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대국님께서 일정별로 잘 정리된 후기를 올려주셨습니다. 저와 초강대국님은 거의 같이 라이딩했으므로 유사한 내용이 많을 것입니다. 이 후기는 제 경험과 느낌을 중심으로 작성했습니다. 사진은 여러 곳에서 퍼와서 일일이 공지를 못함을 양해 바랍니다. 혹 문제가 되는 사진이 있으면 연락 주시면 삭제하겠습니다. 사진 제공하신 분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오래 기다리던 왈바랠리 공지가 떴다. 일자는 7월 11-12일! 1박 2일 동안 아무 생각없이 강원도의 웅장한 자연 속을 헤매는 왈바 랠리.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챙겨서 다니는 무지원 랠리. 지원조의 도움을 받거나 민가에서 숙박을 하거나 매식을 하면 실격처리되는 랠리. 주어진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길을 찾아가야 하며 때로는 길이 아닌 곳을 개척해서 가야하는 랠리. 자전거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며 자전거를 꼭 타고 다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자는 거친 랠리. 심장의 박동을 거칠게 울리는 공지가 떴다.
280랠리가 끝나고 2주 뒤에 개최된다. 1회와 2회의 고생을 생각하며 올해도 어김없이 고생해야 하는 코스가 있을 것이라 예측하면서 참가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약간 갈등을 했다. 오래 기다렸던 왈바랠리지만 막상 다시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회피하고 싶은 마음 반 참가하고 싶은 마음 반이었던 것이다. 280랠리 때 까진 엉덩이 상태를 보며 결정하자고 잠시 보류해 두었지만 마감 시간이 임박할수록 마음은 참가 쪽으로 강하게 끌리고 있었다. 다행히 엉덩이는 1주일 쯤 지나자 치유되었고 몸의 상태도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아서 왈바랠리를 신청했다.
우연히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된 일산에 사는 장고님 차로 집결지까지 함께 가게 되었다. 가는 도중 랠리와 라이딩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매우 친해졌다. 규정을 잘 지키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배려하려는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분이었다. 랠리에 참가하면 이렇게 돈보다 귀한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된다. 함께 고생한 분들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출발 장소는 수라리재 옆에 있는 삿갓봉. 두시가 못되어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식사를 하고 출발 준비를 했다. 새벽 3시부터 코스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참가자는 50명이 채 안되는 것 같다. 인원이 적은데다 몇몇 아는 사람도 있어 인사를 나누다보니 꼭 동호회 번개 모임에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코스가 그려진 지도는 접수할 때 받아보았다. 몇몇 사람들이 예상했던 대로 백두대간 코스가 들어있고 작년에 허벌나게 고생했다가 중간에서 나온 내리계곡 코스가 또 들어있다. 코스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숙영지 안내 등의 설명을 마치고 기념 사진을 찍고 준비를 갖춰 출발했다. 원래 출발 전에 등산화와 발열팩 준비 상태를 점검하고 준비가 미흡한 사람들은 탈락시킨다고 했는데 그런 무자비한 숙청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3시 40분께 출발해도 좋다는 사인이 떨어졌다. 빨리가는 것이 대수는 아니지만 홀로 떨어지면 길을 찾는데 애로가 많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비슷한 시각에 출발했다. 사방은 깜깜한 밤중이었다. 앞사람을 따라 빠르게 내리막길을 달리다가 임도로 접어들었다. 임도에 MTB코스라고 쓰인 팻말이 있었는데 바닥에 돌이 박혀있어서 울퉁불퉁 했고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었다. 게다가 임도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출입이 뜸한 곳이라 길가의 풀과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얼굴을 스쳤다. 오직 라이트에 의지하며 페달을 밟았다. 아직 힘이 있을 때라 모두들 페달을 밟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서서히 끌바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실 끌바나 타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그렇게 전진을 하다가 갈림길에 도착했다. MTB코스라는 팻말은 임도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우리가 가야할 길은 임도를 버리고 싱글길을 통해 망경대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길은 처음에는 약간 길의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점점 갈수록 수풀로 변했다. 앞에 가는 사람들이 길을 만들며 갔다. 뒤따라가는 우리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경사는 점점 가팔라지고 물먹은 흙 때문에 자꾸만 미끄러졌다. 게다가 나무뿌리가 중간중간 있어서 더욱 위험했다. 자전거는 끌 수 없는 상황이어서 모두 들춰 메고 있었다. 한참 올라가는데 주위가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먼 산 위에는 구름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운이 좋으면 망경대산에서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하! 운영진이 우리에게 일출의 장관을 선물하려고 이런 길도 없는 코스를 가게 했구나’라고 생각했다. 급경사가 끝나고 정상이 나타났다. 일출은 구름에 가려 볼 수 없었다. 아쉽지만 망경대산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하산했다.
