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매봉령 코스 초입은 구룡덕봉 정상에서 임도로 되돌아 3백미터 쯤 내려가면 임도가 크게 굽이도는 지점에 빼꼼히 자리잡고 있다. 주변 나뭇가지들에 색색이 달린 등산로 리본들이 무슨 금줄처럼 보였다. 여기 들어오는 자 심신을 정갈히 하고 온갖 부정을 말끔히 씻은 후에 들어오라는.... 입구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온씨와 술씨는 왕씨와 아쉬운 작별은 한다.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너털웃음을 보이고는 총총이 임도를 내려가는 왕씨의 뒷모습이 그날따라 유난히 안타까워 보이더니.. 너무 급하게 내려가다 그만 낙마하여 어깨에 부상을 입으셨다는 소식을 나중에 접하고 온씨는 그것이 무슨 전조였나 보다 하였다.
온씨와 술씨는 각종 보호대와 헬멧으로 무장한 다음 보무도 당당하게 그야말로 호령하는 자세로 금줄을 넘었다. 컥!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임도에서 건네 보던 것과는 전혀 딴판의 세계가 펼쳐진다. 작지만 다부진 나무들의 억센 가지가 허공에서 두사람을 제압하고 이끼 낀 각진 돌들의 절묘한 뒤엉킴이 땅에서 잔차 바퀴를 제압한다. 호령? 제가 잘못했습니다요... 온씨의 호기는 너무도 쉽게 꼬리를 감추고, 그는 얌전히 잔차에서 내렸다. 그러나 온씨는 이런 비굴한 자신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저 매일같이 대하던 자화상이었을 뿐.. 다만 여기까지 와서도 그것을 재확인해야 한다는 것이 슬플 따름이었다. 얌전히 끌었다. 길은 경사가 너무도 급하고 좁고 게다가 짧은 간격을 두고 좌우로 급격하게 굽이친다. 몇 번 안장 위에 올랐으나 자전거 휠베이스 길이 만큼의 급경사길을 겨우 돌아나왔다 싶으면 영락없이 코너에 앞뒤바퀴가 꼭 끼어 빠져나오지 못한다. 앤도 턴? 한번 해보시라. 급경사에서 뒷바퀴 들어올리기도 겁날 뿐 아니라 들어올렸다 하더라도 길 좌우에 억센 관목들이 꽉 들어차 있어 좌우로 옮겨놓을 공간이 없다. 두 사람은 그냥 발악하지 않고 순순히 끌었다. 길이 그들을 받아줄 때까지...
한 100여미터 정도를 그렇게 끌었나보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길이 두 사람을 받아들일 태세를 보인 것이다. 온씨는 얼씨구나 안장에 올라탔다. 커피색의 비옥한 흙덩이들이 바퀴에서 튀어올랐다. 길과 온씨의 자전거는 하나가 호령하고 다른 하나가 부복하는 관계가 아니라 둘이 하나가 되어 한판 신명나는 춤판을 벌이는 사이로 변해있었다. 갈수록 경사도 줄어들고 그것에 비례하여 자전거의 속도도 더 빨라졌다. 순간 거대한 형광등이 켜졌다 꺼지는 듯 주변이 번쩍거리더니 하늘이 쪼개지는 듯한 굉음이 쏟아졌다. 연이어 천지를 뒤흔드는 빗소리... 그러나 두 사람이 달리고 있는 길로는 비가 하나도 들이치지 않는다. 우거진 숲이 우산이 돼준 것이다. 상상해보라! 아름드리 나무들의 우산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대자연이 연주하는 빗방울 교향곡의 리듬과 선율 속에 몸을 맡기고 자전거 위에 올라앉아 꼬불거리는 오솔길을 춤추듯 내려오는 그 느낌을!
8.
황홀경 속을 한참 내달리다가 온씨는 순간 이 내리막이 언제 끝날까 하는 생각에 등꼴이 오싹해졌다. 매봉령이 어디쯤일까... 이 내리막의 끝이 매봉령이면 그들은 오늘 분에 넘치는 축복을 받은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지금까지의 황홀경은 다시금 지옥의 고통으로 대체될 것이다. 봉우리를 몇 개 더 넘어야 한다면, 그 지세는 아까 구룡덕봉 정상에서 조망했던 바와 같이 무지 험준할 것임에 틀림없다. 내리막이 길어질 수록 온씨의 긴장과 불안도 덩달아 증폭되었다. 뚫어져라 앞을 응시하고 있던 온씨의 불안 가득한 시야에 드디어 오르막이 시작되는 안부 지형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올것이 왔구나... 그때였다. 50여미터 정도 전방에 하얀 안내 팻말이 버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온씨는 육감적으로 거기가 매봉령임을 알아차렸다. 갈림길이 아닌 다음에야 뭐하러 저자리에 팻말이 서있겠는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직진 방향으로는 말뚝과 밧줄로 길이 막혀있고 “등산로 아님, 매봉령”이라고 적힌 흰 팻말이 서 있었다. 왼쪽 방향으로 눈길을 주니 능선을 벗어나는 분명한 길이 나있고 그 옆에 정상방향과 휴양림 방향을 알리는 친절한 지도를 그려놓은 팻말이 하나 더 서 있었다. 축포라도 터뜨리는 듯 방태산 능선 쪽에서 또 한번 번개와 벼락이 터져나왔다. “살아따아아...!!”
온씨와 슬씨는 안도에 겨워 이 축복의 갈림길 매봉령에서 한참을 쉰다.
