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에서 '악' 자를 떼라~~!!
2004. 11. 11. 목
나, onbike, sync
모름지기 '악'자 들어간 산치고 호락호락한 산이 없으니.
대표적으로 설악산이 그렇고, 결코 뒤지지 않는 월악산이 그러며, 운악산 역시 이름값을 하고, 감악산 역시 그렇다.
치악산도 마찬가지로, 사다리병창 코스 하나만 갖고도 치가 떨리고 악이 받힌다는 악명을 떨치며, 향로봉 - 남대봉 구간의 암릉 넘나들기 역시 다리힘을 죽죽 빼주는 곳으로 손색이 없는 '악'산이다.
하지만.
2004년 11월 11일자로 우리는 치악산에서 '악'자를 뺄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왜냐면.
너무 널널하거든!!!
내 주위엔 나를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번엔 다행이 나만 제정신이 아닌게 아니라... 아니, 내가 제정신이라는 걸 알려줄 수 있도록 2명의 일행이 생겼다.
흐흐흐...
근데, 온바님이야 그렇다 치고 ^^; 온바님의 마수에 싱크님도 걸렸들어 휴가까지 내고 왔는데... 자전거가 내리막질 전용이다...
속으론 무지 걱정된다.
그걸 갖고 치악산을 올라가야 하는디...
일주일 전부터 오락가락하던 주간 예보가 끝내 비로 바뀌더니, 겨울이 닥치기 전 마지막 산행이 될 듯한 날씨다.
혼자 간다면 날짜 정하고 가지는 않는데, 서울에서 진객이 2분이나 오는 마당에 비가 온다니 거 참...
하지만, 비가 오든 말든 무조건 간다고 했으니 변경불가다.
사실.
우리가 또 언제 비오는 11월 중순에 자전거 메고 비로봉을 올라보겠는가.
이럴때 한번 해보는 거지 뭐.
안그렇습니까??!!
ㅋㅋㅋ
일단 전체 코스에 크게 힘든 구간은 없는 것으로 예상했다.
난 매화 - 남대와 남대 - 비로 종주를 모두 해봐서, 비로 - 곧은치 구간은 거의 탈만하다는 건 알고 있었고, 곧은치 - 부곡도 고도차에 비해 거리가 좀 되므로 별로 험하진 않을거라고 봤다.
올라가는거야 어딜 가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암릉만 나오지 않기를 바랬고.
부곡은 550m, 비로봉 1288m, 곧은치 850m 정도.
근데, 옛날엔 고둔치라고 했는데 언제부턴가 곧은치로 바뀌었다.
개인적으로 고둔치가 맘에 든다.
지도의 첫번째 검은점이 능선 진입점, 두번째가 삼각점, 이후는 헬기장.
06:55 출발
07:30 강림 우체국 00:32:34 21.1 11.13
10일 밤부터 그친 비는 아침까지도 다시 내리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동네가 구름속에 잠겨있는 걸 보니, 치악 능선으로 들어가면 구름속에 갇힐 것 같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내려가는데, 저기 강 건너 강림방향으로 가는 승용차 두대가 구름속에서 어렴풋이 보인다.
이 동네에서 그 시간에 그쪽으로 승용차가 두대씩이아 갈 일이 없을테니 아마도 온바, 싱크님인 것 같다.
약속시간이 07:30 에 우체국 앞에 도착하니, 아까 그 차들이 맞다.
싱크님의 자전거를 보는 순간 기냥 앞길이 걱정되는데.
사실 난 내리막질 전용 자전거를 이렇게 가까이서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이다.
직접 본걸로도 세번째인데, 찬찬히 뜯어보니 이건 멜 수도 없는 구조를 가진 아주 애매한 자전거다.
가볍기나 하면...
근데 싱크님 캐리어 참 신기하네.
뒷트렁크에 끼우는 방식인데 아주 편리해보인다.
얼른 부곡으로 가서 차 대놓고, 자전거 내리고 마지막 점검을 한 후 출발
자, 우리의 목표는 하산후 점심입니다~
우쒸... 뭔가 빼놓고 왔다 했더니 지도를 두고 왔다...
08:00 부곡, 준비, 매표소 통과
08:15 비로봉 등산로 찾기
이 시간엔 당연히 매표소에 사람이 없다.
매표소 통과 후 7분 거리에 비로봉 직등로가 있다고 했으니, 천천히 오른쪽을 살펴보며 간다.
가다가 길 하나가 있어 온바님이 확인하고, 난 좀 더 앞쪽으로 찾으러 간다.
가다보니 리본이 달린 진입로가 있어 올라가보니 이게 맞는 것 같다.
