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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

무한질주2007.06.14 13:42조회 수 1548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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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소개로 김영하씨의 '포스트잇'이라는 책을 샀더랩니다. ㅎ

책의 첫머리 다음에 자전거라는 글이 있는데, 우리 자전거족의 정서와 잘 맞는 것 같아, 왈바 분들께 소개 하려고 합니다. ^^

* 글을 적기 전에 출판사에 전화하여, 자전거 커뮤니티에 올리려 한다는 뜻을 전하였고, 허락을 얻었으니, 문제의 소지는 없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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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살까 하는데 ......"
  재작년이었다. 단 한 사람도 그러라는 사람이 없었다. 아내마저도 "아마 사놓기만 하고 모셔두게 될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서울이 어디 자전거 탈 만한 도시냐?"는 인문 지리적 비아냥, "서울엔 언덕이 너무 많다"는 국토 지리적 충고, "버스 뒤꽁무니에서 배기 가스나 들여 마시게 될 것"이라는 임상적 협박까지, 실로 다양한 반응들이 여러 경로로 수집되었다. 평소 주변의 충고를 귀여겨 듣는(사실은 귀가 얇은) 나로서는 포기할 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로부터 딱 일 년 후, 큰맘먹고 자전거를 샀다. “과연 얼마나 타겠냐”는 주변의 예상도 불식시킬 겸, “그러게 내가 뭐랬냐”는 이후의 비아냥도 예방할 겸, 열심히 탔다. 우선,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대를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다. 집이 있는 성산동을 기점으로 연대까지 삼십 분, 여의도까지는 삼십 분, 홍대까지는 이십 분이 결렸다. 그 정도라면 마을버스나 시내버스에 견주어도 그리 느린 속도가 아니었다. 게다가 자전거는 교통 체증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늘 일정한 속도를 낸다(막히면 인도로도 가니까).
  그 다음으로 발견한 사실. 의외로 도시엔 엄청나게 많은 자전거들이 이미 돌아다니고 있었다. 절름발이 연기를 하기 위해 절름발이 흉내를 내며 종로 바닥에 나갔더니 세상은 절름발이 천지더라는 어느 연극 연출가의 얘기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한강변이나 공원에만 있으리라 생각했던 자전거들이 도시의 주부심을 종횡하고 있었다(믿기지 않으시거든 오늘부터 유심히 거리를 살펴보시라. 오토바이도 많이만 자전거도 상당하다).
  주변의 충고들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울은 예상과는 달리 자전거를 타는 데 별 어려움이 없는 도시였다. 운전자들은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며 제 갈 길을 가는 자전거에 그리 적대적이지 않았다. 물론 공격적인 운전자가 없지는 않았다. 딱 한 번 클랙슨을 울리며 위협하는 운전자와 길에서 싸운 적이 있었는데 그는 자전거가 아예 차도에 나올 수도 없는 운송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러니 핏대를 올렸겠지). 그러나 경운기와 우마차도 다닐 수 있는 게 현행 도로 교통법상의 ‘도로’이며 자전거는 엄연히 자동차와 동일한 권리를 가진 ‘차마’다. 우마차에 비하면 자전거는 얼마나 멋진가. 자전거는 소나 말보다 싸면서도 거리에 똥무더기를 만들지도 않고 속도는 훨씬 빠르다. 뒷발질로 사람을 걷어차지도 않고 신호 대기 중인 차의 열린 차창으로 머리를 집어넣어 운전자의 얼굴을 핥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자전거를 미워한다면 그에게 분명 문제가 있다.
  “서울엔 언덕이 너무 많아서......”라고 말해준 사람들도 많았다. 그것도 별 문제는 아니었다. 서울엔 언덕도 많지만 개천도 많다. 자전거를 타면 자전거의 앵글로 도시를 다시 파악하게 된다. 예전엔 지름길이 어디인가를 고민했지만 자전거를 타게 되면서는 개천이 어디로 뻗어 있는가를 먼저 살피게 된다. 승용차를 타고 다닐 때에는 연희천이니 홍제천이니 불광천이니 하는 개천들을 좀 넓은 하수도쯤으로 여겼으나 요즘은 개천만큼 반가운 게 없다(개천에는 고개가 없다). 신촌과 우리집 사이엔 홍제천이 있고 양재동은 불광천-한강-양재천으로 이어진다. 자동차의 눈으로 보면 서울은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내부순환도로로 이루어진 도시이겠지만 자전거의 눈으로 보면 서울은 한강을 모태로 양재천, 탄천, 불광천, 중랑천으로 이어진 하천 도시다.
  물론 그래도 피해갈 수 없는 언덕들이 있다. 그렇지만 요즘 나오는 자전거들의 성능으로 볼 때 오를 수 없는 언덕들은 많지 않은 데다가 하체를 튼튼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자전거의 눈으로 보면 도시는 무표정한 콘크리트 괴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도시의 경사, 도시의 고도, 도시의 굴곡은 그대로 근육이 되어 육체 속에 새겨진다.

김영하 (2002). 포스트잇,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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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질주가 서울에 온지 3개월 정도 지났습니다. 저도 서울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자전거 타기 좋은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쭉 뻗은 한강변의 좋은 길이 있고, 한강의 지류천들에도 도로가 잘 나 있습니다. 일반 도로 위에서도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자전거를 배려해 주고, 자전거를 위협하지 않습니다. 물론 작가의 말처럼 가끔 몰상식한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제가 가장 놀란 것 중 하나는 바로 서울의 자동차 운전자들이었습니다. 원래 있던 곳에서는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면 다니는 중 절반은 운전자와의 전쟁에 힘을 쏟을 정도로 자전거를 배려하지 않고, 위협하는 사람이 꽤 있는 편입니다만, 서울에서는 참 편안하게 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그럼, 왈바분들, 오늘도 즐거운 라이딩 하시고 ~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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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 도시의 경사, 도시의 고도, 도시의 굴곡은 그대로 근육이 되어 육체 속에 새겨진다.

    멋진 글입니다... ^^
  • 그나마 서울에서는 자전거를 워낙 많이 접해서 그런지
    차량 운전자들의 인식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떨 땐 뒤에 오는 차량이 보호해 준다는 느낌을 받으며
    달릴 때도 있을 정도니까요. 서울 생활은 즐거우신가요?
  • 무한질주글쓴이
    2007.6.14 14:16 댓글추천 0비추천 0
    잠시잠깐 공부하러 올라 온 것이지만, 그나마 공부라도 할 수 있다는 걸 감사히 여기며, 즐겁게 공부하려 하고 있습니다. ^^
  • 김영하 소설 좋아하는데.. 동질감땜에 더 좋아지네요 "아마 사놓기만 하고 모셔두게 될 것"
    이라고 저도 주위사람들이 반대했는데.. 뭐가 잼있어서 아직도 타냐고 하시는 분들은 정말 타봐야만 알수있겠죠? ㅎㅎ
  • 우와 정말로 글을 위트있게 잘 쓰시는 것 같습니다...^^/
  • 하루일을 마감 해가며 여유롭고 즐거히 그리고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덕분에 김영하님을 검색해보고 알게 되었군요...^^::ㅎ
  • 좋은글 편히 미소짓고 갑니다....^^
  • 맞습니다.
    저는 수원에 살고 있는데, 운전자들의 매너가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을 느낍니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꾸준히 늘어온 자전거 인구가 중요한 요인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아지리라 기대하며, 보다 많은 분들과 함께 쉬지 않고 페달을 밟고 싶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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