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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

구름선비2010.08.17 22:21조회 수 1391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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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가 저녁식사를 밖에서 하자고 나가잡니다.

모처럼 추어탕이나 한 그릇씩 하면 어떻겠냐고~~

가끔 라이딩을 하다 들리게 된 집인데
그런대로 맛이 괜찮아서 몇 번 가 본 곳입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부른 배를 꺼트릴 목적으로 홍유능 산책로를 거쳐서 집에 가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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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여드레 반달이 환합니다.
하늘은 파랗고 별들이 눈에 띄면서 시원한 바람까지
한여름이 이제 작별할 시간인듯 합니다.

상가지역을 벗어나 돌 다리를 지나고 홍유능 광장을 지날 때까지는
환한 반달이 우리를 따라 오더니 산책로로 접어들면서
환하던 하늘은 점점 줄어들고 앞이 깜깜해 옵니다.

동네에서 가까운 숲이지만 꽤 오래 된 소나무 등 나무가 많은 곳이라
달빛이 들어오지 못하는거지요.

가는 마사토를 부어 놓은 산책로는 비가 내리면서 부드런 반죽이 되어 있습니다.
밟을 때마다 바닥에 닿는 감촉이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날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과외를 마치고 돌아오다보면 날은 어둡고 갈 길은 멀어
꽤나 뛰어 다녔습니다.
조숙한 편이라 키가 컸던 저는
실은 음력 섣달 마지막에 태어난 키 작은 동창녀석을 뒤에두고 
꽤나 앞서 달렸었죠.

저보다 겁이 많았던 녀석은 저에게서 떨어져 무서운 상황에 처하지 않기 위해서
죽도록 달렸구요.
그게 재미있어서 저는 더 달리고~~

고등학교를 다닐 때의 추억도 있습니다.
버스를 내려서 골짜기 집까지는 10리가 다 되는 거리였습니다.
깜깜한 고개마루에 내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는 가만히 땅에 앉아서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순서였습니다.
그렇게 한 참 하늘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나무의 실루엣에서 길까지
차차 적응이 되곤 하였죠.

좀 환한 곳은 물이 있는 곳이니
덜 환한 곳을 밟으며 집으로 갔습니다.


색이 능길이라 오래 된 소나무가 많습니다.
지난 3월 10일 폭설에 많은 나무들이 눈의 무게를 감당치 못하고 부러졌지만
그래도 소나무의 개체는 많아서
그런 소나무 숲과 단풍나무, 버드나무, 벗나무 등이 하늘을 가리는겁니다.

작은 언덕길
벤치가 있어 산책하는 사람들이 쉬는 곳엔
아무런 인기척도 없습니다.

늦은 시간도 아닌데 인적이 끊어졌습니다.

아무도 없는 길을 마누라와 손을 잡고 걷습니다.

살다보니 싸우기도 무던히 많이 싸웠고
그게 지금도 그렇지만
친구나 동료와는 다른게 마누라입니다.
그만큼 정이 들었고
서로에 대해서 미안해 하거나 안스러워하는 그런 사이라고나 할까요?

옛날 고향의 얘기며 사람들의 얘기를 하면서 걷습니다.

산책길은 건초냄새도 가득합니다.
아마 길가에 난 잡초를 베어 놓았을 겁니다.

건초냄새가 갖는 추억은 많지 않고
생각나는 것이 알퐁소 도데의 '별'과
브리지스의 '유월이 오면'이 전부라  아쉽습니다.
우리나라 문학에도 구수한 황토색 나는 글이 있을텐데
그걸 모르니 안타까울 뿐~~

난 폭설에 나무둥치가 중간이 꺾인 소나무가 있습니다.
거꾸로 V字가 되었지만 아직 잎은 죽지 않아서
묘한 모습인데 그래서 그런지 숲 사이에서 그 소나무가 유독 눈에 더 띱니다.
곧거나 혹은 제멋대로 생긴 재래종 소나무의 실루엣이 가끔보이고
그 자연스런 모습에서 더 애틋한 우리것에 대한 향수를 느낍니다.

비운의 왕세자,
영친왕의 묘를 지나서 두껍게 깔린 마사토를 훑고 지나간 물줄기의 흔적을 피하다보니
저쪽, 어쩌면 시민을 위한 배려일지도 모르는 가로등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안전을 위해서 설치한 가로등이겠지만
오늘 이 산책에서는 곱지 않아 보입니다.

