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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라사)~네팔 (카투만두)관광라이딩기

........2001.10.18 21:26조회 수 882추천 수 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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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일~10월10일 ,8박 9일 일정의 티벳 관광 라이딩 후기를
올립니다.

고등학교 동창 4명이서 하였으며
찝차와 트럭등 차량2대에
기사2명+조수, 조선족 가이드 1명이 지원을 해줘
라이딩 4명에 지원조가 4명이 붙은
꽤 luxury 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일정이 빠듯한 관계로 업힐및 긴 이동은  차량으로 ,
고개 정상에서 내려오는 다운힐만 잔차를 탄 여행이었읍니다.
총 구간 거리 1,000키로중 200키로 정도를 탔습니다.

우리의 일정은
10월 2일 오후  중국 쳉두(성도, 사천주방 주요도시) 로 출발
10월 3일 오전  티벳 라사(3,600미터)로 출발
                    오후에 포탈라 궁등 관광
10월 4일  깜바라 고개(4,700미터)에서 암드록초 호수를 내려보며
              라이딩,  나가체에서 숙박
10월5일  장체(간체)거쳐 티벳 제2의 도시인 시가체에서 숙박
              비가와서 라이딩을 못함
10월 6일  유룰라 고개(4,900미터)에서 라이딩
              에베레스트 티벳쪽 베이스 캠프 근인 뉴 팅그리에서 숙박
10월 7일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히말라야 연봉들이 가장 잘 보이는
                라룽라고개(5,000미터)에서 라이딩,
              니알람 거쳐 네팔 쪽 국경과 만나는 국경도시 장무(2,300미터)  에서 숙박
10월 8일  네팔 가이드 만나기로한 last resort (1,200미터)까지 라이딩
              카투만두 안나 푸르나 호텔에서 숙박
10월 9일  카투만두 관광후 저녁 11시에 상해로 출발
10월 10일 상해에서 서울로 옴.  오후 3시경 귀가

참가자는 최영규(rocky님),조원장,최형석, 김병화(goldkim) 입니다.

본 후기는 글 잘쓰는 조원장님이 썼으며
칭구들이 운영하는 게시판에 적어놓은것을 옮기는 것이니
이 점을 이해하고 후기를 읽으시면 됩니다.

고소병이나  준비물등 혹시 다음에 이 우정공로(friendship highway)를
라이딩 할때 필요한 것등은 제가 정리하여
이번주내로 올릴예정입니다.


여행 첫째날( 10월 3일 수요일)

티벳기행 1 : [샹그리라(Shangri-La), 이상향을 찾아서]


추석 다음날 간단히 점심식사를 끝내고 선수들이 분당의 우리집으로 모였다. 가족들을 보살피기 위해 LA에 가있는 최형석군은 마침 LA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시간과 티벳으로 가는 중간 기착지 성도(Cheung-Doo)로 향하는 비행기시간의 간격을 절묘하게 맞출 수 있게 되어 직접 인천공항에서 합류하기로 하였다.

최영규군이 특별히 한정수량으로 무게도 가볍고 실용적으로 제작한 MTB Carrier에 몸체, 앞 뒤 타이어, 페달, 디레일러를 각각 분해하여 챙겨 넣었다. 여행 내내 요긴하게 사용하였던 Mont-Bell의 추동용 3호 오리털 침낭, 이름도 겁나는 비옷 Storm Cruiser, 기타 전문 등반용 및 MTB용 옷과 장비 등을 큼직한 Cargo Bag에 꾸겨 넣었다.

장비반장 최영규군은 휴대용 GPS, 코펠, 버너, 헤드랜턴 및 갖가지 첨단 부품들을 준비하였고(텐트는 실수로 빼먹었음) 김병화군은 응급약품, 식량, 이동식 등 생물학 전투에 필요한 보따리들을 담당하였다.

LA에서 도착한 KAL기는 정확히 청도 출발 2 시간 전에 최형석군을 내려주었고 아슬아슬한 듯 하였지만 우리들의 시작은 제법 순조로왔다.

텅텅 비어 가는 비행기인데도 1인당 짐 중량이 초과한다는 이유로 초장부터 30만원의 비용을 인천공항 중국항공 카운터에 영수증도 없이 지불하여야 했다.

7시 45분에 출발한 중국항공 CA225호가 사천성의 수도 성도(Cheng-Doo)에 도착한 시각은 밤 11시 30분.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내일 새벽 6시 45분 비행기로 티벳의 수도 라사로 향하게 된다.

성도의 입국 심사대에서 우리의 자전거가 문제되었다. 중국에서 사용되는 모든 자전거는 자동차처럼 등록증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등록서류가 없으면 자전거를 통관할 수가 없단다. 희안한 경우이다. 중국에 널려있는 수 천만대의 자전거가 전부 등록증이 있다는 얘기도 금시 초문이지만 밤 12시가 넘어 중국 땅에 발을 딛자마자 말도 안 통하는 이곳 세관원들과 씨름하고 있는 우리의 처지가 황당하기만 하다.

