볍게 일정을 이야기 하고 양구두미로 출발.
09:54 양구두미 출발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지만, 쨍한 하늘은 아니다.
둔내 조금 지나면 태기-봉복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지는데 좀 찌부덩 하다.
그래도 우리의 산행을 맞아주기엔 더할 나위없이 끝내주는 가을 하늘이다.
워낙 차가 안다니는 양구두미 오름길은 그래서 매우 한가롭다.
온바님은 상체가드를 할까말까 하다 결국 벗어놓고 가기로 한다.
근데.. 이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10:32 능선 진입
양구두미재에서 태기산 정상까지는 군사도로가 나있다.
물론 정상은 군사시설이고, 민간인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사실, 군부대 내로만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정상개방 해도 아무 탈 없다.
근데 우리나라는 군시설만 있으면 아예 산봉우리 하나를 출입금지 시켜놓는다.
3km 쯤 진행하면 태기분교터 - 태기산성을 거쳐 송덕사로 내려가는 하산길이다.
500m 쯤 가면, 낙수대를 거쳐 주전골-성골로 빠지는 하산길.
지도상에는 태기산 정상으로 가는 군사도로는 나오지 않고, 1,059 봉 아래 고개를 지나 넘어가는 도로 표시가 있다.
하지만 이 도로는 이용하지 않은지 한참됐을뿐더러, 지금은 이게 도로였나 싶을 정도로 폐허가 된 채 등산로나 다름없는 길이 되버렸다.
다행스런 일이긴 하다.
낙수대길 입구를 지나 500m 쯤 더가야 1,135봉으로 진입하는 능선입구다.
군사도로는 여기서 북족으로 꺽어져 태기산 정상으로 향한다.
아무리 민간인 출입금지라고 해도 기어코 정상을 가려는 사람들은 항상 있다.
그렇게 올라가서 위병이랑 암구어 교환도 하고 (?), 쫒겨나기도 한다고 한다.
능선 입구에서 우리가 가야할 덕고-봉복 능선을 보며 기대 반, 걱정 반 설레이는 마음이다.
저 멀리 계방산과 오대산 비로봉도 보인다.
가리왕산도, 백덕산도 보인다.
능선은 부드럽게 이어진다.
지지난주에 답사 겸 약간 걸어들어 갔을 때만 해도 키 큰 철쭉들이 하늘을 온통 뒤덮어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길이었는데, 이미 나무들은 앙상한 몸통만 남고 잎들은 다 떨어졌다.
덕분에 자전거를 탈 수는 있는 길이 됐다.
난 웬만하면 끌려고 했는데 ^^;, 온바님은 그냥 타고 밀어붙인다.
온바님 "행복합니다" 하신다.
그래, 적어도 그때까지는 행복했다.
시퍼런 가을 하늘에 부드러운 능선길. 정말 행복할 만했다.
그렇게 의외로 부드러운 능선길을 한참 달려가니 앞에 봉우리 하나가 보인다.
1,135 봉인 듯 하다.
저걸 넘으면 조금 지나 왼쪽으로 틀어지는 능선이 있고, 거기서부터 거의 길이 없는 산죽밭이 덕고산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아마 고행의 시작일게다.
봉우리는 왼쪽으로 우회한다.
간간이 리본들이 달려있음을 확인한다.
계속 북쪽으로 가는 능선을 타며 생각보다 빨리 진행함에 안심을 한다.
이제 맞은편에 흥정산-구목령을 따라오는 한강지맥이 거대하게 드러나고 있다.
왼쪽엔 아마도 우리가 가야할 능선인 듯 한 거대한 꿈틀거림이 있다.
11:40 능선 끝?
아마 여기가 덕고산으로 가는 능선이 왼쪽으로 틀어지는 곳인가 보다.
조금 쉰 후 출발.
근데 아무래도 정면에 있던 비닐 묶인 나무가 좀 신경이 쓰인다.
내려서자 마자 산죽밭이 나타난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하는데, 금방 길이 없어진다.
그때 잠깐 앞이 트이고, 오른쪽에 능선 하나가 있다.
온바님을 불러 저 능선 인것 같다고는 했지만, 이미 능선을 내려오기 시작한 우리는 되돌아 가기를 거부한다.
그냥 치고 내려가면 낙수대 가는 길에서 이어지는 옛 도로의 흔적이 있을테니, 그걸 타고 덕고산 넘어가는 고개로 가자고 한다.
그렇게 마구 내려가다 보니 넝쿨이 휘감고, 산죽에 막히고, 길은 가팔라지고... 점점 힘들어진... 아니 개판이 된다.
아래쪽에 낙엽송 지대가 보이길래, 그 쪽으로 가면 벌목용 길이 있을테고, 그게 옛 도로일거라고 짐작하며 낙엽송지대로 방향을 큰다.
하지만 어딜 가나 낙엽송 지대는 간벌과 가지치기로 걷기도 힘든 지역이다.
오르막도 아닌 내리막에서 자전거를 들쳐메고 한참을 더 내려가니 계곡 소리가 가까이 들려오고, 그래서 우린 안심을 했다.
조금 더 가니 뭔가 길 비슷한게 나온다.