먼저 올라온 사람은 기다려주지 않고 벌써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앞 사람들의 자국을 따라 자전거를 타다가 끌다가 하면서 하산을 했다. 제 1 체크포인트에서 체크를 하고 임도길을 신나게 달려 제 2 체크포인트까지 왔다. 제 2 체크포인트는 1포인트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아마도 도로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제2포인트를 지나니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나왔다. 산을 따라 구불구불 펼쳐진 포장도로를 따라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달렸다. 산 길에서 맞이하는 아침이 싱그러웠다. 도중에 길을 잘못 선택하여 잠깐 아래로 내려가기도 했다. 소위 말하는 ‘삑사리’인데 다른 랠리에서도 삑사리가 날 수 있지만 왈바랠리에서는 특히 많이 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적게는 한 두 번 많게는 여러 차례 삑사리가 난다. 왈바랠리는 출발 전에 코스가 담긴 지도를 나누어 주기 때문에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삑사리 난 거리가 짧다거나 평지일 때는 원코스로 복귀하는 것이 그런대로 쉽지만 경사가 심한 곳을 한참 내려간다든지 또는 긴 거리를 갔을 때는 체력 소모가 크고 시간을 많이 허비하는데다 맥이 풀리기 때문에 코스를 잘못 들어가는 것이 때로는 중도 포기와 직결되는 수도 있다. 작년 태백산에서는 지도를 소홀히 보고 내리막길을 신나게 내려 약 2킬로미터 정도 달렸는데 코스가 달랐다. 부쇠봉을 향해 가야 하는데 무심코 따라가다보니 문수봉 돌탱이 길을 간 것이다. 다시 2킬로미터를 올라가는데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던 기억이 났다. 힘은 힘대로 빠지고 시간은 두시간 가까이 허비했던 것이다.
길을 약간 잘못들었지만 그 길이 조금 내려가다가 막다른 길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도가 높은 곳이라 산 아래 마을이 까마득히 보였는데 만약 그곳까지 길이 있어서 내려갔더라면 다시 올라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원코스를 따라 가는데 조금 지나서 신나는 다운힐이 펼쳐졌다. 구불구불 돌면서 다운힐을 하는데 아주 재미있었다. 지도에는 빨간 라면가닥처럼 표시되어 있었다. 상당히 긴 길을 달려 내려왔다. 하동 갈림길에 도착하여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었다.
식사 후에 고지기재를 향해서 한참 업힐을 했다. 고지기재에서 김삿갓휴게소 가는 길은 또다시 신나는 다운힐이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달렸다. 김삿갓휴게소를 지나 미사교를 향해 계속 달려가는데 길에서 조금 떨어진 산 밑에는 맑은 옥동천이 흐르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수량이 많고 물흐름이 힘차고 웅장했다. 먼 옛날 방랑시인 김삿갓도 어린 시절 이 옥동천에서 멱을 감고 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주변 경치는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시절을 만나지 못해 천재성을 야담으로밖에 풀어내지 못한 김삿갓 그 이야기 하나 소개한다.
우리나라는 옛날에 ‘접빈’이라는 미풍양속이 있다. 인심이 사나워진 요즈음에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만 길손을 잘 접대하는 것이다. 이 접빈의 풍속 때문에 길가는 나그네는 어느 곳에서건 하룻밤 유숙을 청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날이 저물어 잠자리를 찾아야 하는 김삿갓이 어느 시골 서당에 도착했다. 오늘 밤에는 이 서당에서 하루 묵어가리라 생각하고 인기척을 내며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는데 서당 훈장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속으로 괘씸하게 여긴 김삿갓이 다음 한시를 지었다고 한다.(한시 음을 소리내어 읽어보시라)
書堂乃早知(서당내조지)- 서당을 일찍이 알고 찾았는데
房中皆尊物(방중개존물)- 방 안에는 모두 훌륭한 인물뿐이네
生徒諸未十(생도제미십)- 학생은 채 열 명이 안 되는데
先生來不謁(선생내불알)- 선생은 내다보지도 않네
길은 평지같은 아주 약한 오르막이었는데 한참을 달려가도 미사교가 보이지 않는다. 앞에 가는 사람을 하나 둘 추월하며 달려가다가 큰 다리가 나와서 이름을 보니 외룡교였다. 아뿔싸 또다시 삑사리가 난 것이었다. 지도에는 미사교 근처에 SK주유소 표시가 있어서 주유소만 찾으며 가다보니 예정된 곳보다 몇 킬로미터를 더 간 것이었다. 다시 유턴하여 이번에는 찬찬히 살펴가며 달렸다. 미사교를 찾았다. 산으로 진입하는 작은 계곡에 놓인 아주 작은 다리였다. 그 근처에 있어야할 주유소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예전에 주유소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도에 잘못이 있었던 것이다.
