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탁군 휘하의 맹장인 화웅의 뛰어난 무공에
조조군을 위시한 제후 연합군의
장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갈 무렵,
"제가 화웅의 목을 베겠습니다"
라고 선뜻 나선 장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제후 연합군의 한 귀퉁이에
별 존재감 없이 유랑군처럼 속해 있던
유비군의 맹장 관운장이었으니...
무명의 장수가 시건방을 떤다며 격노하는
좌중의 수많은 장수들이 설왕설래하다가
결국 출전시키기로 정하고 관우에게 따뜻한 술 한 잔을 권하는데...
관우는 시건방(?)을 떨다 못해 한 술 더 떴다.
"이 술이 식기 전에 저 화웅의 목을 베고 돌아와 마시겠습니다"
결국 청룡언월도를 비껴들고 질풍같이 내달아
단 번에 화웅의 목을 베고 돌아와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술을 마셨다는 위의 이야기는 다섯 번을 읽은 삼국지의 유명한 대목이다.
심정이 뒤숭숭한 일이 있어 두어 달 잔차질을 못했다.
오랜만에 잔차복을 차려입고 두건을 쓰고 배낭을 메고 헬멧을 썼다.
예전에 거의 매일 오르던 산에 오를 참이었다.
그간 저녁을 먹은 뒤에 그저 평상복 반바지 차림으로
슬리퍼로 클릿페달을 설렁설렁 밟으며
평속 10 킬로미터 이하로 아파트 주위나 어슬렁거리다가
작심하고 출정을 하니 딸아이가 놀란다.
"아빠! 이제 자전거 타는 거야?"
"그래"
"지금 또띠아 만들고 있는데 드시고 가셈"
(또띠아: 멕시코 전통음식. 구운 밀가루 반죽 위에 닭 가슴살과
각종 야채를 얹어 커다란 시가처럼 말아서 먹는 음식- 맛있음 ㅡ.ㅡ;;;)
"엉? 그러냐? 지둘려라. 애비가 산에 휑하니 올라갔다가
식기 전..아니지(또띠아는 차다) 파리가 미처 앉기 전에
와서 먹으마"
진중을..아니, 현관을 나서서 질풍처럼 내달아
횡단보도를 건너서 산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할 때도 몰랐다.
안량과 문추의 대역인 산자락 초입과 맞닥뜨렸을 때
이상하게 발바닥에 통증이 밀려왔다.
"안량아! 문추야! 쬐깨 지둘려야 쓰것다!"
"왜?!!!!"
"그게 그러니까 말이다...급허게 오다 봉께로
거시기..청룡언월도를 집에다 놓고 오지 않았겄냐."
나간 지 오 분여도 안 돼서 현관문을 허겁지겁 열고
진채..아니 집으로 들어가니 딸아이가 놀라서 묻는다.
"허걱! 벌써 갔다 왔어?"
"아니..그게..거시기..언월도가..."
슬리퍼를 벗고 허둥지둥 클릿신발을 발에 꿰자니
"푸하하하하하하. 아빠 하는 일이 늘 그렇지? 큭큭큭"
"시끄럿! 이 정도면 평균치여..궁시렁궁시렁"
소심한 나와는 달리 가녀린 체구임에도
무척 대범한 성격의 큰누님이 계시는데
마흔 중반에 운전면허를 딴 이 누님이
면허증을 받은 그 다음날로 곧바로 차를 몰고
속초를 다녀와서 온 식구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었는데
이 누님이 하루는 꽤 비싼 신발을 신고
자형과 부부동반으로 유원지에 놀러가신 적이 있는데
누님께서 아는 분을 만나 운전석에 앉은 채
두 발을 땅에 내려놓고 그 분과 이야기하다가
더운 날씨에 이야기가 길어지자 신발을 벗고
그 위에 발을 얹고 이야기한 건 좋았는데
집에 돌아와서 내릴 때 보니
신발이 없이 맨발로 운전을 하고 왔더란다.
유원지 땅바닥을 현관으로 착각했던가 그대로 발만 올리곤
차 문을 닫고 출발하고는 계속 맨발로 운전을 하신 거다.ㅋㅋ
클릿페달을 슬리퍼로 내리 밟으며 산자락 초입까지 간
내 꼬라지나 맨발로 서울까지 운전하신 누님의 꼬라..아니 모습은
가히 집안의 자랑스러운 내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흠. (흑흑 퍽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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