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원래의 계획대로 구룡덕봉을 향해 고행의 길을 계속한 이는 온씨, 왕씨, 술씨 세사람이었다. 왕씨는 오후 4시까지는 원점으로 되돌아와 수원 직장으로 복귀해야 하는 통에 서둘러 굵은 날선 돌이 흘러내리는 임도 오르막을 치달렸다. 오래도록 함께 산을 타지 못한 옛 동료를 보는 온씨의 눈에는 왕씨가 발산하는 그 하나도 변한 것 없는 저돌적인 에너지에 대한 경탄과 부러움의 빛이 역력하였다. 술씨도 이런 장거리 산행이 너무도 오랜만이었고 게다가 전날 새벽까지 마셨던 술이 아직 채 깨지도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불볕의 임도바닥을 성큼 성큼 잘도 걸어 올랐다. 결국 월둔고개를 떠난 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온씨는 다시 혼자가 된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내리막길을 호령하며 내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점점 더 희미해져 가고 온씨는 엄습해오는 절망감을 떨쳐내려 신음하였다. 발바닥 신경이 쥐어 당기는 통증을 참으면서 한참을 기어오르고 있는데, 뒤에서 네발 오토바이의 엔진음이 미친 듯이 뒤쫓아온다. 뒤돌아보기가 무섭게 도시와 기계문명의 화신 한 마리가 방금 죽을 힘을 다하여 돌아나온 모퉁이를 튕기듯 솟구쳐 나와 먼지와 경유 타는 냄새를 온씨에게 흠뻑 뒤집어씌우고는 앞 모퉁이를 휘돌아 사라진다. 미쳐 화를 낼 겨를도 없이 또 한 마리, 또 한 마리, 또 한 마리, .... 네발 오토바이족들에게 온씨는 삼둔 사가리 일대에 쏟아지는 8월의 태양 만큼이나 뜨거운 증오를 느낀다.
남의 기호와 취향에 대한 관용, 다양성의 존중, 다 좋다. 좋은 말이고 좋은 가치란 걸 온씨는 안다. 그러나 그 네발족들은 온씨의 취향에 대해 무조건적인 관용을 베풀어도 아무런 피해도 보지 않는다. 그냥 속도를 약간 줄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폭주의 쾌감을 조금 덜 느끼는 정도가 피해라면 피해다. 그러나 온씨는 사정이 다르다. 네발족들의 취향을 인정하고 관용하려면 폭주하는 네바퀴 아래서 튀어오르는 돌덩이들로 인한 신변의 위협, 매연과 먼지, 그들의 네바퀴가 후벼파 놓아 더욱 걷기 힘들어진 노면, 등등 헤아릴 수 없는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각기 다른 인간들이 서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네발족들을 이곳에서 쫓아버리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겨우 억누르며 온씨는 씁쓸하게 곱씹는다.
6.
구룡덕봉 정상은 생각외로 분주했다. 한가족인 듯 해 보이는 중년의 남녀와 어린 여자아이, 그 미운 네발족들, 또다른 잔차꾼 한 팀, 먼저 도착해서 숨을 고르고 있는 술씨, 그리고 벌써 방태산 능선의 중간쯤은 가고 있었어야 할 왕씨가 거기서 온씨를 반겨주었다. 온씨는 가쁜 숨을 몰아쉴 겨를도 없이 왕씨에게 먼저 가시지 왜 기다리고 있냐고 묻는다. 왕씨는 짧게 대답한다.
“잔차를 들이밀 수가 없서.”
누가 산천은 의구하다 했는가... 구룡덕봉에서 방태산 주봉인 주억봉에 이르는 도도한 능선은 4년 전 바로 이곳에서 보았던 것 보다 훨씬 더 굴곡이 심해져 있었다. 가뜩이나 비좁은 등산로 위로 키낮은 관목들이 그 무성하고 억센 가지를 내밀고 지나는 모든 것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바람에 잔차의 핸들을 등산로로 밀어넣을 수 없다는 것 - 이것이 왕씨의 전진 의지를 가로막은 두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다른 하나는 시간이다. 한시간여 만에 차를 세워둔 출발지점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그로서는 방태산까지의 길이 고속도로였대도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왕씨는 두 번째 원정에서도 방태산을 밟을 수 없게된 처지가 못내 억울한 듯 연신 허허로운 웃음만 허공에 날릴 뿐이었다.
“제가 형님의 원쑤를 갚아드리죠..!”