너무 폐허인 길이긴 했지만, 어쨌든 제대로 찾은거 같아 다행이라 생각하고 계곡에서 점심을 먹는다.
근데... 이런.... 줸좡...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계곡 흘러가는 방향이 남쪽이 아닌 북쪽인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의 갈등은 시작된다.
일단 지도를 보지만, 우리가 1,135 봉을 지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데로 빠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능선상에서 보던 덕고산 가는 능선이 - 우리가 그것일거라고 생각했던 - 정면에 보인다.
뭔가 이상하지만, 일단 점심부터 먹고 자전거는 둔 채로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보기로 했다.
옛 도로일거라고 생각한 폐허가 된 길은 자꾸 계곡을 넘나든다.
이것도 이상하다.
이렇게 길을 만들진 않았을텐데...
한 10분 쯤 가다 보니, 덕고산 가는길로 생각했던 능선은 계곡으로 끊겨있고, 등산로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무엇보다도 한강지맥 갔다온 사람들의 후기에 덕고산에서 태기산 올때 계곡을 건넌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1,135봉에서 덕고산 가는 능선을 놓친채 북쪽으로 더 진행한 것이다.
아.. 그래도 이 계곡은 너무 아름답다.
단풍도 죽인다.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모른채, 잠시나마 가을 계곡의 아름다움 속으로 빠져든다.
여름만 됐으면 저 계곡으로 풍덩 뛰어들텐데!
13:20 출발
그렇게 길 확인하고 출발하는데, 이젠 시간에 쫓길 것 같다.
왜냐면... 이 계곡은 너무 넓고 평탄하다...
최근 1달여동안 비다운 비가 온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 계곡은 풍부한 수량에도 평탄하게 흘러간다.
물이 많고 평탄하다는 건, 상당히 내려왔다는 것이다.
마음속엔 막막함이 점점 가득해오지만 표내지는 않는다.
초반엔 엉망이긴 하지만 엣 길이 남아있다.
비록 그것이 산죽으로 뒤덮인 길이더라도, 길이 있다는건 충분히 희망적인 일이다.
하지만 20분 쯤 가니 길은 아예 사라져 버린다.
아무리 확인을 해봐도 길의 흔적이 없다.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그냥 계곡으로 치고 오를 수밖에.
몇번을 생각하고,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현재 위치가 파악이 안된다.
머리속엔 생각이 복잡하다.
그러고 보니 1,135봉 지나서 리본이 없었던게 이제서야 생각이 난다.
자전거는 이런게 나쁘다.
타고가다 보면 중요한 갈림길 같은걸 놓치는 수가 생긴다.
앞만 보고 달리기 때문이다.
사실 길을 잘못들고,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는 쉽게 알 수도 있었다.
그건 한가지만 하면 되는 일이다.
계곡이 북쪽으로 흐른다는건 우리가 1,135봉에서 한참을 더 북쪽으로 간 뒤, 1,135-덕고능선 북쪽으로 떨어졌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단한 우리의 머리였다.
산에서는 내 감각을 믿어야 하지만, 이게 과하면 잘못갔을때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나의 판단에 자연을 때려 맞추려고하게 된다.
바로 우리가 그런 상황이었다.
온바님의 자전거는 이런 길을 가기엔 너무 무거워 보인다. 너무....
길도 아닌, 그나마 계곡을 치고 오르면 좀 낫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엉망진창의 산죽, 넝쿨, 잡목, 넘어진 나무의 연속이다.
상체가드를 두고 온 걸 아쉬워하며 떠메지도 못한채, 그냥 걷기도 힘든 길을 한발 한반 자전거를 들어 옮기며 진행하고 있다.
끌어? 끌 수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냥 여기서부터라도 타고 내려가는게 어떨가 하고 한마디 내뱉으시는데,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라서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난 나대로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
어디서 뭐가 잘못됐는지는 파악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더구나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너무 힘들게, 어디인지도 모르며 올라오다보니 "이 웬수를 어떻게 갚아야하죠?" 라는 농담이 서로 튀어나온다.
"짱구님을 꼬드겨서 이리 한번 더 데려올까? 아니, 우린 안가고 가게 만들까?" 하며 잠시 웃어보지만, 곧바로 끝도 없을 듯이 펼쳐지는 잡목과 산죽과 간벌지역으로 아무말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다시 내딛는다.
침묵속의 고행.
정말 고행의 연속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아니 끝나기나 하려나... 오늘 안에 방향 잡을 수 있을까... 그냥 이대로 화전민되는 건 아닐까...
온갖 잡생각과 어딘지 모르는 길을 가고 있다는 막막함이 더하지만, 그래도 주위 지형을 기억하며 가려고 눈동자를 사방으로 휘돌린다.
혹시라도 리본 하나라도 있을지, 바닥에 쓰레기 조각이라도 있을지도 열심히 찾아본다.
조금씩 조금씩 감이 잡혀오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도 혹시나 하는 내 생각을 꺽지는 못하고 있다.
양아님이 선견지명이 있다고 합창을 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선수쳐서 빠져나갔다고.
부러울 정도였다.
가다보니 계곡이 두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으로 가면 능선으로 가파르게 오를 것 같아, 왼쪽을 택한다.
