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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차 전국일주 - 12

........2001.01.18 14:40조회 수 33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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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1. 12 금요일

주행 거리 : 76 km
적산 주행거리 : 1076.5 km
주행 시간 : 4:57
평균 속도 : 15.3 km/h
최고 속도 : 47 km/h

속초 -> 양양 -> 한계령 -> 인제 -> 신남

내용을 기억할 수 없는 꿈에 뒤척이다 잠을 깼다. 간 밤에 술을 조금 하기는 했지만 긴장해서인지 컨디션이 아주 좋다. 기분도 상쾌하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설악의 연봉이 울산 바위를 앞장 세우고 부채꼴처럼 펼쳐 있다. 여전히 하늘은 파랗고 날씨는 차갑다. 올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뉴스에서는 떠들어댄다. 역시 미시령은 까마득히 하늘과 맞닿아 있다. 그래 잔차를 타고 하늘 여행을 한번 하는거야!

선배는 아직 잠의 끄트머리를 놓지 못하고 있어 먼저 나와 미시령의 상태를 알아보니 간밤에 분 바람에 날린 눈이 얼어붙어 교통 통제 중이다. 결국 한계령을 넘기로 한다. 선배와는 한계령 정상에서 만나기로 하고 먼저 출발한다.

자~! 이제부터 출발이다.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힘찬 페달질을 하는데 날씨가 과연 차갑다. 영하 28도 라는데 더운 몸이 느끼지 못하는 그 온도를 얼굴과 손가락, 그리고 발에서 모두 느낀다. 특히 손발이 시려워 연신 손발가락을 움직이며 마찰 시킨다. 수퍼마켓에서 산 게토레이가 채 1분도 되지 않아 얼고 만다. 바람도 맞바람이어서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는다. 심한 내리막에서 조차 허벅지 근육에 강한 긴장이 느껴져야 겨우 잔차가 움직인다. 1시간을 달리다 양지 바르고 바람이 없는 곳에서 숨을 고르며 간식을 미리 먹어 둔다. 이제부터 정상까지는 논스톱이다.

한계령 아랫부분은 도로 상태가 양호하나 정상 아래 5km부터는 거의 빙판이다. 페달에 좀 심한 힘을 가하면 바로 바퀴가 미끄러진다. 이럴 때는 힘을 주는 듯 마는 듯 해야 바퀴가 헛돌지 않으며 잔차가 제대로 경사길을 올라간다. 빙판이 연속되는 경사길에서 바퀴가 한 번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통제가 힘들어진다. 적당한 힘의 분배.... 그것이 문제이다.

워낙 긴장을 해서인지 벌로 힘이 들지 않는다. 이제 저 멀리 하늘과 맞닿는 곳에 산의 9부 능선을 가르는 하얀 선이 보인다. 한계령 바로 아래의 도로이다. 두 눈과 온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 정도는 되어야 도전할만 하지. 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깨운다. 태워 주겠다는 무쏘 운전자의 호의를 기분 좋게 거절하고는 한 달음에 한계령 정상에 올라선다.

바람은 여전히 강하게 불고 날씨도 워낙 추워 휴게소에 차량도 사람도 별로 없다. 몇몇 있던 사람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속닥거린다. "자전거 타고 여기까지 왔나봐?" 괜히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꿀차 한 잔과 난롯불에 몸을 녹인다.. 아직 선배의 차는 도착하지 않았다.

오른손의 감각이 많이 둔해졌다. 때론 꿀차 잔도 여러 번 떨어뜨릴뻔 했다.

약 30분 후에 선배의 차가 올라왔고 이제부터는 다운힐이다. 올라올 때는 힘들었지만 내려갈 때는 차도 나를 따라오지 못하리라. 혼자 흐뭇해 하며 잔차에 몸을 싣고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빙판이다. 브레이크를 잡을 수가 없다. 브레이크를 잡으면 바로 바퀴가 미끄러진다. 마찰이 없는 빙판이라 가속도가 너무 붙는다. 잠깐잠깐 나오는 아스팔트에서 강하게 브레이크를 잡고 그리고는 슬슬 미끄러지기....

온 몸의 신경은 날카롭게 곳추서고 체중을 실은 두 발은 심하게 떨려온다. 브레이크나 핸들조작 잘못 한 번이면 바로 빙판과 도킹이다. 이 때 차라도 지나가면 납작한 오징어 신세를 면치 못하리라. 때론 맞은 편 차선으로 올라가는 차에서 손을 흔들어 준다.

한계령 민예단지 3거리를 조금 지나 늦은 점심을 먹는데 장작을 때는 난롯불이 아주 아늑하다. 군 고구마 생각이 간절하여 농담 삼아 얘기하니 마음씨 좋아 보이는 주인장이 냉큼 고구마 5개를 난로 위에 올려 놓는다. 식사를 끝내니 때 맞춰 잘 익었다.

군고구마를 호호 불며 맛나게 먹고 있는데 주인장의 친구 분이 비닐주머니에 갓 잡은 빙어를 잔뜩 들고 들어온다. 이번에도 역시 빙어 한 바가지가 나온다. 팔딱 팔딱 헤엄치는 놈들을 잡아 초고추장에 기절시킨 뒤 먹는 그 맛은 그 추운 날씨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먹다 보니 너무 배가 불러 헉헉 거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새 감자가루에 튀긴 빙어를 내온다. 이 것 또한 별미다.

염려해주시는 식당 주인장을 뒤로하고 홍천으로 향한다. 길에는 얼음이 두텁게 덮여있다. 거의 아스팔트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인제를 지나 신남까지 오는 길은 차라리 한계령이 낫다 할 정도로 힘이 든다. 잦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 구절양장의 꼬불꼬불한 도로, 그리고 지나가는 차량의 위협....

날이 어두워진 한참 후에야 목적했던 신남에 도착했고, 그 동안 에스콧해준 선배는 차를 계속 달려 집으로 돌아간다. 여행 중 잠시 동행했던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것도 나를 위하여 저 먼 곳에서 달려 온 사람의 뒷모습이라면.... 선배에 대한 고마움과 다시 혼자 남았다는 외로움에 눈에 눈물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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