중국인 가이드 '류환'이 그때 등장하였다. 영어가 능숙한 20대 중반의 중국여성이었는데 자전거 때문에 씨름하고 있는 우리를 보고 본인도 어리둥절해 했다. 결국 오늘밤 자전거를 공항에 보관한다는 전제 아래 약간의 뇌물을 쓰고 우리는 공항을 나설 수 있었다.

중국 국내선은 새벽부터 바글바글 했다. 짐꾼들이 어찌어찌 작업하여 초과 중량비(1인당 평균 10kg)를 반으로 깎았고 1/4 은 팁으로 제공되었다.

해발 100m 내외인 이곳 성도에서 해발 3500m인 라사(Lhasa) 까지는 2시간 남짓 날라 가야 한다. 자전거도 찾았겠다 여유있게 잡담을 하다 보니 비행기는 어느덧 티벳 상공을 날고 있었다. 착륙준비 안내 방송과 함께 약간의 웅성거림이 있었다. 창밖에는 작년 안나푸르나에서 돌아올 때 보았던 눈 덮힌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보인다.

그런데 왼쪽 창 밖으로 보여야 할 경치 같은데 오른쪽 창 밖으로 보이는 건 왜 일까? 티벳고원 북부지방에도 높은 산맥들이 있었던가. TV화면에 나타나는 비행기의 방향이 좀 이상하다. 어 이거 납치 아냐? 왜 비행기가 저리로 가는 거지? 또 웅성거린다. 라사 공항에 갑자기 폭풍이 분단다. 그래서 다시 성도 공항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별 이런 경우가 있나. 2시간이면 갈 곳을 다시 왕복 4시간에 대기 1시간 결국 성도를 떠난 지 7시간 만에 라사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작부터 만만치 않군.

공항에 도착하였으나 자전거 두 대가 행방불명이다. Cargo Bag 여섯 개와 자전거 두 대만 내려놓고 모든 승객은 이미 다 사라졌다. 또 다시 황당. 수소문 끝에 자전거 두 대는 다음 비행기에 실려서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놈들이 성도에서 초과중량 비용 장난을 하더니 그 모양이 된 것 같다. 어휴 정말.

손발 끝에 짜릿짜릿함(고소증 때문에)을 느끼면서 라사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였는데 이런 시골의 공항과 시내까지의 거리가 1시간 30분이나 떨어져 있다는 것이 특이하였다. 멀리 사진에서 보아 왔던 신비한 모습의 포카라(Pocala)궁이 보인다. 라사의 동쪽은 한족들이, 그리고 서쪽은 원주민인 티벳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우리가 첫날 묵을 여관은 티벳인들의 거리에 있었다. 여관앞에는 '문명여관' 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는데, '문명여관'이란 이 여관의 이름이 아니라 좋은 호텔을 일컫는 명칭이란다.

여관 게시판 앞에는 다닥다닥 포스터와 여러 가지 메모들이 붙어있다. 몇장의 포스터가 눈에 띄었는데 샹그리라(Shanglia : 이상향)를 찾아 떠났다가 실종된 몇몇 외국인들을 찾는 내용이다. 이 멀고도 험난한 곳을 혼자 여행하다가 들개한테 먹혔는지,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졌는지, 깊은 산골에서 산적을 만났는지 아니면 정말 히말라야 산속의 이상향을 찾아 내어 훌훌 벗고 속세를 떠나기로 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우리의 첫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티벳 둘째날( 10월 4일 목요일)

[암드록초호수에서 산소베개를 물고 자다.]

티벳 산골이름도 익숙치 않은 조그만 동네 여인숙에 누워 산소베개를 물고 아 도대체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한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이곳 여인숙침대에서는 티벳 사람들 특유의 꼬리 꼬리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라사(Lhasa)의 여관에서처럼 치즈 썩은 냄새에 생전 잘 씻지 않는다는 티벳 사람들의 발 냄새가 석여 났었더라면 고소증의 한 증상인 속 울렁거림을 참을 수 없었을 거다.

왜 산소베개를 물고 누었는가 하면 그놈의 고소증 때문이다. 어제 머물렀었던 라사(Lhasa)가 해발 3600미터였고 트럭에 짐차까지 대동하고 넘었던 해발 4800미터 고개 캄바라(Kamba-La)를 지나 2시간 여 내리막 라이딩에 잠시 라면에 햇반으로 점심을 떼우고 이곳 나가체(Nagartse)에 도착한 사간은 오후 6시이다.

