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판길은 이내 끝나고 녹음이 우거진 오솔길이 시작되었다. 그다지 큰 경사도 아닌 길에 폐병 환자같은 숨을 몰아쉬면서 땅만 보고 걷는 온씨가 불쌍했는지 토씨는 온씨의 자전거를 거의 뺏다시피 가져갔다. 자기 다운힐 자전거보다 더 가벼운 거 같다느니 더 잘 구른다느니 말도 안되는 너스레를 떨어가면서... 온씨는 못이기는 척 자신의 자전거를 토씨에게 넘기고 토씨의 자전거를 끌기 시작한다. 세상에나 이렇게 가벼울 수가... 이제 허리도 좀 펴지고 눈도 떠지고 문경새재 심산의 아름다운 풍광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 서로 자전거를 바꿔 끌기로 한 온씨와 토씨. 온씨는 희희낙락, 토씨는 비장하다.
길 옆으로 산딸기(복분자)가 지천이다. 산 아래 것들은 아직 덜 익어 몹시 시었으나 고도를 높여 갈 수록 제 맛을 찾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인간 세상의 복분자 맛이 아닌 듯 한 경지에 이른 놈들을 만난다. 일행은 아예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자리를 잡는다. 복분자가 이렇게 수분이 많은 열매였던가....그 단아하고 상큼하면서 신선한 맛에 온씨는 이제 다운힐 자전거가 아니라 쌀집 짐자전거라도 끌 힘이 생겼다. 그러나 토씨는 자전거 바꾸자는 온씨의 원기왕성한 제안을 잘라 거절하고, 일행은 다시 길을 재촉한다.
* 복분자...요강을 박살낸다고 했던가..
고맙게도 길은 아직 벌떡 일어서지 않고 푸근한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구간이 길어질 수록 막판의 경사는 살인적일 것이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이런 불안을 공유하고 있던 세 사람에게 드디어 능선에 진입했음을 알려주는 첫 쉼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능선 쉼터에 도착하기 직전의 온씨와 토씨.토씨, 죽어난다.
*능선 쉼터. 직진방향이 정상쪽.
여기서부터 정상을 향해 능선을 공략한다. 반대 방향으로는 자생하는 허브나 약초가 많아서 인지 “아로마 테라피 로드”로라고 명명된 소담스러운 길이 능선을 타고 아래쪽으로 뻗어있다. 장난기가 발동한 토씨가 아로마 테라피 로드 입구에다 소변을 본다. 아침에 큰 일을 못 보고 온 온씨는 강력한 배변욕을 느꼈지만 아로마 테라피 로드를 차마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릴 수가 없어서 꾹꾹 눌러 참는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온씨의 항문을 짓누르던 유기물질은 얼마 안 가 오름길의 고통스러운 노역 덕분에 장 속에서 그대로 완전연소하고 만다.
온씨는 더 이상 미안한 마음 때문에 토씨에게 자신의 자전거를 맡겨둘 수가 없었다.
“여기서 부텀은 자기 차 끌고 갑시다.”
왠일인지 토씨 이번에는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그러자고 나온다. 온씨, 은근히 야속하다. 자기 자전거를 받아서 두어 걸음을 옮기자 온씨의 이 야속함은 원망으로 바뀐다. 잔차가 배는 더 무거워진 것 같다. 왜 첨부터 잔차는 바꿔 끌자고 해가지고... 토씨는 모래주머니 달고 연습하던 마라토너가 모래주머니 벗어던진 것처럼 자기 자전거를 가지고 훨훨 날듯이 팔짝팔짝 난장을 떤다.
* 제 자전거 끌기. 처지가 바뀐 온씨와 토씨
능선에 진입하고 나서부터 드디어 길의 경사가 서서히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절벽에 가까운 난코스가 가로막고 있을 거라 지레 겁을 먹고 자일까지 준비해 가려고 법석을 떨었던 온씨로서는 감읍할 정도로 원만한 구간이 이어졌다. 이 감읍한 호강은 능선 쉼터를 출발한 지 20여 분이 지나 드디어 첫 너덜지대를 만나면서 완전히 끝이 난다.
* 첫번째 너덜.
