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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태산 프로젝트, 그 3색의 성공기(마지막회)

onbike2005.08.21 14:19조회 수 420추천 수 10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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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능선을 벗어나서 계곡으로 떨어지는 길은 경사가 급하고 고약한 경우에는 노면이 얼음처럼 미끄러워, 자전거를 타는 것은 고사하고 두 발로 걸어내려가기도 버거운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능선을 벗어나는 얼마 동안은 당연히 끌어야 하리라 각오하고 있던 온씨에게 매봉령에서 적가리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은 너무도 싱거울 정도로 푸근하고 만만했다. 처음에만 이렇겠지. 곧 저 모롱이만 돌면 모든 것을 빨아당겨버릴 것 같은 무지막지한 경사가 버티고 있겠지.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적가리골 주변의 형세는 마치 거대한 운석이 내려 박혀 주변이 움푹 패인 것처럼 적가리골을 중심으로 반경 2킬로미터가 넘는 거대한 원을 그리면서 침식이 이루어져 있고 그 원주를 능선이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그 원주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계곡의 품으로 들어오기까지가 얼마나 가파를 것인가. 가팔라야만 한다. 그게 자연의 이치다.

그러나 온씨와 술씨의 눈앞으로 펼쳐지고 있는 길은, 즐거운 긴장을 선사해줄 만큼의 적당한 경사와 만곡(彎曲)이 숨돌릴 틈 없이 번갈아 몰려드는 원더랜드의 롤러코스터이다. 내리막 코스가 이처럼 고마운 덕분에 온씨와 술씨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특히 온씨는 이미 구룡덕봉 오름길에 거의 체력을 소진한 터라 이런 아리랑 난장 내리막질을 감당하기가 힘에 겨웁다. 거의 300미터 간격으로 수월한 평지만 나오면 잔차를 세우고 폐병환자 같은 가쁜 숨을 몰아쉰다. 여전히 빗소리는 천지를 울리듯 들려오지만 아직도 숲은 그 거대한 우산을 거두지 않고 있다. 안장에 걸터앉은 채 고개를 스템에 쳐박고 땅바닥이 꺼져라 가쁜 숨을 몰아쉬는 온씨에게 나뭇잎이 머금었다 떨어트리는 주먹만한 빗물 뭉치가 헬멧 구멍사이로 터져 들어와 끓어오르는 온씨의 민머리를 식혀준다. 청량한 빗물 뭉치를 그렇게 머리에 한 방, 어깨죽지에 한 방, 목덜미에 한 방 ... 맞고나면 몸뚱이 깊숙한 곳 어디선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비밀 스런 곳에서 새로운 힘이 솟구치는 것이 느껴진다. 그 힘으로 다시 브레이크를 풀고 페달을 구른다...

그렇게 탈진과 갱생을 얼마쯤 반복했을까... 계곡이 가까워 오면서 길의 경사는 한때 거의 타고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가팔라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불과 50여 미터 정도를 끌고 내려가면 길은 다시 완경사로 돌아서고 이제는 우락부락한 돌부리까지 등장하여 자칫 밋밋해질 뻔한 내리막질을 치장해준다. 쏟아지던 빗줄기도 거의 멈추었다. 온씨는 몸 속의 마지막 힘을 짜내어 가속이 붙는 잔차를 제어한다. 모퉁이를 돌아서면서 브레이크를 풀어주니 잔차는 마치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급경사길을 내리꼳는다. 순간 눈앞에 껍질이 몽땅 벗겨진 장단지만한 나무줄기가 알몸을 드러낸 채 길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막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제동을 하거나 바니홉이라는 신기의 제주를 부려 뛰어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상황임을 직감하는 온씨의 눈에는 조상의 음덕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절망의 빛이 스친다. 빗길을 내달려온 앞바퀴가 그 알몸 나무 줄기에 닿자마자 튕기듯 미끄러져 순식간에 잔차는 비스듬히 누운 나무 너머로 나자빠진다. 반사적으로 온씨의 오른쪽 다리가 땅을 짚으려고 페달에서 떨어져 나온다. 아뿔사! 그때 함께 빠져나와 오른쪽 다리의 길이를 보충해 주어야 할 왼발이 안장과 링크 사이에 끼어버린다. 그 상태로 오른발은 진흙으로 줄줄 흘러내리는 길바닥에 가까스로 닿아서 체중과 20킬로그램이 넘는 잔차의 무게를 지탱하려고 버둥거린다. 온씨의 오른 다리와 기울어지는 잔차가 급경사 내리막 진흙탕 길 위에다 만들어내는 사람인자(人)의 절묘한 균형은 찰나가 지날수록 오른발이 비탈면을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시나브로 위태로워진다. 링크와 안장 사이에 끼인 왼발이 요지부동이라 이대로 3초만 더 지나면 온씨는 그 굳은 가랑이가 찢어질 판국이다. 뒤따라 오던 술씨가 모퉁이를 돌아 그 광경을 본 것은 온씨의 대퇴부 근육에 쥐가 나려고 하는 일촉즉발의 순간 - 바로 그 때였다.

