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태산 간략보고
2008. 5.10 ~11
나, onbike,biking,ducati81 + 동생 대근
날씨 : 대체로 흐림
지도는 1/65,000. 이 지도의 감을 못잡는 게 문제란 말이다...
방태산에 대해 간단히 덧붙이자면.
온바님의 한이 서린 곳이자, 몇 년 동안 곰취 딴다고 바이킹님을 따라 나선 몇몇 대원들의 한이 서린 곳이다.
온바님은 주억봉 한번 간다고 몇 번을 시도 했지만 결국 구룡덕봉을 넘지 못해 한이 서린 것이며, 바이킹님을 따라 나선 이들의 한은 그중 대표주자인 날짱님의 후기를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날짱님의 한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링크 걸어둔다. ㅋㅋㅋ
http://wildbike.co.kr/cgi-bin/zboard.php?id=HallOfFame&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5
그럼 올해는 온바님의 한이 풀리고, 바이킹님의 물귀신 작전에 말려들지 않을 것인가.... 함 가보자.
3.13
온바님과 바이킹님이 광화문 인근 모처에서 2년 만에 곰취 개척 거사를 결정. 거사일은 5월 10~11일.
5.9
우여곡절끝에 5명의 참가자 확정.
1차 약속 장소는 둔내 나들목 앞 08:20
5.10
06:00 눈뜨다.
8시 20분까지 가려면 7시쯤 출발해야 여유있게 갈 수 있다. 이불 속에서 좀 뭉그작거리다가 일어나서 몸풀고 간단히 아침 먹으니 7시가 다 됐다.
아우... 추워... 이 찬공기를 뚫고 가야 하다니...
07:00
바이킹님의 전화가 왔는데 6시에 출발하고도 이제 용인 지나고 있다고 한다. 세상에... 도대체 인간들이 휴일을 조용히 집에서 안보내고 어딜 이렇게 기어 나오는거얏!
근데 점심 먹을 밥을 준비 해달란다. 능선에서 밥 해먹고 어쩌고 할 만큼 여유있는 일정은 아니다. 다행히 밥통엔 한통 가득 5인분이 있고, 혹시 몰라 한판 더한 뒤 2인분쯤 추가한다. 약속시간도 9시20분으로 변경.
이렇게 되면 둔내까지 타고 가지 않아도 된다. 바로 두카티님한테 전화, 안흥으로 와달라고 한다. 아우~ 둔내까지 14km 안타도 된다~
08:20 출발
온바님의 계획은 개인산장을 기점으로 개인약수를 지나 능선으로 붙은 뒤, 주억봉 - 구룡덕봉을 거쳐 어두우니골 - 개인산장으로 원점 회귀하는 것이다. 근데 난 방태산 지도를 볼때마다 언젠가 구룡덕봉 - 주억봉 - 깃대봉 - 매화동 종주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능선에 오른 뒤에 시간 여유가 되면 깃대봉쪽 젤 긴 능선 하산을 하자고 내심 생각을 했다. 해서 되면 가는 거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근데 깃대봉 능선으로 하산하면 시간이 꽤 걸리고, 그렇게 되면 돌아오는 길에 야간 도로이동을 해야 하므로 뒷깜빡이와 왈바라이트를 챙겼다. 하지만 충전기를 얼음트레킹때 주천강에서 잊어 먹어 반 년 넘게 충전하지 않은 상태라 2시간이나 버틸지 모르겠다...
밥 챙기고, 안흥에서 만날 거니까 그냥 갈까... 그래도 일단 물은 채우자.
출발하자 마자 1.8km 급경사 내리막. 이 길은 차보다 내가 빠른 길인데, 막 고개 올라서려니까 뒤에서 트럭 하나가 마구 달려와 추월한다. "너, 두고 보자..."
고개 넘자마자 트럭 뒤에 붙어 추월할 틈을 본다. 길이 콘크리트포장 편도길이라 추월할 장소는 몇 군데 안되기 때문에 떨어지면 추월이 안된다. 근데 이 트럭, 뒤에 자전거가 붙으니까 화가 나는지 젤 급경사에서 마구 내뺀다. 승질 참 드럽네... 하는 순간, 그 트럭 마주오는 스타렉스와 정면충돌 할 뻔하다가 겨우 좌측통행으로 비껴간다. 그니까 이 동네에선 내리막에서 자전거한테 덤비지 말란 말이다!
