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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高手(고수)

靑竹2005.07.21 01:27조회 수 171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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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차도로에서 속도를 포기한지 오래다.
처음 엠티비를 장만할 때만 하더라도 중랑천에 잔차를 이용하는 인구가 별로였는데 요즘은 엄청나게 늘어나서 놀라울 정도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산책객들로 붐벼서 특히 한여름철엔  해만 졌다 하면 쏟아져 나온 산책객들로 인하여 그나마 관광모드 주행도 보장받기 어려운 형편이니 속도를 포기하는 거야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엠티비를 처음 접하던 시절엔 왜 그렇게 속도에 목을 맸던지 죽을둥 살둥 페달만 디립다 밟아대느라 주변 경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走馬看山(주마간산)이라고 그저 달리는 말 위에서 스치듯 보는 경치구경이 고작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너무 각박한 라이딩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내 딴엔 속도에 목을 매던 시절이었다. 늘 같이 타던 선배 하나와 초안산이란 곳엘 올라갔다가 중랑천으로 내려와 의정부쪽으로 향하는데 당시 속도가 35km/hr정도 되었다. 어쩌다가 선수급 정도 되는 싸이클이나 만나면 불가항력 추월을 당하는 경우가 있긴 했으나 대체로 남들을 추월하며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웬걸....쌩~ 하더니 잔차 하나가 옆으로 추월하는데 헉......

얼핏 보기에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자씨다. 적당한 키에 몸집도 실한 편이었는데 그의 차림새가 우리의 심기를 건드렸다. 점잖은 양복바지를 입고 하얀 와이셔츠를 입었는데 양복바지 아랫단을 접어 양말속으로 넣은 형색이 영락없는 시골 면서기 아자씨의 모습 그대로다. 그의 애마는 삼천리 넥x트~!!!!(이 일로 인하여 이 잔차를 매우 존중하게 됨)

그냥 보낼까 생각했지만 앞서서 가던 선배가 경쟁심리라면 나보다 한수 위인지라 '양보의 자유'가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선배는 휘익 지나가는 삼천리 잔차를 탄 아자씨를 보더니 "어쭈구리?" 하면서 냅다 앞에서 밟아대기 시작한다. 저 논산 깡촌 골짜기의 선배를 우연히 잔차도로에서 삼십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만나 같이 타기 시작했는데 선배가 앞에서 거품을 무니 나도 덩달아 핵교의 명예를 걸지 않을 수 없어서 게거품을 물고 선배를 따라 무르팍 도가니뼈에서 빠각빠각 소리가 날 정도로 페달을 밟았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40킬로 초반대로 따라가는 데도 도무지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거다. 한참을 달리던 선배가 목소리도 아니고 숨소리도 아닌 쇳소리 비스무리한 소리로 신통하게 모국어를 만들어 나에게 절규했다.

"야~ 도저히..헥헥..안되것다"

"알쓰~ 뒤로 빠지슈..내가 해볼 꺼니께.."(<----내소리도 쇳소리 비스무리..ㅠㅠ)

거진 혼수상태가 된 선배를 위하여 119라도 불러주고 가야 도리였으나 선배의 눈초리로 보아선 구겨진 모교의 자존심에 더 큰 내상을 입은 듯하여 만사를 제쳐두고 추격전에 나섰는데... 뒤에서 면서기 아자씨(?)의 주행폼을 보니 전혀 흔들림이 없다. 지극히 안정된 자세로 물흐르듯 유연한 페달링을 자랑하는 것이 아닌가. 흡사 정중동 아니면 동중정이었다. 포기할까 하다가 사나이 한 번 뺀 칼 무우라도 잘라야지 하는 생각에 있는 힘 없는 힘 다 쥐어짜서 이몸이 콩깻묵처럼 굳을 각오로 내달렸는데 속도계가 45km/hr를 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추월에 성공했는데 얼마간 46킬로 이상을 유지하면서 죽어라 밟다가 이젠 한참 따돌렸겠지 하는 생각에 페달링 속도를 좀 줄였다.(줄인 거 좋아하네..탈진해서 더 못밟은 거지)

속도계의 숫자가 급격히 떨어졌다. 46..44...41...38...헉~~!!!! 속도계가 46에서 38까지 떨어진 시간이 아주 찰라였는데 38을 가리킨 순간 그 원한의 면서기 아자씨가 쌩~ 하고 옆을 스친다. 아이고~ 더 이상 쓸 힘도 없는디..쓰봉...아...지롤...한국이 싫다.

가지 마소서..떠나지 마소서..울며 불며 떠나시는 님 두루마기자락 아둥바둥 붙들고 늘어지다가 매정한 님의 거친 몸짓에 나동그라진 가엾은 여인이 가물가물 아지랑이와 함께 버무려지면서 멀어져 가는 님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옷고름으로 눈물 찍어내듯 페달링을 포기한 채 망연자실 안장에 앉아 시름에 잠긴 두눈에 벼멸구가 끼었는지 날파리가 들어갔는지 좌우간 눈을 비비적거리며 멀어져 가는 면서기 아자씨의 꽁무니를 바라보자니 띠리리리리 하는 허브의 공회전 소리만이 무심하게 귓속으로 파고들었었다...아흐흐흑..

한참을 제자리에 서서 운기조식을 하노라니 119를 불러주지도 않았는데 누가 대신 불러주어서 응급처치를 해주었나 혼수상태에 빠졌던 선배가 어기적 어기적 페달을 밟아 다가온다.

"넥x트 어디 갔어~!!!"

"갔슈"

둘이서 털레털레 가다가 보니 공터에서 그 면서기 아자씨가 부채질을 하면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선배는 그리로 다가가더니 기여코 한마디 따진다.

"아이고~ 아자씨요..생활자전거로 너무 횡포가 심하신 거 아닙니까? 아까 심정 같아선 당장 경찰에 고발하려고 했는디요..미운사람 떡 하나 더 주랬다고 커피나 한잔 드십시요...헥헥..존경합니당..충성~!!"

존경은 선배가 하고 커피값은 내가 냈다.

궁시렁.


피에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그 넥x트의 주인공이 있으시면 자수하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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