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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두령에서 불발령까지 능선 40리(여전히 프롤로그)

onbike2007.05.18 14:03조회 수 468추천 수 2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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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두령 정상에 도착한 것은 8시30분. 바람이 셌고 인부 서너명이 목조 전망대를 만드는 공사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홉시 전에 도착했다고 안도하면서 차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어내리려는 순간, 산불방지라고 쓴 빨간 조끼를 입은 50대 중반쯤의 사내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맞은편 계방산 등산로 초입에 붙어있는 플레카드로 눈길을 돌렸다. 아뿔사!

“산불방지! 5월 15일까지 입산금지”

온씨는 저 빨간조끼의 사내를 따돌리지 않고는 일년을 기다린 숙원의 능선 개척질을 꼼짝없이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음을 알아차린다. 안경 너머로 날카롭게 그들을 응시해오던 빨간 조끼의 사내는 그들이 차에서 엉뚱하게도 자전거를 꺼내자 짐짓 경계의 빛을 누구러뜨리고 묻는다.

“아이구 자전거 타실려구?”

정병호님이 자포자기한 듯 대답한다.

“예.”
“엊그제도 여기서 한분 자전거 타고 가시든데....”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그럼 그들 말고 또 다른 사람이 이 능선을 자전거로 갔단 말인가? 그럼 자전거 타고는 입산금지를 어겨도 된다는 말인가? 온씨는 한줄기 희망의 빛이 비쳐지는가 하여 빨간조끼 사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말인즉 누군가 서울서 혼자 도로로 자전거를 타고 와서는 속초로 가는 중이라며 이 운두령 고개를 넘어갔단 말이었다. 그럼 그렇지... 이 빨간 조끼의 사내는 우리가 등산객인 줄 알고 딱 걸렸다 싶어 다가왔다가 자전거를 꺼내는 걸 보고 도로로 자전거탈 요량으로 온 줄 착각한 모양이다.

빨간 조끼의 산불감시원은 두 사람에 대한 경계를 완전히 풀고 자전거가 얼마냐, 어디서 왔냐, 등등을 물어댔다. 초조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건성건성 대답하면서 자전거 탈 준비를 마친 다음, 드디어 온씨와 정병호님은 고민에 빠진다.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일단은 들이대보는 걸로 의견을 모으고 빨간조끼의 사내에게 다가간다.

“저... 실은 저희들이 ...”

이제 막 분주히 문 열 채비를 하고 있는 노점 천막 뒤로 분명히 분명히 보이는 등산로를 가리키며 정병호님이 말을 이었다.

“... 사실은 저리 갈 거거든요...”

빨간조끼의 사내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저길 자전거로 간단 말이냐, 어디까지 갈거냐, 등을 물어대다가 이내 자신의 본연의 임무를 깨닫고는 단호한 표정과 말투로 되돌아와서 잘라 말했다.

“안돼요.”

그들은 담배를 안피우기 때문에 화기를 소지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면서 선처를 부탁했으나 빨간조끼의 사내는 목사님이 와도 안된다고 말했다. 온씨는 여차하믄 담뱃값 정도는 슬쩍 찔러줄 각오를 하고 이번 한번만 눈감아 달라고 애원하면서 빨간조끼의 사내를 주차장 가장자리로 끌어당겼다. 그러나 온씨의 그런 제스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도는 눈치 챘을 법한 빨간조끼 사내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모든 상황을 종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곤란해..”

그렇다. 그 와중에 여행객인지 등산객인지 모를 사람들이 벌써 운두령 주차장에 모여들어있었고, 그들도 만약 계방산 방향이든 불발령 방향이든 운두령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로 접어들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온씨와 정병호님 둘에게만 특혜를 배풀기가 상당히 난처했을 것이다.

그들은 빨간조끼의 사내를 설득하는 것이 더 이상 의미없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은 운두령 정상 주차장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남은 방법은 하나, 고분고분 빨간 조끼의 사내에게 작별을 고하고 도로로 내려가는 척 하다가 사내의 시야를 벗어나는 지점에서 도로를 버리고 계곡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능선으로 치고 올라가 원래 가고자 했던 능선길과 합류하는 것이다. 합류하는 지점은 운두령 정상 주차장으로부터 빨간조끼의 눈에 띠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떨어진 지점이어야 한다. 당연히 길은 없다. 그러나 다행히 아직 이 고산지대에는 이제 새싹이 갓 돋아나올 정도여서 길이 없다고는 하나 자전거 한대 끌고 진행하는데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을 듯 했다. 문제는 경사였다. 브이자로 깊이 파인 협곡의 시작 지점이라 거기를 가로질러 능선에 붙는 것이 결코 쉬어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이리하야 온씨와 정병호님은 얼마나 가파른 경사를 되짚어 올라가야 능선을 만나게 될지 불안에 떨면서 운두령을 굽이돌아 내려오는 31번 국도를 벗어나 원시림으로 뒤덮힌 웅장한 협곡 속으로 빨려들어감으로써 대망의 운두령-불발령 능선 40리 탐험을 시작한다.

투비 콘디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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