비웃어주며 달리다가 갑자기 어깨가 허전함을 느낀다. 이런... 밥 담긴 배낭을 두고 왔다~~~ 아씨... 물 뜰때 배낭 벗었다가 그냥 온 것이다. 그러게 어차피 안마실 물을 왜 뜬다고 했냐고! 얼른 두카티님 만나서 다시 올라와야지.
안흥에 들어가니 자전거를 올린 빨간 라노스가 한대 있다. 어~ 내가 좋아하는 차색깔이다. 근데 안엔 동생만 있다. 밀어내기 하러갔나. 동생은... 어째 오늘 산행에 안 어울리는 분위기다. ㅋㅋ 알고 보니 고딩이다. 걱정되네...
얼른 배낭 가지러 올라갔다가 열심히 달려 둔내로~
09:50 둔내 출발
온바님과 바이킹님은 저녁거리를 사고 있다. 차는 온바님 카니발만 가져가기로 하고 몽땅 쟁여 넣는다.
11:50 개인산장 착
12:08 출발
속사로 나와 운두령을 넘는다. 작년에 갔던 보래령쪽을 보며 잠시 그때의 고생을 떠올리기도 하고, 긴 턱수염을 휘날리면서 마주 오는 두 대의 트레일러를 달고 오는 노여행객을 보며 격려를 보내기도 하고.
그중엔 오토바이족들도 있는데 바로 한마디 갈겼다.
"저것들이 무릎도 못갈면서 떼거지로 지랄들이야!!! ㅋㅋㅋ"
어... 창촌을 지나는데... 직진중이다.
"아까 삼거리에서 우회전 아니어요?"
"아녀요, 이 길이 맞아요. 여러번 와봤어요."
"우린 강 따라 내려가야 하는데 이건 거슬러 올라가잖아요?"
"아녀요, 맞아요."
이상하네... 이건 뱃재 가는 길인데...
"봐요, 이건 뱃재 오르막이에요"
"어... 일단 고개정상까지 가면 이정표 있을테니 거기까지는 가봅시다"
'여기는 하뱃재 정상입니다' 이정표.
"이런 이런. 이러다가 12시안에 출발 못하겠네~."
"나 오늘 왜이러니???"
"자자 늦었으니 마구 밟어유~"
하지만 창촌에서 내린천 따라 내려가는 길, 어찌 이길을 그냥 내달릴수만 있겠는가. 굽이굽이 휘몰아치는 내린천의 물살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며 달린다.
그렇게 달리다보니 개인산장 입구. 개인산장까지는 여기서부터 7km 쯤 올라가야 한다. 근데... 길이 몽땅 아스팔트 포장이다. 도대체 그 골짝까지 뭐 때문에 아스팔트까지 깔아야 하는건가... 개인약수때문에? 그 약수 먹으러 차 끌고 오는 사람들 때문에?? 꾸불꾸불 올라가다 보니 서글퍼진다. 도대체가 이 나라는 쓸데없이 좋은 도로가 너무 많다. 그나마 2차선 아닌 걸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마지막의 비포장을 조금 들어가니 이 깊은 산골에 웬 건물이 이리 큰가 싶을 정도의 큰 건물들이 있고, 그중 눈에 띄는 황토너와집이 우리의 숙소인 미산너와집이다. 너와집 산장지기님이 우릴 맞아준다.
아침엔 햇빛이 나더니 벌써 구름이 많이 끼었다. 능선에서 설악상 서북릉이 보여야 할텐데... 귀떼기 본지 한참 됐거든.
얼른 준비하고도 12시가 넘어서야 출발. 그래도 출발점이 해발 700 정도니까 큰 부담은 없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다!
근데 입구엔 ‘나물 불법 채취시 최고 2천만원 벌금“ 이라고 쓰여있다. 으... 살벌...
어쨌든 밝을 때 하산하자!
