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주흘산 산행기 마지막회

onbike2006.06.15 14:04조회 수 870추천 수 52댓글 13

    • 글자 크기


잠시 황홀경에 취해 있던 세 사람은 싸온 음식으로 간단하게 허기를 달랜 다음 내려갈 채비를 한다. 그 때 늘 듣게 되는 등산객들의 질문..
“이거 얼마나 하능교?”
“예 한 삼사백 갑니다.”
“거 바라 내 머라카드노, 이거 천만원 넘는 거또 있다메요?”
“예에...”


* 자 내려갈 준비!!

이런 질문들로부터 도망치듯 세 사람은 황급히 정상을 벗어나 조곡골 하산로를 향해 돌진한다. 정상에서 전좌문 안부로 다시 내려오는 길은 노면이 상당히 미끄럽고 로프가 매어있는 급경사 구간도 있었지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름길 너덜지대에서의 고통을 보상받으려는 듯 온씨는 좌우로 미끄러지는 뒷바퀴를 제어하며 마음껏 노면을 탐닉했다.

전좌문 안부로 되돌아오자 온씨의 얼굴은 또다시 땀범벅이 된다. 고작 100미터 정도를 타고 내려왔을 뿐인데... 끌고 올라가나 타고 내려오나 힘들기는 매한가지였다.

숨을 고르며 조곡골 하산로를 응시하고 있던 온씨는 덜컥 불안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오후 두시가 가까워오는 시간이었음에도 인파를 이룬 등산객들이 끊임없이 정상에서 쏟아져내려와 조곡골 쪽으로 흘러들었다. 여기서도 서울 관악산에서 처럼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면서 내려가야겠구나.... 사실 산속에서 자전거라는 흉기를 소지한 사람들과 걷는 사람들 간의 평화로운 공존은 흉기를 소지한 쪽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있다. 오버하지 않으리라, 나만의 쾌락을 위해 약자를 위협하지 않으리라... 온씨는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면서 조곡골 하산로로 조심스레 접어든다.

아....그러나 길이 너무도 온씨의 취향과 잘 맞았다. 적당한 경사에 큼지막하게 박힌 돌무더기들, 심심치 않게 좌우로 굽이치다 중간중간 큰 낙차를 만들어 잔차꾼을 흥분시키는 전형적인 내리막질 전용 코스!! 덕분에 등산객을 배려하겠다던 온씨의 굳은 각오는 브레이크 레버를 쥔 검지 손가락의 힘이 풀려나가면서 동시에 풀어져 버렸다.

온 몸에 남은 힘을 다 짜내어, 돌덩이에 튕겨 껑충대는 자전거를 찍어누르고 얼르고 달래면서 온씨는 거침 없이 조곡골 아래로 아래로 빨려들어갔다. 약간의 평지가 나온다. 난장 내리막질로 오름길에서 처럼 숨이 턱에 찬 온씨는 자전거를 세우고 헨들 스템에 머리를 쳐박고 구역질 하듯 가쁜 숨을 토해낸다. 이 멋진 길이 얼마나 더 계속될까... 행복한 기대를 하던 온씨는 갑자기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핀다. 이상하다. 그 많던 등산객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입구에서 그렇게 쏟아져 들어가던 등산객들이 마치 증발해 버린 듯 온데 간데 없다. 가끔 부부인 듯 해 보이는 중년의 남녀들이 한쌍 씩 지나칠 따름이었다. 아, 이건 또 무슨 축복이란 말인가....


* 조곡골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만나는 꽃밭서들. 이름이 고와서 꼭 한번 보리라 생각했지만 온씨는 이곳을 언제 지나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가쁜 숨이 잦아들면 또다시 난장의 시작이다. 편안하게 안장에 앉아서 내려올 수 있는 구간은 하나도 없다.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사지의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하는, 속도가 너무 죽거나 기운이 빠져 자전거를 밀고 당길 힘이 팔다리에 남아있지 않게 되면 여지 없이 앞바퀴가 돌무더기 사이에 처박히고 마는, 그렇다고 속도를 너무 냈다가는 사정없이 길 밖으로 나동댕이 쳐질 수 있는, 그런 맹랑하기 그지없는 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참을 이런 길과 씨름하다 보니 어느 덧 계곡에 닿았다. 이후부터 길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곡을 건너왔다 건너갔다 한다. 첫 건널목에는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도 건너감직 한 바위무더기가 계곡을 가로질러 놓여있었다. 그 주변으로 넓은 자갈밭과 너럭바위가 있고 거기에는 자취를 감췄던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간식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많던 등산객들이 다 계곡 주위에서 터를 잡고 쉬느라 길은 그리도 한산하였던 것이다.

