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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오듯 술 괴는 밤

Biking2006.01.20 12:58조회 수 531추천 수 1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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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진의 부안타령

“차라리 술 한 잔을 주고 말지 술밥 한 뎅이는 안 주는 거란다.”

   겨울 중에도 동짓달 한 달은 가장 한가한 달이 아닌가 싶다.
가을 일이 아직 끝나지 않은 시월도 아니고 명절 준비해야 하는 섣달도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밤이 긴 달이라 때론 고적하기도 한데 이런 동짓달도 가고 나면 섣달, 섣달도 언듯 초순이 지나면 어머니들은 다시 바빠진다.
그러나 그 바쁘다는 것이 무슨 일이 밀려 바쁜 것이 아니라 대목 명절의 엿 고기, 기름 짜오기, 술 해넣기, 옷 맞추기 들이기 때문에 지극히 없는 집이 아닌 한 미리 미리, 다소간 들뜬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기름집은 시오 리 떨어진 통포라는 동네에 있었다.
이 동네에 살던 뺑돌이네 고모 되던 사람이 하던 기름집은 손으로 누르는 기름틀을 한 대 놓고 기름을 짰지만 이 근동에서는 한 집뿐이었기 때문에 노상 붐볐던 모양이었다. 섣달 한 달은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고 어머니는 항상 섣달도 초순에 기름 먼저 짜다 놓으시곤 하셨으니까.

   지금처럼 재료만 가지고 가면 볶아서 짜 주는 게 아니어서 볶는 것은 각자 집에서 해야 되는데 하루 전날 깨 일궈 말려서 볶고, 크고 작은 유리병과 함께 보따리로 이고는 시오 리 길을 걸어 기름을 짜러 다니시던 것이다. 늦으면 우리에게 마중 나오라 이르시고.

   당시는 걸어다녔어도 지금처럼 번듯한 신작로가 아니었다. 동네를 멋어나면 병풍장불이라고 하는,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깝지고 미끄러운 바닷길을 한참이나 가야 되고 그 길이 끝나면 서낭당 돌무더기가 있는 턱거리재라는 꽤 가파르고 높은 고개를 넘어야 했다.

   이웃 동네 수락동을 지나서는 무지개재라는 고개를 또 넘어서 논길을 타고 한참 가야 통포라는 동네인데 무지개재, 턱거리재, 병풍장불 모두가 밤에는 귀신이 잘 나오는 곳이어서 누구도 마중 없이는 혼자 밤길을 올 수가 없었다.

   인공 때, 변산에 빨치산이 진을 치고 있으면서 세가 불리하면 우리 동네를 통해서 밤배를 타고 고창으로 퇴로를 열었다고 하니 우리 동네와 고창을 바다 건너 빤히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지세가 그러하므로 토벌대와 교전이 잦아서 사람이 많이 죽었는데 무지개재나 턱거리재, 병풍장불의 굴이 모두 이웃 동네와의 경계라서 목진을 칠 수 있는 곳이라 특히 사람이 많이 죽었다. 한다.

   우리 어렸을 때 동네 구장을 하기도 했던 쉰둥 씨는 특히 무서움을 많이 탔는데 한 달에 한 번 정도 오십여 리 떨어진 면사무소에 가는 날은 저녁이면 어른 아이 뒤섞여서 등불 서너 개씩 켜 들고 턱거리재, 무지개재 넘어 어디까지 마중을 나가 주어야 했다.

   한 번은 턱거리재를 막 올라서니 쉰둥 씨가 담배를 손에 쥔 채 얼이 빠져 앉아 있었는데 우리가 옆에 바짝 가서야 한숨 소리와 함께 말문이 터져 “저 앞에 있는 저 흐연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흐연 것이 별것이 아니고 나무에 종이 조각 걸린 거였다.

   서낭당 돌무더기가 있는 곳이어서 고개를 넘나들며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간혹 있어 색동천이나 백지, 색실들이 항상 나무에 매여져 바람에 흔들리던 것인데 무서운 생각 끝에 귀신인 줄 잘못 보고 그만 주저앉아 버린 것이었다. 땅거미가 막 지는 때였다.

   해가 설핏해서 땅거미가 깔려도 어머니가 안 오시니 이제는 어머니 마중을 가야 한다. 바로 위의 형님과 내가 병풍장불을 넘어 턱거리재를 지나고 나면 이웃 도네가 시작되는 쯤에 어머니는 계시던 것이다.

   아무리 마음이 바빠도 오누이를 가진 떡장수 엄마가 아닌 바에야 땅끔이 깔리기 시작하는 귀신 잘 나는 서낭당 고개를 넘어 오실 수는 없었으리라. 어머니는 우리를 보시면 보따리를 끄르시고 얻어온 깻묵을 주셨다.

   동네가 가까워지는 병풍장불쯤에는 등불을 켜 잡고 여간 조심해야 되는 게 아니었다. 바위에 흐르는 물이 미끄럽고 군데군데 얼어 있는 데다가 산에서 바다쪽으로 경사가 심하여 발을 헛딛는 날에는 바닷물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머리에 기름병 보따리를 이신 어머니는 거의 앉은 걸음으로 그 곳을 지나오신다. 인제 동네에 다 온 것이다.