미사교에서 마을 주민에게 길을 물었다. 주민 말이 우리가 가고자하는 그곳은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길이 있어도 가고 없어도 가니까 걱정말라고 했다. 미사교 들머리에서 폐교가 된 와석분교까지는 시멘트 포장이 된 길이었다. 와석분교 근처에 보걸님이 체크를 하고 있었다. 지도에 표시된 체크포인트는 더 올라가야한다고 했다. 체크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누군가 ‘신바람님 어디갔다 오셨어요?’하고 반갑게 묻는다. 깜짝 놀라보니 태백에서 온 산비탈님이다. 작년 2회 랠리 때부터 알게 되었는데 올해 봄에 태백산 철쭉제에서 보고 이번에 또 보게 되었다. 워낙 잘 타고 강원도 길도 잘 아는 분이라 여러 가지 도움을 많이 받았다. 체크 포인트를 지나 올라가다가 표지판 하나를 보게 되었다. 이곳은 자연휴식년제가 적용되는 구역이어서 2009년 8월 31일까지 3년 동안 일반인 및 등산객의 출입을 금지하며 이를 어길 경우 2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고 했다. 아까 아래에서 마을 사람이 거기 가면 길도 없고 올라가면 안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 길은 지난 3년 동안 사람들 출입이 제한되었던 곳이다. 거기부터는 또다시 바닥에 돌이 박힌 임도였다. 풀도 무성하게 자라서 편안한 라이딩은 아니었다. 타다가 끌다가 하면서 옆에 같이 가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지MTB 초강대국님이었다. 상상님과 함께 온 분이었다. 초강대국님 이야기는 어떤 분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실제 만나니 반가웠다.
돌이 많고 풀이 무성하게 자랐으며 물이 고인 곳도 있는 임도를 한참 올라가니 갈림길이 있었다. 좌측길은 임도가 계속되고 우측길은 개울을 건너 길이 이어져 있었다. 지도를 살펴보니 우측길 같다. 개울물을 건너서 가기로 했다. 폭이 10여미터 되는 개울이었는데 깊이는 무릎 정도 되었으며 물이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다른 사람들은 물에 빠지는 것에 개의치 않고 자전거를 타고 건넜으나 나는 신발 젖는 것이 싫어서 신발을 벗고 걸어서 건넜다. 시간은 8시가 넘었다. 같이 가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 어떤 사람은 즉석 비빔밥으로 어떤 사람은 라면으로 각자 준비한 것으로 식사를 마치고 잠깐 쉬면서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그 사이 아래에서 식사를 마친 천안 sinawia님 팀 4명이 먼저 간다며 지나갔다. sinawia님과는 제 1회부터 같이 뛴 적이 있다. 1회 때는 혼자 와서 나와 만나 태기산을 헤맸고 작년 2회 때는 동호인 3명과 함께 와서 완주를 했다. 이분들이 모두 잘 타는 분들이다. 그리고 sinawia님은 GPS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가면서 길을 개척해 놓으라고 농담을 건넸다.
9시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출발을 했다. 계속 임도였으나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타고 가기에는 힘이 들었다. 체력을 허비하면 안 되기 때문에 조금만 힘든 곳이 있으면 미련없이 내려서 끌었다. 우리가 가는 임도에 비하면 지난 280랠리 양평 임도는 고속도로였다. 무감각하게 한참을 걸었다. 가는 도중 오른쪽으로 갈라진 길이 나온다. 앞사람들이 오른쪽 길로 올라간 흔적이 보인다. 그곳으로 접어들었다. 그 길은 2-300백 미터도 못가서 길이 없어지고 사람 키보다 더 큰 풀들이 우거져 있었다. 초강대국님과 상상님이 앞서서 가고 바로 뒤에 나와 장고님이 따라갔다. 나는 반쫄바지를 입었는데 풀잎이 스쳐서 이곳 저곳에 상처가 났다. 긴바지를 입었어야 하는데 아무 생각없이 반바지 입고 온 것이 후회되었다. 운영진에서 권장하여 평페달을 끼고 온사람들은 어래산길과 김삿갓 계곡을 가면서 평페달에 정강이를 많이 맞았다. 아마 군대에서 쪼인트 까인 듯한 느낌이었을 게다. 상상님은 아이들 인라인 탈 때 쓰는 아대를 차고 왔는데 그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길은 점점 거칠어지고 경사가 급해졌다. 게다가 관목이 빽빽하게 들어차서 자전거를 잡아당기는 통에 그것들을 헤치고 나가느라 힘이 들었다. 날은 더워지고 길이 맞는지 알 수 없는 불안감 속에서 풀과 나무를 헤치고 올라갔다. 얼마쯤 올랐을까 서서히 지쳐갈 무렵 능선이 보였다. 능선에 올라가니 살 것 같았다. 그런데 능선에도 길이 없다. 먼저 올라간 천안 sinawia님 팀 4명과 시흥에서 온 쓰리고 엠티비팀 4명 그리고 초강대국님과 상상님, 산비탈님, 장고님과 나 이렇게 13명이 모였다. 그곳에서 김삿갓 계곡으로 가는 등산로를 찾아야 하는데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지도를 펴 놓고 보아도 현재의 위치를 알 수 없으니 매우 답답했다. sinawia님과 산비탈님이 GPS를 가지고 있어서 작동시켜 보았지만 현재의 위치를 찾기가 매우 어려워서 우왕좌왕하다가 GPS를 따라서 길도 없는 곳으로 갔다. 조금 가다보니 조그만 등산로가 보였다. 