“헉 헉 헉....이거.. 좀 어떻게...좀”

상황의 심각성을 첫눈에 간파한 술씨는 자신의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참사현장으로 미끄러져 달려내려온다. 술씨는 달려올 때와는 딴판으로 냉정하고 침착하게 프레임에 끼어버린 온씨의 왼발을 빼내 온씨와 잔차를 분리시킨다. 온씨는 올무에서 풀려난 새처럼 포르르 가볍게 비탈면 위로 나동그라지고, 상황은 종료됐다.

온씨는 골반 근육을 매만지며 술씨와 조상의 음덕에 대한 깊은 감사의 염에 빠져 한참을 널부러져 있었다.

-- 그러나 그것이 상황의 끝은 아니었다.

온씨는 술씨가 딱 수초만 늦게 도착했더라도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상상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몸사레를 치면서 온씨는 술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전하였고, 술씨는 온씨의 침튀기는 인사를 뒤로 들으면서 내팽개쳐 둔 자신의 자전거로 돌아갔다. 잔차를 일으키는 순간 술씨는 자신의 잔차가 뭔가 예전 같지 않음을 직감한다. 자세히 뜯어보니, 넘어지는 충격으로 행어가 부러져나가 뒷 변속기가 체인에 대롱거리며 매달려있다. 그는 온씨를 구해야겠다는 긴박감에 압도된 나머지 자신의 자전거를 너무 세차게 내팽개쳤던 것이다. 이대로는 도저히 잔차질이 불가능하다. 체인을 끊고 부러진 행어와 뒷변속기를 체인에서 분리한 다음 체인 길이를 줄여 싱글스피드 모드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두사람 다 체인 툴이 없었다....

그때였다. 또다른 잔차꾼 한사람이 진흙 투성이 몰골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구룡덕봉 정상에서 잠시 만났던 다른 잔차꾼들 일행 중 한분이 홀로 떨어져나와 두 사람이 간 코스를 뒤따라 내려오고 있었을 줄이야 천지신명이라도 상상이나 했겠는가! 더더욱 천만다행인 것은 그분은 체인툴을 갖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바야흐로 온씨 -> 술씨 -> 그분으로 이어지는 구원의 손길 대 연쇄가 감동적으로 완결되는 순간이다(그분의 아이덴티티가 궁금한 독자는 이글 제 2편에 달린 댓글들을 참고하시라).

기어비 2:4 정도로 맞추어 체인을 잘라낸 덕분에 속도가 나는 구간에선 페달질 하는 태가 몹시 경망스러워 보인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주 훌륭하게 술씨의 자전거는 싱글스피드로 거듭났다. 그들의 상부상조와 불굴의 땜빵 정신에 자연도 감동하였는지, 그 이후 적가리골 하산로는 단아한 듯 거칠고, 거친 듯 가지런하고, 가지런한 듯 변화무쌍하고, 변화무쌍한 듯 리드미컬하게 구원의 대연쇄로 뭉쳐진 세 사람을 어루만져 주었다. 계곡을 따라 가지만 물줄기와는 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계속 이어져 있는 길이어서 계류를 건너야 하는 일이 적을 뿐만 아니라 물줄기를 건너야 하는 곳에는 예외 없이 통나무 다리나 징검다리가 놓여져 있었다. 전 구간을 미친 듯 몸속의 모든 광기를 뿜어내며 내리달려 마지막 통나무 다리를 지나 큼지막한 바위들이 보석처럼 박힌 넓은 길을 날 듯 벗어나니, 드디어 하늘이 열리면서 방태산 휴양림 마지막 야영터가 눈앞에 펼쳐진다. 공터 한가운데 잔차를 던지고 온씨는 대짜로 드러눕는다. 그는 대지의 힘찬 기운이 등짝을 통해 몸 속으로 삼투하여 오장육부를 휘돌다가 온갖 찌꺼기들을 쓸어내어 코와 입으로 솟구쳐 나가는 것을 느낀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 방태산 산신령의 심폐 소생술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가, 방금 숲속에서 뛰쳐나온 희한한 산짐승을 호기심 가득하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들이 주변의 텐트에서 느껴지자 온씨는 계면쩍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때부터 온씨와 술씨는 방태산 휴양림 내 넓은 임도를 그야말로 ‘호령하듯이’ 내리달려 순식간에 방동교에 도착한다. 술씨의 경망스런 페달질을 뒤에서 보면서 온씨는 자기를 구출해주려다가 스타일을 완전히 구겨버린 술씨에게 또한 번 말로 못할 감사를 느낀다.