라사(Lhasa ) 공항에 도착한 후부터 찌릿찌릿 온몸의 말초신경에 전기가 오듯 고소증의 초기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었다. 최형석군, 김병화군 나 조원장은 거의 비슷한 정도의 증상이 있었는데 엽기청년 최영규군의 고소증상은 다르게 나타나더란다. 머리를 콕콕 찌른다나 …. 그건 편두통 증세인데…

지난밤엔 고소증에 효과가 있다는 이뇨제를 반 알씩 집어 먹은 김병화군과 나는 밤새 화장실을 들락이느라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였었다. 대부분의 경우 라사(Lhasa)에서 2-3일간 고도적응과 산소부족증 적응을 한 후에나 그 다음 스케줄을 잡는다는데 우리야 뭐 시간도 없고 마음도 급한 40대 한국인이니 그럴 여유는 전혀 없었다.

다행이 이곳 티벳대학에서 변경지역 문화를 전공한다는 조선족 가이드 조광명선생의 선지적인 배려 덕분에 해발 4300미터의 얌드록초(Yamdrok-Tso) 호수 끝에 있는 나가체(Nagartse) 라는 산골 여인숙에서 고소증에는 특효라는 산소베개를 물고 누워있다.

산소베개란 별게 아니라 베개만한 튜브에 산소 함량이 높은 공기를 잔뜩 넣고 한 쪽 끝에는 링게르액 스위치 장치 같은 것이 달려 있어 공기의 배출을 조절한다. 그 끝 부분을 입에 물고 농도 높은 공기를 마시도록 되어 있다.

3-4000미터 이상의 고소에서는 산소의 밀도가 희박하여 피속의 헤모그로빈이 충분히 산화되지 못하기 때문에 특히 신체 말단의 말초세포에 산소 공급을 제대로 못하는 현상으로 몇일 지나야 말단 세포들이 적응하기 시작한다.

굳이 고소증을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이곳 티벳에 도착한지 30여시간이 지났건만 아직 몸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엽기청년 I 최영규군에 이어 엽기청년 II 김병화군은 지금 이 시간 저녁 7시가 되었지만 3시간째 얌드록초(Yamdrok-Cho호수에서 이곳까지 페달링 중이다.

나와 최형석군은 이제 산소베게를 떼고 따듯한 물에 Lux비누로 세수를 하고 Orlang크림으로 피부 맛사지(여기 티벳고원은 하늘과 너무 가깝기 때문에 UV Light가 너무 강하거든 . 우린 피부가 약하기 때문에 맛사지도 해야 한다!@$)도 끝내고 느긋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미친놈들(누군지 말 안해도 뻔하지) 하면서…


티벳 3일 째(10월 5일 금요일)

[인민해방군 제8군 병원 응급실에서]

아직 날이 새지 않은 새벽녁에 나가체(Nagartse)로 떠났다. 추석 연휴로 이곳 라사(Lhasa) 여행국 담당자도 휴가 중인 관계로 티벳 국경지역으로의 여행증명서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음 목적지인 티벳 제2의 도시 시가체(Shigartse)에 일찍 도착하여야만 했다.

아침 죽으로 끼니를 떼우는 둥 마는 둥하고 7시간여가 걸릴 짚차 여행을 떠났다. 얌드록초(Yamdrok-Cho)호수변의 풍광도 멋드러졌었지만 중간 기착지 간체(Gantse)로 향하는 길목의 풍광은 남성미가 넘치는 아름다움이었다. 최형석군은 캐나다 록키의 웅장함을 떠 올렸고 최영규군은 라스베가스가는 길목의 데쓰밸리를 언급하였다.

사람 좋아 보이는 표정의 운전기사 조스부(사부)에게 중간 중간 차를 세워 달라고 하여 4000미터 고지의 웅장함을 사진기에 담았다. 운전기사 조스부의 애마는 토요타(Toyota)의 랜드크루져(Land Cruiser)인데 이곳을 다니는 짚차의 거의 대부분이 이 기종이었다.

조선족 가이드 조선생의 말로는 토요타에서 이곳 티벳과 실크로드지역에 알맞게 튜닝하여 판매하고 있는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그리고 보니 TV의 실크로드기행등에서 많이 본 차들이었다. 크라이슬러(Crysler)의 그랜드채로키(Grand Cherokee) 기종이 이 지역에 더 잘 맞을 것 같은데 미국 친구들이 판촉을 전혀 하지 않았나 보다.

어느덧 중간 기착지인 간체(Gyantse)에 도착하였다. 4790미터 캄바라(Kamba-La) 고개부터의 웅장하였던 산악지역의 풍광과는 달리 이 부근은 넓은 평야지대이다. 쌀(보리인 것 같기도 하고)농사를 주로 짓는 듯 하였고 이제 야크(Yak)가 아닌 양과 소와 말들이 평화롭게 풀 뜯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야크는 주로 경사가 심한 언덕 위에서 볼 수 있었는데 험악하게 생긴 검은 황소가 배 밑에 긴 수염을 늘어뜨렸다고 상상하면 바로 그것이 야크의 모습이다. 3년 전 몽고에서 보았던 야크들은 흰색과 누런색 종자들로 얌전하게 보였는데 티벳 야크들은 모두 검정색으로 인상이 꽤나 험악해 보인다. 4300미터 이상의 고지에서는 나무들을 거의 볼 수 없었고 경사면에는 꽤 두툼한 이끼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놈들은 주로 이걸로 식사를 하는 듯 하다. 북극곶의 순록들 처럼…

간체(Gantse)는 역사적으로 꽤 의미가 있는 도시라는데 15세기 이전까지는 중국과 티벳, 네팔, 부탄을 잇는 대상무역의 관문 도시였다고 한다. 근대에 들어서는 인도를 점령한 영국군과 한판승부도 벌였다는데 도시 한 가운데 불뚝 솟은 언덕이 있었고 언덕위로 건축물들과 성벽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요새였다.