09:10 능선 진입 1:11:20 12.7 15.17
09:30 휴식, 출발
09:46 삼각점 봉우리 1:16:24 12.1 15.47
09:55 휴식, 출발
10:05 헬기장 1:23:43 11.1 16.60
10:35 휴식, 출발
10:53 헬기장 1:41:14 10.2 17.59
11:31 비로봉 1:47:02 9.8 17.65
자, 이제 진짜 시작이다.
오기전에 지도를 아무리 째려보고, 뒷산에 올라 치악산을 아무리 훑어봐도 우리가 오를 능선에 험난한 구간이 보이지 않아 내심 걱정이 많았다.
원래 지도상에서 파악이 안될 수록 뒤통수 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등고선 한칸 사이에 뭐가 있는지 어케 알겠는가.
일단 등산로는 너무 잘 나있다.
국립공원이라 어느 정도 길이 뚜렷할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넓게 날 줄 몰랐다.
이게 반가운 건지 뭔지...
근데.
능선으로 바로 붙을 줄 알았던 길이 계속 계곡을 타고 간다.
원래 길이란게 그렇게 나는거긴 한데, 능선으로 바로 간다던 길이라 좀 신경이 쓰인다.
계곡을 벗어날 듯 벗어날 듯 하다가도 다시 내려오고 하는 길의 연속이다.
하지만 고도를 올릴수록 오른쪽 능선이 눈에 들어오는게 보인다.
온바님도 능선을 보임을 확인하고 좀 더 힘을 낸다.
글고, 어제 내린 정도의 비로도 이렇게 물이 흐르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가 가야할 능선에서 갈려나오는 지능선 사이의 계곡인 것 같다.
구름 사이로 어렴풋이 양쪽 능선이 내려다 보이는 듯 할때, 드디어 길이 계곡을 버리고 사면을 타고 올라간다.
계속 끌다가 잠깐 메고 올라서니 어느새 능선인데.
여기서 비로봉 올라갈 때까지 계속 나를 헷갈리게 한 리본 하나가 나타난다.
'2004 횡성군계 탐사' 라는 리본인데.
원래 원주 - 횡성 군계는 전재 - 매화 - 천지 - 비로 - 곧은치 - 남대봉이다.
근데 갑자기 웬 군계 탐사리본이냔 말이다.
일단 우리가 올라온 길은 당연히 주능선이 아니다.
그렇다고 행정구역이 바뀐 것도 아니고.
속으론 상당히 신경이 쓰였지만, 내 눈에만 보이는 일이니 드러내진 않고 잘 살펴보며 가기로 한다.
온바, 싱크님은 자전거들이 워낙 무거워 올라오는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특히나 싱크님은 멜 수가 없으니 경사 좀 세지면 보통 고역이 아닐 것 같다.
그나마 어제 비로 낙엽들이 많이 죽어서 미끄러지진 않아 다행이다.
아직까진 예상대로 순조로운 진행이다.
근데, 능선에 올라서니 가루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여전히 온 사방은 구름속에 갇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능선은 의외로 평탄한 곳이 많아 상당히 타고갈 수 있다.
하지만 앞쪽에 뭔가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있는 듯 하고, 그걸 넘어야 1004 봉일 것같다.
앞에 나타난 급경사길을 메고 오르니 삼각점이 있고, 아마도 1004 봉인 듯 하다.
이후로도 첫번째 헬기장 나올때까지는 거의 타고 갈 수 있었고, 조금씩 고도를 올리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정도의 능선이다.
이 헬기장은 비로봉에서 내려다 보이는 헬기장인 것 같고, 그럼 우린 비로봉 직등로를 가는게 맞다.
비로봉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헬기장은 이거 뿐인 걸로 기억이 난다.
근데, 이러다가 마지막 비로봉 오름길이 지독해지는 거 아닐까.
첫번 헬기장 지나면서부터 점점 바위들이 많아지길래 비로봉이 가까워 옴을 느낀다.
거의 시계 제로의 비구름 속이지만, 별 걱정은 안된다.
다만 가끔씩 나타나는 군계탐사 리본이 좀 신경이 쓰일 뿐.
'이러다가 천지봉으로 가는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일단 부곡을 넘어서면 천지봉으로 가는 능선은 아예 없다.
아까 삼각점 봉우리가 1004 봉이 맞으면 가다가 변암이 있어야 하는데, 워낙 시야가 막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바위를 넘으며 끌고 가다보니 또 헬기장이 나온다.
어... 이런건 비로봉에서 안보였는데....
하지만 위쪽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서야 비로봉이 코 앞에 있음을 확신한다.
구름속에서 사람 목소리만 들리니 '신들의 대화' 같다.
그랬더니 싱크님, 두 사람 모두 아무래도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다고 구박이다.
ㅋㅋㅋ
자, 비로봉 올라가는 마지막 오름길이다.
예상대로라면 비로봉 아래 샘터가 나올 것이다.
