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깡통을 아시나요.
제가 살던 시골에서는 이걸 '불깡통'이라고 불렀습죠.
구조도 간단하고 저걸 빙빙 돌려봐야 팔이나 아프지 뭔 재미가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중독성이 있는 놀이입니다.
대보름이 되기 며칠전 부터 동네 꼬마들이 죄다 모여 하는 짓이
냇갈로 깡통 주우러 다니는 겁니다. 아니면 동네 송방 근처나 교회 혹은 길거리를 샅샅히 뒤져 깡통을 확보합니다. 아버지가 드시고 난 황도 깡통이나 고등어 간스메(^^)도 대환영이죠. 그러나 정말 확실하게 다른 친구들 기를 죽이는것은 바로 '아기밀'깡통 특대버전입니다. 그 다음이 매일분유구요. 물론 희소성때문이겠죠.
이렇게 구한 깡통 안쪽에 통나무를 끼우고 도라이바나 대못 기타 예리한 흉기를 이용하여 적당히 구멍을 뚫습니다. 너무 많이 뚫으면 깡통이 주체를 못하고 형체가 일그러지기 때문이죠. 여기에 적당한 철사줄을 꼬아 끈을 만들면 작업 끝입니다.
이제 불지르는 일만 남았냐고요. 아니죠. 땔감을 구해야 합니다. 그냥 나무 쪼가리 넣어도 빙빙 돌려대면 잘타지만 이거 재미없습니다. 확실하게 재미를 보려면 바로 관솔을 넣어야 합니다. 그래야 불꽃도 길게 나오고 오래갑니다. 보름 전날이나 전전날이면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눈 덮인 산을 오릅니다. 손에 낫과 톱을 들고서 말이죠. 이럴때 무장은 목장갑에 방한화가 최곱니다. 아니면 장화를 신던가.
관솔이라는게 소나무의 몸통에 붙어있는 부러진 가지의 흔적을 말하는 거죠. 송진을 흠뻑 머금고 있는 그것. 이걸 부러뜨리기도 하고 톱으로 자르고 낫을 쳐대면 한나절이면 자루 하나는 모을수 있습니다. 이걸 바로 이용하는 거죠. 이 관솔을 한가득 넣고 대보름날 수십명이 냇갈에 모여 불을 피우고 깡통을 돌려대면 그 재미는 일년을 기다릴 만한 것이었죠. 마지막에 벌건 숯불만 남은 깡통을 해머던지기 처럼 던져 허공에 날리면 불똥이 하늘로 점점히 날아갑니다. 일년의 시작과 함께 액운을 날리는 것인지는 몰라도 시원했습니다.
별 놀이 시설이 없던 때라 그런지 철따라 이런 행사(?)를 준비하는게 시간을 버텨내는 최고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누구나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으니까요.
어른이 된 뒤 한 이십 몇년만에 보는 불깡통은 지자체가 주관한 대보름날 행사에서 그 지역의 체육횐가 모시기에서 오천원인가를 주고 판매하는 상품이 되어버렸습니다. 불깡통을 열심히 돌려대던 그 꼬마는 그 때의 아련한 기억보다는 저거 잘못하나 지나가는 사람 뒤통수 갈기면 조뙤는데 라는 생각을 먼저 갖는 그런 놈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