완전무장을 하고 능선에 진입하려하는 온씨는 왕씨와 술씨 그리고 등산온 첨보는 일가족 까지 가세한 만류의 손길을 뿌리치며 단호히 말했다. 아마도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체력은 증발하고 악만 남았나 보다. 그러나 그 악이 자칫 화를 부른다는 것쯤은 왕씨도 술씨도 그리고 장본인인 온씨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온씨를 막무가네로 만든 것은 이런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그 “호령하는 내리막질”이 무산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절망감이었다. 그 순간, 온씨의 뇌리에는 꼼수가 떠올랐다. 방태산 정상은 포기하더라도 적가리골의 원시적 발원지를 따라 내려가는 호령 내리막질만은 맛볼 수 있는 길, 그것은 구룡덕봉에서 반대 방향으로 매봉령쪽 능선을 내려가서 왼쪽 적가리골 발원지로 떨어지는 코스를 타는 것이다! 순간 온씨는 적가리 계곡을 오른쪽에서 호위하고 있는 반대편 병풍같은 능선으로 눈길을 주었다.
걱정스러운 것은, 매봉령이 능선상의 저 여러개 잘록이들 중에서 첫 번째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또 몇 개의 봉우리를 비명을 지르며 넘어야 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때였다. 방태산 훨씬 너머 깃대봉에서부터 먹장구름이 몰려들더니 그 세를 점점 넓혀 방태산-구룡덕봉 능선 위로 쳐밀려 들어온다. 이미 방태산 쪽에서는 거센 소낙비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먹장 구름 속에서 섬광이 번뜩이며 다스베이더의 광선검 같은 번개가 능선위로 내리꽂힌다. 이 날벼락에 정신이 든 온씨와 일행은 모든 미련을 버리고 구룡덕봉 정상에서 기수를 돌린다. 호령이고 뭐고 모든 것을 삼둔 사가리 산신령께 맡기고 매봉령 길로 내려가자! 못탈 길이든 탈 길이든, 매봉령까지 도달하려면 봉우리를 넘어야 하든 말든, 모든 걸 포기하고 벼락이나 피하고 보자! 벼락이 내리 꽂히는 해발 1400미터의 휑한 능선에 전기 잘 통하는 알미늄 막대기들을 옆에 끼고 나선다는 것은, 아무리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해맑게 살아온 인생이라도 오금이 저려오는 모험이 아닐 수 없다.
to be continued..
원래의 계획대로 구룡덕봉을 향해 고행의 길을 계속한 이는 온씨, 왕씨, 술씨 세사람이었다. 왕씨는 오후 4시까지는 원점으로 되돌아와 수원 직장으로 복귀해야 하는 통에 서둘러 굵은 날선 돌이 흘러내리는 임도 오르막을 치달렸다. 오래도록 함께 산을 타지 못한 옛 동료를 보는 온씨의 눈에는 왕씨가 발산하는 그 하나도 변한 것 없는 저돌적인 에너지에 대한 경탄과 부러움의 빛이 역력하였다. 술씨도 이런 장거리 산행이 너무도 오랜만이었고 게다가 전날 새벽까지 마셨던 술이 아직 채 깨지도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불볕의 임도바닥을 성큼 성큼 잘도 걸어 올랐다. 결국 월둔고개를 떠난 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온씨는 다시 혼자가 된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내리막길을 호령하며 내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점점 더 희미해져 가고 온씨는 엄습해오는 절망감을 떨쳐내려 신음하였다. 발바닥 신경이 쥐어 당기는 통증을 참으면서 한참을 기어오르고 있는데, 뒤에서 네발 오토바이의 엔진음이 미친 듯이 뒤쫓아온다. 뒤돌아보기가 무섭게 도시와 기계문명의 화신 한 마리가 방금 죽을 힘을 다하여 돌아나온 모퉁이를 튕기듯 솟구쳐 나와 먼지와 경유 타는 냄새를 온씨에게 흠뻑 뒤집어씌우고는 앞 모퉁이를 휘돌아 사라진다. 미쳐 화를 낼 겨를도 없이 또 한 마리, 또 한 마리, 또 한 마리, .... 네발 오토바이족들에게 온씨는 삼둔 사가리 일대에 쏟아지는 8월의 태양 만큼이나 뜨거운 증오를 느낀다.