왼쪽은 그래도 뭔가 될 것같은 느낌이 든다.
경사는 여전히 완만하지만 수량은 많이 줄어 거의 끝나간다는 희망이 생긴다.
그렇게 한참을 자전거를 떠메고 올라가는데, 저 멀리 어디선가 본 듯한 능선이 나타난다.
그건 지지난주에도 봤고, 오늘도 본 태기산성 내려가는 능선이다.
낙엽송과 소나무가 많았던 능선이 보이는 것이다.
아마도. ^^;
어라... 그렇다면 우리가 내려선 곳은...? 지금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능선과 고개는...??
점점 더 머리속이 복잡해진다.
최대한 빨리 이 계곡을 넘어 고개마루에 올라서는게 상책이다.
돌아보면 온바님의 힘든 모습이 역력하다.
1년만의 묻지마라는데.... 미안한 마음에 일단 길을 찾기위해 먼저 간다.
그러면서도 혹시 아침에 탔던 군사도로가 보일깨 해서 자꾸 태기산쪽을 바라보지만, 일단 태기산 정상이 보이지 않으니 거기가 태기산쪽인지 1,135 봉쪽인지 모르겠다.
그냥 봉우리 생겨먹은게 태기산 같긴 한데...
사실 군사도로가 한자락만 보였으면 그리 무조건 치고 올라가려고 했다.
이젠 계곡도 거의 상류인 듯 물줄기 위로 넘어진 나무와 덩쿨이 가로 막는다.
15:00 길 찾음
결국 그렇게 계곡을 뚫고 올라 한참을 버벅대며 올라서니 갑자기 주위 환경이 이상해진다.
70년대만 해도 태기산엔 화전민 1000 여명이 살았다는데, 웬지 사람이 살았을 것같은 작은 고원지대가 나온 것이다.
그리고 양쪽의 능선도, 태기산성 능선일거라고 본 능선도 상당히 가까워보인다.
그리고 여기가 고개마루인 듯 하다.
그럼 좀 더 가면 건너편이 보일것이고, 그럼 현재 위치가 드러날 것이다.
온바님이 뒤에 보이길래 자전거를 두고 길을 찾아 나선다.
평평한 지역에 잡목이 차있어 잘못하면 그 안에서 방향을 잃을 것 같은 길이라 조심해서 가는데.
드디어 리본이 하나... 아니 두개가 보인다.
드디어 뭔가 찾긴 찾았구나.
근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리본이다.
하나는 꽤 유명한 산꾼이고, 또 하나는 많이 본건데... 어디서 봤더라.
일단 리본을 찾았으니 온바님을 데려온다.
그리고 난 리본을 좀 더 찾아본다.
동쪽 능선으로 리본이 꽤 있는데... 아까 본듯한 리본이 드디어 생각났다.
그건 부부산행-지맥밟기라는 글이 씌어있는 노끈으로 만든 리본이다.
지맥밟기라고?
그럼 이게.... 설마....
좀 더 찾아보니 폐허가 된 옛 도로인 것 같은 길이 나타난다.
결국.
이걸로 모든게 분명해진 것이다.
바로 여기가 1,135에서 내려와 덕고산으로 올라가는 고개인 것이다!!
하지만, 이미 단단해져있는 내 머리는 그래도 혹시나 한다.
어쨌든 온바님을 찾아 폐도로를 타고 남쪽을 향해 간다.
그렇게 한 10분 가니 웬 팻말이 서있다.
거기엔... 거기엔!!!!!!!!!!!!!!!
낙수대 하산길이라고 쓰여있었다.
정말 쮄좡할 일이다!!!!!!!!!!!!!!!!!!!!!!!!
이롤뚜가!!!
하지만, 어쨌든.
우리의 길은 확실해졌다.
온바님과 같이 마지막 계획을 세운다.
그대로 낙수대로 내려가면 계곡에 난 옛 도로를 따라 내려가게 되니까, 그대로 이 길을 따라 군사도로로 올라가 태기산성 능선을 타기로 최종 결정을 한다.
근데. 이 길도 꽤 멀다!
하지만 확실한 길을 간다는 건 심적인 부담이 없다.
그냥 가면 되니까.
근데.. 그럼 아까아까, 잘못내려오긴 전에 봤던 비닐 묶인 나무쪽 능선은 또 뭐지...??
16:00 군사도로 만남
40분쯤을 끌고 가서야 드디어, 드디어 군사도로가 나온다.
끌었던 길은 옛날에 도로이기나 했었을까 하는 등산로나 다름 없는 길이었다.
정말 아무리 인생이 돌고 도는 것이라지만, 4시간를 어디서 헤매는지도 모른채 타지도 못하고 오직 들쳐메고 계곡을 오르며, 온갖 생각으로 복잡한 머리를 짓누르며 올라온 뒤라 그런지 정말 허망했다...
아, 그래도 이제부턴 내리막이다!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도 어쨌든 내려간다!!
태기분교 터 입구로 바로 진입.
이 능선은 소나무, 낙엽송이 많은 것 뿐만 아니라, 길이 온통 솔잎으로 덮인 양탄자같인 길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온바님, 앞에서 돌 좀 큰거 나오면, 나무 등걸 나오면 바로 점프! 점프! 점프! 다.