시내의 한족(한족)음식점에 부탁하여 햇반과 시골우거지국으로 요기를 하고 설사가 심해진 최형석군은 오뚜기표 소고기쌀죽으로 뱃속을 다스렸다. 새벽 6시30분 나가체를 떠나 10시 30분 이곳 간체에서 이른 점심을 하게 되었으니 우리는 3시간을 달려 온 것이다. 문제는 여행허가서도 받아야 하고 또 하룻밤을 묵어야 할 시가체(Shigatse)까지 어떻게 가느냐 인데 온 길을 파헤쳐 놓아 5시간 이상 더 걸린다고 한다.

2달 전 몽브랑 4800미터 고지를 다녀온 최영규군을 제외하고는 고소증 때문인 듯 간밤을 거의 날밤으로 새운 우리들은 짚차의 터덜거림에 엉덩이가 거의 헤질 지경이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자전거도 타보지 못하고 8시간 내리 비 좁은 짚차 안에 있었는데 김병화군 왈 여행기는 왈바(Wild Bike)에 올릴게 아니라 Off Road Riding 사이트에 올려야 한다고 투덜 대었다.

예정보다 일찍 시가체(Shigatse)에 도착한 우리들은 “바람의 딸” 한비야가 묵었던 Orchid Hotel에 짐을 풀었다. 말이 호텔이지 쌍팔년도 여인숙 수준인데 그래도 어제 묵었던 나가체(Nagatse)의 이름 모를 여인숙에 비하면 10% 쯤 나은 시설이다. 어제 그 집은 마당이 화장실이라 큰 실례도 마당 한 구석에서 해야 했다.

미국보다도 큰 영토이지만 중국 전체가 우리보다 1시간 늦은 북경기준시간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북경에서 4-5000키로 떨어져 있는 이곳은 밤 8시 30분이 지나야 어둑해진다. 호텔은 이곳 Tibet에서 가장 큰 사원이며 9대, 10대 판첼라마의 무덤이 있는 타쉴훈포(Tashil-Hunpo)사원의 맞은 편에 있었기 때문에 새벽부터 오체투지(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티벳 순례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티벳문화를 전공한다는 조선족기자출신의 조선생으로 부터 타실훈포사원을 둘러 보면서(사원 내에 개들이 엄청 많았음. 개똥도 많았는데 이곳 사람들은 득도를 하지 못한 승려들이 개로 환생하여 이곳에 계속 머물러 있는 거라고 하였다) 여러 가지 티벳의 역사, 판첼라마와 달라이라마 사이의 암투 등등 흥미로운 이야기들를 들었지만 여기서는 언급치 않도록 하겠다. 굳이 티벳의 역사 문화등에 대하여 궁금한 혹자들은 “티벳속으로(Into Tibet)이라는 괜찮은 책이 근래에 발간되었으니 참고하시도록…

책에 없는 특이한 내용으로는 우리의 트럭기사가 위구르 혹은 신장자치구 지역에 사는 회족출신이라는데 이들이 얼마나 음식을 가리고(종교적인 이유로) 깔끔을 떠는지 여행 내내 우리와는 식사를 같이 하지 않고 회족 전용식당만을 사용하였는데 중국 땅에 살면서도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절대로 입에 대지 않기 때문이란다. 심지어 돼지고기요리를 한번이라도 담았던 그릇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으며 외지에서 온 손님이 먹었던 그릇은 다시 사용하지 않고 버릴 정도란다.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하였던 손님의 입에 남아 있던 돼지고기의 기름이 그릇에 묻어 날 수 있기 때문에…

그건 그렇고 우리들의 정신적 지주 뽄드군(최형석군을 지칭)은 오후 내내 휴식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설사에 탈진하였고 병원을 찾게 되었다. 이름도 거창한 인민해방군 제8군 병원의 응급실을 찾은 시간은 밤 9시가 넘어서 였는데 한참을 진료 상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라 치료비를 30% 더 받아야겠다는 군의관의 말에 열 받은 가이드 조선생의 욱하는 성질 때문에 우린 다시 일반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하였다.

코에는 산소공급기를 끼고 팔목에는 링게르를 꽂은 거구 최형석군은 티벳 시골병원 응급실에 그렇게 누워 있었다. 우리도 심심풀이겸 원기회복과 고소증치료를 위해 옆 병동에 누워 산소를 같이 마셨다. 이제 생각해보니 그 병동 주로 성병 치료하는 데 라던데. 아, 갑자기 찝찝한 생각이 든다.


