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친구들이 제대를 할 무렵 조실부모에 제일 덩치가 작은 친구 하나가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저마다 할말도 많고 불만도 가득했던 시절이지만 어울림 속에서 풀고 묻고 하던 그때 환송회 겸 제대 환영 겸 해서 을왕리로 엠티를 왔더랩니다.
스물 서넛의 나이에 군대는 갔다왔으니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그래봐야 별거 없다는 절망감이-나중에 알았지만- 공존하던 그때 희한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을왕리에서.
예나 지금이나 꼭 한적한 해변에 차를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술을 진탕 퍼마시고 라면국물에 소주로 해장을 한 우리들은 백사장에서 테니스 공에 각개목으로 찜뽕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쪽에서 방방거리고 다니던 프린스 한대가 덜컥 취수용 녹강에 차 하체가 걸린 모양입니다. 물은 들어오죠. 그 무거운 프린스를 들어낼 방업은 없죠. 말그대로 똥줄이 탓을 겁니다.
결국 이 양반들이-당시 40대 중반- 우리 근처로 오더니 대뜸 하는 말이 "야, 이리 좀 와보지."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액면으로 한눈에 할아버지급 어르신이 아닌데 반발지꺼리면 바로 빡꾸날아갑니다. "누구시더라. 날 아세요."
제 친구들 역시 쌩깠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이 열을 받은 모양이죠. 그래도 저희가 워낙 쪽수가 많았습니다. 20대 초반에 7명씩 편먹고 찜뽕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이 사람들이 말을 하면 들어야지." 한 놈이 옆에서 투덜거립니다. "돌겠네."
한 친구가 나서서 말하죠. "아저씨 보아하니 차 좀 들어달라고 부탁하시는 모양인데 그럼 매너를 지켜야죠." 그 양반 왈 "야. 나도 집에가면 너만한 아들이 있어. 어디다 대고 훈계야." 무지하게 씩씩거리더만요. 모자에 보니 인천시 무슨 운동연맹인가 라고 오바로쿠가 쳐있는게 한 성질하는 양반인가 본데 한놈이 아쉬운 입장에 젊은 애들 무서운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일이니 얼마나 열받았겠습니까.
바로 그때 제 친구하는 말이 역사의 걸작이었습니다. "아저씨. 나도 집에가면 아버지계시지만 우리 아버님은 함부로 말 안놓습니다. 부탁하시는 양반이 그러시면 됩니까." 결국 분위기 싸해지고 그 양반들 얼굴 벌개져 좀 험한 분위기가 되었죠.
그래도 인간사가 감정대로 됩니까. 한 놈이 가서 일단 도와주자고 말하는 바람에 차를 들어봤지만 대우차 정말 무겁더군요. 결국 그 차는 바닷물 세례를 받고 말았습니다. 무거운 걸 어떡합니까.
연령이나 지위의 고하를 제쳐두고 누군가에게 호의를 부탁하려면 기본적인 매너는 지켜야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사건이었습니다. 혹시 압니까. 그 양반들이 보다 부탁하는 분의 자세를 지켰다면 차가 들렸을지도 모를 일이죠.
십수년이 지난 뒤에 찾은 을왕리 바닷가에도 우연이겠지만 또 한대의 차량이 밀려들어오는 바닷물 앞에 허우적 거리고 있더군요. 세상이 변했음을 웅변하듯 이번에는 사람이 아닌 보험사의 랙커차가 차를 와이어로 끄집어 냈습니다. 사람에 대한 부탁이 아니라 계약에 대한 권리 행사가 일을 해결하는 세상이 된 모양입니다.
그렇다 해도 백사장까지 차를 끌고 들어가서 뭘 하겠다는 건지 참 모를 일입니다. 몸으로 느끼는 자연이 아니라 행위의 보조물로만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좀 지양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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