반나절의 웬수같은 계곡을 헤맸던 것을, 아니 1년만의 묻지마를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마구마구 뛰고 내달리신다.
나? 한번 해보려다 그냥 앞으로 고꾸라질뻔 했다.
아무나 하는게 아니었다... 흑흑흑...
근데 그런 길은 초반에만 있는게 아니라 계속, 계속, 계속 이어졌다.
앞에선 온바님의 괴성이 들려오고 양탄자같은 길은 끝없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미 머리속엔 우리가 지난 4시간 동안 사투를 벌였던가 하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ㅋㅋㅋ
불과 몇시간 전에 양아님의 선택이 탁월했으며 선견지명이 있다고 한 건 취소다.
선견지명이 반나절 분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양아님! 약오르죠? ㅋㅋㅋ
중간 태기산성터엔 이상한 이정표가 하나 있다.
태기산은 횡성군에 나름대로 꽤 알리려고 애쓰는 산인데도 이정표들엔 위치도 잘 안나와있고 거리는 더더군다나 안나와있다.
근데 태기산성 비석옆에 유일하게 거리 이정표가 하나 있는데, 하산길은 6.9km 올라가는 건 4.8km, 현재 4.8 에서 2.5km 내려왔고 고도 853m 란다.
혹시 가는 사람들 이 이정표 절대 믿으면 안된다.
왜냐면 전체 등산로 4.8km 이다.
도대체 2.5km 는 뭐고, 6.9km 는 뭔지 모르겠다.
그나마 하나 있는 거리표시가 이모양이니, 쯔쯔...
온바님, 묻지마 역사상 최고의 하산길이라며 마구마구 내달린다.
처음엔 능선을 타던 길이 닝선이 급해지자 사면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완만하게 이어진다.
정말 그동안의 웬수를 다 갚고도 남을만한, 아니 무슨 웬수 갚을 일이 있기나 했었나 싶은 길이 처음부터 끝까지, 마지막 약간의 계단 구간만 빼고 줄기차게 이어진다.
웬만하면 끄는 내가 거의 다 타고 내려왔으니.
그리고 마지막엔 계곡을 만나 깨끗하게 마무리 할 수 있는 깔끔함까지.
정말 끝내주는 하산길이었다.
중간중간 온바님이랑 이런 길은 외부로 알리면 안된다고 했지만, 알려도 올 사람 별로 없을 것 같다.
ㅋㅋㅋ
그래도 너무 길이 좋아 마구 달리다가 잘못하면 옆 계곡으로 날아갈 수 있다.
17:20 신대리
18:00 가게
19:00 둔내
21:00 집 도착
그렇게 4시간동안의 사투를 잊어버리고도 남을만한 끝내주는 하산길을 마치고, 도로를 타고 한참을 내려와 북너미재로 향하는 길을 접어든 뒤에야 한 가게에서 빵 몇쪽을 먹는다.
이젠 양구두미 갈게 문제인데, 다행히 처음 잡은 트럭이 북너미재 너머까지 태워다 준다.
그리고 한 10분 히치시도 끝에 온바님, 양구두미로 올라가 차를 갖고 오고.
둔내가며 온바님 전화통화 중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다행히 지옥이 먼저였다.
흐흐흐...
둔내에서 저녁을 먹은뒤, 고맙게도 온바님 날 천문대까지 태워다 주신다.
뭐... 맨날 다니는 길이긴 했지만 그래도 밤에 피곤한 다리로 갈 생각이 좀 막막했는데.
너무 고맙다.
하지만 이미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바로 돌아가시다... 카메라가 내 배낭에 있어 다시 돌아오고.
그렇게 우리의 태기산은 끝났다.
비록 태기-봉복 종주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만큼보다 더한 고통과 갈등과 기쁨속에 다시 한번 자연앞에 겸속해야 하는 나약한 인간임을 깨달은 하루였다.
어쨌든.
묻지마라고?
물을데도 없다니까!!
날씨 : 맑고 따뜻함.
일행 : 나, onbike
아무리 사는게 돌고 도는 것이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으며 기쁨과 슬픔이 공존한다고는 하지만, 어제 하루는 참 뭐랄까.... 어쨌든 매우 얼척없으며 거시기하면서도 끝내주는 하루였다.
가을 들어 동네주변 산들을 하나하나 올랐다.
그나마 등산로가 좀 괜찮은 산들을 골라 올라서, 올라갈 땐 힘들어도 내려울땐 상당히 재미있는 산들이었다.
매화산, 삿갓봉, 구룡산을 오르고 나니 이제 남은건 태기산, 치악산, 청태-대미산이다.
전부터 양아님이 태기산 갈때 불러주라고 했는데, 온바님도 같이 가자고 해서 어찌 된 일인지 주중이 널널한 세 사람은 19일로 날을 잡는다.
하지만 양아님이 막판에 빠지고 결국 온바님과 나만 가기로 한다.
양아님의 이 선택은 바로 다음날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음이 밝혀진다.
하지만 그 직후, 매우 불행한 선택이었음도 밝혀진다.
이 정도만 되도 어제의 분위기가 대강 파악됐으리라 본다.