   집에 들어가면 퇴창문을 여신 채로 아버지가 문 밖을 기다리시고 누님들은 밥상을 차려둔 채로 부엌 아궁이 앞에서 서성거렸다. 어머니는 마루에 기름병 보따리를 내려놓으시고 그제서야 비로서 “후유─” 한숨과 함께 이마의 땀을 닦으신다. 그러고는 부엌을 향해
   “어서 너그 아버지 밥상 딜여라.”
   이르시고
   “상술이 각시가, 친정 먼 동네서 왔다고 넘들보다 빨리 짜 주었어도 질이 미끄러서 늦었어.”

   아버지에게도 말씀을 건네시며 작은 병 하나를 챙겨서 당분간 먹을 기름을 따르신다. 그러면 침침한 호롱불 밑의 온 방안은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러고는 기름도 처음 짠 기름이 맛이 있다고 크막한 양푼에 김치 종종 썰어서 고추장 몇 숟갈 떠 넣어 방에 들여 놓게 한 다음 기름 치고 밥을 비벼, 온 식구 한데서 떠 먹게 하시던 것이었다. 한 사흘 그렇게 참기름에 밥을 비벼 먹고 나면 그제는 좀 물리기도 했다.

   기름은 참기름 두 보자기 정도(한 보자기는 깨 석되 정도), 들기름 세 보자기 정도 짜셨는데 그 때는 지금의 콩기름 대신으로 지짐이나 전들을 부칠 때 들기름을 사용했다.

   이 들기름은 약으로도 사용한다. 뚜껑 있는 작은 병에 담아서 몇년 묵히면 불그스름하게 굳어지는데 연장으로 다친 데 바르고 처매서 뜨뜻이 불에 구우면 절대 덧이 나지 않았다.

섣달 그믐을 보름 정도 남기고 하는 게 엿 고는 일이다. 조청이라고 하는 이 엿은 주로 고구마를 사용하였고 거기에 쌀이나 수수를 섞으면 엿국이 맑아서 엿이 많이 나온다 했다.

   고구마는 씻어서 그냥 쪄 껍질을 빗기기도 하지만 뜨거우므로 아예 처음부터 깍아서 찐다. 이걸 물을 붓고 이겨서 엿기름 가루 우린 물을 따라 붓고 따뜻한 온도가 유지되게 하면서 삭히는데 이 때 쌀밥을 조금 해서 식혜 삭히듯 함께 삭히면 엿도 많고 삭은 정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나절 정도 삭히면 다 삭게 되므로 이 때는 삼베 자루에 엿국을 짠다. 찌꺼기가 많으면 덜 삭든지 재가 넘어서 안 삭든지 한 거고 잘 삭으면 엿국이 잘 빠지고 많고 맑고 찌꺼기가 적다.

   이 엿국을 솥에다 고면 색깔이 점점 진하여지면서 달기가 더해 가는데 만 하루 정도는 고아야 엿이 되었다. 이 엿을 고기 시작하면서부터 명절 기분이 난다.

   단 것이 부족하던 때 엿 고는 솥에 국자 박아 놓고 다디단 엿을 한 대접씩 떠 먹는 것은 여간 신나는 일이 아니어서 고샅에서 놀면서도 절로 입이 벙글어졌다. 엿을 고기 시작하면 엿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무나 호박고지, 더덕이나 도라지를 엿에 넣어서 만든 정과는 함부로 많이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들이었지만 그래서 더 맛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 이틀 불을 줄창 때니 방에는 불이 나서 발를 디딜 수가 없는데 여기에는 몇 날 물에 골렸다가 쪄서 만든 손바닥만씩한 산자 찹쌀 절편과 오꼬시를 만들 흰 쌀밥을 빨갛고 파란 물을 들여 펴 말리던 것이다.

   파랗고 빨간 오꼬시 밥의 색깔은 어린 나에게는 가히 환상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나는 지금도 그 느낌을 설대목 맞는 포목점의 각종 비단 색깔에서 다시 느낀다. 한복을 단정하게 입은 화장한 여자들이 대낮에도 푸르스름한 형광등 불빛 아래 빨갛고 파란 비단 천을 펼쳐 보이면 이상스레 마음이 설레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자꾸 바라보고 싶어서 대목이 아니더라도 시장에 나가면 포목점 골목을 지나간다.

   엿은 떡 찍어 먹을 것을 좀 묽게 해서 한 단지 먼저 퍼 놓고 콩강정 깨강정 할 것은 좀더 불을 때서 졸인 다음 푸고, 나머지는 되게 졸여서 꼬막단지 하나쯤 되게 보릿광 큰 항아리 밑 서늘한 곳에 보관하는데, 이것은 여름에 배 아프고 설사를 할 때 한 숟갈씩 쓴다. 그러나 일 년을 두고 약으로 한 번 쓰기도 전에 다 나의 군입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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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오꼬시... 이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컥! 목이 메입니다.
    설날의 추억...아련도 하여라..

    그나저나..

    아니 이케 긴 글 올리시느라 만번째를 노치셨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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