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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두령-불발령 능선 40리 (아직도 안끝났음)

onbike2007.06.11 10:00조회 수 444추천 수 7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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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삼십분...온씨는 알람소리를 온 몸으로 들으면서 잠자리에서 튕겨나왔다. 겨우 세시간 남짓 눈을 붙이고 일어난 터라 자꾸만 이불위로 엎어지려는 몸뚱아리를 가까스로 일으켜 세우는 온씨. 그러나 떠지지 않는 눈을 부비면서 베란다 문을 열고 전날 챙겨두었던 장비가방과 자전거를 끌어내는 동안 온씨의 몸뚱이는 일년 남짓 만에 처음 떠나는 개척질의 흥분에 압도되어 신기할 정도로 빨리 제 컨디션을 회복하고 있었다.

온씨가 집을 나선 것은 새벽 네시 오분... 아직 깨어나지 않은 도심을 묘한 흥분 속에 가로질러 온씨는 어느덧 영동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두시간이 채 못되어 정병호님과 만나기로 한 횡성 휴게소에 도착했다. 여섯 시를 갓 넘긴 이른 아침 횡성 휴게소는 약간 황량하기까지 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염려했던 비는커녕 햇빛이 내리쬘 기세다. 전날 비올거라며 약을 올린 바모씨와 토모씨에게 그 신새벽에 당장 전화를 걸어 이 비보를 알려주고 싶음 마음을 온씨는 겨우 겨우 억누른다. 차 속에서 늦봄의 따스한 아침 양기를 온몸에 받다보니 졸음이 쏟아졌다. 한시간을 달게 잤다. 이로써 온씨의 몸은 완벽하게 모든 피로를 씻고 최상의 컨디션을 회복했다.

일곱시가 넘어서자 정병호님이 새 애마를 타고 휴게소에 나타난다. 반갑다. 온씨는 정병호님이 새 자전거를 타고있는 것을 그날 처음 보았다. 산악자전거꾼들에겐 너나 없이 정도는 다르지만 자전거라는 기계를 구성하는 쇳덩어리들의 품질과 외관, 제조사의 명성 등등에 대한 욕심이 있기 마련인데, 이 별만 보고 사는 노청년은 도무지 그런데 관심이 없어 보다 못한 주변 자전거꾼들이 하나씩 부품과 프레임을 갹출(?)하여 번듯한(!) 자전거를 한 대 조립해 주었던 것인데, 온씨는 정병호님이 그 애틋한 사연의 자전거를 가지고 나온 것을 그날 처음 본 것이다. 그의 스타일을 너무나 잘 알고있는 온씨는 럭셔리 뉴 머신 옆에서 어색하게 웃고있는 그가 한없이 해맑아 보였다. 그리고 다운힐 자전거에만 집착하느라 정작 그의 새 자전거에 부품 하나 보태지 못했던 자신이 약간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여간, 정병호님의 새 자전거는 전혀 그의 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게 가볍고, 럭셔리하고, 쭉쭉 잘 나갔고, 그의 스타일과 너무 잘 어울리게 청소상태는 심히 불량스러웠다.

“밥뭅시다.”

두 사람은 조미료 성분이 재료의 반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순두부백반과 황태해장국을 잽싸게 먹어치운 다음 서둘러 산행 출발점인 운두령을 향해 차를 몰았다. 산불감시원이 출근하기 전에 장비를 꾸려 능선에 들어서야만 한다. 5월1일부로 국립공원 입산금지가 해제되었다고는 하나, 혹시 모르지 않는가..... 그러나 이 기우는 곧 현실이 되어 두 사람의 발목을 잡았고, 결국 30여분을 길 없는 협곡으로 우회하는 고통을 두 사람에게 안겨주게 된다.

운두령 정상에 도착한 것은 8시30분. 바람이 셌고 인부 서너명이 목조 전망대를 만드는 공사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홉시 전에 도착했다고 안도하면서 차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어내리려는 순간, 산불방지라고 쓴 빨간 조끼를 입은 50대 중반쯤의 사내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맞은편 계방산 등산로 초입에 붙어있는 플레카드로 눈길을 돌렸다. 아뿔사!

