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린 듯 합니다.
머리가 띵하고 코가 약간 맹맹한 것이
감기의 전초 증상이 틀림없습니다.
운동복의 지퍼를 최대로 올려도 한기가 느껴지는 것이
아무래도 딸내미가 옮겨 준 듯 합니다.
낮에 잠을 잔 터라
또 잠이 들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한참을 음악을 듣다가 TV를 켰습니다.
콘서트7080이 나오더군요.
평소 자주 보는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면
옛날 추억을 되살릴 수 있어서 좋습니다.
배철수의 진행도 좀 아날로그적이어서
나이는 좀 많지만 같은 세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많은 공감이 갑니다.
오늘 초대가수 중에는 윤연선이 있었습니다.
오래 간만에 보는 가수라서
얼굴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이 가수를 보면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한창 사춘기때의 선생님,
국어 선생님이었는데
제가 국어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김영랑'의 '모란이피기까지는'을 배우던 중이었는데
그 선생님은 몇 사람에게 그 시를 읽게 하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세 번째 였든가 그랬는데
아마 그 쪽에 소질이 좀 있었던 것인지
제가 읽은 '모란이피기까지는'이 가장 마음에 드셨던 모양입니다.
책을 읽고 앉은 나에게 다가와서 어깨를 다독여 주셨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그 사건 이후로 시를 읽는 것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연예인 가정의 분이었는데
저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그 분의 모습은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여자같은 분위기입니다.
음성도 생각이 나지 않는데 자꾸 박인희의 목소리로 기억이됩니다.
학교를 졸업할 즈음
'목마와 숙녀'라는 시가 한창 인기가 있었는데
그 때 박인희의 음성과 선생님의 음성,
모딜리아니의 여인이 겹쳐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오빠는 배우 윤양하였고,
동생은 아까 노래를 부르던 윤연선이었습니다.
연예인에 대한 인식이 지금 같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가끔 동생 윤연선에 대해서 묻곤 했던 것 같은데
선생님은 그냥 미소만 지으실 뿐
자세한 얘기를 하신 기억은 없습니다.
몸이 상당히 약하셨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 쯤 결혼을 하셨는지
어떤 이유인지
우리의 졸업앨범엔 그 분의 사진이 없습니다.
사춘기 시골 소년이 보기엔
천사와 같은 분이셨고 나중에 나도 어른이 되면 저런 여인과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동경을 하게 했던 분!!
언제인지 그 분에 대한 생각이 나서
찾아 보니 외국에 이민을 가신 것으로 나와있었고
그 이후로 전혀 생각도 못했던 일인데
윤연선씨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니
옛 생각이 새록새록 감미롭습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봅니다.
7080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어려웠지만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고
그 생각에서 좀처럼 떠날 수 없으니말입니다.
지금도 아직 콘서트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밤은 쉬 잠들지 못할게 뻔하고
감기로 인한 몽롱함과 더불어
봄철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옛날의 기억을 더듬겠습니다.
선생님 어디계세요?
사진은 예전에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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