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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일주]

........2000.03.12 01:39조회 수 1190추천 수 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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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 일주 ]]]]]

가끔 나는 민족주의자가 되는 모양이다.
애국가에 가슴 벅찬 적도 있고 아무리 미운 대통령도 외국순방길에
오르면 속으로 잘 다녀오라고 빈다. 그런 내가 두번째 자전거
투어로 결정한 것은 바로 역사와 충절의 고향 –강화도 다
10월초 라지만 이미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고 해도 많이
짧아 진 본격적인 가을이다.

기간: 1999년 10월 8일~ 9일 1박2일
총 이동거리: 너무 짧아서 재지 않음

전날 까지만 해도 난 강화투어를 생각지도 않았다.
안개가 자욱한 아침에 문득, 자전거로 어딘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베낭과 카메라만 들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물론 돈 조금하고.
내가 사는 곳이 강서구 이기 때문에 불과 15분만에 서울을 벗어난다.
조금 정신없게 달리는 차들 틈을 헤집고 다니며 김포가도에 들어선
시간이 11시 20분 정도였다. 초보라서 그런지 난 자동차를 아주 우습게
여기고 끼어들기며 앞지르기를 상습적으로 한다. 하지만 이건 내탓만
할게 못된다. 자전거로 제대로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얼마나 될까.
김포가도의 그 무지막지한 차량대열을 비웃으며 오늘도 열심히 내달렸다.
1시간 반 정도를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김포를 지나 월곳 근처 휴게소에서
자장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우회도로가 생겨 길은 좋아졌지만 차량이 많아
소음이 무척 심하다. 강화쪽으로 향할수록 차량은 줄어들긴하지만
대형차량의 위협적인 질주는 내내 긴장케 했다. 해병2사단이 보이고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하더니 이내 햇볕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자전거로 달리는데 뜨거운 햇볕은 큰 장애지만 그래도 꾸물꾸물한
날씨 보다는 화창한게 백번 낫다. 새로 생긴 강화대교를 건너
읍내로 들어섰다. 시골읍의 풍경이다. 버스터미널…신호등없는 삼거리….
첫번째로 난 고려궁지를 찾았다. 32년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대몽고 항전을 했던 수난의 역사 현장.(고려고종1213-1259)
조선 병자호란때 도 함락 당하는 등, 예사롭지 않은 강화도의 역사를
첫 방문지에서 경험했다. 신혼부부의 닭살 포즈 옆에 지금은 빈터만
남은 고려의 궁지….나는 예외없이 다시 애국심을 불태웠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강화도는 새롭게 단장하지만
그 아픈 흔적은 숨길수 없이 곳곳에 베어 있었다.
강화읍을 벗어나 서쪽 길로 달렸다. 강화도 정도의 섬과 내용이라면
2박3일은 잡아야 겠지만 1박2일로 다 돌기 위해 몇군데 가보지 않은
곳만 집중적으로 선택했다. 때론 바람을 안기도 하고 때론 등지기도
하며 도착한 곳은 오층석탑-
보물10호로 지정된 고려시대 석탑으로 보물치고는 보존상태나 관리면에서
정말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산속에 방치되다시피한 세련되지 않은 석탑이 주는
세월의 흔적은 강화 일주 내내 본 여러 유물이나 유적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음으로 달려간 곳은 그토록 가보고 싶어 했던 강화 지석묘.
