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구산이라고 영월군 수주면 뒷산이 있습니다.
주천을 오갈때 넘는 저치재 고개마루에 등산로 표시가 있어서, 언제 동네 뒷산들 한바퀴 할때 올라가봐야지 하면서 지나치던 산입니다.
근데 아래쪽에서 보면 양쪽 모두 급사면에 기암들이 우뚝우뚝 서 있어서 올라가봤자 별로인거란 생각때문에 별로 염두에 두진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동네 뒷산에 길이 얼마나 잘 나있겠냐는 생각도 있었고.
저치재에서 무릉초교 가는 빨간선이 간 길, 파란선은 헤맨길. 설구산은 503.1 봉
1,2는 동네뒷산 한바퀴 예정인 산들.
노란선이 진행, 파란선은 헤맨길. 길은 설귀산 찍고 약간 뒤로 나와 내려간다.
근데 어제 레인님이 백만년만에 쪽지를 보내와서 오늘 쉬는 날이라 천만년만에 집에서 탈출하겠답니다.
그래서 바로 오라고는 했는데, 요즘 입산통제 기간이라 마땅한 산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사이사이 숨어있는 동네길들 이어서 소풍삼아 탈 생각을 했는데, 막상 레인님을 만나고 나니 집을 탈출해 강원도까지 온 분을 데리고 소풍이나 다니긴 아깝습니다.
거기다 레인님은 어제밤에 위성지도를 보며 가평쪽 임도 찾았답니다.
그럼 어쩌겠습니까.
메고 올라가야죠.
황둔 좀 지나 만나서 주천에 차 세우고 저치재로 오릅니다.
오른쪽 산으로 메고 갈거냐, 왼쪽 임도 탈거냐 했더니 메고 오른답니다.
어, 근데 등산로 상태가 매우 좋습니다.
잡목은 다 쳐내서 끌고 가는데 지장없을만큼 넓고, 바닥엔 솔잎이 쫙 깔렸습니다.
결정적으로 약간 마사토기가 있는 부드러운 흙길입니다.
이게 웬떡이냐며 올라가지만, 지나다니며 보이던 암릉과 기암괴석때문에 어디선가 뒤통수칠거라 짐작하면서 그 뒤통수가 내리막만 아니길 바랍니다.
중간 중간 타면서 올라가는 수월한 오르막을 마치고 나니 작은 쉼터, 바로 위에 잡목을 쳐낸 조망터를 가진 정상입니다.
아우! 안개만 아니면 죽이는 조망인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산.... 근데 하산 능선 접어들자마자 길이 확 죽습니다.
아니, 인간들이 정상찍고 다 되돌아갔나...
길은 점점 죽어서 흔적만 남고 몽땅 암릉입니다.
10분쯤 가다가 아무래도 이상해, 지나온 지능선들을 확인하기로 합니다.
레인님은 사면을 돌고, 저는 능선으로 되돌아갑니다.
하나하나 봐도 다 길이 아니길래 결국 정상까지 되돌아갔습니다.
누가 묻지마 아니랄까봐 이런 동네 뒷산에서까지 헤매다뉘!!
정상에 서있는 지도를 꼼꼼히 보니 등산로가 정상을 찍고 살짝 되돌아 나와 확 꺽여내려갑니다.
꺽이는 쪽을 보니 아주~ 좋은 길이 나 있습니다.
두 바보가 쇼를 한겁니다.
바로 하산길로 진입, 지구 역사상 최고의 하산길을 우당탕 밀어붙이며 내달립니다.
레인님은 앞에 가면서 꼭 뒷바퀴를 들거나, 뒷바퀴로 낙엽들을 좌우로 쓸고다니는 걸 꼭 합니다.
앞에서 그런거 하지 마라고 계속 구박하며 거의 내리지 않고 하산.
아주 즐거운 뒷산 산행을 마칩니다.
하지만 레인님, 이후에 약한 모습으로 돌변.
점심먹고 주천강 따라서 소풍이나 40km 쯤 다니자 했더니 엉덩이 아프다고 안간답니다.
그래서 그냥 차로 한반도 지형, 요선정, 평창강 따라 난 광하리길을 다니며 운전만 합니다.
레인님도 늙었습니다.
갔다와서 생각해보니 산 정상이 제 방보다 낮습니다.
그럼 개척이 아니죠.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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