“산불방지! 5월 15일까지 입산금지”

온씨는 저 빨간조끼의 사내를 따돌리지 않고는 일년을 기다린 숙원의 능선 개척질을 꼼짝없이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음을 알아차린다. 안경 너머로 날카롭게 그들을 응시해오던 빨간 조끼의 사내는 그들이 차에서 엉뚱하게도 자전거를 꺼내자 짐짓 경계의 빛을 누구러뜨리고 묻는다.

“아이구 자전거 타실려구?”

정병호님이 자포자기한 듯 대답한다.

“예.”
“엊그제도 여기서 한분 자전거 타고 가시든데....”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그럼 그들 말고 또 다른 사람이 이 능선을 자전거로 갔단 말인가? 그럼 자전거 타고는 입산금지를 어겨도 된다는 말인가? 온씨는 한줄기 희망의 빛이 비쳐지는가 하여 빨간조끼 사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말인즉 누군가 서울서 혼자 도로로 자전거를 타고 와서는 속초로 가는 중이라며 이 운두령 고개를 넘어갔단 말이었다. 그럼 그렇지... 이 빨간 조끼의 사내는 우리가 등산객인 줄 알고 딱 걸렸다 싶어 다가왔다가 자전거를 꺼내는 걸 보고 도로로 자전거탈 요량으로 온 줄 착각한 모양이다.

빨간 조끼의 산불감시원은 두 사람에 대한 경계를 완전히 풀고 자전거가 얼마냐, 어디서 왔냐, 등등을 물어댔다. 초조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건성건성 대답하면서 자전거 탈 준비를 마친 다음, 드디어 온씨와 정병호님은 고민에 빠진다.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일단은 들이대보는 걸로 의견을 모으고 빨간조끼의 사내에게 다가간다.

“저... 실은 저희들이 ...”

이제 막 분주히 문 열 채비를 하고 있는 노점 천막 뒤로 분명히 분명히 보이는 등산로를 가리키며 정병호님이 말을 이었다.

“... 사실은 저리 갈 거거든요...”

빨간조끼의 사내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저길 자전거로 간단 말이냐, 어디까지 갈거냐, 등을 물어대다가 이내 자신의 본연의 임무를 깨닫고는 단호한 표정과 말투도 되돌아와서 잘라 말했다.

“안돼요.”

그들은 담배를 안피우기 때문에 화기를 소지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면서 선처를 부탁했으나 빨간조끼의 사내는 목사님이 와도 안된다고 말했다. 온씨는 여차하믄 담뱃감 정도는 슬쩍 찔러줄 각오를 하고 이번 한번만 눈감아 달라고 애원하면서 빨간조끼의 사내를 주차장 가장자리로 끌어당겼다. 그러나 온씨의 그런 제스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도는 눈치 챘을 법한 빨간조끼 사내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모든 상황을 종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곤란해..”

그렇다. 그 와중에 여행객인지 등산객인지 모를 사람들이 벌써 운두령 주차장에 모여들어있었고, 그들도 만약 계방산 방향이든 불발령 방향이든 운두령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로 접어들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온씨와 정병호님 둘에게만 특혜를 배풀기가 상당히 난처했을 것이다.

그들은 빨간조끼의 사내를 설득하는 것이 더 이상 의미없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은 운두령 정상 주차장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남은 방법은 하나, 고분고분 빨간 조끼의 사내에게 작별을 고하고 도로로 내려가는 척 하다가 사내의 시야를 벗어나는 지점에서 도로를 버리고 계곡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능선으로 치고 올라가 원래 가고자 했던 능선길과 합류하는 것이다. 합류하는 지점은 운두령 정상 주차장으로부터 빨간조끼의 눈에 띠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떨어진 지점이어야 한다. 당연히 길은 없다. 그러나 다행히 아직 이 고산지대에는 이제 새싹이 갓 돋아나올 정도여서 길이 없다고는 하나 자전거 한대 끌고 진행하는데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을 듯 했다. 문제는 경사였다. 브이자로 깊이 파인 협곡의 시작 지점이라 거기를 가로질러 능선에 붙는 것이 결코 쉬어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이리하야 온씨와 정병호님은 얼마나 가파른 경사를 되짚어 올라가야 능선을 만나게 될지 불안에 떨면서 운두령을 굽이돌아 내려오는 31번 국도를 벗어나 원시림으로 뒤덮힌 웅장한 협곡 속으로 빨려들어감으로써 대망의 운두령-불발령 능선 40리 탐험을 시작한다.