흐흐흐...
08:15 횡성휴게소
전날, 날도 꿀꿀하고 해서 장작이나 패려고 엔진톱과 도끼를 마구 휘둘러댔더니 온몸이 뻐근하다.
집에서 가까운 횡성휴게소에서 온바님을 만나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로 한다.
뭐... 사실 말이 가깝지, 갈 때 고개 하나를 넘어야 한다.
좀 기다려 온바님이 도착하고 내 자전거를 캐리어에 싣는데, 내 뒷 타이어가 도로용이란다.
어... 난 자잘한 돌기들이 많이 나있어 산악용인줄 알고 좋아했는데... 거 참.
근데 온바님은 트럭같은 타이어를 달고 오셨다.
멋있다. 폼 난다. 역시 산악자전거는 타이어가 두꺼워야 돼!
온바님이 늦었다며 아침을 사신단다.
이럴땐 가만 있어야 한다. ㅋㅋㅋ
근데, 혹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어딜 가는 분들은 아침을 문막휴게소에서 먹을 것을 권하고 싶다.
거긴 휴게소답지 않게 정성스런 밥이 나오는 곳이다.
아침먹고, 가볍게 일정을 이야기 하고 양구두미로 출발.
09:54 양구두미 출발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지만, 쨍한 하늘은 아니다.
둔내 조금 지나면 태기-봉복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지는데 좀 찌부덩 하다.
그래도 우리의 산행을 맞아주기엔 더할 나위없이 끝내주는 가을 하늘이다.
워낙 차가 안다니는 양구두미 오름길은 그래서 매우 한가롭다.
온바님은 상체가드를 할까말까 하다 결국 벗어놓고 가기로 한다.
근데.. 이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10:32 능선 진입
양구두미재에서 태기산 정상까지는 군사도로가 나있다.
물론 정상은 군사시설이고, 민간인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사실, 군부대 내로만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정상개방 해도 아무 탈 없다.
근데 우리나라는 군시설만 있으면 아예 산봉우리 하나를 출입금지 시켜놓는다.
3km 쯤 진행하면 태기분교터 - 태기산성을 거쳐 송덕사로 내려가는 하산길이다.
500m 쯤 가면, 낙수대를 거쳐 주전골-성골로 빠지는 하산길.
지도상에는 태기산 정상으로 가는 군사도로는 나오지 않고, 1,059 봉 아래 고개를 지나 넘어가는 도로 표시가 있다.
하지만 이 도로는 이용하지 않은지 한참됐을뿐더러, 지금은 이게 도로였나 싶을 정도로 폐허가 된 채 등산로나 다름없는 길이 되버렸다.
다행스런 일이긴 하다.
낙수대길 입구를 지나 500m 쯤 더가야 1,135봉으로 진입하는 능선입구다.
군사도로는 여기서 북족으로 꺽어져 태기산 정상으로 향한다.
아무리 민간인 출입금지라고 해도 기어코 정상을 가려는 사람들은 항상 있다.
그렇게 올라가서 위병이랑 암구어 교환도 하고 (?), 쫒겨나기도 한다고 한다.
능선 입구에서 우리가 가야할 덕고-봉복 능선을 보며 기대 반, 걱정 반 설레이는 마음이다.
저 멀리 계방산과 오대산 비로봉도 보인다.
가리왕산도, 백덕산도 보인다.
능선은 부드럽게 이어진다.
지지난주에 답사 겸 약간 걸어들어 갔을 때만 해도 키 큰 철쭉들이 하늘을 온통 뒤덮어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길이었는데, 이미 나무들은 앙상한 몸통만 남고 잎들은 다 떨어졌다.
덕분에 자전거를 탈 수는 있는 길이 됐다.
난 웬만하면 끌려고 했는데 ^^;, 온바님은 그냥 타고 밀어붙인다.
온바님 "행복합니다" 하신다.
그래, 적어도 그때까지는 행복했다.
시퍼런 가을 하늘에 부드러운 능선길. 정말 행복할 만했다.
그렇게 의외로 부드러운 능선길을 한참 달려가니 앞에 봉우리 하나가 보인다.
1,135 봉인 듯 하다.
저걸 넘으면 조금 지나 왼쪽으로 틀어지는 능선이 있고, 거기서부터 거의 길이 없는 산죽밭이 덕고산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아마 고행의 시작일게다.
봉우리는 왼쪽으로 우회한다.
간간이 리본들이 달려있음을 확인한다.
계속 북쪽으로 가는 능선을 타며 생각보다 빨리 진행함에 안심을 한다.
이제 맞은편에 흥정산-구목령을 따라오는 한강지맥이 거대하게 드러나고 있다.
왼쪽엔 아마도 우리가 가야할 능선인 듯 한 거대한 꿈틀거림이 있다.
11:40 능선 끝?
아마 여기가 덕고산으로 가는 능선이 왼쪽으로 틀어지는 곳인가 보다.
조금 쉰 후 출발.
근데 아무래도 정면에 있던 비닐 묶인 나무가 좀 신경이 쓰인다.
내려서자 마자 산죽밭이 나타난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하는데, 금방 길이 없어진다.