티벳 4일 째(10월 6일 토요일)

[저기 에베레스트가 보인다]

라사(Lhasa)에서 받지 못했던 여행허가서는 어제 오후 이곳 시가체(Shigatse)에 도착한 후 받아내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트럭운전사 회족 아저씨도 무언가 여행관련 증명서를 받아야 한다는데 아직도 처리가 안되었다는 것이다. 어찌 어찌 집에 있다는 담당공무원을 찾아 내고 뇌물 200원을 먹여 필요한 서류를 확보하고 나니 벌써 11시 30분이 되었다. 시가체를 벋어 나면서 몇 군데의 검문소를 지나쳐야 했는데 특히 성산 카일라스(Kailash)가 있는 서부 티벳지역을 여행하는 것은 더욱 까다롭다고 한다.

인도, 네팔과의 접경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카일라스(Kailash)산은 힌두교, 불교, 인도의 자이나교, 티벳 토착종교인 뵌교등 4개 종교의 숭배 대상이라는데 히말라야를 넘어 티벳고원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갠지즈, 인더스강의 발원지이며 산세 또한 신비하기 짝이 없다고 한다.

건조하고 황량한 고원 내륙을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시속 50키로로 내달려 오후 3시 30분 경에 도착한 곳이 해발 4950미터의 유룽라(Yulung-La) 고개이다. 쌀쌀한 바람에 펄럭이는 만장(티벳에서는 다섯 가지 색의 깃발을 여기 저기 걸어 놓는다) 앞에서 사진 몇 장 박고 단단히 무장을 한 채 페달링을 시작하였다. 근 이틀만에 시도하는 라이딩이라 우리들은 신이 났고 또 50여 키로가 남았다는 라체((Lhatse)까지는 거의 내리막이라 기대를 많이 하였지만 라이딩은 12키로를 채 못한 채 중단해야 했다.

늦은 오후에 맞바람이 어찌나 세던지 분명이 옆에서는 냇물이 아래로 흐르는데 페달링은 오르막보다도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라사-티벳간 자전거여행은 아침을 이용하여 이동해야 한다던데 3시 이후에 불어 오는 바로 이 거센 맞바람 때문인가 보다.

우리가 달리는 이 길은 우정공로라 하여 영어로는 Friendship Highway라고 한다. 누구와의 우정(아마도 티벳과 중국사이의 우정)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고속도로라서가 아니라 하늘 높은 곳에 뚫려있는 길이라서 Highway라고 한단다. 왕복 2차선으로 간간히 포장을 한 곳도 있었지만 우리가 지나는 라사-카투만두간의 1000여 키로의 도로는 대부분 비포장의 먼지길이다. TV에서 보듯이 차량은 Land Cruiser 와 트럭이며 가끔씩 관광객이 탄 중형버스도 볼 수 있었다

10월은 이곳을 여행하기에 가장 적당한 날씨라는데 그래서인지 자전거팀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물론 대부분 유럽 친구들로 우리는 동료의식을 느꼈으므로 만나면 반가왔고 박수도 치고 손도 흔들어 주었다. 우리는 털털거리는 짚차에 앉아서…

순수하게 우리가 티벳내에서 이동하는 날짜가 단 5일 이었기 때문에 자전거만으로 이동하는 것은 애 저녁에 불가능하였고 내리막만을 타고 내려가는 환상의 프로그램으로 변질되었다. 라체(Lhatse)를 지나 팅그리(Tingri)지역에 접어 들면서 멀리 눈 덮힌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하나씩 둘씩 웅장하게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석양에 붉게 물든 에베레스트의 당당한 모습도 잠깐 볼 수 있었다.

New Tingri 지역에 도착한 시각은 밤 9시30분이 넘어서 였다. 고개를 들면 은하수가 뿌옇게 밤하늘을 가로 지르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수많은 별들이 너무나도 뚜렷이 눈으로 들어 왔다. 별 1개짜리 초모랑마(Qomolangma) 호텔에 여장을 풀었는데 초모랑마란 에베레스트를 칭하는 티벳말이다.

팅그리(Tingri)지역은 우리가 묵었던 곳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지역(4300미터)인데 산소도 희박(정상의 63%)하였고 기온도 가장 쌀쌀한 곳이었다. 어느덧 여행의 중반에 접어들었고 멀리서나마 에베레스트를 볼 수 있었다는 기쁨에 맥주를 한잔씩 하였다. 해발 4300미터에서의 맥주 한잔이 밤을 그렇게 힘들게 할 줄이야…

몇일 동안 설사에 시달리던 최형석군이 이번에는 내 간병을 들었다. 알코올이 투입되자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호흡이 곤란해 지기 시작하였다. 산소부족에 몸을 비비 꼬다시피 하였는데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에베레스트라는 영산 근방이어서인지 내가 왜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인지 계속 이런 고통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라는 회의가 비몽사몽간에 지나간다. 고소증과 부정맥이 겹치는 바람에 맛이 갔었다는 이야기다.