12:48 개인약수 착
13:05 출발
자전거 없이 곰취 채취 전담으로 배낭만 가져온 바이킹님이 앞장서고, 우린 개인약수까지 돌을 깔아놓은 길을 따라 자전거를 끌기 시작한다. 돌길은 끌기 좀 고약하긴 했지만 계곡이 좋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다.
간간이 보이는 능선을 보며 지능선인지 주능선인지 기대반 걱정반 하며 올라가니 어느새 개인약수, 바닥엔 시뻘건 녹물이 묻어있다. 19세기 말에 함경도에서 온 포수가 발견했다는데... 맛은 사이다에 녹물 섞은 맛. 아으... 근데 수많은 사람들이 수돗물은 녹물 섞이고 염소소독 한 맛 난다고 안마시면서, 여기까지 올라와 이 물을 마시면서는 좋아한다. 약수는 녹물맛이 나도 철분 섞였다고 좋아하는 건가.
근데 두카티님 동생 대근이는 이름과 달리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좀 걱정된다.
14:40 능선 착
15:10 점심 먹고 출발.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나 있는데, 그냥 계곡을 타고 가는 거라서 여름에 폭우가 오면 못갈 것 같다. 끌기도 애매해서 주로 메고 간다. 여기저기 나무들이 쓰러져 있어 끼어다니기도 하고, 고도를 높일수록 아직 봄을 맞지 못한 나무들이 늘어나는 걸 보고 웃음지으며 꾸역꾸역 올라간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가야 계곡을 벗어나 지능선으로 붙는다.
바이킹님은 지능선 붙으면서부터 능선을 벗어나 곰취를 찾아 다니고, 우린 오른쪽에 보이는 봉우리들을 보며 저게 주억봉인지 구룡덕봉인지 궁금해한다. 가끔 나물캐러 온 등산객들도 만난다. 그렇게 가고 있는데...
온바님과 산불감시원의 대화
"어디서 올라오셨습니까?"
"아... 저... 개인산장에서 올라왔는데요..."
이런, 앞에 빨간모자를 쓴 산불감시원 두 명이 있다.
"15일까지 산불통제기간인거 모르십니까. 지난주에 산불이 나서 감시원 4팀이 돌아다니며 통제중입니다."
"아... 예... 죄송합니다... 약수터 왔다가 옆 능선 한번 타볼까 하고 좀 더 올라왔습니다."
"옆능선요? 거긴 길도 없고, 주억봉쪽도 바위길이라 자전거 못갑니다."
"네... 주억봉 안가고 저 옆 능선에 길 있는지만 함 찾아보겠습니다"
"아저씨들, 자전거까지 갖고 여길 왔으니 차마 바로 내려가라고는 못하겠고, 주능선은 가지 마세요!"
"네, 죄송합니다."
"담배 피는 분 없죠?"
"아유, 화기는 다 두고 왔고 밥도 도시락 입니다"
"불 피우면 안됩니다... 아니, 저기 아저씨는 뭐하세요? 이리 와보세요!"
어.. 바이킹님 곰취 따다가 딱 걸렸다.... 하지만 그새 잔머리를 굴려 야생화 찍는 척 하고 있다!
"사진 찍는 건 괜찮지만 나물채취는 안됩니다"
"네!"
휴~ 막으려면 개인산장부터 막지, 거긴 놔두고 왜 여기서 막는거야! 국립공원도 5월 1일자로 풀렸는데 말여...
곰취고 뭐고 하산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자전거 땜에 살았다. 하긴, 그 사람들 보기에 얼마나 갑갑했으면 하산 안시키고 그냥 놔뒀겠는가. 내가 산불감시원이라고 해도 불쌍해서 그냥 통과시켰을거다. ㅋㅋ 이럴 땐 자전거 갖고 간 게 쓸모가 있다.
암튼 산불통제기간 무단산행 200만원, 나물채취 2000만원, 5명이니까 1억 1000만원 벌었다. 흐흐흐... 다들 모른 척 해!!
그렇게 운 좋게 주능선에 도착하니 멀리 서북릉이, 서븍릉이 보인다. 귀떼기다!!! 저건 가리산이랑 주걱봉이다!!! 아~ 좋다~~ 바이킹님 빨랑 곰취 내놔요! 이 조망을 즐기면서 밥 먹자구요~~
바이킹님은 어느새 5명이 배불리 먹을 만큼의 곰취와 각종 나물들을 풀어놓는다. 아~ 맛있어~ 이거 먹고 그냥 하산 해부릴까부다. 우린 그렇게 7인분 밥을 순식간에 해치워버린다.