그때 잠깐 앞이 트이고, 오른쪽에 능선 하나가 있다.
온바님을 불러 저 능선 인것 같다고는 했지만, 이미 능선을 내려오기 시작한 우리는 되돌아 가기를 거부한다.
그냥 치고 내려가면 낙수대 가는 길에서 이어지는 옛 도로의 흔적이 있을테니, 그걸 타고 덕고산 넘어가는 고개로 가자고 한다.
그렇게 마구 내려가다 보니 넝쿨이 휘감고, 산죽에 막히고, 길은 가팔라지고... 점점 힘들어진... 아니 개판이 된다.
아래쪽에 낙엽송 지대가 보이길래, 그 쪽으로 가면 벌목용 길이 있을테고, 그게 옛 도로일거라고 짐작하며 낙엽송지대로 방향을 큰다.
하지만 어딜 가나 낙엽송 지대는 간벌과 가지치기로 걷기도 힘든 지역이다.
오르막도 아닌 내리막에서 자전거를 들쳐메고 한참을 더 내려가니 계곡 소리가 가까이 들려오고, 그래서 우린 안심을 했다.
조금 더 가니 뭔가 길 비슷한게 나온다.
너무 폐허인 길이긴 했지만, 어쨌든 제대로 찾은거 같아 다행이라 생각하고 계곡에서 점심을 먹는다.
근데... 이런.... 줸좡...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계곡 흘러가는 방향이 남쪽이 아닌 북쪽인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의 갈등은 시작된다.
일단 지도를 보지만, 우리가 1,135 봉을 지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데로 빠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능선상에서 보던 덕고산 가는 능선이 - 우리가 그것일거라고 생각했던 - 정면에 보인다.
뭔가 이상하지만, 일단 점심부터 먹고 자전거는 둔 채로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보기로 했다.
옛 도로일거라고 생각한 폐허가 된 길은 자꾸 계곡을 넘나든다.
이것도 이상하다.
이렇게 길을 만들진 않았을텐데...
한 10분 쯤 가다 보니, 덕고산 가는길로 생각했던 능선은 계곡으로 끊겨있고, 등산로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무엇보다도 한강지맥 갔다온 사람들의 후기에 덕고산에서 태기산 올때 계곡을 건넌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1,135봉에서 덕고산 가는 능선을 놓친채 북쪽으로 더 진행한 것이다.
아.. 그래도 이 계곡은 너무 아름답다.
단풍도 죽인다.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모른채, 잠시나마 가을 계곡의 아름다움 속으로 빠져든다.
여름만 됐으면 저 계곡으로 풍덩 뛰어들텐데!
13:20 출발
그렇게 길 확인하고 출발하는데, 이젠 시간에 쫓길 것 같다.
왜냐면... 이 계곡은 너무 넓고 평탄하다...
최근 1달여동안 비다운 비가 온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 계곡은 풍부한 수량에도 평탄하게 흘러간다.
물이 많고 평탄하다는 건, 상당히 내려왔다는 것이다.
마음속엔 막막함이 점점 가득해오지만 표내지는 않는다.
초반엔 엉망이긴 하지만 엣 길이 남아있다.
비록 그것이 산죽으로 뒤덮인 길이더라도, 길이 있다는건 충분히 희망적인 일이다.
하지만 20분 쯤 가니 길은 아예 사라져 버린다.
아무리 확인을 해봐도 길의 흔적이 없다.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그냥 계곡으로 치고 오를 수밖에.
몇번을 생각하고,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현재 위치가 파악이 안된다.
머리속엔 생각이 복잡하다.
그러고 보니 1,135봉 지나서 리본이 없었던게 이제서야 생각이 난다.
자전거는 이런게 나쁘다.
타고가다 보면 중요한 갈림길 같은걸 놓치는 수가 생긴다.
앞만 보고 달리기 때문이다.
사실 길을 잘못들고,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는 쉽게 알 수도 있었다.
그건 한가지만 하면 되는 일이다.
계곡이 북쪽으로 흐른다는건 우리가 1,135봉에서 한참을 더 북쪽으로 간 뒤, 1,135-덕고능선 북쪽으로 떨어졌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단한 우리의 머리였다.
산에서는 내 감각을 믿어야 하지만, 이게 과하면 잘못갔을때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나의 판단에 자연을 때려 맞추려고하게 된다.
바로 우리가 그런 상황이었다.
온바님의 자전거는 이런 길을 가기엔 너무 무거워 보인다. 너무....
길도 아닌, 그나마 계곡을 치고 오르면 좀 낫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엉망진창의 산죽, 넝쿨, 잡목, 넘어진 나무의 연속이다.
상체가드를 두고 온 걸 아쉬워하며 떠메지도 못한채, 그냥 걷기도 힘든 길을 한발 한반 자전거를 들어 옮기며 진행하고 있다.
끌어? 끌 수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냥 여기서부터라도 타고 내려가는게 어떨가 하고 한마디 내뱉으시는데,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라서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난 나대로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
어디서 뭐가 잘못됐는지는 파악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더구나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너무 힘들게, 어디인지도 모르며 올라오다보니 "이 웬수를 어떻게 갚아야하죠?" 라는 농담이 서로 튀어나온다.