이제 길을 찾았다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 길을 따라가다보니 길 같지도 않았다. 한참 가니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일단 사람의 흔적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자전거를 타고 갈 수는 없어서 작은 나무들을 헤치고 자전거를 끌고 가는데 앞 서 가던 산비탈님이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며 되돌아온다. GPS 상의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 sinawia님 일행은 어래산쪽으로 가서 방향을 다시 잡겠다고 그 쪽으로 갔다고 해서 남은 9명이 자연스럽게 일행이 되어 길을 찾았다. 길을 모르니 아까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갔다가 삼각점 근처에 다시 왔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니 매우 당황되었다. 뭐가 뭔지 모를 뒤죽박죽이 된 심정이었다. 빨리 내려가고 싶었으나 내려갈 길이 없다. GPS를 작동시키고 나침반을 이용하여 지도를 정치시킨 뒤 GPS에서 가리키는 현 위치를 중심으로 지도에서 우리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러면 우리가 진행해야 할 길은 삼각점에서 오른쪽인데 그곳은 길이 없었다. 산비탈님이 GPS에 그곳에 길이 있다고 되어 있으니 찾아보자고 해서 오른쪽 능선 부근을 뒤졌다. 조금 있다가 한 사람이 길을 찾았는데 3년 동안 등산객 출입이 제한되다보니 길이 낙엽에 덮이고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서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어쩌다가 하나씩 등산 리본이 달려 있어서 등산로임을 알게 되었는데 그 리본도 색이 바래고 낡아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찾기 어려웠다. 여하튼 길을 찾았으니 이 길을 따라가면 된다. 희망이 보였다. 길은 약간씩 타고 갈 수 있는 상태였으나 낙엽이 수북히 깔려서 조심스러웠고 군데군데 나무가 비스듬히 쓰러져 있어서 미끄러지기 쉬웠다.
<등산로에서 발견한 남자 나무 - 주위에 여자 나무가 없어서 저 상태래요 ㅋㅋ>
타다가 끌다가 잠시 쉬면서 파워겔이나 행동식을 먹으면서 충전을 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려 곰봉으로 가는 곳에 도달했다. 지도에는 곰봉으로 가면 안 된다고 했다. 도상으로 보면 왼쪽으로 길이 두 개 있어야 하는데 하나밖에 없다. 이미 지도에서 두어 차례 실패를 봤기 때문에 왼쪽 길로 가기로 했다. 조금 내려가자 길이 끝나고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있는 곳을 지나 계곡으로 서서히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그곳이 계곡인 줄도 몰랐으나 조금씩 내려가다보니 물이 흐르고 좌우 산이 높아져서 계곡으로 들어간 것을 알았다. 계곡에는 바위가 많고 길이 없어서 옆으로 올라가보려고 했으나 덩굴이 무성하게 자라서 헤치고 나갈 수가 없었다.
다시 올라갈 수도 없었다. 이대로 내려가야 한다. 능선에 있는 길을 찾으려고 주의깊게 살펴보니 산비털을 따라 사람 발 폭만한 길이 나 있어서 사람이 다닌 길인줄 알았는데 이게 산짐승들이 다닌 길이었다. 계곡 사이 바위를 이쪽으로 건너고 저쪽으로 건너는 사이 우리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나는 무리를 하면 나타나는 왼쪽 무릎 장경인대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280 때도 그 증세가 나타나서 매우 고생했는데 계속 내리막을 자전거를 들고 내려가다보니 그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건 나만이 아니라 초강대국님도 또 다른 분도 그런 증세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전거는 하나의 도구요 수단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계곡 물을 이쪽 저쪽으로 건너기 위해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자전거를 지팡이 대용으로 세워놓고 건너곤 했다. 앞에서 길을 헤치고 개척하며 가는 시흥 쓰리고 엠티비 회원들은 용감했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민가나 길은 보이지 않았다. 보일 기미도 없었다. 중간 중간 절벽에 가까운 비탈이 있어서 자전거를 몸에 붙이고 조심스럽게 움직인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그나마 시디 클릿 신발을 신고 오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운영진에서 내일 있을 내리계곡을 생각하고 클릿 신발은 절대 불허하며 등산화나 그에 준하는 신발을 착용하라고 했는데 나는 비록 클릿이 있지만 바닥이 등산화처럼 된 신발을 신고 있었고 일행 중 어떤 분은 이번 랠리를 위해 트래킹화같은 신발을 구입한 분도 있어서 신발 문제로 고생했던 사람은 없었다. 