자, 우리가 갈 길은 남쪽. 하지만...
"우린 깃대봉 함 가보는 건 어떨까요?"
"이 양반이 시방 왜 이려~~!!!???"
"난 가고 싶은데. 힝..." 결국 깃대봉 능선은 날아가고~
개인약수까지도 힘들어하던 대근이는 내 생각엔 하산시키는 게 서로를 위해 좋아 보이는데, 동생을 강하게 길러보려는 두카티님은 그냥 밀어붙인다. 계속 걱정된다... 그래서 한마디 해준다.
“아이, 대근아. 우리가 네 나이였으면 말이여, 이미 한바퀴 돌고 다시 올라왔을 시간이라니께!”
바이킹님, 주억봉으로 향하기 전, 곰취에 얽힌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며 덧붙인다.
“곰취 투어는 두 번 와본 사람이 없어~”
ㅋㅋㅋ 얼마나 고생들을 시켰으면~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곧 죽어도 2.3 아닌가! 아무리 몇 시간씩 메고 끌며 기진맥진해도 힘드냐고 물어보면 “이 정도는 다 예상한거지 뭐~” 라고 큰소리 치고, 1분만 타고 내려가도 “죽인다~”를 외치며, 5분 타고 내려가면 “2.3 사상 최고의 내리막이야!!!” 라는 허풍을 떠는 자들 아니냔 말이다~~ ㅋㅋㅋ
16:45 주억봉
17:30 구룡덕봉
능선엔 박새가 잔뜩 피어있다. 첨엔 비비추인줄 알았다가 너무 커서 좀 이상했는데, 바이킹님이 비비추는 아니라고 한다. 집에 와 찾아보니 박새다.
주능선에 올랐지만 주억봉까지는 계속 올라가야 하는데, 이건 반암릉에 반너덜이다. 자전거 갖고 가기엔 길 아주 드럽네 기냥... 하지만 가끔 나타나는 암릉에서 터지는 조망은 우리의 발걸음을 잡았고, 우린 한참 조망을 즐기며 여유를 부린다. 그래, 아무리 시간에 쫓겨도 이 대자연을 그냥 두고 전진만 할 수는 없잖은가. 주억봉에 가려 구룡덕봉이 보이지 않는 게 좀 걱정되긴 하지만, 쩌~기 내려다 보이는 하산길의 계곡구간이 그리 길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주억봉까지는 한시간 반이나 걸렸고, 조금씩 하산 시간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그래도 주억봉에 오르니 보이는 건 첩첩산중, 아래쪽 어디를 봐도 인간의 흔적은 저멀리 딱 3군데만 있을 뿐 오직 보이는 건 자연, 자연뿐이다. 아... 이걸 두고 내려가야 한단 말이냐!!
7년 만에 한을 푼 온바님, 감회가 새로운가 보다. 바이킹님은 사진 찍느라 정신없고, 힘들어하는 동생을 바라보는 두카티님의 눈빛은 비장? 하다. 나? 아이 저아~
앞에 구룡덕봉이 보이고 나서야 대강 시간계산이 된다. 구룡덕봉을 17:30에만 통과하면, 19:30 까지는 햇빛이 남아있으니까 최대한 빨리 계곡구간을 내려가서 완전히 어둡기 전에 개인산장으로 가야한다. 예상 하산시간은 20:00, 늦어도 20:30. 안그럼 큰일 난다.
주억봉 하산길, 두카티님이랑 온바님은 신나게 내려 가는데, 뒷바퀴가 많이 닳은 나는 좀 버벅거리다가 여러번 미끄러지고 좀 헤맨다. 어... 뒷바퀴 갈아야겠다... 한참 타고 간 뒤 또 한참 끌고 가야 구룡덕봉이다. 그래도 이만큼이나 타는 게 워디여~ 앞에선 온바님의 괴성이 드디어 메아리친다.