돌들이 맞부딪치는 굉음과 물보라를 일으키며 온씨의 자전거는 첫 번째 계곡 건널목을 돌파했다. 주변에서 이를 지켜보던 등산객들로부터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우쭐해진 온씨는 건널목 이후에 숨돌릴 틈 없이 이어지는 돌무더기를 향해 힘찬 패달질로 돌진하려다, 이미 힘이 빠져 후달거리는 허벅지가 전혀 협조를 해주지 않는 바람에 앞바퀴만 돌무더기에 꽂힌채 나자빠진다. 와~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아저씨 멋제이” “파이팅!!” 카랑한 아주머니들의 목소리가 물소리에 섞여 계곡을 울렸다. 걷는 산꾼과 자전거 탄 산꾼과의 평화로운 공존!! 온씨의 뇌리속에는 이 화두가 다시한번 성성해진다.  

그 후로도 계곡길은 한 치의 수그러듬 없이 계속 온씨 일행을 까불러 댔다. 계곡을 건너는 경우 말고는 모든 구간이 바위길 내리막질에 익숙한 라이더라면 다 탈 수 있는 구간이었으나, 바로 그 때문에 온씨의 체력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나중에 온씨는 기력이 마침내 거의 쇄진하여 길과 자전거가 합심하여 자신을 들었다 놨다 하는 대로 사지를 내맡기고 거친 탁류에 이리저리 휘몰리며 떠내려가는 일엽편주처럼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갔다. 더욱이 조령제2관문이 가까워올 수록 계곡을 건너는 빈도도 잦아져 온씨의 체력은 급격히 바닥을 드러낸다.

거의 중력의 힘에만 의존하여 엉덩이를 자전거 안장에 붙이고 내려오던 온씨의 풀린 눈에, 드디어 조령제1관문-2관문-3관문으로 이어지는 넓은 산책로가 들어온다. 이제 다 내려왔다. 사람들이 주말 극장가 만큼이나 많이 오가는 길 한쪽 켠에 자전거를 자빠트리고 온씨는 큰대자로 널부러진다. 팔다리에는 아직도 돌길의 거친 질감이 남긴 충격이 채 가셔지지 않았는지 갖가지 근육들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 널부러진 온씨

온씨가 그나마 기력을 조금 회북하자 일행은 넓디 넓은 양탄자 흙길을 살포시 달려 조령제1관문을 향해 내려왔다. 그 길은 바퀴 달린 것이라고는 유모차가 전부였고, 오로지 걷는 사람들의 천국과도 같은 길이었다. 그곳을 바퀴달린 기계로 유린하는 입장이 된 세 사람은 너무도 미안하고 송구하여 뒷바퀴 허브의 라쳇 돌아가는 소리도 내기가 민망하였다.

1관문에서 제재를 당하면 어떡하나 염려스러워 온씨는 최대한 지치고 불쌍해보이도록 노력했다. 산속에서 헤매다 길을 잃었는데 다행히 조난 직전에 이 길을 만나 내려왔노라... 한번만 봐달라... 관리공단 측에 둘러댈 대사까지 읊조리면서 막상 1관문에 도착해 보니, 공단 직원은 고사하고 그 누구도 그들 세 잔차꾼에게 눈길 하나 주는 이가 없더라.


* 조령제1관문 앞.

유유히 1관문을 나온 세 사람은 이런저런 장난을 치면서 차를 세워둔 문경읍으로 돌아와 몸들을 추스르고, 두 사람의 희생에 감읍한 온씨가 낸 닭백숙을 거나하게 먹은 다음, 문경새재 도립공원 주차장 옆의 시리도록 맑은 개울 물에 개척질로 부르튼 발을 담그고 망중한을 즐기다가, 시간이 오후 여섯 시가 넘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작별을 고하고 총총히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을 향해 떠났다. 그들의 뒤로는 저녁 노을로 붉어가는 주흘산이 드리운 긴 산그림자가 아쉬운 듯 뒤쫓고 있었다.