첫 너덜 앞에서 망연자실한 온씨는 몽롱한 머릿 속으로 이런 생각이 스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너덜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도대체 저 많은 돌들이 다 어디에서 왔을까..??” 이 산 전체를 누군가 키질하듯이 까불어서 산 거죽에 나돌아 다니던 돌들만 한곳으로 솎아 놓은 듯, 어떻게 돌들만 이리도 가지런하게 한 곳에 모여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왜 우리는 이 넓고 넓은 산자락 중에서 하필 그곳을 지나가야 한단 말인가?
* 너덜에서 쉬다.
이런 부질 없는 앙탈은 너덜의 따스한 돌덩어리 위에 앉아 발아래 펼쳐진 주흘산의 치맛자락을 바라보고 있자니 시나브로 수그러들었다. 다시 힘을 추스린 온씨는 묵묵히 첫 번째 너덜을 가로지른다.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은 턱에 차 오장육부가 입 밖으로 쏟아질 것 같고, 땀은 거칠 것 없는 민머리에서 사정없이 미끄러져 내렸다. 가로지르는 너덜이니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첫 너덜을 지나자 마자 또다시 족히 100미터는 돼 보이는 너덜이 다시 등장한다. 이번에는 이 너덜을 세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온씨는 뒷바퀴가 앞으로 오도록 자전거를 거꾸로 든다. 똑바로 들면 앞바퀴가 급경사를 이룬 바위들에 튕겨 까딱하면 뒤로 나자빠지기 십상이다. 뒤로 나자빠지는 날이면 여기서 그대로 자전거와 함께 돌무덤이 되는 것이다. 열 걸음을 채 못 옮기고 온씨는 선다. 숨을 토한다. 걸쭉해진 침이 함께 튀어 나온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이번에는 여섯 걸음을 못 넘긴다. 이미 맥이 풀려버린 다리 때문에 꿀럭거리는 바위돌 위에서 균형을 잃을 뻔한 순간이 자주 되풀이 된다. 다 올라갈 수 있을까....
* 두번째 너덜. 사투를 벌이는 온씨
그때였다. 바씨가 맨손으로 다가왔다. 그가 뒷바퀴, 온씨가 앞바퀴, 이렇게 그 육중한 자전거를 마주 든 두 사람은 마치 상여를 옮기듯이 구령에 발을 맞춰 너덜을 기어 오른다. 한편 토씨는 자기 자전거를 먼저 너덜 꼭대기로 옮겨놓고 다시 내려와서 바씨의 자전거를 또 짊어지고 올라갔다. 자기 혼자 내리막질 즐겨보겠다고 감당도 못할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온 온씨가 뭐가 이쁘다고 두 사람은 이리도 무고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단 말인가... 온씨는 결국 이들의 도움으로 두 개의 너덜을 통과하여 주흘산 주봉 직전의 안부인 전좌문에 올라설 수 있었다. 더위와 피로 그리고 두사람에 대한 송구함으로 온씨의 사지는 제자리를 못찾고 휘청거렸다.
전좌문 좌우는 깍아지른 절벽으로, 너덜 끝지점에서 이 절벽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잠시 자신이 어디에 있는 지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냥 저 두 절벽의 호위를 받으면서 영겁의 세월을 거기 몸 박고 있던 바위돌이 된 듯 한 기분이다. 이제 정상은 100여미터 남았다. 로프가 매어있는 구간도 보이지만 방금 올라온 너덜지대에 비하면 자전거를 타고라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이 만만해 보인다. 정상쪽을 바라보고 왼편으로는 오늘의 하산로가 될 조곡골 등산로가 도도하게 내리벋었다. 잠시만 기다려라. 주봉에 인사 한 번 올리고 와서 어루만져 주마...
* 전좌문 동쪽 절벽
* 전좌문 서쪽 절벽
* 정상직전 안부, 전좌문. 직진방향이 정상, 오른쪽은 세사람이 올라온 월복사방향, 왼쪽은 하산로인 조곡골.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100미터를 기어오른 세 사람은 드디어 주흘산 주봉 1075미터 정상에 선다. 정상의 동쪽은 장쾌하게 깎여나간 바위 절벽이다. 사방에서 달려오던 능선들이 그 기운과 여세를 한 곳으로 몰아부쳐 마침내 불끈 솟구쳐 놓은 봉우리. 그 위에 자전거를 가지고 세 사람이 올라서 있다. 사방의 능선이 발아래서 세 사람을 떠받들고 능선을 타고 올라온 바람은 섬섬옥수가 되어 세 사람의 뺨을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진다. 이 순간 만큼은 그들이 세상의 왕이다.