"짱구님을 꼬드겨서 이리 한번 더 데려올까? 아니, 우린 안가고 가게 만들까?" 하며 잠시 웃어보지만, 곧바로 끝도 없을 듯이 펼쳐지는 잡목과 산죽과 간벌지역으로 아무말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다시 내딛는다.
침묵속의 고행.
정말 고행의 연속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아니 끝나기나 하려나... 오늘 안에 방향 잡을 수 있을까... 그냥 이대로 화전민되는 건 아닐까...
온갖 잡생각과 어딘지 모르는 길을 가고 있다는 막막함이 더하지만, 그래도 주위 지형을 기억하며 가려고 눈동자를 사방으로 휘돌린다.
혹시라도 리본 하나라도 있을지, 바닥에 쓰레기 조각이라도 있을지도 열심히 찾아본다.
조금씩 조금씩 감이 잡혀오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도 혹시나 하는 내 생각을 꺽지는 못하고 있다.
양아님이 선견지명이 있다고 합창을 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선수쳐서 빠져나갔다고.
부러울 정도였다.
가다보니 계곡이 두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으로 가면 능선으로 가파르게 오를 것 같아, 왼쪽을 택한다.
왼쪽은 그래도 뭔가 될 것같은 느낌이 든다.
경사는 여전히 완만하지만 수량은 많이 줄어 거의 끝나간다는 희망이 생긴다.
그렇게 한참을 자전거를 떠메고 올라가는데, 저 멀리 어디선가 본 듯한 능선이 나타난다.
그건 지지난주에도 봤고, 오늘도 본 태기산성 내려가는 능선이다.
낙엽송과 소나무가 많았던 능선이 보이는 것이다.
아마도. ^^;
어라... 그렇다면 우리가 내려선 곳은...? 지금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능선과 고개는...??
점점 더 머리속이 복잡해진다.
최대한 빨리 이 계곡을 넘어 고개마루에 올라서는게 상책이다.
돌아보면 온바님의 힘든 모습이 역력하다.
1년만의 묻지마라는데.... 미안한 마음에 일단 길을 찾기위해 먼저 간다.
그러면서도 혹시 아침에 탔던 군사도로가 보일깨 해서 자꾸 태기산쪽을 바라보지만, 일단 태기산 정상이 보이지 않으니 거기가 태기산쪽인지 1,135 봉쪽인지 모르겠다.
그냥 봉우리 생겨먹은게 태기산 같긴 한데...
사실 군사도로가 한자락만 보였으면 그리 무조건 치고 올라가려고 했다.
이젠 계곡도 거의 상류인 듯 물줄기 위로 넘어진 나무와 덩쿨이 가로 막는다.
15:00 길 찾음
결국 그렇게 계곡을 뚫고 올라 한참을 버벅대며 올라서니 갑자기 주위 환경이 이상해진다.
70년대만 해도 태기산엔 화전민 1000 여명이 살았다는데, 웬지 사람이 살았을 것같은 작은 고원지대가 나온 것이다.
그리고 양쪽의 능선도, 태기산성 능선일거라고 본 능선도 상당히 가까워보인다.
그리고 여기가 고개마루인 듯 하다.
그럼 좀 더 가면 건너편이 보일것이고, 그럼 현재 위치가 드러날 것이다.
온바님이 뒤에 보이길래 자전거를 두고 길을 찾아 나선다.
평평한 지역에 잡목이 차있어 잘못하면 그 안에서 방향을 잃을 것 같은 길이라 조심해서 가는데.
드디어 리본이 하나... 아니 두개가 보인다.
드디어 뭔가 찾긴 찾았구나.
근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리본이다.
하나는 꽤 유명한 산꾼이고, 또 하나는 많이 본건데... 어디서 봤더라.
일단 리본을 찾았으니 온바님을 데려온다.
그리고 난 리본을 좀 더 찾아본다.
동쪽 능선으로 리본이 꽤 있는데... 아까 본듯한 리본이 드디어 생각났다.
그건 부부산행-지맥밟기라는 글이 씌어있는 노끈으로 만든 리본이다.
지맥밟기라고?
그럼 이게.... 설마....
좀 더 찾아보니 폐허가 된 옛 도로인 것 같은 길이 나타난다.
결국.
이걸로 모든게 분명해진 것이다.
바로 여기가 1,135에서 내려와 덕고산으로 올라가는 고개인 것이다!!
하지만, 이미 단단해져있는 내 머리는 그래도 혹시나 한다.
어쨌든 온바님을 찾아 폐도로를 타고 남쪽을 향해 간다.
그렇게 한 10분 가니 웬 팻말이 서있다.
거기엔... 거기엔!!!!!!!!!!!!!!!
낙수대 하산길이라고 쓰여있었다.
정말 쮄좡할 일이다!!!!!!!!!!!!!!!!!!!!!!!!
이롤뚜가!!!
하지만, 어쨌든.
우리의 길은 확실해졌다.
온바님과 같이 마지막 계획을 세운다.
그대로 낙수대로 내려가면 계곡에 난 옛 도로를 따라 내려가게 되니까, 그대로 이 길을 따라 군사도로로 올라가 태기산성 능선을 타기로 최종 결정을 한다.
