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하려고 드리는 말씀은 아니지만 보직을 저만큼 많이 바꾼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 같네요.
저는 본부대 전기공에 처음 보직을 받았다가 약간(?)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복지단 소속의
피돌이로 한 1년 근무하고 다시 px 고참들의 삥땅과 허위로 작성된 서류 조작 등으로 인해
공동책임을 지고 다시 본부대로 쫓겨 올라 왔는데 본부대 행정반의 고참이 절 어떻게 봤는지
이번엔 본부대 참모소대 인사처로 마침 사람이 비었다며 저를 추천하더군요.
거기서 맡은 보직은 사단 전체의 제급식을 담당하는 일이었는데 쌓아 둔 서류 더미와 퇴근을
해서 집에 와서도 그 눔의 서류들과 싸움을 벌이다 못해 결국 그것도 포기...
그래서, 다시 맡은 보직이 원래의 전기공이었습니다. 군생활이 참 파란만장하였지요...^^;;
하지만 이 전기공도 마찬가지...
어떻게 해서 겨우 받은 쫄따구가 힘들다며 손을 쓰더니 다른 부서로 재보직을 받더군요.
지가 받은 곳은 사단 주임원사실, 그리고 지 이모부가 어느 부대의 참모장이었다는 사실에
어떻게 보면 더 잘 된 일이라 생각하고 그냥 내버려 두기로 하였죠.
하지만 전기공 업무 상 혼자는 불가능한 일이 많은지라 쫄따구가 꼭 필요 했었는데 사람은
없고 그나마 겨우 구한 사람이 바로 위에 고참들이었는데 이 고참들 역시 기술이 없는지라
거의 모든 일을 저 혼자 할 수 밖에 없었죠. 제일 힘들었던 게 각 부서의 참모장 책상 위에서
형광등 안정기 갈아 끼우는 일이었습니다.
혹시 실수로 안정기가 책상 위로 떨어지는 날에는...@,.@;;;;
고참은 전기 먹을까봐 미리 짱박혀 있고 저는 혼자서 그 높은 데를 사다리도 없이 바둥바둥~
그 모든 게 저의 업보인 것 같았습니다.
처음부터 전기공으로 계속 있었으면 이 꼴은 당하지 않았을 터인데 하고 후회도 많이 했었죠..
그렇지만 저희 인사계께서 그런 저를 많이 감싸 주시더군요.
정말 어지간한 일에는 저를 빼시고 고참들과 쫄따구를 대신 써서 일을 시키곤 하셨는데
그 고참들이 저를 달갑게 볼 여지가 없지만서도 가끔 저의 본업(?)이 있는 날에는 어쨌던 잘
보여야 그날이 편하므로 저를 함부러 막 대할 수도 없었던 거죠...ㅋㅋ
그렇게 해서 18개월 동안 저의 파란만장한 군생활은 전역신고가 아닌 소집해제 신고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참고로 저는 창원 39사단 단기병(=방위) 출신입니다...ㅎㅎㅎ
참,, 앞서 말씀 드린 신병 시절에 그 불미스러운 일이란 제가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서 자고
있는데 부대에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답니다.
제 어머니는 이 밤 중에 어디 건방지게 말 함부러 하냐며 전화를 끊으셨는데 하필 그 전화는
다음 날 새벽에 부대 전체에 비상이 걸리니 일찍 출근하라는 고참의 전화였던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모른 체 혼자 느긋하게 출근하다가 고참들에게 걸려 비상이 풀리자 마자 워카발이
막 날라오고 이단 옆차기에 한따까리 야무지게하고 그렇게 px로 쫓겨간 것지요.
그때 절 한참 갈구던 고참들 보다 제 어머니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땅개!
아침에 일어나 산 2~3개 넘고 다시 한시간쯤 기어 들어와 밥먹고 다시 산 2~3개 넘고 저녁 먹으러 오고, 일주일에 2번은 야간에 산 넘어 다니고 이짓을 매일 같이 하는 교육사단
제대 말년엔 낮밤을 거꾸로 일주일간 생활하는데 나중엔 토요일 오후가 오전인지 오후인지 당췌.....
대대급,연대급,사단급,군단급,팀스피릿트, 유격, 전군 행군 측정한다고 63키로 11시간 주파하는거
한 20번 했나? 고생 뒤지게 하다 연대 정문에 들어올때 딴따라 연주하면 왜그리 울컥한지....
동계훈련때 반합들고 1시간 내려왔다 2시간쯤 올라가면 국이 꽝꽝 얼어서 숟가락으로 구멍뚫던 생각에 .... 다 헤진 군화 옆에 우유라면 봉지 속에대고 걷던 생각하며.....
삼원표찹쌀고추장, 왔다빵, 꽃다발 잊을 수 없는 이름들입니다.
제대하면 다시는 산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했는데
세월이 흘러 산악자전거를 타고 있으니 허참~
지겨운 콘나물에 두부국
결혼하고도 10년은 먹지 않았는데
이제 아구찜 콩나물이 생각나네요 ^^
공병대 일명 골병대라고 하죠...저희 사단 공병대 원사 이사가는 날 지원조로 나간 동기의 말에 의하면 양주만 두트럭 날랐다는...한마디로 "짜웅"이죠.
공병도 힘들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제일 힘들고 불쌍해보이고 제일 대접 못받았던 보직이
시설대 던데...항상 군복엔 페인트가 주름도 없고 전투화엔 역시 페인트가....
동기넘도 시설대라 관심있게 봤습니다만...사단내 온갖 잡일은 다하고 다니는듯 싶던데요
인사계한테 뻑하면 집합당해 굴리고 구박먹고 짬통하면 식당계한테 군복드럽다고 구박먹고...
보직이 상팔자죠...전 오리지널 땅개입니다..ㅠ.ㅠ
사회생활이 힘들면 괜실히 생각난다는 군대생활.
특전사 공수교육대 김기*중사, 정말 하리마오 같은 사람. 지금 생각해보면 나랑 나이도 별로
차이도 안나는데.. 교육생인 저한테 *천하에 기합빠지고 가장 약한 해x대라고" 정말 인간같지도 않았는데.. 수료후에 "저는 직업군인이기에 어쩔수 없이 하지만, 잠시왔다가는 귀관들은 정말 존경스럽다나 모나" 그래서 마지막에 친해지긴 했지만. 그땐 정말 이가 갈렸쬬.
01월 소한이 시작될때쯤 설한지 훈련이 기다립니다. 스키탄다고 정말 좋아 했다가 베이스캠프에서푹푹빠지는 산 6개넘고, 선착순만 신나게 하다가...얼음깨고 세수하고 좌욕하고 치질걸리고..
갑자기 대통령후보자들에게 훈련을 시키고 싶네요. 극복하고 이기는 자가 대통령이 되야 된다는
물론 교관은 공수교육대 김기*중사..
정말 따뜻한 우리집
정말 추운겨울날 고생하는 군바리 아자씨들 화이팅..
공병 출신 입니다
정확하게 삽자루 세개 부러지니 제대할 시간이 다 되었더군요
항상 작업 아니면 훈련..... 하지만 그래서인지 내무 생활은 편했습니다
물론 구타나 얼차려가 없지는 않았지만 군시절 옆동네 포병이나 헌병애들 이야기 들어보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사는지 안타까울 지경이었습니다
이젠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다시 경험하라면 절대 NO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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