* 주흘산 주봉 정상.
* 정상의 세사람. 전세계에 판매된 엠원 중에서 이런 곳에 서본 넘은 저넘 뿐일 것이다.
- 계속 -
* 서로 자전거를 바꿔 끌기로 한 온씨와 토씨. 온씨는 희희낙락, 토씨는 비장하다.
길 옆으로 산딸기(복분자)가 지천이다. 산 아래 것들은 아직 덜 익어 몹시 시었으나 고도를 높여 갈 수록 제 맛을 찾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인간 세상의 복분자 맛이 아닌 듯 한 경지에 이른 놈들을 만난다. 일행은 아예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자리를 잡는다. 복분자가 이렇게 수분이 많은 열매였던가....그 단아하고 상큼하면서 신선한 맛에 온씨는 이제 다운힐 자전거가 아니라 쌀집 짐자전거라도 끌 힘이 생겼다. 그러나 토씨는 자전거 바꾸자는 온씨의 원기왕성한 제안을 잘라 거절하고, 일행은 다시 길을 재촉한다.
* 복분자...요강을 박살낸다고 했던가..
고맙게도 길은 아직 벌떡 일어서지 않고 푸근한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구간이 길어질 수록 막판의 경사는 살인적일 것이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이런 불안을 공유하고 있던 세 사람에게 드디어 능선에 진입했음을 알려주는 첫 쉼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능선 쉼터에 도착하기 직전의 온씨와 토씨.토씨, 죽어난다.
*능선 쉼터. 직진방향이 정상쪽.
여기서부터 정상을 향해 능선을 공략한다. 반대 방향으로는 자생하는 허브나 약초가 많아서 인지 “아로마 테라피 로드”로라고 명명된 소담스러운 길이 능선을 타고 아래쪽으로 뻗어있다. 장난기가 발동한 토씨가 아로마 테라피 로드 입구에다 소변을 본다. 아침에 큰 일을 못 보고 온 온씨는 강력한 배변욕을 느꼈지만 아로마 테라피 로드를 차마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릴 수가 없어서 꾹꾹 눌러 참는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온씨의 항문을 짓누르던 유기물질은 얼마 안 가 오름길의 고통스러운 노역 덕분에 장 속에서 그대로 완전연소하고 만다.
온씨는 더 이상 미안한 마음 때문에 토씨에게 자신의 자전거를 맡겨둘 수가 없었다.
“여기서 부텀은 자기 차 끌고 갑시다.”
왠일인지 토씨 이번에는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그러자고 나온다. 온씨, 은근히 야속하다. 자기 자전거를 받아서 두어 걸음을 옮기자 온씨의 이 야속함은 원망으로 바뀐다. 잔차가 배는 더 무거워진 것 같다. 왜 첨부터 잔차는 바꿔 끌자고 해가지고... 토씨는 모래주머니 달고 연습하던 마라토너가 모래주머니 벗어던진 것처럼 자기 자전거를 가지고 훨훨 날듯이 팔짝팔짝 난장을 떤다.
* 제 자전거 끌기. 처지가 바뀐 온씨와 토씨
능선에 진입하고 나서부터 드디어 길의 경사가 서서히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절벽에 가까운 난코스가 가로막고 있을 거라 지레 겁을 먹고 자일까지 준비해 가려고 법석을 떨었던 온씨로서는 감읍할 정도로 원만한 구간이 이어졌다. 이 감읍한 호강은 능선 쉼터를 출발한 지 20여 분이 지나 드디어 첫 너덜지대를 만나면서 완전히 끝이 난다.
* 첫번째 너덜.
첫 너덜 앞에서 망연자실한 온씨는 몽롱한 머릿 속으로 이런 생각이 스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너덜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도대체 저 많은 돌들이 다 어디에서 왔을까..??” 이 산 전체를 누군가 키질하듯이 까불어서 산 거죽에 나돌아 다니던 돌들만 한곳으로 솎아 놓은 듯, 어떻게 돌들만 이리도 가지런하게 한 곳에 모여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왜 우리는 이 넓고 넓은 산자락 중에서 하필 그곳을 지나가야 한단 말인가?