지난번 안나프루나 등반시의 고소증은 인생이 허무하고 그저 잠들고 싶다는 느낌뿐이 였었는데 이번엔 괴로운 고통이 나를 엄습하였다. 엽기청년 II 김병화군도 괴로운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티벳 5일 째(10월 7일 일요일)

[우아~~악 다운힐만 100키로(히말라야를 넘어 네팔의 국경까지)]

적든 크든 매일같이 문제가 발생하여 늘 출발이 늦었졌었는데 오늘 아침은 왠지 순조롭다. 8시에 짐을 싸 들고 호텔을 출발하였다. 저기 왼편으로 구름에 슬쩍 가린 산들이 보인다.

캉쳉충가(Kangchengjunga : 8,586미터), 마카루(Makalu : 8,463미터), 로체(Lhotse : 8,546미터), 에베레스트(Everest) 혹은 초모랑마(Qomolongma : 8,850미터), 초유(Cho Oyu : 8,201미터), 시샤팡마(Shisapangma : 8,313미터)등의 히말라야 6좌의 웅장함을 바라보면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전진하였다.

Old Tingri지역을 지나 늦은 아침을 하고 4990미터 고지의 라룽라(Lalung-La)고개에 도착한 시각은 1시가 되어서 였다. 라룽라는 히말라야 산맥의 북쪽면에서 이제 남쪽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말하자면 티벳고원이 끝나고 저 아래 대서양과 태평양연안으로 내려 가는 길목이란 말이다.

대서양을 향하여 신나는 13키로의 다운힐을 달렸다. 체력을 보존하기 위하여 50여 키로의 다운힐과 약간의 업힐, 평지가 계속되는 구간은 차량으로 이동하고 사정없는 내리막만 남아 있다는 니얄람(Nyalam) 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 30분. 늦은 점심을 사천식 볶음밥으로 간단히 때우고 이제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내리막길, Longest Descent In the World(지도 상에 나와 있는 공식 명칭임)을 자전거로 쏠 준비를 하였다.

그동안 지겹게 계속되던 건조하고 황폐하던 먼지바람의 티벳 고원은 이제 안녕이었고 깊은 계곡, 나무들도 보이고 새 소리도 들리는 환상적인 내리막 길로 접어들은 것이다. 오후 늦은 6시가 되었지만 라이딩 하기엔 적당한 온도와 습도 그리고 몸 컨디션도 아주 좋다. 그동안 몸을 괴롭히던 고소증은 어느덧 사라졌는데 이곳 니얄람(Nyalam)은 해발 고도도 라룽라(Lalung-La)에 비해 1500m 낮은 3500m 이다.

마치 티벳 고원에서의 고행을 마치고 새소리 물소리에 그리고 한없는 내리막이 기다리는 낙원에 접어들었다고나 할까. 앞으로 100km의 내리막을 사정없이 쏴야 한다니 어찌 맘이 설레지 않으리.

세계 제 1의 이곳 히말라야 남쪽 협곡은 강원도 미천골 보다 5배나 깊고 6배나 긴 내리막이다. 곳곳에 설악산 대승 폭포, 천왕성 폭포보다 엄청 큰 스케일의 폭포들이 널려 있고 천둥 번개를 맞은 수많은 한라산 비목들이 위용을 자랑한다. 우르릉 쾅쾅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언젠가 들렀던 맨하탄 35번가 이던가 낡은 19세기 교회를 개조하여 만들었다는 나이트클럽 Lime Light 의 엄청난 스피커들이 때리던 소리에 심장박동이 동조되던 느낌이 되살아 난다.

1시간 30분 여 내 달렸을까. 저기 까마득한 계곡길이 무너졌는지 차량 몇대가 줄지어 서 있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계곡 옆길을 포크레인이 다듬고 있다. 아래 절벽 밑에는 골조만 남아 흉측한 모습의 녹슬은 버스 한대가 하얀 포말의 계곡물과 대조를 이룬다. 에스코트하는 짚과 트럭이 같이 통과할 수 있는 길이 다시 열리기를 기다리는 30분, 날이 어둡기 전에 쏴야 한다는 절박감에 자전차 3대가 먼저 냅다 내달렸다.

천연 세차장 같은 폭포수길, 동굴길, 암반을 깎아 만든 기기묘묘한 길 들... 넋을 잃고 페달질을 하니 어느덧 국경도시 장무(Zhnag-mu)에 도착하였다. 이 국경도시는 수천 길 낭떠러지 위에 절묘하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차량 2대가 엇갈려 지나칠 수는 있었지만 길 한쪽면은 줄지어 주차해 있는 트럭들로 만원이었고 한쪽 면으로만 겨우 통행이 가능하였다.