시디나 시마노 클릿 신발을 신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 험한 계곡을 어찌 내려왔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렇게 지루하고 힘든 길을 완전히 지쳐서 패잔병들같이 내려오는데 어느 곳에 머위가 무성하게 자란 것이 보였다. 머위는 민가에서 나물로 기르는 풀이라 그렇다면 이 근처가 옛날에는 집터였겠다고 생각하니 길도 바로 있을 것 같았다. 조금 더 내려오니 사람이 쌓은 축대가 계단식으로 되어 있었다. 예전에 이곳에 사람이 살다가 지금은 비어서 집은 흔적도 없고 축대만 남아 있는 것이다. 다행히 그 곁에 조그만 길을 발견하고 이제 살았구나 라는 안도를 했다. 그러나 그 안도도 잠시 길은 또다시 험한 계곡으로 이어졌다. 나중에 강원도 사정을 잘 아는 정병호님께 그 말씀을 드렸더니 축대 쌓은 곳은 옛날 화전민이 살았던 곳이고 그 곁에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있었는데 폭우가 내리면서 길들이 유실되어 그렇게 된 것이란다. 그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되었다. 더 이상 생각하기 싫다. 이제 아무 생각도 없다. 지친 몸을 이끌고 한 발 한 발 내려왔다.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 돌아갈 수도 없고 오직 이 계곡을 뚫고 내려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려가서 급류를 만나면 어떻게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게 내려가다보니 강가에 도달했다. 정말 힘들고 지루하고 위험한 길이었다. 우리 일행은 완전히 탈진 상태가 되었다. 강을 건너야했다.
강의 깊이는 허벅지에서 엉덩이 닿는 정도였다. 신발을 벗어 자전거를 들고 강을 건넜다. 강 건너 자갈밭에 몸을 부리고 한참 쉬었다. 오후 한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지도상으로 보면 그리 먼 거리는 아닌데 그곳을 빠져 나오는데 네 시간이 넘게 걸린 것이다. 물을 건너 오면서 지루한 계곡을 빠져 나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강물의 시원함이 온몸에 퍼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두 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나도 고체연료를 피워 라면을 끓이고 햇반을 말아서 먹었다. 밥을 먹고 나니 살 것 같았다.
두 시. 휴식을 취한 일행은 짐을 꾸려 다시 지도상에 그려진 코스를 따라갔다. 의풍교회 근처에 도착하여 식수를 보충하고 출발하는데 고치령 들어가는 입구 도로에서 홀릭님이 우릴 반겨주신다. 오이를 한 박스 가져오셨다. 구세주같다. 오이 하나를 먹고 두어 개를 배낭에 박아 넣는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우리 일행이 처음이란다. 천안 sinawia님 팀은 어래산 바로 아래로 내려와 버렸기 때문에 탈락 처리되어 먼저 대간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함께 고생했는데 매우 안타까웠다.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고치령으로 올라갔다. 고치령까지 약 8킬로미터쯤 될까 꾸준한 오르막이었다. 맨 앞에 선 산비탈님은 한 번도 내리지 않고 고치령까지 올라갔고(강원도의 힘) 나는 타고 가다가 심한 경사가 있는 곳에서는 체력 안배를 위해 끌바를 했다. 고치령 가는 길에 도 경계를 지나는데 경상북도 영주시 환영 표지판이 있었다. 우리는 강원도 충청북도 경상북도를 쓸고 다닌 것이다. 고치령에 가기 전에 샘물이 있어 시원한 물로 갈증을 달랬다. 고치령 정상에서 일행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오후 3시 40분경 백두대간으로 접어들었다. 이곳에서 마구령까지 약 8킬로미터 그리고 마구령에서 선달산 입구 늦은목이까지 약 6킬로미터를 달리면 험한 코스는 모두 끝난다. 고치령에서 백두대간으로 오르는데 처음에는 약간 심한 오르막이 있어서 매우 걱정했다. 계속 이런 길이 되면 큰일이구나 생각하며 묵묵히 진행을 했다.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라 휴식 시간이 많아졌다. 끌고 올라가면서도 어래산 코스가 떠올라 모두들 백두대간은 어래산에 비하면 비단길이라는 말들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가 어느 부분인가부터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완만한 오르막 내리막 싱글길이 계속되었는데 라이딩을 하기 아주 좋았다. 어래산의 힘든 일을 보상받는 것 같았다. 무릎의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걱정을 했는데 타고 가기 좋은 길이어서 안심을 했다. 길은 마치 오디랠리 싱글 코스 같은 느낌을 주었다. 즐기면서 탈 수 있는 코스였다. 가다가 쉬면서 내가 제안을 했다. 힘든 코스를 함께 돌파한 동지인데 서로 인사나 트자고 하여 소속 동호회 닉네임을 밝히며 자기 소개를 하고 꼭 완주를 하자고 다짐하고 다시 출발했다. 1096미터되는 가장 높은 곳을 지나 내리막길은 하루의 피로를 모두 보상하고 남을 정도로 스릴있고 좋았다. 