* 너덜에서 쉬다.
이런 부질 없는 앙탈은 너덜의 따스한 돌덩어리 위에 앉아 발아래 펼쳐진 주흘산의 치맛자락을 바라보고 있자니 시나브로 수그러들었다. 다시 힘을 추스린 온씨는 묵묵히 첫 번째 너덜을 가로지른다.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은 턱에 차 오장육부가 입 밖으로 쏟아질 것 같고, 땀은 거칠 것 없는 민머리에서 사정없이 미끄러져 내렸다. 가로지르는 너덜이니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첫 너덜을 지나자 마자 또다시 족히 100미터는 돼 보이는 너덜이 다시 등장한다. 이번에는 이 너덜을 세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온씨는 뒷바퀴가 앞으로 오도록 자전거를 거꾸로 든다. 똑바로 들면 앞바퀴가 급경사를 이룬 바위들에 튕겨 까딱하면 뒤로 나자빠지기 십상이다. 뒤로 나자빠지는 날이면 여기서 그대로 자전거와 함께 돌무덤이 되는 것이다. 열 걸음을 채 못 옮기고 온씨는 선다. 숨을 토한다. 걸쭉해진 침이 함께 튀어 나온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이번에는 여섯 걸음을 못 넘긴다. 이미 맥이 풀려버린 다리 때문에 꿀럭거리는 바위돌 위에서 균형을 잃을 뻔한 순간이 자주 되풀이 된다. 다 올라갈 수 있을까....
* 두번째 너덜. 사투를 벌이는 온씨
그때였다. 바씨가 맨손으로 다가왔다. 그가 뒷바퀴, 온씨가 앞바퀴, 이렇게 그 육중한 자전거를 마주 든 두 사람은 마치 상여를 옮기듯이 구령에 발을 맞춰 너덜을 기어 오른다. 한편 토씨는 자기 자전거를 먼저 너덜 꼭대기로 옮겨놓고 다시 내려와서 바씨의 자전거를 또 짊어지고 올라갔다. 자기 혼자 내리막질 즐겨보겠다고 감당도 못할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온 온씨가 뭐가 이쁘다고 두 사람은 이리도 무고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단 말인가... 온씨는 결국 이들의 도움으로 두 개의 너덜을 통과하여 주흘산 주봉 직전의 안부인 전좌문에 올라설 수 있었다. 더위와 피로 그리고 두사람에 대한 송구함으로 온씨의 사지는 제자리를 못찾고 휘청거렸다.
전좌문 좌우는 깍아지른 절벽으로, 너덜 끝지점에서 이 절벽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잠시 자신이 어디에 있는 지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냥 저 두 절벽의 호위를 받으면서 영겁의 세월을 거기 몸 박고 있던 바위돌이 된 듯 한 기분이다. 이제 정상은 100여미터 남았다. 로프가 매어있는 구간도 보이지만 방금 올라온 너덜지대에 비하면 자전거를 타고라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이 만만해 보인다. 정상쪽을 바라보고 왼편으로는 오늘의 하산로가 될 조곡골 등산로가 도도하게 내리벋었다. 잠시만 기다려라. 주봉에 인사 한 번 올리고 와서 어루만져 주마...
* 전좌문 동쪽 절벽
* 전좌문 서쪽 절벽
* 정상직전 안부, 전좌문. 직진방향이 정상, 오른쪽은 세사람이 올라온 월복사방향, 왼쪽은 하산로인 조곡골.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100미터를 기어오른 세 사람은 드디어 주흘산 주봉 1075미터 정상에 선다. 정상의 동쪽은 장쾌하게 깎여나간 바위 절벽이다. 사방에서 달려오던 능선들이 그 기운과 여세를 한 곳으로 몰아부쳐 마침내 불끈 솟구쳐 놓은 봉우리. 그 위에 자전거를 가지고 세 사람이 올라서 있다. 사방의 능선이 발아래서 세 사람을 떠받들고 능선을 타고 올라온 바람은 섬섬옥수가 되어 세 사람의 뺨을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진다. 이 순간 만큼은 그들이 세상의 왕이다.
* 주흘산 주봉 정상.
* 정상의 세사람. 전세계에 판매된 엠원 중에서 이런 곳에 서본 넘은 저넘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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