청동기 시대 남한 최대 북방식 지석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재로 지정키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바로 그 곳. 어릴 때 교과서에서 봤던 그 고인돌 앞에서
엄청난 감동까지………사진을 한장 박은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탔다.
황금빛 들녁, 역광에 부서지는 들판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이었다.
들녁을 가득 메우고 서 있는 전봇대의 무리는 장관이었다. 길을 꺽어 외포리
쪽으로 향했다. 지난 전국일주에선 오르막길이 나의 적이었다면 이번 강화도는
바람이 나의 적이었다. 적군의 빗발치는 저항을 뚫고 외포리로 가는 고개 마루에서
두어명의 도로 사이클 선수를 만났다.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자전거에 고글…
그리고 늘씬 쭉쭉 빵빵한 체격의 선수들….얼릉 자세를 낮춰 오르막길을 재촉했다.
산길을 달릴 때야 비로소 여기가 전국체전이 열리는 곳이라는 현수막을 보고
알았다.
외포리….언제 와도 매력적인 곳……보문사로 들어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며
우유를 사서 마셨다. 처음 저전거로 건너보는 뱃길….이윽고 배가 들어오고
난 배 맨 앞쪽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배 위로 올라갔다. 갈매기때가 배
꽁무니를 따라오고 누군가가 던지는 새우깡을 서로 먹기위해 한바탕
아단법석이다. 생각보다 멀리 간다.
쿵!!
배가 닿자마자 난 엉덩이를 덜썩거리며 선착장을 빠져나왔다. 조그마한 장터 같은
선착장 주변은 식당의 호객행위로 약간 시끄럽다. 배가 고프다. 비빔밥도 먹고
또 이 작은 섬에 대해 물어도 볼 겸 해서 가까운 식당에 들어갔다.
보문사는 일주도로의 중간 즈음에 위치해있어 어느쪽으로 가든 비슷해보이는
길이지만 왼쪽으로 가는 편이 훨씬 수훨하다는 주인의 말에 난 고민하지 않고
그 길을 택했다. 조금 가자마자 오르막이 시작됐다. 헉!! 이렇게 작은 섬에
이런 오르막길이 있다니….몇번의 고개를 돌자 정상이 나오고 서해 저편의 바다를
향해 나달았다. 가파르고 긴 오르막 짧은 내리막……작은 마을을 지나자
길고 지루한 일주도로가 이어진다. 드문드문 보이는 횟집..민박…오늘의 목적지자
1박의 장소는 보문사 근처…해가 지기전에 보문사에라도 다녀올려면 서둘러야 한다.
힘이 든다. 역시 최근 게을리한 체력단련이 이렇게 금방 피로로 그 결과를…..
허벅지에 통증이 생긴다. 참을 만하다. 몇번의 모퉁이를 돌자 보문사 입구인 듯한
집들이 멀리서 보인다. 여관도 있고.
경상도 말씨…전라고 말씨….관광온 아주머니들의 대화가 재밌다.
그리고 강화읍과 외포리에서도 지겹도록 본 새우젖장수가 여기도 진을 치고
있다. 토요일이라 여관에 방이 없단 소리에 잠시 당혹스러웠다. 민박을 찾았다.
통나무집……아기자기한 민박집을 찾았다. 1박이라 숙박료를 깍을 맘은
애시당초 없었던 터라 암말없이 들어갔다. 간단히 짐을 풀고 자전거도 잘 묶고
바로 보문사로 향했다. 해는 이미 서쪽 바다로 떨어지고있었다.
작은 섬이라 그런지 여유가 없다. 절 입구부터 가파른 지형이다. 천연동굴의 석실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안내책자에 나와있는 눈썹바위로 향했다. 오르는 돌 계단이
장난이 아니다. 잘 만들어진 돌 계단이지만 그 수가 수백계단은 될 정도로
한참을 걸어 올랐다. 눈썹바위에 새겨진 관음보살상을 보며 어떻게 저런델…..라며
넋을 놓고 바라보다 설명이 적힌 안내판을 보곤 실망을 금치 못했다. 제작 연도가
1928년 이란다. 그래서 문화적 가치는 없고 관광적 가치만 있단다…..
내려올때 즈음 해는 지고 어둠이 깔린다. 식당도 문을 닿고 그 붐비던 새우젖
노점도 다 철시했다. 하는 수 없이 사발면과 참치를 사 들고 숙소로 왔다.
창 너머로 풀벌레 소리, 시원한 바람, 쾌쾌한 민박집 냄새….이 모든 것들,
서울이라는 동네선 느낄 수 없는 새로움이다. 지친 몸을 그대로 눕힌 채 잠이 들었다.

