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 고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것을 헤매인 다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의 기도/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 엽서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곳에 있는지를
가을 유서/류시화
가을에는 유서를 쓰리라
낙엽되어 버린 내 시작 노트 위에
마지막 눈 감은 새의 흰
눈꺼풀 위에
혼이 빠져 나간 곤충의 껍질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차가운 물고기의 내장과
갑자기 쌀쌀해진 애인의 목소리 위에
하룻밤새 하얗게 돌아서 버린 양치식물 위에
나 유서를 쓰리라
파종된 채 아직 땅 속에 묻혀 있는
몇 개의 둥근 씨앗들과
모래 속으로 가라앉는 바닷게의
고독한 시체 위에
앞일을 걱정하며 한숨짓는 이마 위에
가을엔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장 먼 곳에서
상처처럼 떨어지는 별똥별과
내 허약한 폐에 못을 박듯이 내리는 가을비와
가난한 자가 먹다 남긴 빵껍질 위에
지켜지지 못한 채 낯선 정류장에 머물러 있는
살아 있는 자들과의 약속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을이 오면 내 나비들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큰곰별자리에 둘러싸여 내 유서를
소리내어 읽으리라
시골/안도현
시골 가운데를 보면
다 논이네
보면 볼수록
황금빛 벼들이 반짝이네
그 반짝이는 속에서
허수아비 하나
아빠한테 벌 받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서있네
허수아비 멀찍히
미워할 수 없는 동생같은
참새들도
이번 만큼은 입만 맞추고 지나간다
가을은 사랑하기에 좋은 계절
시/김태광
우리 맞잡은 손에
땀을 나게 만들던 여름도
밤손님처럼 다가오는 가을에는
어쩔 수 없나보다.
가을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
더욱 생각나게 하는 힘이 있나보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보았던
너의 얼굴이 또 아른거리니.
괜 시리 방에 혼자 있으면
서랍을 뒤적거리기도
수첩을 꺼내보기도
이처럼 가을은 혼자 지내기엔
너무 아쉬움이 남는 계절인가 보다.
조금은 쌀쌀한 새벽에
너와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이슬 냄새나는 가을바람을 느끼고 싶다.
홀로 서있는
가로등의 불빛이 분위기를 더할 때
너와 입 맞추고 싶다.
가을은 이렇게 연인들의 마음을
가만 못 있게 하나보다.
가을시 겨울사랑/전재승
가을엔
시(詩)를 쓰고 싶다.
낡은 만년필에서 흘러
나오는
잉크빛보다
진하게
사랑의
오색 밀어(密語)들을
수놓으며
밤마다 너를 위하여
한 잔의 따뜻한 커피같은
시(詩)를
밤새도록 쓰고 싶다
가을날
-김현성
가을 햇살이 좋은 오후
내 사랑은 한때 여름 햇살 같았던 날이 있었네
푸르던 날이 물드는 날
나는 붉은물이 든 잎사귀가 되어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을 해야지
그대 오는 길목에서
불 붙은 산이 되어야지
그래서 다 타 버릴 때까지
햇살이 걷는 오후를 살아야지
그렇게 맹세하던 날들이 있었네
그런 맹세만으로
나는 가을 노을이 되었네
그 노을이 지는 것을 아무도 보지 않았네
시 월
-황동규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2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리.
두견이 우는 숲 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木琴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
3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한 탓이리.
4
아늬,
石燈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 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 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5
낡은 단청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히 비가
뿌려와서......
절 뒷울 안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 보면
낙엽 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켜지기 시작한 등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6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 고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것을 헤매인 다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의 기도/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 엽서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곳에 있는지를
가을 유서/류시화
가을에는 유서를 쓰리라
낙엽되어 버린 내 시작 노트 위에
마지막 눈 감은 새의 흰
눈꺼풀 위에
혼이 빠져 나간 곤충의 껍질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차가운 물고기의 내장과
갑자기 쌀쌀해진 애인의 목소리 위에
하룻밤새 하얗게 돌아서 버린 양치식물 위에
나 유서를 쓰리라
파종된 채 아직 땅 속에 묻혀 있는
몇 개의 둥근 씨앗들과
모래 속으로 가라앉는 바닷게의
고독한 시체 위에
앞일을 걱정하며 한숨짓는 이마 위에
가을엔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장 먼 곳에서
상처처럼 떨어지는 별똥별과
내 허약한 폐에 못을 박듯이 내리는 가을비와
가난한 자가 먹다 남긴 빵껍질 위에
지켜지지 못한 채 낯선 정류장에 머물러 있는
살아 있는 자들과의 약속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을이 오면 내 나비들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큰곰별자리에 둘러싸여 내 유서를
소리내어 읽으리라
시골/안도현
시골 가운데를 보면
다 논이네
보면 볼수록
황금빛 벼들이 반짝이네
그 반짝이는 속에서
허수아비 하나
아빠한테 벌 받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서있네
허수아비 멀찍히
미워할 수 없는 동생같은
참새들도
이번 만큼은 입만 맞추고 지나간다
가을은 사랑하기에 좋은 계절
시/김태광
우리 맞잡은 손에
땀을 나게 만들던 여름도
밤손님처럼 다가오는 가을에는
어쩔 수 없나보다.
가을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
더욱 생각나게 하는 힘이 있나보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보았던
너의 얼굴이 또 아른거리니.
괜 시리 방에 혼자 있으면
서랍을 뒤적거리기도
수첩을 꺼내보기도
이처럼 가을은 혼자 지내기엔
너무 아쉬움이 남는 계절인가 보다.
조금은 쌀쌀한 새벽에
너와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이슬 냄새나는 가을바람을 느끼고 싶다.
홀로 서있는
가로등의 불빛이 분위기를 더할 때
너와 입 맞추고 싶다.
가을은 이렇게 연인들의 마음을
가만 못 있게 하나보다.
가을시 겨울사랑/전재승
가을엔
시(詩)를 쓰고 싶다.
낡은 만년필에서 흘러
나오는
잉크빛보다
진하게
사랑의
오색 밀어(密語)들을
수놓으며
밤마다 너를 위하여
한 잔의 따뜻한 커피같은
시(詩)를
밤새도록 쓰고 싶다
가을날
-김현성
가을 햇살이 좋은 오후
내 사랑은 한때 여름 햇살 같았던 날이 있었네
푸르던 날이 물드는 날
나는 붉은물이 든 잎사귀가 되어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을 해야지
그대 오는 길목에서
불 붙은 산이 되어야지
그래서 다 타 버릴 때까지
햇살이 걷는 오후를 살아야지
그렇게 맹세하던 날들이 있었네
그런 맹세만으로
나는 가을 노을이 되었네
그 노을이 지는 것을 아무도 보지 않았네
시 월
-황동규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2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리.
두견이 우는 숲 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木琴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
3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한 탓이리.
4
아늬,
石燈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 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 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5
낡은 단청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히 비가
뿌려와서......
절 뒷울 안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 보면
낙엽 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켜지기 시작한 등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6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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