갑자기 경사가 급해지고, 메고 올라가기도 어려운 길이 나타난다.
그럼 그렇지~ 한번은 이런거 나와줘야 산에 온 기분 나는 것 아니겠어~~
아... 근데 이건 내 생각이고, 온바님이랑 싱크님 자전거를 보니 그 단계를 넘어선 길인 것 같다...
그렇게 좀 기어 올라가니 갑자기 뭔가 기분이 이상해지고 사람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며, 구름속에서 비석 하나가 나타난다.
난 이때 여기가 천지봉 아닌가 하는 걱정이 덜컥 들었다.
이렇게 가까이 있을거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샘터쪽만 생각해서 이런 우뚝 솟은 길은 의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석을 보려고 올라서니 앞엔 희미한 돌탑들이 들어오고, 그제서야 여기가 비로봉임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에이~ 이건 너무 널널하잖아~~ 괜히 긴장했네!
잠시후 온바, 싱크님도 올라오고.
그렇게 우리는 의외로 쉽고 널널하게 비로봉에 올라버렸다.
어... 이럴만한 산이 아닌데...
뭐 좀 헤매기도 하고, 구르기도 하고, 메달리기도 하고 힘 좀 써야 올라올 줄 알았던 비로봉이 이렇게 쉽게 나타나다니... 거 참...
그럼 군계탐사 리본은 도대체 어떤 녀석이 달아놓은거야!!!
아무튼 예상밖의 널널한 길에 고마워하면서, 구름때문에 터지지 않는 조망을 아쉬워하며, 점점 세지는 빗줄기속에서 하산길을 재촉한다.
우리의 목표는 하산후에 점심을 먹는거 아닌가!
12:00 출발
13:39 곧은치 2:42:38 8.1 22.14
15:00 부곡 3:30:38 7.7 27.37
이제부터 곧은치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은 내리막이고 상당히 타고 갈 수 있다.
올라올땐 내가 앞서갔지만, 내려갈때가 되니 온바, 싱크님의 자전거가 힘을 내기 시작한다.
돌탱이 길이고 뭐고 기냥 밀고 내려가는데... 난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렇게 타고 가면서도 비만 아니었으면 더 탈 수 있을 거라고 무지 아쉬워들 한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면서 길이 좀 미끄러운데가 많이 나온다.
아... 근데... 점점 브레이크가 닳는게 느껴진다...
점점 레버가 끝까지 당겨지고... 어어어.... 안 멈춘다...
에구... 멈추질 않아 헬멧으로 나무를 받았다... 좀 깨졌다...
나 때문에 하산 시간이 상당히 늦어지는 것 같다.
근데, 이 능선이 이렇게 날등이었던가...
가끔씩 나타나는 직은 봉우리를 넘을때 빼고는 주로 타고 가다보니 어느새 곧은치다.
빗속이라 원통재가 어딘지도 모르고 지나쳤다...
이제 마지막 하산길인데.
과연 이 길이 어떨지 걱정반 기대반이다.
하지만.
이 길은 거의 타고 내려올 수 있는 하산길이었다.
물론... 난 좀 끌어야 하는 돌길이 많았지만 두분은 그런 돌길은 아랑곳 하지 않고 기냥 밀고 내려간다.
또다시 온바님의 괴성이 계곡에서 들려온다.
날 기다리느라 몸이 식어 춥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그렇게 5km 넘게 내달려 부곡 매표소를 지난다.
원래 공단 직원이 있으면 양해를 구하려 했는데, 이 인간이 등 돌리고 TV 를 보고있네 그랴.
우린 잘못한거 없다!!
공단직원이 근무를 태만하게 한거닷!!!
근데... 부곡으로 하산하니 비가 안오네...
흙탕범벅으로 부곡으로 내려와 씻고 어쩌고 한 후 좀 늦긴 했지만 강림순대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싱크님은 내 자전거를 캐리어에 매단 죄로 날 천문인마을까지 데려다 주어야 했다.
감사합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부곡쪽에서 올라가는 치악산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산이다.
하산길은 거의 탈 수 있다.
매표소 통과만 주의하고, 비로봉 아래 산불감시초소만 조심하면 공단직원과의 만남도 없다.
단, 주말은 좀 더 주의해야 한다.
속도계의 거리는 거의 맞다.
그만큼 메고 간 구간은 거의 없고 끌거나 탔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싱크님의 힘은 대단했다.
그렇게 올해의 마지막 자전거 산행이 끝났다.
오늘 아침 기온이 2도 였으니 이제 추워서 안될 것 같다.
결국 청태 - 대미와 백석 - 잠두는 내년 5월로 미룬다.
글고 내년엔 오대산을 숨어들어 종주 함 해봐야 겠다.
흐흐흐...
온바, 싱크님 고생하셨습니다~
치악산에서 '악'자를 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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