---------

땅바닥에서는 겨우내 말라 버석거리는 낙엽과 잡초 더미를 뚫고 젖먹이 아기의 손아귀 마냥 오동통한 이름모를 들풀의 잎사귀들이 속속 삐져 올라오고, 그 위로는 아름 드리 나무들이 초봄의 물기를 잔뜩 머금은 채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며 솟아있다. 앙상한 가지는 금방이라도 초록 이파리를 터트리려는 듯 한껏 부풀어 올랐다. 그 태고의 풍경 속으로 두 불청객이 지금 자전거란 문명의 흉기를 들고 침입한 것이다. 온씨는 길 없는 가파른 비탈을 바퀴가 구르는대로 이끌려 흘러내려갔다. 그 뒤로는 날카로운 문명의 흉기가 대지를 파고들어 긴 상처를 남기고, 이 거대한 숲속에 깃든 태고의 평화는 깨진다.  

내리막이 끝나고 두 사람은 드디어 브이자 협곡의 밑바닥에 닿았다. 고개를 들고 성벽처럼 두 사람을 가로막고 있는 가파른 비탈을 올려다 본 온씨는 순간 온몸이 전율에 휩싸인다. 그것은 그 비탈의 살인적인 경사 때문도 아니고 나무들 사이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비탈의 길이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은 꽃 때문이었다. 그 비탈은 마치 보석을 박아 놓은 것처럼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곳에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갖가지 야생화들을 지천으로 피워놓고 있었다. 나무 그늘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초봄의 따스한 햇살은 형형색색의 꽃 잎사귀 위에서 찬란하게 반사되어 그 깊고 깊은 협곡의 심연을 처연할 정도로 밝혀주었다. 온씨는 저 야생의 화원을 짓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이 도저히 용납되지가 않았다. 코끝이 땅바닥에 닿을 듯이 가파른 경사 위에 첫 발자욱을 올려놓으면서 온씨는 결코 이 꽃들을 단 하나도 밟지 않겠노라 맹세했다. 물론 이 굳은 맹세는 오름길의 고통이 커지면서 서서히 약해지게 되지만, 온씨는 팔다리와 자전거를 제어할 기운이 남아있는 한 무슨 부비트랩인 냥 꽃들을 피해 다녔다.

이 꽃들의 향연은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능선에 올라서서 보래령 사거리 까지 가는 장장 두시간 반 동안 끝날 줄을 몰랐다. 그 이후로는 고산 지대의 능선에서 흔히 보이는 산죽과 진달래,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억센 가지의 잡목들이 뒤엉켜 등장하면서 서서히 꽃들은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러나 단언컨대, 보래령 사거리 이후에 다섯시간이 넘는 사투에서 온씨를 살아 버틸 수 있게 해 준 것은 전적으로 그 꽃들의 빛깔과 자태였을 것이다.

다행히 비탈은 그 가파른 경사와 기나긴 길이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도전 정신으로 충만한 두 사람에게 그다지 큰 장애물이 아니었다. 쉽사리 지능선에 올라붙는 데 성공한 두 사람은 지능선 상에 길이 분명하게 나 있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주능선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구절 양장의 고불탕 길을 가끔씩 가로막고 쓰러져 있는 크고 작은 나무들을 넘고 또 넘으면서 10여분을 꾸역꾸역 걸어 오르자, 드디어 사방이 탁 트이면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주능선 마루가 눈에 들어왔다. 벌써부터 땀범벅이 된 온씨에게는 저 산불감시초소에서 또 제 2의 빨간 조끼가 나타나지 않을 까 하는 절망적인 공포가 엄습해 왔다. 애써 공포를 잊으려는 듯 고개를 떨구고 땅만 보고 걷다가 온씨가 눈을 들어 다시 능선을 쳐다보았을 때는 정병호님이 벌써 먼저 능선 마루금에 올라 자전거를 자빠트리고 감시초소를 느긋하게 올려다 보고 있었다.

오 천지신명이시여 감시초소는 비어 있습니다!

오전 아홉시 삼십분. 두 사람은 빨간조끼의 사내가 점령한 운두령 등산로 입구를 우회하는 데 40여분을 쏟아 부은 후에야 비로소 불발령을 향해 내리달리는 주능선 위로 드디어 복귀할 수 있었다.    

(투비 콘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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