마구령에 도착했다. 체크 포인트4 이다. 시간은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잠시 물을 마시고 쉬는데 빗방울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일 쯤에나 온다던 비가 오늘 밤부터 내럴 것이라고 한다. 왈바랠리의 최대 변수는 날씨라는 말이 이번에도 맞아 떨어지는가보다. 그나저나 이제부터 날이 흐리니 빨리 어두워질 것이고 빛이 있을 때 늦은목이까지 당도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늦은목이까지는 5.9킬로미터 남았는데 지도상으로 보니 우리가 지나온 것처럼 1000고지가 하나 있고 나머지는 내리막이다. 지나온 길을 생각하니 이정도 길이야 아무것도 아닐 것 같았다. 비가 더 오기 전에 날이 더 저물기 전에 서둘러 가야한다. 그런데 갑자기 지금까지 잘 따라온 장고님이 자기는 탈진했으니 여기서 접어야겠다고 한다. 아! 그 개고생을 해 놓고 이제 조금만 가면 야영지이고 오늘 저녁 휴식을 취하고 나면 내일 또 힘이 날 텐데 여기서 포기하다니 안 될 말이다. 조금만 힘을 내서 가자고 절대 포기하지 말자고 장고님을 설득했다. 그러자 그러면 우리더러 먼저 가란다. 자기는 자기 페이스 조절하며 따라오겠단다. 그렇게 하라고 장고님을 뒤로 남기고 8명이 출발을 했다. 고개까지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가야겠지. 앞에 놓인 커다란 산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묵묵히 끌고 올랐다. 한참 올라가는데 빗방울이 굵어진다. 우의겸 방풍점퍼를 꺼내 입었다. 비를 맞으면 체온이 떨어져 저체온증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르막 후에 잠깐 내리막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 길은 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곳에 내리막을 만나는 것은 반갑지 않다. 차라리 1000고지까지 꾸준히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것이 훨씬 났다. 그런데 내리막길이다. 그것도 급경사. 그곳을 내려 또 올라가니 이번에는 절벽같은 내리막이다. 장경인대는 내리막길 갈 때가 더 아프다. 속된 말로 내리막길은 쥐약이다. 내리막길을 디딜 때마다 송곳으로 쿡 찌르는 것 같아 절로 비명이 나올 정도다. 바위길을 겨우 끌고 내려오자 다시 바위길을 끌고 올라가야 한다. 왈바랠리에 이런 코스가 없으면 말이 안 되지. 즐기자고 왔으면서도 속으로 욕이 나왔다. 그렇지만 이 또한 추억 아니냐. 왈바랠리 아니면 이 개고생을 언제 할 수 있느냐는 말로 나를 위로하고 달랬다. 일행은 천천히 전진했다. 우리도 이렇게 가는데 거의 탈진한 장고님은 어떻게 오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 코스는 고치령에서 마구령 코스와는 크게 달랐다. 모두들 힘이 빠져 고생을 했다. 내가 앞장을 섰는데 어두워지기 전에 산속을 벗어나자는 마음으로 조금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언제쯤 1000고지를 넘어서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 야트막한 능선을 올랐더니 앞에 높은 곳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뒤따라 오던 산비탈님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앗싸’하고 환호를 한다. 내가 ‘우리 그럼 1000고지를 넘은 건가요?’하고 묻자 일단 주변에 더 높은 산이 안 보이니 그런 것 아니겠냐고 대답을 했다. 믿기지 않았지만 그렇게 1000고지를 넘었다. 시간은 오후 7시가 넘어가고 주변은 차츰 어두워졌다. 어느 정도 내려오자 자전거를 탈만한 싱글길이 꾸준히 이어졌다. 계속 내리막길이어서 속도를 내어 달렸다. 뒤에 바로 산비탈님이 따라오고 다른 일행은 조금 떨어졌다. 어차피 길은 한 길이고 라이트를 켜기 전에 빨리 벗어나자고 생각하며 산비탈님과 달려 내려갔다. 늦은목이를 2-3킬로 남겨 놓고 주위가 어두워서 라이트를 켰는데 내 라이트가 빛이 약했다. 바닥은 미끄럽고 앞은 잘 안 보여서 산비탈님을 먼저 가라고 하고 그 뒤를 따랐다. 비가 오지 않고 날이 밝았으면 상당히 재미있을 코스인데 어두운데다가 비에 젖어 미끄러워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조심조심 탔다. 그렇게 늦은목이에 도착했다. 작년 랠리 때 혼자 늦은목이를 거쳐 선달산에 올랐던 일을 생각하며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내려갔다. 작년 기억을 더듬으며 조금만 내려가면 도로를 만날 줄 알았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나무 계단 돌 계단에 좁은 길을 조심스레 내려갔는데 겨우 도로를 만나서 표지판을 보니 늦은목이까지 1킬로미터였다. 어쨋튼 도로에 내려오자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도로를 신나게 달려 야영지인 오전약수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이 처음이었다. 시간은 오후 8시 45분쯤이었다. 일행 8명이 무사히 들어왔다.
