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군요.
장갑을 끼지 않아도, 모자로 귀를 덮지 않아도, 오리털로 몸을 감싸지 않아도 따스한 봄같은 날씨입니다.
올해 설엔 그동안 생각해놨던 경전선 기차 좀 탔습니다.
할아버지 산소가 원래는 화순 능주에 있었는데, 시내버스 노선이 생기기전엔 기차로 다녔었습니다.
광주에서 능주, 경전선 타본건 그 구간이 다였고, 그나마 마지막 탄게 25년도 넘습니다.
이젠 산소도 곡성으로 이장을 해서 능주에 갈 일은 아예 없어졌죠.
요즘엔 경전선도 직선, 복선 공사를 하는중인데, 아직 전남쪽 구간은 공사 구간이 아니라서 광양쪽 일부를 제외하면 예전 그대로입니다.
언제 복선공사를 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공사 시작하면 철길 주변은 온통 깍아내린 산과 쌓아올린 흙으로 변할테니 옛 길 그대로일때 돌아보기로 하고 미리 예매를 했습니다.
순천까지만 가려고 하다가, 돌아 오는 기차 간격이 길길래 하동 지나 북천역까지 끊었습니다,
그렇게 3시간 넘게 천천히, 구불구불, 설인데도 빈자리가 많은 기차를 타고 여유있게 바깥 구경을 하면서 북천역에 내렸는데...
저 혼자 내립니다.
타는 사람도 한명뿐이더군요.
역무원이 처음보는 사람인걸 금방 알아챘을겁니다.
여기도 관광객 모으려고 가을엔 코스모스 축제란걸 합니다.
아마 북천역 1년 총 이용객보다 그 축제때 온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았습니다.
암튼 역에 내려 앞길 신작로로 나갔는데... 그냥 웃음이 배시시 나오더군요.
옆에 우체국, 농협이 있는걸 봐서는 분명히 면소재지인데, 눈 앞에 보이는 100미터 정도되는 거리가 소재지의 전부입니다.
안흥, 강림은 거기 비하면 번화가더라니깐요.
근데 정말 웃음이 나오는 건, 그 길의 이름이 무려 "경서대로" 란 겁니다.
아~ 대로 한번 거창하다~~
슬슬 스며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가게를 찾았습니다.
20분 뒤에 돌아가는 기차를 타야 하거든요.
왔다갔다 10분이면 되는 동네 구경을 하고 가게를 찾는데, 와~ 정말 이 동네 대단합니다.
농협에 붙어있는 하나로마트 외엔 구멍가게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 동안 강원도, 경북 북부의 외진 곳들을 나름 돌아다녔지만, 이런 동네는 처음입니다.
어딘가 좀 떨어져서 숨어있긴 하겠지만, 어쨌든 소재지 동네에 가게가 없다는건 정말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로 마트 가서 우리의 영원한 메뉴인 바나나 우유랑 빵 2개 사서, 흘러나오는 웃음을 못참고 괜히 웃으며 역으로 돌아와 빵 하나 먹는데, 또 재미있는 풍경이 눈에 보입니다.
그 직은 동네, 그 작은 역에 50인치 넘는 TV가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표를 보니 오가는 기차가 6번씩 12번이나 섭니다.
또 웃음이 막 흘러나와 배시시 웃으며 순천가는 기차를 타러 나가는데, 그래도 '3배' 나 손님이 늘어서 저까지 3명 탑니다.
그래도 북천역은 역 모양새가 좀 나는데, 그 다음의 양보역은 플랫폼이 비포장입니다.
아, 정말 정말 오랫만에 보는 비포장 플랫폼입니다.
플랫폼엔 몇십년은 되보이는 허물어져 가는 대기소 하나 있구요.
다음에 오면 양보역에 내려야지 하며 또 웃음을 마구 흘립니다.
그렇게 광주에서 북천까지 주변 풍경 하나하나 살펴보며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보니 경춘선 옛길에 대한 아쉬움이 자꾸 생깁니다.
새로 철길을 만들어도 옛길 운행하는 기차를 가끔식은 운행해주면 좋겠는데, 이젠 강촌역에서 마석까지 북한강 따라 가던 경춘선 열차는 아예 없어졌고 갈다란 굴들이 많이 생긴 새 노선만 운행합니다.
편리해지면 포기해야 하는게 이리도 많아야 하는건가...
다들 새뱃돈 많이 챙기.... 아니, 무리하지 않을만큼 뿌리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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