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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Tour 이야기

........2000.06.25 20:42조회 수 341추천 수 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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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사랑하는 분들께 짧은 기행문 하나 띄웁니다.

이대로 간다면, 자동차가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걸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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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신 어머니 상기도 평안하신지
나 또한 살아 있습니다 그리운 어머니
상기도 당신이 사시는 오막살이에
그 말할 수 없는 저녁노을이 지고 있습니까
나는 들었어요 당신이 애타는 마음을 숨기고
나 때문에 가슴을 조이신다고
이따금 철 지난 헌 옷을 꺼내 입고
신작로 가으로 나오신다고
….
(예쎄닌 作, 황석영 <오래된 정원>에서 베껴 씀)

수십 번도 더 읽은 시 이건만 지금 이 글을 타이핑 하고 있는 중에도 싯구를 되 뇌이며 목이 메입니다. 다른 글귀도 좋지만 특히 “말할 수 없는 저녁노을”이란 싯구에 홀딱 반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이라 해도 느낌이 오지 않고 “정말 아름다운”이라고 하면 더더욱 맛이 떨어지는데 어쩜 이렇게 단어 한 마디로 절절한 느낌이 배여 나오는 것일까요. 그리움 애타는 마음 쓸쓸함 과거의 동경이 스며든 작가의 마음이 그 한 싯구로 제게 이어져 오는군요.

덧붙여서, 이번 여행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산길 산골의 안온했던 저녁햇살 바람 시내 모두에게 말할 수 없는 산길 말할 수 없는 저녁햇살….이라는 형용사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흐….음.

토요일 아침 일찍 이라서 그런지 진부 행 오전 7시 10분발 시외버스에는 승객이라고 해 봤자 저 포함해 너댓명 뿐입니다. 가방에 잘 포장해 넣은 자전거를 짐칸에 싣고 빈 속에 담배를 한대 찌인 하게 피우고 버스에 탔습니다. 와이프를 두 달 동안 달래고 삶고 으르고 해서 가는 첫 솔로 여행이라 그런지 흥분한 마음이 곧추서서 잠이 올 것 같지 않네요. 의자에 푹 묻혀 조성모 3집 CD를 들으며 흥얼거리며 안개 자욱한 서울을 빠져 나갔습니다.

진부 거진 다 가다 들른 휴게소에서의 빈둥빈둥 20분까지 넣고도 버스는 2시간 30분 만에 진부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정말 많이 빨라졌죠? 예전엔 못 잡아도 세시간 반씩은 걸렸었는데…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오대산 행 시내버스가 옆에 싸악 다가 서더군요. 마치 대절버스처럼.. 으짤스까.. 여기서부터 죽 잔차 타고 갈려고 했는디… 갸우뚱 거리고 있는데 기사 아저씨 한 소리 “빨리 올라타소!” 에 잽싸게 올라탔습죠. 에고, 극기훈련 하러 온 거도 아닌데 좀 편케 가자, 마.

오대산 국립공원 매표소 앞에 내리니 오전 10시 5분. 예정보다 무려 한시간 반 가량 일찍 왔어요. 흐뭇한 여행을 암시하는 듯한 좋은 징조여.. 자전거를 훌렁훌렁 조립하고 sun block lotion 바르고 장갑 끼고 메타기 달고 안장 높이 맞추고 모자를 쓰고 물통 잔차에 달고 나니 어, 타이즈만 안 입었다 뿐이지 제법 폼이 나는군요. 작년 가을 강원도 여행 때엔 시골소년 잔차 타고 집에 가는 차림이었는데 말이죠. 무엇보다도 개선된 부분은 안장. 폼은 날렵하나 엉덩이에겐 죽음이었던 놈을 떼어 버리고 과감하게 편의성 승차감 위주로 안장을 교체한 덕분에 이틀 내내 엉덩이 만큼은 정말 호강하면서 여행했읍니다요. 꼭 폭신폭신한 가죽소파에 앉아 있는 기분 이예요. 예전 남한산성 겁 없이 따라갔을 때 미루님에게 다운힐 할 때 안 좋으니 바꾸라는 충고를 듣긴 했지만 서도…

으쨌거나 출발!!
만세!

어제 비가 왔는지 비포장 도로는 조금 젖어 있고 약간 푹푹 빠지는 맛도 있긴 하지만 간혹 지나가는 자동차들 등쌀에 일어나는 먼지도 없고 나쁘지 않다구만요. 매표소에서 상원사 아래까지 가는 길은 표지판대로면 8km, 실제 메타기에 찍힌 거리는 9.5km. 그렇게 비틀거리면서 갔나? 한 시간 조금 더 걸렸읍죠. 계곡을 따라 울창한 숲을 헤치며 올라가는 적당한 경사의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지는 길인데, 의외로 힘을 많이 잡아 먹더군요. 호오이! 상원사 밑에서 아점을 라면으로 때우며 생각해 보니, 기어 변속하는 걸 잊어버리고 계속 고단으로만 달렸더군요. 쯔쯔.. 일주일 안 탔다고 그새…

오전 11시 40분. 관광버스에서 내린 여행객들 숲을 헤치며 늠름하게 오대산 임도로 진입했습니다. 출발부터 상당한 급경사인데, 기를 쓰며 저 밑에 여행객들 모습이 가려질 때 까지는 죽을 똥 살 똥 밟았습니다. 헤헤, 쪽 팔리잖아요, 잔차를 끌고 가면… 덕분에 출발한 지 삼분 만에 반 탈진상태로 돌입!

올 때마다 느끼고 또 항상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일상에 넌더리가 날 때마다 풍경이 그려지는 오대산은 너무나 아름다워요. 산도 푸근하고 계곡도 빼어나지만 뭐니뭐니 해도 빛나는 건 나무들. 쭉쭉 끝 갈 데 없이 뻗은 아름드리 전나무, 기기묘묘한 자태의 소나무, 그 속에서 전혀 기죽지 않고 무성한 이런저런 단풍나무들 하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태고의 느낌. 그 숨막히는 평온함. 나무들만 바라보며 길을 걸어도 하나도 지루한 줄 모르는 그런 산길. 룰루랄라~

하늘은 훤한데 비는 계속 오락가락 하며 조금씩 흩뿌립니다. 방수기능이 약하다는 메타기가 조금 걱정될 뿐이지 뭐 No problem!! 타다 끌다 타다 끌다를 계속하며 조금씩 고개를 올라갑니다. 세상에 급할 것 없구 빨리 내려가 봐야 좋을 것 없는데 고생하며 탈 필요 없잖수? 그렇긴 해도 북대사 스님 두 분과 마주쳤을 땐 조금 창피하더군요.

“자전거를 왜 끌고 가나? 타고 가야지…”
“헤헤, 제가 힘이 좀 모자라서요…”

세상에, 사람들은 오르막길에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이 그렇게 신기한가 보죠? 저번에 왈바 식구들과 남한산성 갔을 때도 그러더니 말야…(물론 그 땐 다른 사람들은 다 타고 가는데 나만 허헉대며 끌고 가니까 그런 소리가 나올 만 하지만 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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