이정현의 '와' , '바꿔' 쿵짝 소리가 이 산골 호텔 앞까지 쾅쾅 울려 퍼지는 걸 보니 중국의 한류가 정말 대단하긴 한가보다. 노래방에서 나오는 소리인 듯 한데 한번 들러 기세를 뽐내야 된다는 의견이 있었다.

어쩐지 오늘은 모든 일 들이 순조롭게 풀린다 하였다. 중국 땅에 도착한 이래로 하루도 문제가 없는 날이 없었는데, 오늘은 밤 9시가 넘어서 일이 발생하였다. 주차가 마땅치 않을 뿐 아니라 한쪽 방향으로 밖에는 진행할 수 없는 도로 사정 때문에 우리를 태우고 온 Land Cruiser와 후진기어가 고장난 우리 트럭은 호텔에서 10 여 미터 떨어진 중국 세관 경계를 살짝 넘어서 주차하고 있었다.

결국 이게 화근이 되어 차는 한쪽 편으로 견인되었고, 키는 압수 당하고, 이미 호텔에 Check In 한 우리는 차에 실려 있는 짐과 자전거를 꺼낼 수 도 없게 되었다. 어찌 어찌 하여 하나씩 문제를 해결 해 나왔지만 참으로 이번 여행은 골 때리는 상황의 연속이다.

호텔방 안에서 미역국에 찐 명란젖까지 대동하여 진수성찬을 맛 본 오늘은 내가 영규와 방을 같이 썼다. 언제나 어디서나 눕기만 하면 바로 깊은 수면에 빠지는 영규군은 4-5시간의 수면이면 하루의 피로와 노폐물을 다 제거하는 슈퍼맨이다. 덕분에 남들보다 2-3시간은 덜 자도 될 뿐 더러 항상 소형 컴퓨터를 들고 다니며 하루의 일과를 자세히 기록 정리한다. 가끔 들고 다니는 컴퓨터가 말썽을 부리기 때문에 영규와 한방을 쓰는 친구는 한 새벽에 시8 시8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떠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오늘은 녀석도 피곤한지 아니면 내 컨디션이 정상으로 되돌아 와서 인지 둘 다 동틀 녘까지 단잠을 이뤘다.


티벳 6일째 (10월 8일 월요일)

[국경을 넘어 카투만두로, 그리고 "The Last Resort "]

카투만두와 서울에 있는 여행사에서는 우리가 내일 아침에나 월경하는 걸로 알고 있고, 이곳 중국에서는 오늘 중에 월경을 하라 하니, 우리의 지도자 동지 최영규군은 난감한 상황 이었다. 라사(Lhasa)를 떠난 이후로는 서울의 여행사와 연락이 닫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야 겨우 통화를 하였고 카투만두에 있는 친구들을 이곳 국경까지 오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중국 쪽 국경도시 장무와 티벳 쪽 국경도시 코다리(Kodari)까지 10 여 키로 중 절반은 낭떠러지 계곡 양쪽 길을 오가려 하는 차량들로 완전 마비 상태였다.

어떻게 연락을 받았는지 여행사 사랑산(Sarang-san)에서 나왔다는 포터들이 우리들 짐을 빼앗듯 들고 내려가 버렸다. 네팔 쪽 국경으로 내려 갈수록 주변상황이 형편없다는데 이곳 네팔이 초행인 김병화군과 최형석군은 가슴이 철커덩 내려 앉았을 거다. 티벳 땅 장무에서 허드레 일을 하는 이들이 네팔 사람 들 이라니 중국과 티벳 땅에서도 그 모양 이였었는데, 이곳 네팔은 한술 더 뜰 모양이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국경을 통과하고 시쭈구리한 식당에 앉아 끼니를 때우고 어찌 어찌 하여 그곳에서 한시간 쯤 아래 지역으로 이동해 달라는 여행사 직원의 전화를 받아 황당하지만 움직일 수 밖에

내리막 길을 자전거로 이동하는 거야 항상 즐거운 일. 네명의 바보들은 경쟁하듯 내 달렸다.

"The Last Resort" 근사한 이름의 장소였다. Ultimate Bungy 라나 뉴질랜드 남섬의 102 미터 짜리 번지보다 깊다는 세계 최고의 계곡에 자리잡은 리조트란다. 아득한 낭떠러지 밑으로는 격랑이 흐르고 그 위 꼭대기에 한가롭게 방가로와 텐트들이 쳐져 있다. 이름이 어울리는 곳이다. 티벳과 네팔 통틀어서 제일 분위기 캡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3년 전 오픈한 이곳은 핀란드 친구가 투자한 리조트로 하루 숙식비가 30불 이란다. 아침, 점심, 저녁 다 먹여주고 깨끗하게 잘 정리된 정원에 바(Bar)도 있고 음악도 있었다. 래프팅(2시간에 25불), 코앞에 있는 110미터 번지점프(1회에 65불), 마사지 서비스(얼만지는 모름)에 우와 또 다른 환상이다.

