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해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시기 바라며, 이 곳은 사진을 좋아하시는 분이 많은 곳이기에 올립니다.
앞서 제가 올린 사진 한 장은 여성의 성기를 꽃으로 `Eguivalent` 시킨 작품입니다. 저도 ~Equivalent` 작품을 일부 만들고 있으나...그 성격은 다소 다릅니다. 제 홈의 그 부분을 참조 하셔도 좋습니다.
아래는 신문 기사의 일부 입니다.
"아라키의 모델이 된 여성들은 알몸으로 밧줄에 살이 찢어질 듯 묶여 무표정한 얼굴로 관객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섹시함을 강조하는 남성의 성적 판타지 속에 있는 여성일 뿐입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인터넷과 이메일 등을 통해 아라키 전시에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한 김소윤씨는 "미술관이 아니라 인터넷이나 거리에서 전시를 했다면 포르노라고 낙인찍힐 작품들이, 아라키라는 이름의 권위와 일민미술관의 거대 갤러리의 힘을 업고 예술로 행세하고 있다. 이런 형편없는 전시회가 3개월 넘게 광화문 한복판에서 열리는 데 대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무비판적인 언론들의 칭송 때문이다"라며 미디어에 대해서도 칼날을 겨눴다.
지난해 11월 개막해 오는 2월23일까지 열리는 아라키 전시회는 한국에서 열리는 그의 첫 개인전으로 언론의 폭발적 관심을 받았다. 작가가 내한한 지난해 11월30일엔 아라키 팬을 자처하는 인기가수 싸이가 미술관에서 헌정공연을 벌이기도 했다. 전시 성격상 학생 단체관람이 불가능한 전시회인데도 그동안 2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는 등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아라키 전시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모든 상황이 남성중심적인 미술계의 문제라고 보고, 대안적 전시를 통해 논쟁 구도를 세워나간다는 계획이다. 2월20일~3월2일에 홍대앞 카페 '시월'에서 '안티 아라키전'이라는 이름으로 열릴 전시회 주제는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성의 몸'. 그동안 미술사에서 남성 작가가 여성 모델을 바라본 시선을 뒤집어보고, 카페 전체가 여성적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퀼트·공예 작품 등의 소품을 이용해 여성들의 일상을 표현한다. 덧붙여 아라키 사진을 관람하는 사람들을 담은 영상물을 선보여 미술관이라는 제도 속에서 관람객이 작품을 수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묻는다.(www.feministart.co.kr)
-건강한 풍토 방증… 도덕주의 신화 지적도
그렇다면 그동안 아라키 전시회에 대해 호의적이던 우리나라 미술계가 '안티 아라키전'을 바라보는 눈길은 어떨까. 일단은 한목소리로 아라키를 극찬한 미술계에 파문을 던진 젊은 미술인들의 행동에 대해선 긍정적이다.사진작가 박영숙씨는 "페미니즘 시각에서 전시회에 대해 격분할 수 있다. 분노를 전시라는 형식으로 표출하는 행동은 살아 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일민미술관쪽도 "논란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풍토를 방증하는 것이다"라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들이 들이대는 비판의 잣대가 얼마나 적합한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전시기획자 이섭씨는 "본래 예술적 표현은 과장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과장하는 형식과 과장된 내용이 무엇을 지향하는가가 정확하거나 적절했나를 따지는 것이 비평의 시작이다. 성기를 노골적으로 표현했다거나 여성이 학대받는 상황을 보여준다거나 하는 극단적 표현만을 비난할 순 없다. 아라키는 본래 미술관의 귀족적 성격을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아는 유쾌한 포스트모더니스트다. 아라키를 페미니즘으로 들여다볼 순 있지만 사실 페미니즘과는 전혀 '관계없는' 작가다"라고 지적했다. 미술평론가 김홍희씨도 "이미지 분석에서부터 비평이 시작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미지를 처리한 방법, 사진을 찍기 위해 연출한 세팅 방법에 대한 미학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여성에 대한 폭력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작품이 곧 폭력이라고 주장하면, 이는 감정적이고 표피적인 접근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시각이 도덕주의의 신화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미술평론가 박신의씨는 "변태적인 작품을 본다고 해서 모두 변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끝까지 가는 극단적 욕망을 통해 욕망의 본질을 깨닫는다. 개인적으론 아라키 작품이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작품엔 일본문화를 이해하는 코드의 핵심이 담겨 있고, 몸에 대한 이분법적 선악의 구분 사이에 있는 틈과 틈 사이의 욕망과 다양성이 표현돼 있다. 이에 대해 도덕주의적 잣대만을 들이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안티 아라키전'이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아라키를 비난한 주체가 젊은 페미니스트 미술인들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일본을 비롯해 외국에서 아라키에게 돌을 던진 건 검열 도구를 쥔 검·경찰이었거나 우파적인 보수 지역사회였다.
-우리 사회의 이중잣대 꼬집기 시도
한 여성 관객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예술작품에 가한 검열의 횡포와 비교해볼 때 아라키 전시회는 매우 관대한 대접을 받았다. 미술관에서 벌어지는 고급예술이라는 달콤한 당의가 덧입혀지지 않고선 불가능했을 것이다. '안티 아라키전'은 이런 사회에 대한 꼬집기, 균열내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 한편으론 아라키의 작품을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태도와 이에 맞서는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착종된 논쟁의 지형도가 드러나기도 한다. 예술이라는 이유로 검열관들은 침묵하고, 폭력일 뿐이라며 페미니스트들은 반발하는 '비빔밥' 같은 현실 말이다.
