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빨간색이 밑둥에만 겨우 남았다.^^
재작년에 디카를 잃고 오늘 휴대폰을 잃었다.
생활자전거를 탈 땐 딸아이가 쓰다가 버리려고 내어 놓은
책가방을 배낭이랍시고 메고 다녔는데 그런대로 편리했었다.
산악자전거에 입문하게 되면서 빨간색 코나 배낭을 샀는데
색상도 마음에 들었고 오밀조밀한 수납 공간이 용도별로 많아
쓰면서 점점 정이 들어만 갔는데...
십여 년을 주야장천 엄청난 거리를
이놈을 거북이 등딱지처럼 등에 찰싹 붙이고
허구헌 날 싸돌아다니다 보니
그 예쁘던 빠알간 색은 강한 볕과 비바람에 바래서
배낭 윗부분은 칙칙하게 보기 싫은 색으로 변색된 건 물론이고
어깨끈과 옆구리 쪽에 있는 망으로 된 주머니에 있는 스판덱스는
늘어질대로 늘어져 수납물의 지킴 기능을 점점 상실해갔다.
배낭: 주인님! 저 이제 쉬고 싶소!
청죽: 엥? 아직 창창한 나이 아녀?
배낭: 이제 따가운 햇볓도 지겹고 엄동설한의 바람도 싫소!
게다가 주인님의 물건들을 붙잡을 힘도 이제 남아 있지
않단 말이오.
청죽: 그랴! 생각 좀 해 보자구.
그러나 손때가 잔뜩 밴 배낭에 대한 애착이 대단해서
그후로도 라이딩을 나갈 때마다 등딱지에 찰싹 붙이고
데리고 다녔는데 재작년에 배낭이 사고를 쳤다.
싱글 다운힐을 하다가 넘어졌는데
옆구리 주머니에 넣은 디카가 날아가는 걸
요 배낭이란 놈이 잡아 주지 않은 것이다.
사진도 찍지 않은데다가 다음날 라이딩도 없었기에
이틀이 지나서 카메라를 찾았지만 있을 리 만무였다.
속이 많이 상하고 언짢았지만 별다른 추궁은 하지 않았다.
다만 휴대폰을 자주 넣고 다니는 어깨끈 주머니에
페튜브를 잘라 둘러서 전화기기 빠지지 않게 만들었는데
오늘 도락산에서 전화기를 또 날리고 말았다.
(으흐흐흑, 딸아이가 준 건데..이녀석이)
물론 불찰은 내게 있다.
샘내 입구에서 마침 온 전화를 받고 통화를 하다가
고개만 하나 넘으면 불곡산장이 나오기에 거기서 쉴 생각으로
'조금만 더 가면 쉬는데 설마 그 사이에 빠지기야 하겠어?'
방심하며 고무 밴드를 두르지 않은 것이 불찰이었다.
불곡산장에 도착하니 배낭을 내리고 보니 전화기가 없다.
아이고~ 허둥지둥 오던 길을 되밟아 샅샅이 뒤졌지만
사람들과 차량들의 통행이 워낙 많은 길이다 보니
결국 전화기를 찾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모든 게 주인인 나의 불찰이지
사실 이 낡은 배낭의 잘못이 아니다.
그리 멀지 않을 훗날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날까지
잔뜩 빛바랜 이 배낭을 결코 버리지 못할 것 같다.
(지킬 것이 없어서 뱃속 편한 줄 알았더니
아직도 지킬 것들이 제법 남았던 건가? )
ps. 80년대는 그리 흔하지 않던 휴대폰을 잃으면
곧잘 주인을 찾아 주던데 요즘은 찾기가 어렵네요.
엘지 텔레콤에 갔더니 일요일이라 통화정지 신청도
안 된다고 합니다.
산길도 아니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동네 안에 있는
도로에서 잃었는데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도 않고..
어떡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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