남의 기호와 취향에 대한 관용, 다양성의 존중, 다 좋다. 좋은 말이고 좋은 가치란 걸 온씨는 안다. 그러나 그 네발족들은 온씨의 취향에 대해 무조건적인 관용을 베풀어도 아무런 피해도 보지 않는다. 그냥 속도를 약간 줄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폭주의 쾌감을 조금 덜 느끼는 정도가 피해라면 피해다. 그러나 온씨는 사정이 다르다. 네발족들의 취향을 인정하고 관용하려면 폭주하는 네바퀴 아래서 튀어오르는 돌덩이들로 인한 신변의 위협, 매연과 먼지, 그들의 네바퀴가 후벼파 놓아 더욱 걷기 힘들어진 노면, 등등 헤아릴 수 없는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각기 다른 인간들이 서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네발족들을 이곳에서 쫓아버리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겨우 억누르며 온씨는 씁쓸하게 곱씹는다.
6.
구룡덕봉 정상은 생각외로 분주했다. 한가족인 듯 해 보이는 중년의 남녀와 어린 여자아이, 그 미운 네발족들, 또다른 잔차꾼 한 팀, 먼저 도착해서 숨을 고르고 있는 술씨, 그리고 벌써 방태산 능선의 중간쯤은 가고 있었어야 할 왕씨가 거기서 온씨를 반겨주었다. 온씨는 가쁜 숨을 몰아쉴 겨를도 없이 왕씨에게 먼저 가시지 왜 기다리고 있냐고 묻는다. 왕씨는 짧게 대답한다.
“잔차를 들이밀 수가 없서.”
누가 산천은 의구하다 했는가... 구룡덕봉에서 방태산 주봉인 주억봉에 이르는 도도한 능선은 4년 전 바로 이곳에서 보았던 것 보다 훨씬 더 굴곡이 심해져 있었다. 가뜩이나 비좁은 등산로 위로 키낮은 관목들이 그 무성하고 억센 가지를 내밀고 지나는 모든 것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바람에 잔차의 핸들을 등산로로 밀어넣을 수 없다는 것 - 이것이 왕씨의 전진 의지를 가로막은 두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다른 하나는 시간이다. 한시간여 만에 차를 세워둔 출발지점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그로서는 방태산까지의 길이 고속도로였대도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왕씨는 두 번째 원정에서도 방태산을 밟을 수 없게된 처지가 못내 억울한 듯 연신 허허로운 웃음만 허공에 날릴 뿐이었다.
“제가 형님의 원쑤를 갚아드리죠..!”
완전무장을 하고 능선에 진입하려하는 온씨는 왕씨와 술씨 그리고 등산온 첨보는 일가족 까지 가세한 만류의 손길을 뿌리치며 단호히 말했다. 아마도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체력은 증발하고 악만 남았나 보다. 그러나 그 악이 자칫 화를 부른다는 것쯤은 왕씨도 술씨도 그리고 장본인인 온씨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온씨를 막무가네로 만든 것은 이런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그 “호령하는 내리막질”이 무산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절망감이었다. 그 순간, 온씨의 뇌리에는 꼼수가 떠올랐다. 방태산 정상은 포기하더라도 적가리골의 원시적 발원지를 따라 내려가는 호령 내리막질만은 맛볼 수 있는 길, 그것은 구룡덕봉에서 반대 방향으로 매봉령쪽 능선을 내려가서 왼쪽 적가리골 발원지로 떨어지는 코스를 타는 것이다! 순간 온씨는 적가리 계곡을 오른쪽에서 호위하고 있는 반대편 병풍같은 능선으로 눈길을 주었다.
걱정스러운 것은, 매봉령이 능선상의 저 여러개 잘록이들 중에서 첫 번째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또 몇 개의 봉우리를 비명을 지르며 넘어야 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때였다. 방태산 훨씬 너머 깃대봉에서부터 먹장구름이 몰려들더니 그 세를 점점 넓혀 방태산-구룡덕봉 능선 위로 쳐밀려 들어온다. 이미 방태산 쪽에서는 거센 소낙비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먹장 구름 속에서 섬광이 번뜩이며 다스베이더의 광선검 같은 번개가 능선위로 내리꽂힌다. 이 날벼락에 정신이 든 온씨와 일행은 모든 미련을 버리고 구룡덕봉 정상에서 기수를 돌린다. 호령이고 뭐고 모든 것을 삼둔 사가리 산신령께 맡기고 매봉령 길로 내려가자! 못탈 길이든 탈 길이든, 매봉령까지 도달하려면 봉우리를 넘어야 하든 말든, 모든 걸 포기하고 벼락이나 피하고 보자! 벼락이 내리 꽂히는 해발 1400미터의 휑한 능선에 전기 잘 통하는 알미늄 막대기들을 옆에 끼고 나선다는 것은, 아무리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해맑게 살아온 인생이라도 오금이 저려오는 모험이 아닐 수 없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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