약수터에서 물을 한 잔 마시고 집으로 향하는 길,
지나가다가 꼭 들여다 보는 전원주택
그 앞에 흰색 꽃이 나풀거립니다.

아무도 없겠지 하는 마음에 
코를 들이대고 한껏 맡아봅니다.

향이 뱃속에 가득찹니다.

두런두런 소리가 들리는데
그집 노인네 두 분입니다.

두 분도 달이 좋아 정원에 나왔답니다.
아니 안 노인네는 달이 좋아서 나온 것 같고
바깥 노인네는 장화를 신은 것을 보니 아직도 무언가 일을 하고계셨던 것 같습니다.

꿈꾸는 전원생활과 조경에 대해 몇 마디 나누고
조금 전에 맡았던 향기난 꽃이 옥잠화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더 높아보이는 아파트
내 집으로 향하는 발길이 가볍고

밝은 반달의 모습과

진한 옥잠화의 향기가 
눈 속과
머리 속에서 맴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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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
  • 어제 잠자기전

    누웠는데~~기분이 좋더라구요

    그전에는 누우면 땀으로 바닥을 적시곤했는데~~

    땀이나지않고 선선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열대야로 단련되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 stom(스탐)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10.8.19 01:13 댓글추천 0비추천 0

    이제 여름은 한 풀 꺾인 것 같습니다.
    세월을 어쩌지는 못하지요.

    여름이 가면 겨울 걱정이 앞섭니다.

  • 저 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 중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 위에 고요히 내려앉아 있노라고...

    스테파네트가 목동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자 목동의 뇌리에 스친 생각이었지요.

    사춘기 당시에 아주 큰 감흥을 준 문구라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

     

    시작은 저녁에 추어탕이었지만 역시 글이 길어짐에 또 한 편의 잔잔한 수필이...아침을 상쾌하게 해 주심에

    고맙습니다.^^

  • 십자수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10.8.19 01:14 댓글추천 0비추천 0

    그 글을 접할 때가 사춘기라서
    오래 가슴 속에 남아 있게 되나봅니다.

    소나기나 별이나~~

  • 주제는 반달이지만 그와 함께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아래로

    두 분이서 산책하시며 느끼시는 표현된 오감이 살아 숨쉬는 한 편의 엣세이로군요.

    혹 그 추어탕집은 3년전였던가요....선비님과 스탐님이랑 먹었던 그 추어탕집이 아닌지요?^^

    홍유능은,

    5월달에 백봉으로라이딩 갈 때 길을 잘못들어서는 바람에 잠깐 들렀는데 산책하기 좋은 곳 같습니다.

    늘...건강하십시요..^^

  • eyeinthesky7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10.8.19 01:14 댓글추천 0비추천 0

    그 추어탕집 맞습니다.
    동네에서 라이딩이 끝나고도 몇 번 갔었습니다.

  • 선비님.....

     

     

    참으로 수필인이십니다.

  • 뽀 스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10.8.19 01:15 댓글추천 0비추천 0

    수필까지야 되겠습니까?

    그냥 넋두리죠. ㅎㅎ

  •  선비님이 산책하신다던 그 주변 어디쯤에 저희 집이 있지요..

    아직은 이사 한지 얼마 되지않아 낯설긴 하지만...

    요즘...

    반달이 주는 그 운치는 제대로 느끼며 삽니다.

    별과 달과 자연의 모든 소리들과 함께 호흡하는 여기는요.......

     

  • 그대는 열정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10.8.20 17:33 댓글추천 0비추천 0

    안녕하세요?
    뽀스님이 말씀하시는 그 분이신가봅니다.
    남양주 참 좋은 곳이죠.

    언제 한 번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 나이가 들어갈 수록

    자식들이 이방인처럼 느껴질 수록

    마누라가 옆에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는군요.

    자다가 방귀를 뽕뽕 뀌어댈때는 눈이 찌푸러 지기도 하지만 ㅎㅎㅎ.... 

  • 탑돌이님께
    구름선비글쓴이
    2010.8.20 17:34 댓글추천 0비추천 0

    맞습니다.

    아이도 그렇고 부모나 형제, 직장 동료도 가지지 못한 것을 배우자라는 이름의 여자가 가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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