오전약수터 주차장에서 야영을 하도록 했는데 비가 내리니 마음이 심란했다. 한참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장고님께 전화를 했다. 전원이 꺼져 있었다. 탈진한 상태로 그 험한 길을 접어들었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하고 있는데 9시가 넘어 장고님이 혼자 들어왔다. 너무 반갑고 포기하지 않고 들어온 것이 고마웠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그만 접고 포기하려고 하는데 애초 집결지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려고 지도를 봤더니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냥 진행하는 것이 훨씬 가까워서 그냥 진행을 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반가웠다. 이렇게 해서 우연히 일행이 된 9명이 첫날 야영지까지 무사히 완주를 했다.
운영본부 천막에서 배낭을 벗어놓고 만사가 귀찮아서 가만히 있는데 뽀스님과 운영요원이 따뜻한 국물이나 마시라며 라면을 끓여 주었다.(뽀스님 정말 고마웠습니다. 제가 저녁에 먹으려고 준비한 삼계탕이 있었는데 그걸 드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가 라면을 먹고나니 그만 아무 정신이 없어서 배낭에서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장고님과 함께 라면을 먹었다. 군대 시절의 라면맛이 다시 살아났다. 따뜻한 라면 국물이 그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 라면을 먹고 나니 오로지 자고 싶었지만 비가 와서 텐트를 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다른 방도가 없어 한참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비와 땀에 젖은 몸이 와들와들 떨려온다. 급히 가스렌지를 피워 손을 쬐었지만 조금 낫기는 하지만 여전히 춥다. 산속에서 이런 상태가 되면 위태롭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한 발열팩을 몸에 붙였지만 그리 금방 따뜻해지지는 않는다. 조금 있으가 장고님이 다가오더니 저 아래 약수터 근처 버스정류장에 초강대국님이 자리를 폈는데 비도 피할 수 있고 좋다고 했다. 그리고 그 옆 가게 근처에 평상이 있는데 그곳은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함석 지붕을 쳐 놓았으니 그곳에 텐트를 치면 어떻겠냐고 했다. 함께 가보자고 했다. 가서 보니 딱 좋았다.
<하늘이 내려준 야영지>
바로 텐트를 치고 버스 정류장을 보니 초강대국님과 상상님 그리고 야영지 지원을 나온 같은 팀 한 분 이렇게 셋이서 삼겹살을 구워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도 거기에 끼어 소주를 몇 잔 마셨다. 그리고 운영진에 가서 우리가 가게 근처에 텐트를 쳤다고 말하고 화장실에서 손발 세수 간단히 하고 옷을 갈아입고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장고님은 벌써 자는 것 같았다. 돗자리 간이침낭(보고픈님이 올린 사진을 보고 제작한 것) 속으로 들어가니 보온이 잘 되어 훈훈하고 좋았다. 바로 잠에 빠져 들었다.
투두두둑 요란한 소리에 잠이 깨었다. 시간은 3시 조금 넘었다. 아침 5시에 출발한다고 했으니 4시쯤 일어나 밥을 먹고 준비해야 하는데 비가 이렇게 오니 5시 출발은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잠을 더 청했다. 그러다가 5시 반이 지나서 깨어 빗소리를 듣다가(밤새 비가 엄청 내렸다. 지붕이 함석이어서 빗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상황과 일정을 알아보기 위해 본부에 갔다. 홀릭님이 서 있었다. 마지막 팀이 새벽 4시 45분에 들어왔다고 한다. 마구령 체크포인트에서 밤새도록 기다렸는데 너무 추워 핫팩 14개를 온몸에 붙였단다. 지랄같은 코스를 만나면 참가자들은 욕하면서 스트레스를 풀면되지만 운영진은 누구에게 하소연도 하지 못하고 고생이 많다. 그래서 좋든 싫든 어떤 대회에서거나 나는 운영진에게는 절대 욕을 하지 않는다. 그런 자리를 만들어준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오늘 일정을 물었더니 오늘 진행하기로 한 내리계곡의 물이 불어서 상황이 유동적이라고 한다. 내리계곡은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두 가지 마음이 교차했다. 이왕 시작한 것이니 원코스대로 내리계곡을 훑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과 그냥 편하게 도로로 갔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서로 엉켰다. 주어지는 대로 따르리라 생각하고 있는데 식사를 마치고 출발 준비를 하라고 했다. 텐트에 들어와 어제 벗어놓은 젖은 옷을 입으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 내가 입은 옷이지만 땀냄새가 역겨웠다. 정말 입기 싫었다. 그렇지만 따로 준비한 옷이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끈적거리고 냄새나고 축축한 옷을 입었다. 라면과 햇반으로 아침 식사를 마쳤다. 식사 중 헤르메스님이 안동 소주를 가져왔는데 컵이 없어 국자에 따라 두어 잔 마셨다. 이름하여 국자주
