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오후에 가까운 싱글을 탔습니다.
올라가는 길은 약 40분이지만 거의 끌바 내지는 들바인 코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타는 곳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자주 가지 않는 곳이지만
저는 끌바를 그저 '등산'이다 생각하면서 다니는 곳입니다.
등산을 겸하는 분은 아시겠지만
자전거와 등산이 쓰는 근육에서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같은 곳(또는 먼 곳)을 자전거로 다녀오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등산을 다녀오면 다리도 아프고 발다닥도 피곤한 경우를 종종 겪습니다.
여하튼 지난 일요일 라이딩은 늦게 잡았었고
회원들의 호응도 낮았을 뿐더러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그런 라이딩이었습니다.
약속 장소를 변경하고 기다리기를 오래 하였으나
최종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몇 안되는 김빠지는
라이딩이었습니다.
그럭저럭 약속장소인 산 능선에서 회원들을 만나
딴힐을 하였지만 비가 올거라는 급한 마음을
같이 간 회원들은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같이 라이딩을 한 곳이므로 앞서 달렸지만
두 번이나 길이 어긋났고
급기야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부터는
빨리 하산을 하여야 한다는 조급증에
평소보다 빨리 달려 내려가게 되었는데
그 때
속도계를 잃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은 속도계 찾기 라이딩이 아니고
속도계 찾기 등산을 나섰습니다.
시원찮은 등산화지만 며칠 전 구입한
철인경기 선수를 위한 두툼한 깔창을 깔고
저지 뒤 포켓엔 전정가위를 꾹 찌르고 나섰습니다.
걸어서는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지만
동행이 없으면 걸음은 빨라지게 마련인데
다행히 같이 올라가는 비슷한 나이또래의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평상시와 같은 걸음으로 올라갑니다.
자전거를 타면서부터는 등산이 쉬워진게
전에는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과 다리 풀림 증상이
있었지만 지금은 호흡도 편안해지고 다리도 튼튼해져서
'구름에 달 가듯이' 산을 오를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기 전에 같이 다니던 친구들과 같이 등산을 하다보면
내가 항상 선두에 서 있곤 합니다.
걸어서 가는 길은 자전거를 타고 갈 때의 '복기'입니다.
이 곳을 왜 올라가지 못할까?
여기는 이렇게 올라가면 되겠는데.... 등등
정상에 도착해서 같이 가는 사람들과 헤어져서
딴힐코스로 들어섭니다.
잔차를 타고 다닐때는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장마철이라 여러 종류의 버섯이 많습니다.
내리달리느라고 일일이 나뭇가지 등을 치지 못하고 다녔지만
걸어서 가는 길은 눈에 거슬리는 곳이 많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오도바꾸'들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노면이 파헤쳐진 곳이 많습니다. 나무나 풀 때문에 다니기 불편한 곳도
오토바이들이 지나다니면서 길이 나기도 하였지만
파헤쳐진 노면으로 물이 흘러 가면서 골이 파인 곳이 많습니다.
전정가위를 꺼내서 나뭇가지를 자르며 나갑니다.
오늘의 산행은 혹시나 떨어뜨린 속도계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비가 온 뒤의 싱글의 상태를 점검하고 나뭇가지 등을 치우는 목적이 있습니다.
나뭇가지를 자르느라 이마에 땀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썩어서 떨어진 나뭇가지 등을 치우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신공(神功)이
필요합니다.
'옆 밀기 신공', '축구 신공', '야구신공', '매달리기 신공'....
손으로는 나뭇가지를 자르지만 눈은 군대생활에서 배운 법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2미터씩 끊어서 중첩해서....
속도계를 떨어뜨린 것 같은 '용의지역'은 세 군데 정도입니다.
오토바이가 심하게 파헤쳐 놓은 암석구간으로
우물쭈물하다가 잔차에서 내린 곳입니다.
다른 두 곳은 빗물로 인해서 진흙 노면이 '머드'가 되어서
옆으로 미끄러지면서 땅을 짚었던 곳입니다.
점점 손에 힘이 빠지고
다리도 아파 옵니다.
문명의 이기 잔차를 타고 내리 달릴때는 짧게 느껴지던 길이
오늘은 왜 이리 긴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정도로 내려가다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다리가 아파올 것 같습니다.
복분자 나무, 아카시아, 산초나무 등 가시나무가 많습니다.
한 번 이 곳을 처녀 라이딩을 하고는 바로 토시를 구입하여
착용하고 있지만 다른 횐님들은 그대로 다닙니다.
당연히 팔과 다리는 쓸리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용의 지역은 다시 한 번 가 봅니다.
없습니다.
기대는 하지 않고 왔지만
약간은 섭섭합니다.
GPS를 구입하기 위하여 별별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래도 라이딩이 끝나면 거리, 속도 등을 자작한 프로그램에
입력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GPS 구입전까지는 그 재미도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길이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내려가도 포장도로를 2-3킬로미터는 가야 되는데
벌써 다리가 아픕니다.
물을 조달하지 않아 목도 마릅니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내려오다가
잣나무 옆에서 다른 나무를 타는 청설모를 발견했습니다.
이 놈이 다 익지도 않은 잣을 다 까먹어서
잣나무 밑에는 까먹은 빈 잣송이만 널려 있습니다.
순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통을 치고
나무를 손으로 두드려 봅니다.
무언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 보니 겉 껍질을 잘 까 놓은
잣이 한 송이 있습니다.
입가에 웃음이 나옵니다.
속도계는 찾지 못하였지만
오늘의 수입은 이것으로 만족해야겠습니다.
잣송이를 들어 냄새를 맡으며
조금은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옵니다.
코스를 정비한 보람보다는
잣송이를 얻은 기쁨이 더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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