화무십일홍이라 했거늘, 주흘산 개척질의 흥분은 열흘을 넘긴 지금도 좀체 사그러들 줄을 모른다.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댓글 13
  • 하...정말 잘 읽었습니다. 개척에 수고하신 선배님들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짝짝짝 짝짝!!
    좋은 글과 사진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대있음에 올림.
  • 수고 하셨습니다. ^^ 경치가 좋아서 그런지 산세에 비해 등산객이 많군요..^^
  • 그나저나.... 첫번째 사진의.... 온씨의 적나라한 두상....,,
    웬지... 처절하기까지한,,.... ㅎㅎ 언제 같이함 합시다.... 끝.. 아주 조아쓰요.....
  • 아....그러나 길이 너무도 온씨의 취향과 잘 맞았다. 적당한 경사에 큼지막하게 박힌 돌무더기들, 심심치 않게 좌우로 굽이치다 중간중간 큰 낙차를 만들어 잔차꾼을 흥분시키는 전형적인 내리막질 전용 코스!! 덕분에 등산객을 배려하겠다던 온씨의 굳은 각오는 브레이크 레버를 쥔 검지 손가락의 힘이 풀려나가면서 동시에 풀어져 버렸다.
    =========================================
    최곱니다 !! @ 아. 당장 라이트 달고 관악산이라도 가고 싶군요
  • 후기 읽다보니 다시 한 번 들이밀고 싶은 마음이 더해집니다. ㅎㅎㅎ
    수고하셨습니다. 역쉬 온바님의 후기는 쵝오임다.!!!!!!

    형님 로믹 도착완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토토님. 에무삼의 세팅이 빨리 완료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ㅎㅎ
  • 방망이 깍는 노인네의 이야기를 읽는 듯한...
    280갔다와서 마포나 광화문쯤에서 함 쪼인 합세당.

  • 토토님 7월 첫째주 포항으로 갑니다. 시간 비워 두세요..ㅎㅎㅎ
    우척이 살짝 애무해 주러 갑니다.
  • 아니, 올라갈때는 3명의 이야기였는데 내려올때는 한명의 이야기잖아욧! ^^;
    ㅋㅋㅋ
    암... 싸리치 - 대치 빨랑 가야되는데...
  • 바이크보이님 음~ 그때 까정 잔차수리가 완료가 될지 걱정입니다.ㅠㅠ
  • 토토형님 저도 갑니다 서울 약속 취소 입니다 ^^ 자전거 번갈아 가면서 타죠 뭐 ㅋㅋㅋ
  • 온바님! 후기멋집니다.
    제 고향이 바로 주흘산자락이거늘,.. 한번도 잔차로 타볼려고 생각못해 봤습니다.
    존경합니다.. 관악산에서 함뵙죠...
  • onbike글쓴이
    2006.6.18 11:17 댓글추천 0비추천 0
    ihaki님 감사합니다. 그 멋진 곳을 고향으로 두시다니..^^
    관악산 자주 오세요? 그럼 같이 타요. 전 매주 일욜 간혹 토욜 꼭 관악산 갑니다.

    양아님 구럼 280 완주하시고 오서요.

    짱구님 그게 다 조명탓이라는...

    정병호님 비바람 몰아치기 전에 가야죠..!!

    토토님, 캉님, 바익보이님.. 퐝에서 함 뭉치시는기요?

    재성이님, 제대후에 함도 몬밨네. 봅시다. 곧!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516 立春大默地馬 짱구 2004.02.04 488
12515 힝!.. 나만 잘 몰랐네여... ........ 2002.05.21 452
12514 힘찬 도약11 onbike 2008.01.09 989
12513 힘이든다...... 짱구 2004.03.02 474
12512 힘들어 죽는 줄 알았심다..2 onbike 2005.07.12 572
12511 힘들군요 ........ 2002.08.09 428
12510 힘내세요. 반월인더컴 2004.01.19 468
12509 힘내라 힘 왕창 2004.01.12 509
12508 힘난다! ........ 2002.05.09 411
12507 힐러리3 정병호 2008.01.11 797
12506 히야... 무진장 머찌군.... ........ 2002.09.15 397
12505 희안하데......... 짱구 2003.11.14 625
12504 희안하군요. ........ 2002.06.22 335
12503 희안하게....... 짱구 2003.11.22 335
12502 희소식 ........ 2002.09.27 380
12501 희생양4 토토 2008.01.13 704
12500 희망.................. ........ 2002.05.23 339
12499 희대의 사기..... ........ 2002.08.16 348
12498 흥행영화.... 진빠리 2004.03.15 358
12497 흥아 2.35 ........ 2002.07.10 324
이전 1 2 3 4 5 6 7 8 9 10... 626다음
첨부 (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