구룡덕봉, 동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적가리골의 주름진 산세를 보며 신기해하고, 반대쪽 개인동쪽의 꿈틀거리는 산세를 보며 감탄하면서 서서히 하산을 준비한다. 하산로는 구룡덕봉에서 바로 떨어지니까 초입을 잘 찾아야 한다. 근데 적가리골, 정말 특이한 지형이다. 전설엔 운석이 떨어졌다는데, 그리 보이지는 않지만 암튼 겹겹이 겹친 주름들은 우리나라가 아닌 듯 해 보인다.
초입 확인, 몰아치는 바람에 벌벌 떨면서도 잡을 폼은 다잡는 사진 촬영. 점점 더 힘들어 하는 대근이를 걱정하며 하산 시작이다.
19:10 첫번째 합수부
21:10 바이킹님 만남
21:35 하산
하산로는 구룡덕봉에서 서쪽 지능선을 좀 타다가 바로 계곡으로 떨어진다. 근데, 초입엔 그런대로 나있던 등산로가 내려갈수록 산죽밭에 묻혀 흔적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그럴수록 머릿속엔 시간계산 복잡해진다. 정상에서 계곡도달까지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계속 버벅거리고 있으니... 겨우겨우 산죽밭을 밀어붙이면서 길을 찾는 듯 만드는 듯 하며 계곡에 도달했지만, 길은 여전히 희미하고 쓰러진 나무와 덩쿨들은 우리를 붙잡고 놔주질 않는다. 속도가... 속도가 너무 더디다... 이런 ㅈㅞㄴ좡...
계곡 옆의 확인 가능할 정도로만 난 희미한 길을 뚫고 한참을 가서야 가끔 넓은 길들이 나온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산판길의 흔적이었다. 몇십년 전 이 계곡의 아름드리 거목들을 벌목하던 산판길의 흔적, 한때는 파괴의 통로가 우리의 유일한 지지대가 되고 있다. 맨몸의 바이킹님은 날아가지만, 우린 산판길 구간에선 잘 내려가다가도 계곡 구간, 덩쿨 구간에선 맥을 못추고 버벅거린다. 거기다 대근이를 데리고 오는 두카티님은 더 속도를 못내고 있다. 19시가 다 되가는 시간, 두카티님은 벌써 머리에 라이트를 달고 있다. 합수부를 두개 지나야 하는데 아직 첫번째도 통과 못했다. 언제 나오는거냐...
19시가 되서야 첫번째 계곡 합수부를 만난다. 이젠 나도 더 이상 라이트 없이 가기 어렵다. 내 참, 깃대봉 능선 때문에 가져온 라이트가 이럴 때 위력을 발휘할 줄이야.. 충전지야, 두시간은 버텨야 한다. 바이킹님은 그리 걱정이 안되는데, 우린 4명에다 라이트가 두 대, 거기에 3명은 자전거까지 갖고 있다. 머릿속엔 21시까지 하산할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산판길 흔적이 다시 나타나 최대한 열심히 달린다. 하지만, 대근이를 데리고 오는 두카티님은 타고 있어도 시간 단축이 안되니까 결국 타나마나다. 지지부진한 진행, 그나마 상단부에선 좀 넓던 계곡이 내려갈수록 깍아지른 협곡으로 변해 하늘이 손바닥만 하다. 아직 이렇게까지 어두울 시간이 아닌데... 하지만 하늘이 너무 좁으니 이미 깜깜해져버렸다. 거기다 산판길 흔적은 다시 없어지고 다시 계곡 구간이다.
뭐가 제대로 보여야 길을 찾는데, 이건 길이 아니라 간간이 나타나는 리본을 찾아 계곡 사면을 따라가야 하니 엎친데 덮친 격이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앞으로 나가 길을 확인하고 다시 돌아와 불을 비춰주며 이동하는 식으로 간다. 시간이 두배로 들지만 그나마 길 확인하는 데는 이게 낫다.
겨우겨우 진행하는데, 갑자기 바이킹님이 없다는 게 생각이 난다. 어.. 아까 합수부에서 마지막 보긴 했는데 먼저 갔는지 뒤에 쳐졌는지를 모르겠네... 갑자기 걱정된다. 먼저 내려갔으면 모르지만, 만약 뒤에 있으면 이렇게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을 리가 없는데... 우리보다 먼저 간 건지 우리가 먼저 온 건지도 기억이 안난다. 이건 또 웬일이람!
