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데 죽치고 앉아..

by yangah posted Feb 0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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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는 개코나...

상상을 해봅니다.
아랫마을 제일가는 기생을 앉혀 놓고
"이년아 술 한잔 찌그리거라."

한잔빨고 침한번 흘리고...질질ㄹ질!!
"너의 자태가 오늘따라 그윽하구나..ㅋㅋ"
"우리 한번 질펀하게 놀아볼까나."
"아잉..서방님도."
"일단 치맛단 겉어부치고 소리 함 뽑아 부리고."
"살리고..살리고..한박자 쉬고..두박자.."

뭐 이러지 않았을까요.

요기는 화양구곡에 자리잡은 우암 송시열의 요즘으로 치면 독서실내지는 오락실 기능을 했던 별장입니다. 구들도 들이고 부엌도 있는 것이 여간한 양반네 살림집에 못지않습니다. 2001년인가 전국구 선수들이 청주에 모여 쳐들어간 곳이 바로 이 화양구곡입니다.

양반의 문화라는 것이 결국 없는 사람들의 노동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썩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풍광은 수려 그 자체였습니다. 이 별장 맞은 편에는 그 유명한 만동묘와 화양동 서원이 있습니다. 내려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대원군이 아주 쑥밭을 만들어버렸더군요.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록 박살을 내놓은 통에 그저 주춧돌로 그 규모를 짐작할 뿐입니다. 한편으로 건물 품새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시원한 복수에 키득거릴 이하응 선생을 생각하면 또 나름의 즐거움이 생깁니다.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가 배출된 지역에 가면 특징적인 현상과 인식이 발생합니다. 그 학자 하나를 위해 온 동네가 초토화된다는 것이죠. 이런 현상은 송시열은 물론 조식, 기대승에 이어 최근 송강 정철의 담양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비슷한 모양새를 갖고 있습니다. 몽땅 해쳐먹은 것이죠.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평생 띵가띵가 거리며 음주가무를 즐기며 가끔 되도않은 경전 나부랭이를 읊어댔겠죠.

산청에 가면 조씨와 최씨가 거의 다 해먹은 역사의 현장이 존재합니다. 심지어는 조식선생이 낚시를 즐기던 정자까지 경호강에 있더군요. 좋은 자리에 동네사람들 시켜 사납을 받아 만든 그런 정자와 별장과 서원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 생각을 하면 아주 싸그리 훑어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그나마 남아서 이런 생각이라도 하게 해주니...^^

남명 조식과 고봉 기대승은 둘다 성격이 졸라 쫀쫀한 새가슴들이었나 봅니다. 조식이 천왕봉에 먼저 올랐다는 소리를 듣고 기대승은 다른 봉우리에서 놀다갔다고 합니다. 존심 상한다고. 그 반댄가는 몰라도 하튼 그렇습니다. 졸라 쫀쫀. 중요한건 이럴때 양반네들의 행장입니다. 먼저 이 양반들은 말에 올라 천천히 세월아 네월아 졸고있고 그 뒤에 노비들이 한 대여섯명 쌀에 가마솥에 바리바리 챙기고 개도 한마리 끌고 올라가고, 그 뒤로는 기생언니들 대여섯이 기쁨조로 따르고 있습니다. 이거 완전히 상팔잡니다. 한번 해보고 싶지만 세월이 영 아니라고 맞아 죽겠죠. 이런 것들이 무슨 우리의 훌륭한 선조요 지식문화의 대가들이라고 떠받드는지 모를 일입니다. 무슨 마오병도 아니고 학문만 가지고 사람을 평가합니다. 역시 품성이 제일입니다.

에구 아침부터 주절거렸네요. 오래간만에 사진을 꺼내들고 잡념이 좀 들었습니다. 사람은 일한만큼 즐길권리 만큼 놀고 자빠져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