근데. 이 길도 꽤 멀다!
하지만 확실한 길을 간다는 건 심적인 부담이 없다.
그냥 가면 되니까.
근데.. 그럼 아까아까, 잘못내려오긴 전에 봤던 비닐 묶인 나무쪽 능선은 또 뭐지...??
16:00 군사도로 만남
40분쯤을 끌고 가서야 드디어, 드디어 군사도로가 나온다.
끌었던 길은 옛날에 도로이기나 했었을까 하는 등산로나 다름 없는 길이었다.
정말 아무리 인생이 돌고 도는 것이라지만, 4시간를 어디서 헤매는지도 모른채 타지도 못하고 오직 들쳐메고 계곡을 오르며, 온갖 생각으로 복잡한 머리를 짓누르며 올라온 뒤라 그런지 정말 허망했다...
아, 그래도 이제부턴 내리막이다!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도 어쨌든 내려간다!!
태기분교 터 입구로 바로 진입.
이 능선은 소나무, 낙엽송이 많은 것 뿐만 아니라, 길이 온통 솔잎으로 덮인 양탄자같인 길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온바님, 앞에서 돌 좀 큰거 나오면, 나무 등걸 나오면 바로 점프! 점프! 점프! 다.
반나절의 웬수같은 계곡을 헤맸던 것을, 아니 1년만의 묻지마를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마구마구 뛰고 내달리신다.
나? 한번 해보려다 그냥 앞으로 고꾸라질뻔 했다.
아무나 하는게 아니었다... 흑흑흑...
근데 그런 길은 초반에만 있는게 아니라 계속, 계속, 계속 이어졌다.
앞에선 온바님의 괴성이 들려오고 양탄자같은 길은 끝없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미 머리속엔 우리가 지난 4시간 동안 사투를 벌였던가 하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ㅋㅋㅋ
불과 몇시간 전에 양아님의 선택이 탁월했으며 선견지명이 있다고 한 건 취소다.
선견지명이 반나절 분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양아님! 약오르죠? ㅋㅋㅋ
중간 태기산성터엔 이상한 이정표가 하나 있다.
태기산은 횡성군에 나름대로 꽤 알리려고 애쓰는 산인데도 이정표들엔 위치도 잘 안나와있고 거리는 더더군다나 안나와있다.
근데 태기산성 비석옆에 유일하게 거리 이정표가 하나 있는데, 하산길은 6.9km 올라가는 건 4.8km, 현재 4.8 에서 2.5km 내려왔고 고도 853m 란다.
혹시 가는 사람들 이 이정표 절대 믿으면 안된다.
왜냐면 전체 등산로 4.8km 이다.
도대체 2.5km 는 뭐고, 6.9km 는 뭔지 모르겠다.
그나마 하나 있는 거리표시가 이모양이니, 쯔쯔...
온바님, 묻지마 역사상 최고의 하산길이라며 마구마구 내달린다.
처음엔 능선을 타던 길이 닝선이 급해지자 사면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완만하게 이어진다.
정말 그동안의 웬수를 다 갚고도 남을만한, 아니 무슨 웬수 갚을 일이 있기나 했었나 싶은 길이 처음부터 끝까지, 마지막 약간의 계단 구간만 빼고 줄기차게 이어진다.
웬만하면 끄는 내가 거의 다 타고 내려왔으니.
그리고 마지막엔 계곡을 만나 깨끗하게 마무리 할 수 있는 깔끔함까지.
정말 끝내주는 하산길이었다.
중간중간 온바님이랑 이런 길은 외부로 알리면 안된다고 했지만, 알려도 올 사람 별로 없을 것 같다.
ㅋㅋㅋ
그래도 너무 길이 좋아 마구 달리다가 잘못하면 옆 계곡으로 날아갈 수 있다.
17:20 신대리
18:00 가게
19:00 둔내
21:00 집 도착
그렇게 4시간동안의 사투를 잊어버리고도 남을만한 끝내주는 하산길을 마치고, 도로를 타고 한참을 내려와 북너미재로 향하는 길을 접어든 뒤에야 한 가게에서 빵 몇쪽을 먹는다.
이젠 양구두미 갈게 문제인데, 다행히 처음 잡은 트럭이 북너미재 너머까지 태워다 준다.
그리고 한 10분 히치시도 끝에 온바님, 양구두미로 올라가 차를 갖고 오고.
둔내가며 온바님 전화통화 중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다행히 지옥이 먼저였다.
흐흐흐...
둔내에서 저녁을 먹은뒤, 고맙게도 온바님 날 천문대까지 태워다 주신다.
뭐... 맨날 다니는 길이긴 했지만 그래도 밤에 피곤한 다리로 갈 생각이 좀 막막했는데.
너무 고맙다.
하지만 이미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바로 돌아가시다... 카메라가 내 배낭에 있어 다시 돌아오고.
그렇게 우리의 태기산은 끝났다.
비록 태기-봉복 종주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만큼보다 더한 고통과 갈등과 기쁨속에 다시 한번 자연앞에 겸속해야 하는 나약한 인간임을 깨달은 하루였다.
어쨌든.
묻지마라고?
물을데도 없다니까!!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