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가을의 유서

Biking2005.09.03 22:56조회 수 378추천 수 11댓글 0

    • 글자 크기


가을의 유서 - 류 시 화 -

가을엔 유서를 쓰리라 낙엽이 되어버린
내 작은 노트 위에 마지막 눈감은 새의 흰 눈꺼풀 위에
혼이 빠져 나간 곤충의 껍질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차가운 물고기의 내장과
갑자기 쌀쌀해진 애인의 목소리 위에
하룻밤 새하얗게 돌아선 양치식물 위에  나 유서를 쓰리라

파종된 채 아직 땅속에 묻혀 있는 몇 개의 씨앗들과
모래 속으로 가라앉는 바닷가의 고독한 시체 위에
앞일을 걱정하며 한숨짓는 이마 위에

가을엔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장 먼 곳에서 상처처럼 떨어지는 별똥별과
내 허약한 페에 못을 박듯이 내리는 가을비와

가난한 자가 먹다 남긴 빵 조각 위에 지켜지지 못한 채
낯선 정류장에 머물러 있는 살아 있는 자들과의
약속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을이 오면

내 애인은 내 시에 등장하는 곤충과 나비들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큰곰별자리에 둘러싸여
내 유서를 소리 내어 읽으리라.


왈일드바이크 가입 후 작성 글수  1001번째를 자축하며 ^^;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516 뽀너스1 왕창 2004.04.06 502
12515 금주산1 왕창 2004.04.06 490
12514 금주산1 왕창 2004.04.06 449
12513 금주산2 왕창 2004.04.06 607
12512 금주산1 왕창 2004.04.06 546
12511 금주산1 왕창 2004.04.06 497
12510 금주산3 왕창 2004.04.06 523
12509 엉망진창으로 정들어 버리기....174 타기옹 2003.08.23 645
12508 호명산1 왕창 2004.03.29 531
12507 금주산1 왕창 2004.04.06 546
12506 엉망진창으로 정들어 버리기....166 타기옹 2003.08.23 802
12505 천보산 왕창 2004.04.26 502
12504 호명산2 왕창 2004.03.29 512
12503 가리왕산2 ........ 2003.06.02 755
12502 금주산1 왕창 2004.04.06 476
12501 엉망진창으로 정들어 버리기....155 타기옹 2003.08.23 579
12500 오서산5 ........ 2003.10.20 505
12499 천보산 왕창 2004.04.26 605
12498 호명산2 왕창 2004.03.29 566
12497 가리왕산3 ........ 2003.06.02 529
이전 1 2 3 4 5 6 7 8 9 10... 626다음
첨부 (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