예정보다 하루먼저 네팔에 입국하였으므로 이래저래 24시간의 시간이 남아 기쁜 맘에 친구들에게 오늘은 여기서 묵자고 하였지만 내 의견은 참담하게 묵살 당했다.

최영규군은 땀을 뻘뻘 흘리며 지금 막 도착한 여행사 고물버스에 자전거를 옮겨 싣고 있는 중이고 스케쥴이 엉겨서 그 동안 맘 고생이 심해서였는지 기분이 썩 좋지가 않다. 아쉬웠지만 영규군의 강력한 추진력이 아니었다면 언제 우리가 이런 모험이 가득한 호사를 누릴 수 있었겠는가. 고집불통이지만 오빠 맘을 상하지 않게 하자. 오빠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별수가 없다.

고도가 낮은 곳에 오자 웬 에너지가 펄펄 나는지 김병화군과 나는 더 이상 버스 안에만 있을 수 없었다. 자전거를 버스에서 내리고 매연이 가득하였지만 네팔의 아스팔트길을 신나게 내달렸다. 중간 중간의 시골마을을 지날 땐 페달질을 더 힘차게 하게 되었다. 왜냐구? 한적한 티벳에선 좀 지저분하지만 같은 동양인종 얼굴을 보는 것이 편안하였는데 갑자기 아리안족이 득실거리는 폐허 같은 마을 속을 한국 촌놈 둘이 뚫고 간다고 생각해 보라. 모르긴 해도 아리안들의 인상이 익숙치 않은 김병화군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났었을 거다.

카투만두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고급호텔 안나푸르나에 짐을 풀고 오랜만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니 벌써 날이 어두워 졌다. 호텔 옆 아리랑식당에서 김치찌개, 깍두기, 콩나물 무침, 생채나물에 냄새 안 나는 보리차 그리고 맥주, 와인을 마시며 무사히 문명세계로 돌아온 것을 축하하였다.


[글을 마치며]

한정된 시간, 짧은 여정 때문에 적어도 2, 3일은 잡아야 하는 고소적응도 제대로 하지 않고, 급하게 페달링 여행을 시작하였는데 이는 정말 무리한 시도였다. 티벳의 수도 라사에서 부터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까지 1000여 키로 중 200여 키로 만의 페달링이었지만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더 있었다면 모든 일정을 자전거만으로도 충분히 해 낼 수 있는 여정이었다.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멀리 에베레스트가 보이는 팅그리(Tingri)에서 라룽라(lalung-La) 고개를 넘어 장무(Zhangmu), 코다리(Kodari)에 이르는 후반부였는데, 이 구간은 아무리 일정이 촉박해도 필히 페달링 만으로 시도했어야 하는 곳이었다.

우리가 지나온 티벳 구간은 여행객들에게 자유롭게 개방된 지 4년 밖에 안된 구역으로 자전거 여행하는 많은 서양 친구들을 볼 수 있었지만, 한국 팀으로는 분명히 우리가 최초의 자전거 여행 팀이었다는 것이 티벳과 네팔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자랑스러울 것 까지는 아니지만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가 있는 롱북(Rong Buk) 지역은 경유할 수 없었던 것은 정말 아쉬운 점이었다. 혹 네팔에 갈 일이 있는 친구들은 "The Last Resort" 라는 곳에서 번지점프와 래프팅을 시도해 볼 것이며, 하루쯤은 절벽 위를 달리는 페달링(대여도 해 줌)도 시도해 보기를 권한다.

예정에 없었던 카투만두의 일정 덕에 시내의 힌두교 사원을 둘러 볼 수 있었는데 특이한 경험을 하였다. 사두라고 하는 인도의 수행자들이 사원 여기저기에서 하양, 노랑, 검정색들로 희한한 분장을 하고 여러 가지 요가포즈를 취한 채 과광객들에게 동냥을 하기도 하였다. 힌두교도들의 장례절차도 볼 수 있었는데 사원 내를 가로지르는 강물 옆에 제단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장작을 올리고 시체를 눕힌 후 화장을 한다. 흉측한 건 죽은 사람의 입에 심지 같은 것을 꽂아 그곳부터 불을 붙이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였는데 이곳 힌두교도 들에게는 모든 것이 입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그런 이벤트를 한다고 하는데 뭔말인지 잘 모르겠다. 또 재미있는 건 여기 저기 카마수트라에 나오는 요상한 섹스체위들이 사원 이곳 저곳에 조각되어 있다는 거다.

카투만두 시장 내에서 "Dawn Till Dusk" 라는 히말라야 전문 산악 자전거 가게를 방문하였는데 www.nepalbiking.com 이라는 그들의 웹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여러 가지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티벳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의 카투만두로 가는 모험길은 필히 자전거로 가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길이다.

친구들과 이 나이에 이런 모험을 할 수 있었던 우리들은 정말 행운아이며 특히 최영규군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모험은 생각도 기획도 그리고 실천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맙다 영규야. 우리 모두 네 추진력과 돌격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베트남에서 돌아 오면 모두 모여한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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