그래도 먼저 갔겠지 하며 더듬더듬 내려오는데, 가끔 올려다 보는 손바닥만한 하늘엔 구름사이에 초승을 갓 넘긴 달이 빛나고 있다. 와~ 저 달빛 부서지는 거 좀 봐요~. 하지만 다들 그럴 여유가 없는 듯 하다... 뒤에 오는 온바님을 비출때 가끔 희미한 빛 속에 보이는 작은 폭포들, 절벽에 반사되는 물결들, 이 좁은 공간에서도 아름다운 모습들은 계속된다. 하지만 여유롭게 즐길 시간이 아니다...
계속 바이킹님을 걱정하며 가는데, 한편으론 라이트 충전시간이 걱정이다. 길어야 2시간 정도일텐데... 중간중간 쉴 때는 끄면서 최대한 전원을 아낀다. 두카티님은 3시간 이상일거라니까 내꺼 다되더라도 그걸로 하산때까지는 버틸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머릿속은 거리감이 없어져버린 이 계곡구간의 끝이 어딜지 걱정하고 있다.
어렴풋이 두번째 합수부를 지난 듯 하다... 그럼 1/3 남았겠지. 바이킹님이 먼저 갔으면 지금쯤 후레쉬를 빌려 올라오고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뒷쪽에서 무슨 일이 생겨 다시 올라와봐야 할지도 모른다. 우린 후자는 아닐 거라고 믿고 있지만, 왠지 헤어진 시간이 너무 길다는 걱정을 떨칠 수가 없다.
그때, 앞에 불빛이 보인다. 휴~ 다행이다. 먼저 간거였구나.
"아, 바이킹님, 언제 앞에 간거에욧! ㅋㅋㅋ"
"아니, 아까 먼저 가는거 못봤어요?? 그럼 내가 뒤쳐졌을라고~ "
“우린 여기서 구조대 조직하고 있었다구욧! ㅋㅋㅋ”
바이킹님이 산징지기님을 데리고 올라온 것이다.
걱정거리도 덜었고, 조명도 충분하니 맘이 놓인다. 산판길 구간도 다시 나타나고 속도를 높인다. 야~ 저녁밥이 얼마 안남았다~~
바이킹님이 이게 어두우니골이라고 한다. 대개인동은 주억-구룡덕봉 사이의 계곡들이 개인산장에서 합해진 다음부터를 이르는 말이고, 위쪽은 어두우니골이란다.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이름 참 잘지었다~~
그렇게 난리 브루스를 한판 추고서야 하산을 했고, 대근이는 속았다를 중얼거리며 장정을 끝낸다. 그럼 이제, 곰취에 싸먹는 삼겹살이다!
내려와서 실토했다.
“사실, 왈바라이트 갖고 온 건, 이런 상황 대비한게 아니라 깃대봉 능선 생각해서 갖고 온거였어요. 흐흐흐...”
“증말 사람 잡을 인물이여!”
24:00 뒷풀이
황토집 앞엔 미리 도착한 바이킹님이 뒷풀이 준비를 끝내놓았고, 우린 오늘의 산행을 뻥으로 부풀리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근데 다들 잠든 후에 산장지기님이 잠자는 바이킹님을 깨워 술을 더 먹였다고 한다... 무서운 분이다. ㅋㅋㅋ
다음날, 온바님이랑 두카티님은 다시 자전거를 메고 어제 온 길을 올라가고, 난 계곡산행으로 올라간다. 아, 어제 안보였던 계곡이 이제 보니 정말 멋지다. 나중에 자전거 말고 등산으로 다시 와봐야겠다.
그렇게 가볍게 올라갔다 내려와서 돌아올 준비를 한다. 올 때는 살둔산장에 들려 바이킹님의 물수제비도 보고, 온바님 수장도 한번 시도 해보며 여유를 부린다.
올해 가을 단풍때 깃대봉 능선을 가자고 다짐하며 방태산을 벗어나고 내린천도 벗어난다. 오다보니 계방산 - 오대산 능선이 보이고, 저길 가고 싶어졌다... 어~ 이럼 안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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