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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어 좋던 날

靑竹2005.09.15 09:17조회 수 46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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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너무 정이 많은 탓에 밖으로 쏘다녀 아무에게나 정을 주다가 급기야 배우자의 억장을 무너뜨려 정해진 양식의 서류(잉? 뭔?)에 도장찍기를 강요당하는 사회 통념상 그다지 질이 좋지 못한 '바람'이 있고 내가 어릴 때 대통령이 되겠다고 벼르던 것 같은 좀(좀은 무신 상당히가 맞지) 허무맹랑한 '바람'도 있다.

그러나 시방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람은 말 그대로 風 즉, wind다.(앗싸~내가 영어를)

마흔이 넘어 30 년 만에 다시 접한 자전거 타기가 처음엔 동네 한 바퀴 돌기도 무지 힘이 들었다. 태생이 약골이라서였지만 그래도 좋은 걸 어쩌랴. 상도동에서 살 때, 툭하면 탱크처럼 무거운 철티비의 옆구리에 릴대 붙들어 매고 한강으로  릴낚시질을 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넘어지면 코닿을 거리인데 당시는 왜 그렇게 힘이 들고 멀었던지...격세지감이다.

잠수교 인근에서 릴대를 휘둘러 던지기만 하면 팔뚝 만한 누치들이 덥석 물려 나오는 게 처음엔 꽤 흥분이 돼서 재미가 있었는데 여자..아니 물괴기가 좀 튕기는 맛이 있어야 스릴도 있는 거지 하도 지조 없이 물려 나오니 나중엔 지겨워졌다. 더구나 잉어도 아닌 것이 꼭 잉어인 척은...

결국 누치와 결별을 선언하고 잡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민물 장어와 함 사귀어보려고 미끼를 떡밥에서 지렁이로 바꾸고 걸려들길 기다리는데 요 미끈하게 빠진 미녀들이 통 걸려드는 기미가 없는 것이 필시 물밖으로 내 인물을 보았나보다. 음냐리~

강가에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이제나 저제나 님을 기다리며 한참을 공치고 퍼질러 앉아있는데 부르릉~하고 오토바이 탄 아자씨가 지나가며 "아저씨 장어 몇 마리나 잡으셨어요?"하며 염장을 지른다. 민물장어집에서 장어를 사간다고 소문만 들었는데 그 사람인가보다. 그러고 보니 동녘 하늘이  희뿌연 것이 날 샜나보다.

'에라~ 모르겠다. 잔차나 타야지' 하는 마음에 초면인 옆 사람에게 낚싯대를 맡기고 잔차를 끌고 상류 쪽을 향하여 달리는데 이상하게 잔차가 잘 나간다. 디립다 무거운 고철잔차를 타느라 늘 부실한 다리가 후들거렸던 데다가 날밤을 샌 몸인데도 신기하게 페달을 밟는 시늉만 해도 쌩쌩 나가는 게 도무지 이상했지만 난 그저 신이 나서 '앗싸~ 일주일 탔더니 이제 제법 실력이 붙었나보네..음하하하' 하고 기고만장하여 가는 데까지 가보자 하는 심산으로 새벽녘 한강 둔치의 잔차도로를 질주했는데 천호대교까지 갔나보다. 당시 부실하기만 했던 나의 무르팍에 견주면 가히 혁명적인 거리였다.

문득 낙싯대가 걱정이 되어 유턴을 한 다음 페달을 밟았는데 허걱.....????
잔차가 도무지 나가질 않는다. 아이 씨..바람의 영향이 이렇게 세다는 걸 이 돌대가리가 미처 몰랐다. 어쩐지..아까 올 땐 뒷바람이 엄청 세게 불어서 페달질은 그냥 시늉만 낸 거고 비닐봉투 바람에 날려 길바닥에 구르듯 바람에 날려서 천호대교까지 간 걸 그것도 모르고 실력이 늘었다고 좋아라 촐싹대며 너무나 멀리 간 것이 후회막심. 에효~ 그럼 그렇지.

어찌나 강풍인지 저단을 놓고 비비적 비비적 생땀을 바람에 뒤로 날리며 뒈지게 페달을 밟아댔지만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꼭 뒤로 밀려가는 기분이 들 정도로 나가질 않는다. 올 땐 바람같이 날아온 길을 갈 땐 꼭 무신 바늘땀을 한 땀 한 땀 십자수(엥?)를 놓듯 아예 그림을 그리고 있는 꼬라지라 급기야 동녘에 태양이 빨갛게 떠오르는 것이 모르긴 몰라도  초면인 낚싯군이 내 낚싯대 버려두고 갔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웬걸. 천신만고 잠수교에 도착하니 그냥반 가지 않고 기다리다가 날 보자 궁시렁궁시렁 입이 댓 발은 나왔다. "아이고 이 냥반아 낚싯대 맡기셨으면 빨랑 오셔야지..에고 출근시간 늦었네.."하고 투덜댄다.  "아이고 죄송..그게 그러니까..거시기..바람이.."

그 이후 숱한 경험으로 바람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한겨울 한강에 간혹 부는 엄청난 강풍은 차라리 빡센 업힐을 하는 것이 나을 정도로 힘들다는 것도 알았다. 몇 년 전 겨울, 객기를 부리며 의정부에서 성산대교까지 강풍을 뚫고 간 적이 있다. 일단기어까지 써가며 용트림을 해서 까까스로 갔는데 돌아오는 길이 가관이었다. 페달을 밟지 않는데도 뒷바람이 어찌나 강한지 잔차가 그냥 밀려가는데 속도가 14km/h가 나온다..ㅋㅋㅋ 스탠딩 자세로 바람을 한껏 받으니 17km까지 올라간다..이거야 원..돛을 단 잔차다.

맞은편에서 오는 라이더들의 표정을 보니 이를 악문 채 얼굴들이 시뻘겋다. 흐흐흐 가엾은 후배들. 아까 내가 저랬으렷다? 교행하는 불쌍한 라이더들에게 좀 미안했지만 어쨋든 돛을 단 잔차로 페달링을 대충대충 생략한 채, 까이 꺼 뭐  잠수교까지 거저 줍다시피 왔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난 스탠딩 자세로 뒷바람을 받아 밀려가던 라이딩을 일컬어 '노들강변 봄버들라이딩'이라 명명했다.

대체로 자전거도로보다 국도로 달리는 것이 속도가 훨씬 더 빠르게 나온다. 굉음을 울리며 빠르게 지나는 대형차량들이 비록 섬찟하긴 하지만 엄청난 바람을 몰아다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효과가 가장 극적인 곳이 일방통행 터널 같다. 사실 일방통행 터널 안에 가만히 서 있으면 터널 안을 질주하는 차량들로 인하여 엄청난 유속의 바람이 맹렬하게 부는데 흡사 진공관 속으로 들어가기나 한 것처럼 열심히 페달질을 하면 평지인데도 50km/h가 쉽게 넘곤 한다. 휴~~~겨울 라이딩을 가장 좋아하는데 올 겨울엔 얼마나 바람에 시달릴지...



바람...잘만 이용하면 고수 소리 듣습니다..ㅡ,.ㅡ
여러분 바람(이 바람? 저 바람?) 조심하셔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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