홀릭님의 결단이 내려졌다. 내리계곡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아 내리계곡을 생략하고 도로를 타고 집결지인 목표 지점으로 간다는 것이다. 오늘 도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총 14명인데 어젯밤 늦게 들어온 사람들은 더 쉬었다가 출발한다고 하여 어제의 용사들 9명이 1차로 출발하였다. 오늘은 어제에 비해 매우 수월한 코스였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내리계곡이 생략되어 몸은 편하지만 마음이 그리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왼쪽부터 나, 산비탈님, 장고님, 초강대국님, 상상님
오전 약수터에서 경사가 급한 도로를 꾸준히 올라가서 박달령 가는 임도로 접어들었다. 비는 계속 쏟아졌다. 비에 젖은 경치가 멋졌다. 이런 랠리 아니면 이 우중에 누가 라이딩을 하랴. 시흥 쓰리고 엠티비 분들은 군용 판쵸우의 같은 것을 걸쳤는데 말 그대로 특전사MTB 같아서 한바탕 웃었다. 박달령 임도는 꾸준한 오르막이다. 구불구불한 길을 계속 페달을 밟았다. 체력을 아끼기 위해 끌바를 하는 분도 있었는데 오늘은 오전 중에 끝날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체력 안배를 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선두에서 달렸는데 박달령에 도착하기 전 길에 갑자기 고라니가 출현했다. 그래서 소리를 지르며 몰았더니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10여미터를 달리다가 계곡 쪽으로 내려갔다.
박달령에 도착했다. 정자에서 쉬면서 사진을 찍었다.
이제 꽤 긴거리 내리막이다.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내리막길을 간다. 내 자전거는 브레이크 패드가 많이 닳아서 조심해서 내려갔다. 신나기는 하지만 길바닥에 물이 줄줄 흐르고 패인 곳이 많아서 조심스러웠다. 작년에 2.3의 토토님과 신나게 달렸던 길이다. 조제분교까지 도착해서 포장도로를 타고 달렸다. 작년에 날이 저물고 비가 쏟아져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엄청나게 고생했던 내리천을 바라보았다. 간밤의 비에 물이 크게 불어서 무섭게 흘러가고 있었다. 처음 지도를 받았을 때 이번에는 낮에 내리계곡을 갈 수 있구나 라는 생각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하늘이 말리는 것을 어떡하랴. 아쉬움을 남기고 원골재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강원도 업힐은 한 번 시작하면 끝이 보이지 않는데 이 원골재 가는 업힐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에는 장대같은 비를 맞으며 정신없이 달려서 거리 감각이 없었는데 오늘 보니 꽤 긴 거리였다. 원골재를 지나 내리계곡 야영지까지 신나는 내리막길이다. 모두 안전 라이딩을 하며 무사히 내려와 직진을 했다. 어제 삑사리 났던 외룡교에 도착하여 건너지 않고 마을을 거쳐 종착점인 삿갓봉을 향해 올랐다. 산비탈님의 설명에 의하면 이전까지 임도였다고 하는데 정병호님이 포장되었다고 알려주어서 편한 마음으로 라이딩을 했다. 차량이 없는 한적한 길을 꾸준히 오르다가 어느 계곡물이 내려오는 길에서 자전거와 몸을 씻었다. 종착점에 깔끔하게 하고 가야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신발도 닦고 자전거도 닦고 세수도 하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조금 가니까 삼각형의 뾰족한 봉우리가 보였다. 저곳이 삿갓봉이 아닐까 했더니 옆에 가던 상상님이 한참 더 가야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오르막을 조금 오르자 우리 집결지인 삿갓봉이 나왔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오게 되어 약간 얼떨떨했다. 이렇게 우리는 완주했다.
완주 메달을 받고 14명 모두 경품을 받았다. 완주도 기분이 좋은데 경품까지 받고 보니 기분 100배 up.
함께 완주한 14명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완주를 못하신 분들 너무 아쉽습니다. 완주의 기쁨을 함께 누렸으면 좋았을 텐데. 부상을 당하신 분들이 몇 분 계시다고 들었는데 쾌유를 빕니다. 함께 달렸던 분들 얼굴 뵙고 닉네임을 알게 된 분들, 도움을 주신 분들께 고마운 말씀 전합니다.
끝으로 이런 좋은 행사를 기획하고 무사히 진행할 수 있도록 애써 주신 홀릭님을 비롯한 운영진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리며 늘 안전하고 즐거운 라이딩 되시길 빕니다.
정병호님 왈 ‘내년에 또 오실 거예요?’, ‘아이구 이제 그만 올래요’라고 답했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 또 다시 랠리를 기다리는 나를 발견한다. 못말리는 병이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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