[다음날]
창 밖에 자동차 시동거는 소리에 잠을 깼다.
밥을 먹을 만한 마땅한 곳이 보이질 않아 그냥 출발했다. 평지가 계속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오르막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리 어렵진 않다. 그리고 다시 내리막길…
언제나 내리막길은 즐겁다. 끝나자마자 조그마한 가계가 보인다. 초코바를 하나 사서
우유랑 먹었다. 그리고 달렸다. 잿빛 바닷가와 들길을 번갈아가며 달리며 선착장까지
왔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내 자전거 뒤에 고급승용차가 한대 섰다. 거기에서
내리는 중년부인과 젊은 남자를 보며 난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를일이지…
이런 섬에서 엄마와 단 둘이 와서 자고 가는 경우는 최소한 내겐 없었으니까….
그런 3류영화 같은 상상을 하는 동안 배가 들어왔다.
날씨가 화창하다.
다음 목적지는 마니산…..마니산 까지의 길은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오르막이 몇군데
있긴 했지만 그리 험하진 않다. 작은 고개를 넘어 내려가자 마을이 보인다.
그런데 마을 중앙에 작은 학교가 보이고 그 도로변에 학생들이 나와 길게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맨 앞쪽에서 모여있던 학생들이 “ 온다~~~~” 라고 외치더니
순식간에 수백명의 학생들이 만국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아…..난 아냐………
뒤에 안 일이지만 오늘이 전국체전 성화봉송하는 날이고 이 길로 봉송차량이 지나간다.
그래서 인근 학생들이 동원된 셈인데, 그들이 장난 삼아 나를 향해 환호하는 것이었다.
“ 아저씨~~파이팅~~~”
길가의 코스모스 꽃잎을 던지며 환호하는 군중사이를 자전거로 지나가본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그런일이 두번이나 있었다. 두번째 학생들은 고등학생이라 반응은 좀 시원찮았다.
마니산 입구에는 벌써부터 농악대와 취재차량들로 분주하다. 자전거를 잠시 세우고
아침을 먹었다. 좀 촌스럽기 까지한 성화봉송대열이 출발하자 난 곧바로 마니산 등산을
시작했다. 낮은 산이지만 가파른 길이 계속돼서 쉬운 편의 등산로는 아니었다.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바로 하산했다. 이성계 얘기도 보이고 또 사람의 심장은
1년에 36,792,000번 콩닥거린다는 글도 보이고 …….
다시 마니산을 출발해서 전등사 옆을 지나 광성보에 도착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호국의 성지로 기억되어지는 곳이다. 당시 신미양요
전투에 참가했던 미 해군장교 브레이크중령의 전사기록을 보면 "미국의 남북전쟁에서도
이렇게 좁은지역에서 48시간이라는 짧은시간 동안 그렇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적이
없다"라고 술회할 정도로 그 당시 광성보 전투는 굉장히 치열했다고 전하며 우리측
수비군은 350여명이 모두 전사한데 비해 미국은 맥키중위를 비롯한 3명의 전사자와
7명의 부상자를 냈을뿐이란다. 난 어김없이 솟아오르는 애국심과 적개심을 동시에
느끼며 옆 용두대로 향했다. 생긴 지형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해서 용두돈대라
전하며 바닷가로 툭 튀어 나왔기 때문에 천혜의 요새지이며 절경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으로 신미양요때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기도 했다. "강화전적지 정화기념비"
라고 쓰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로 쓴 비와 소포가 인상적이었다.
광성보를 나오면서 지도를 폈다. 지도에는 없는 새로운 길이 강화읍 근처로 건설되고
있었다. 포장이 다 끝났지만 진입금지라고 쓰여 있었다. 난 그 길에 자전거를 올렸다
그리고 냅다 밟았다. 이 길로 가면 족히 한시간은 단축할 수 있어보였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길은 쫙 뻗어있고 곧바로 박물관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강화대교를 건너기
전에 간단히 요기를 하고 강화를 출발했다.
많이 지쳐있었다. 그동안 게을리한 운동때문인지 1박2일인데도 지쳤다. 김포를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길은 자전거를 타기에 별로 좋은 코스가 아니었다.
곳곳에 파헤쳐 놓은 도로, 많은 차량과 매연…소음…..어두워 져서야 서울에
도착했다.

이 아름다운 가을을 또 바쁘다는 핑계로 놓치고 싶지않았다.
그래서 어느 토요일 아침에 문득 자전거를 탔다.
가을과 섬, 역사와 삶, 바다와 사람….. 잘 쓰여진 시나리오와 같이
강화는 영화와 같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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