방동교에는 월둔고개 정상에서 헤어졌던 일행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온씨와 술씨는 사람 수가 많이 줄어든 듯 하여, 나머지 일행들의 소재를 물으니... 아뿔싸, 바이킹님을 비롯한 남부군 전사들과 니콜라스님이 조경동 계곡으로 들어가셨단다.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기에 일행은 먼저 현리로 들어가 저녁을 먹기로 한다. 저녁 중에 바이킹님으로부터 조난의 문턱에서 모두들 무사히 계곡을 빠져나오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고... 해가 뉘엿 넘어갈 때가 되어서야 계곡 팀이 잔차를 몰고 현리에 나타난다. 잔차는 광이 번쩍번쩍하고 그 위에 탄 사람들은 하나같이 얼굴색이 죽었다.

왁자한 저녁을 먹고, 몸들을 추스르고, 다시 쏟아지기 시작하는 빗속을 뚫고 월둔교에 세워둔 차를 찾아오고, 하니 벌써 시계는 밤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계곡팀의 얼굴에는 아직도 아쉬움과 억울함이 가시질 않았다. 아침가리골 팀과 매봉령 팀은 만족감과 포만감으로 눈이 풀렸다.

이렇게 온씨의 두 번째 방태산 도전은 여전히 정상을 못 밟아보고 또 막을 내리지만, 원정의 횟수가 더해갈 수록 그 싯푸르게 아름다운 강원도 심산의 길과 골짜기와 능선들에는 그만큼의 더 많은 이야기 거리와 추억 거리가 쌓여갈 것이라 굳게 믿으며 온씨는 세 번째 방태산 도전을 계획한다.  



"그날 방태산 잔차질에서 우리 모두를 도와주신 사람들과 사람 아닌 모든 것들에 감사드립니다." - 온바이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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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글을 읽어 보니 다시금 그 느낌이 되살아나는 군요.
    등장 인물 온씨와 술씨는 전생에서의 인연을 경함하듯 아스라한 연을 느끼게 됩니다.
    모자란 머리숫의 사내들의 잔차질이란 ... ㅋ
    우하당간 행어는 수리완료했습니다.
    잔차를 일주일 이상 나두었더니 체인이 3년은 방치한 잔차처럼 되었더군요 ㅡ.ㅜ;
    간신히 체인과 부품을 재생하고 어설픈 드레이러세팅도 하였습니다만 브레이크가 삐리리 ...

    사실 그때 저는 집에 다음날 새벽 4시가 되어서야 도착했습니다.
    주중의 피로와 전날 과음으로 최고조에 달했던 몸의 피로가 뒤늦게 한꺼번에 몰려오는 덕에 간신히 양평과 홍천간 국도 어느 휴게소에서 잠시 눈을 붙인다는게 그만 수시간을 자고 말았다는 ...

    그래도 여전히 머릿속에는 그 기운의 산맥상이 아른 거립니다. 마치 강원 고산준령들은 헤집고 갈수록 더 깊은 무엇이 있을 것 같은 그 느낌 ...
  • 정말 절묘한 것이 온씨의 구출 댓가가 술씨의 부러진 행어였다지만 제삼의 인물 등장은 정말 절묘한 드라마입니다.
    그래서 저두 체인툴 샀습니다. 예전 파크툴 휘어먹은뒤 잊었던 도구인데 ...
  • 3차원정을 또간다고
    방태산하고 무신 원한이 있다고 ㅎㅎ
  • 이것은 강원도의 힘!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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