매봉령 코스 초입은 구룡덕봉 정상에서 임도로 되돌아 3백미터 쯤 내려가면 임도가 크게 굽이도는 지점에 빼꼼히 자리잡고 있다. 주변 나뭇가지들에 색색이 달린 등산로 리본들이 무슨 금줄처럼 보였다. 여기 들어오는 자 심신을 정갈히 하고 온갖 부정을 말끔히 씻은 후에 들어오라는.... 입구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온씨와 술씨는 왕씨와 아쉬운 작별은 한다.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너털웃음을 보이고는 총총이 임도를 내려가는 왕씨의 뒷모습이 그날따라 유난히 안타까워 보이더니.. 너무 급하게 내려가다 그만 낙마하여 어깨에 부상을 입으셨다는 소식을 나중에 접하고 온씨는 그것이 무슨 전조였나 보다 하였다.
온씨와 술씨는 각종 보호대와 헬멧으로 무장한 다음 보무도 당당하게 그야말로 호령하는 자세로 금줄을 넘었다. 컥!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임도에서 건네 보던 것과는 전혀 딴판의 세계가 펼쳐진다. 작지만 다부진 나무들의 억센 가지가 허공에서 두사람을 제압하고 이끼 낀 각진 돌들의 절묘한 뒤엉킴이 땅에서 잔차 바퀴를 제압한다. 호령? 제가 잘못했습니다요... 온씨의 호기는 너무도 쉽게 꼬리를 감추고, 그는 얌전히 잔차에서 내렸다. 그러나 온씨는 이런 비굴한 자신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저 매일같이 대하던 자화상이었을 뿐.. 다만 여기까지 와서도 그것을 재확인해야 한다는 것이 슬플 따름이었다. 얌전히 끌었다. 길은 경사가 너무도 급하고 좁고 게다가 짧은 간격을 두고 좌우로 급격하게 굽이친다. 몇 번 안장 위에 올랐으나 자전거 휠베이스 길이 만큼의 급경사길을 겨우 돌아나왔다 싶으면 영락없이 코너에 앞뒤바퀴가 꼭 끼어 빠져나오지 못한다. 앤도 턴? 한번 해보시라. 급경사에서 뒷바퀴 들어올리기도 겁날 뿐 아니라 들어올렸다 하더라도 길 좌우에 억센 관목들이 꽉 들어차 있어 좌우로 옮겨놓을 공간이 없다. 두 사람은 그냥 발악하지 않고 순순히 끌었다. 길이 그들을 받아줄 때까지...
한 100여미터 정도를 그렇게 끌었나보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길이 두 사람을 받아들일 태세를 보인 것이다. 온씨는 얼씨구나 안장에 올라탔다. 커피색의 비옥한 흙덩이들이 바퀴에서 튀어올랐다. 길과 온씨의 자전거는 하나가 호령하고 다른 하나가 부복하는 관계가 아니라 둘이 하나가 되어 한판 신명나는 춤판을 벌이는 사이로 변해있었다. 갈수록 경사도 줄어들고 그것에 비례하여 자전거의 속도도 더 빨라졌다. 순간 거대한 형광등이 켜졌다 꺼지는 듯 주변이 번쩍거리더니 하늘이 쪼개지는 듯한 굉음이 쏟아졌다. 연이어 천지를 뒤흔드는 빗소리... 그러나 두 사람이 달리고 있는 길로는 비가 하나도 들이치지 않는다. 우거진 숲이 우산이 돼준 것이다. 상상해보라! 아름드리 나무들의 우산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대자연이 연주하는 빗방울 교향곡의 리듬과 선율 속에 몸을 맡기고 자전거 위에 올라앉아 꼬불거리는 오솔길을 춤추듯 내려오는 그 느낌을!
8.
황홀경 속을 한참 내달리다가 온씨는 순간 이 내리막이 언제 끝날까 하는 생각에 등꼴이 오싹해졌다. 매봉령이 어디쯤일까... 이 내리막의 끝이 매봉령이면 그들은 오늘 분에 넘치는 축복을 받은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지금까지의 황홀경은 다시금 지옥의 고통으로 대체될 것이다. 봉우리를 몇 개 더 넘어야 한다면, 그 지세는 아까 구룡덕봉 정상에서 조망했던 바와 같이 무지 험준할 것임에 틀림없다. 내리막이 길어질 수록 온씨의 긴장과 불안도 덩달아 증폭되었다. 뚫어져라 앞을 응시하고 있던 온씨의 불안 가득한 시야에 드디어 오르막이 시작되는 안부 지형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올것이 왔구나... 그때였다. 50여미터 정도 전방에 하얀 안내 팻말이 버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온씨는 육감적으로 거기가 매봉령임을 알아차렸다. 갈림길이 아닌 다음에야 뭐하러 저자리에 팻말이 서있겠는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직진 방향으로는 말뚝과 밧줄로 길이 막혀있고 “등산로 아님, 매봉령”이라고 적힌 흰 팻말이 서 있었다. 왼쪽 방향으로 눈길을 주니 능선을 벗어나는 분명한 길이 나있고 그 옆에 정상방향과 휴양림 방향을 알리는 친절한 지도를 그려놓은 팻말이 하나 더 서 있었다. 축포라도 터뜨리는 듯 방태산 능선 쪽에서 또 한번 번개와 벼락이 터져나왔다. “살아따아아...!!”
온씨와 슬씨는 안도에 겨워 이 축복의 갈림길 매봉령에서 한참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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