한겨레 신문의 기사 일부................................
앞서 제가 올린 사진 한 장은 여성의 성기를 꽃으로 `Eguivalent` 시킨 작품입니다. 저도 ~Equivalent` 작품을 일부 만들고 있으나...그 성격은 다소 다릅니다. 제 홈의 그 부분을 참조 하셔도 좋습니다.
아래는 신문 기사의 일부 입니다.
"아라키의 모델이 된 여성들은 알몸으로 밧줄에 살이 찢어질 듯 묶여 무표정한 얼굴로 관객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섹시함을 강조하는 남성의 성적 판타지 속에 있는 여성일 뿐입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인터넷과 이메일 등을 통해 아라키 전시에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한 김소윤씨는 "미술관이 아니라 인터넷이나 거리에서 전시를 했다면 포르노라고 낙인찍힐 작품들이, 아라키라는 이름의 권위와 일민미술관의 거대 갤러리의 힘을 업고 예술로 행세하고 있다. 이런 형편없는 전시회가 3개월 넘게 광화문 한복판에서 열리는 데 대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무비판적인 언론들의 칭송 때문이다"라며 미디어에 대해서도 칼날을 겨눴다.
지난해 11월 개막해 오는 2월23일까지 열리는 아라키 전시회는 한국에서 열리는 그의 첫 개인전으로 언론의 폭발적 관심을 받았다. 작가가 내한한 지난해 11월30일엔 아라키 팬을 자처하는 인기가수 싸이가 미술관에서 헌정공연을 벌이기도 했다. 전시 성격상 학생 단체관람이 불가능한 전시회인데도 그동안 2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는 등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아라키 전시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모든 상황이 남성중심적인 미술계의 문제라고 보고, 대안적 전시를 통해 논쟁 구도를 세워나간다는 계획이다. 2월20일~3월2일에 홍대앞 카페 '시월'에서 '안티 아라키전'이라는 이름으로 열릴 전시회 주제는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성의 몸'. 그동안 미술사에서 남성 작가가 여성 모델을 바라본 시선을 뒤집어보고, 카페 전체가 여성적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퀼트·공예 작품 등의 소품을 이용해 여성들의 일상을 표현한다. 덧붙여 아라키 사진을 관람하는 사람들을 담은 영상물을 선보여 미술관이라는 제도 속에서 관람객이 작품을 수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묻는다.(www.feministart.co.kr)
-건강한 풍토 방증… 도덕주의 신화 지적도
그렇다면 그동안 아라키 전시회에 대해 호의적이던 우리나라 미술계가 '안티 아라키전'을 바라보는 눈길은 어떨까. 일단은 한목소리로 아라키를 극찬한 미술계에 파문을 던진 젊은 미술인들의 행동에 대해선 긍정적이다.사진작가 박영숙씨는 "페미니즘 시각에서 전시회에 대해 격분할 수 있다. 분노를 전시라는 형식으로 표출하는 행동은 살아 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일민미술관쪽도 "논란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풍토를 방증하는 것이다"라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들이 들이대는 비판의 잣대가 얼마나 적합한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전시기획자 이섭씨는 "본래 예술적 표현은 과장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과장하는 형식과 과장된 내용이 무엇을 지향하는가가 정확하거나 적절했나를 따지는 것이 비평의 시작이다. 성기를 노골적으로 표현했다거나 여성이 학대받는 상황을 보여준다거나 하는 극단적 표현만을 비난할 순 없다. 아라키는 본래 미술관의 귀족적 성격을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아는 유쾌한 포스트모더니스트다. 아라키를 페미니즘으로 들여다볼 순 있지만 사실 페미니즘과는 전혀 '관계없는' 작가다"라고 지적했다. 미술평론가 김홍희씨도 "이미지 분석에서부터 비평이 시작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미지를 처리한 방법, 사진을 찍기 위해 연출한 세팅 방법에 대한 미학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여성에 대한 폭력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작품이 곧 폭력이라고 주장하면, 이는 감정적이고 표피적인 접근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시각이 도덕주의의 신화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미술평론가 박신의씨는 "변태적인 작품을 본다고 해서 모두 변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끝까지 가는 극단적 욕망을 통해 욕망의 본질을 깨닫는다. 개인적으론 아라키 작품이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작품엔 일본문화를 이해하는 코드의 핵심이 담겨 있고, 몸에 대한 이분법적 선악의 구분 사이에 있는 틈과 틈 사이의 욕망과 다양성이 표현돼 있다. 이에 대해 도덕주의적 잣대만을 들이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안티 아라키전'이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아라키를 비난한 주체가 젊은 페미니스트 미술인들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일본을 비롯해 외국에서 아라키에게 돌을 던진 건 검열 도구를 쥔 검·경찰이었거나 우파적인 보수 지역사회였다.
-우리 사회의 이중잣대 꼬집기 시도
한 여성 관객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예술작품에 가한 검열의 횡포와 비교해볼 때 아라키 전시회는 매우 관대한 대접을 받았다. 미술관에서 벌어지는 고급예술이라는 달콤한 당의가 덧입혀지지 않고선 불가능했을 것이다. '안티 아라키전'은 이런 사회에 대한 꼬집기, 균열내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 한편으론 아라키의 작품을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태도와 이에 맞서는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착종된 논쟁의 지형도가 드러나기도 한다. 예술이라는 이유로 검열관들은 침묵하고, 폭력일 뿐이라며 페미니스트들은 반발하는 '비빔밥' 같은 현실 말이다.
한겨레 신문의 기사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