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을 시킬 것인가 아니면 짬뽕을 시킬 것인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 선택의 기로에서의 고뇌는
꼬이고 꼬인 난맥상의 국정 앞에 선 위정자라도 되듯
나에겐 언제나 심각한 결단이 요구되는 난제 중의 난제다.
(잘났다)
고뇌 끝의 선택은 언제나 후회를 동반한다.
자장면을 선택하면 여지없이 옆사람이 시킨
짬뽕의 국물에서 풍겨나오는 얼큰하고 구수한 냄새가
폐부를 엄습한다.
'아..자장면이 아니었어..짬뽕을 시켰어야 하는데'
그러나 이 뼈저린(얼씨구)경험으로 훗날 짬뽕을 선택하게 되지만
'선택에 대한 후회'란 놈은 이 경우에도 결코 비켜가는 법이 없다.
자장면만이 가진 특유의 향을 풍기는 옆사람의 자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자면 입안 가득 침이 고이면서
애꿎은 짬뽕의 면발을 들었다 놓았다 헛젓가락질을
일삼기 때문이다
'아..왜 짬뽕을 선택했단 말인가. 결국 자장면이었나?"
이 모든 게 탐욕이렷다?
한 가지 맛을 진지하게 음미할 줄 모르고
모두 다 한 번에 맛보고 싶은 탐욕스런 인간이여...
각설하고,
풀샥이냐 하드테일이냐의 선택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난 풀샥의 느낌을 무척 좋아한다.
그것도 리어샥이 스프링으로 된 풀샥이 더 좋다.
기능적인 측면을 꼼꼼하게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에어샥보다 스프링샥을 더 좋아하는
독특한 취향을 설명하자면 길다.
언젠가 풀샥에 대한 지식이 전무할 때
프리차를 몇 달간 얻어탄 적이 있는데
하드테일을 타면서 불규칙한 노면을 달릴 때
'탕'하면서 강하게 전해져 오던 충격이
단지 '출렁'하는 느낌으로 부드럽게 변환되어
전해질 때의 느낌이란...
아직 싱글에서의 두려움이 무척 많던 시절,
(그렇다고 지금도 별반 나아진 기미는 없지만)
하드테일로 천보산에서 다운힐하다가
잭나이프로 나가떨어진 구간이 두어 군데 있었는데
어느날엔가 이 프리차를 끌고 거길 지나게 되었다.
내려오면서 '넘어진 곳이 어디쯤일까?' 생각하며
여차하면 이번엔 내릴 생각에 눈여겨 보며 내려왔었다.
결국 넘어진 장소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산아래까지
주르륵 내려와선 뒤를 따르던 갑장을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라? 먼저 제가 넘어진 곳이 어디죠? 코스가 달라졌나요?"
하고 물었더니 갑장께선
"아이고 청죽님. 자전거가 바뀌니 겁나게 내려가십디다. 하하하"
하는 것이 아닌가.
풍부한 뒷트래블과 더블크라운의 앞샥이
여차하면 내리려고까지 했던 두려움을 나도 모르게
없애준 것이다.
물론 풀샥의 독소적인 면도 많다.
적어도 내겐 로드에서의 고속 유지가 거의 불가능하다.
하드테일의 업힐 속도를 따라가려다간 퍼지기 딱 좋다.
그러나 로드에서는 '설렁설렁라이딩'이란 비장의 무기가 있고
업힐에서는 '엉금엉금라이딩'이란 전가의 보도가 있다.
이 두 부류의 강력한 무기는
주로 '홀로라이딩'이란 무대에서 사용함으로서
'민폐'의 위험을 원천봉쇄하고 있는 요즘이기는 하다.
(흑흑..풀샥이 재미 있고 좋은 걸 어떡해?)
이따금 전설이 보고 싶어 날이 어둑해지면 한강에 간다.
어린 시절, 깡촌에서 나고 자란 내겐
한 번도 보지 못한 한강은 전설이었다.
나이가 오십인 지금도 그저 막연한 관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어린 시절의 한강에 대한 전설이 아직도 나의 마음 한 곳에
생생하고 또렷하게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의정부를 출발하여 마음이 내키면 성산대교까지,
혹은 남쪽으로 건너 여의도까지 다녀오곤 하는데
가끔 인적이 드문 한산한 구간을 지나노라면
일천한 산악 라이딩 경력보다 아직은 훨씬 더 많은
잔차 이력의 전반부를 내내 달렸던 로드 라이딩 때의 혈기가
갑자기 솟아나면서 한 번 내쳐 달려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지만
유감스럽게도 풀샥이 가진 한계는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부실한 나의 다리에서 나온
알토란 같은 힘을 중간에 횡령하지 않고
구동계열을 통해 뒷바퀴에 정직하게도 고스란히 전달해 주던,
산에 푹 빠진 몇 달 동안 다소곳이 벽에 걸려 있는
강하고 충직한 나의 하드테일 애마 크로몰리가
그럴 때는 왜 그렇게 아쉽던지....
장거리 여행을 가면 필시 크로몰리로
부품을 이식해서 타고 갈 게 뻔하지만
평소 산에 갈 때와 로드를 탈 때를 맞추어
번갈아가며 수시로 부품을 이식하는 건 불가능하니
그저 형편이 풀려서 크로몰리를 따로 꾸미는 게 소박한 꿈이다.
직장을 잡는 대로 카드를 긁어 천만 원짜리 자전거를
내게 사 준다고 내내 큰소리를 쳐오던 아들놈이
"아부지! 그 땐 말유..지가 워낙 철이 없고
세상 물정을 제대로 몰라서 헛소리를 막 하고 그랬나 봐요"
하면서 취직한 지 몇 달 안 가서 단박에 부도를 내는 바람에
IMF 때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실의에 빠진 이래로
가장 큰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아빠! 걱정 마삼. 내가 크면 돈 많이 벌어서
아빠 자전거 종류별로 다 사 줄게..쿠하하"
하면서 정신적 공황에 다시 빠진 날 구해 준 딸아이가
엊그제 허연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엉? 이게 뭐냐?"
"음하하..내가 과외를 해서 벌었다는 거 아뉴..아빠 용돈유"
(애고~ 아직 아기로만 알던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컸누? 훌쩍~)
아무튼 또 각설하고
자장면이냐, 짬뽕이냐의 문제는
이 두 음식이 각기 독특한 별미를 지녔기에
늘 선택에서 밀려난 쪽을 아쉬워했듯이
내겐 풀샥이냐 하드테일이냐의 문제도
선호의 경중이나 우열의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나저나..주머니에 먼지만 풀썩풀썩 날리는 요즘이지만
장차 딸아이가 온갖 종류의 잔차를 사 주는 것에 대비해
자전거를 보관할 창고 자리나 물색해야겠다. 우히히)
-靑竹은 결코 철이 들지 않는다-
=3=33=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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