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면 두려움이 사라지다
잔차 탄 후 몸 상태
오른쪽 장단지가 뻐근하다. 걸을 때마다 그 가운데가 아프다. 샤워하고 난 후 아이들과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를 보다. 멍하게 화면을 따라가며 몸을 느끼다. 머리가 텅 비어서 무엇을 생각해도 꼬리를 물지 않다. 어깨와 팔·다리를 쭉 뻗어 보다. 움직임이 자연스럽다. 우두둑하는 소리가 없다. 전체적으로 몸을 한없이 가볍게 느끼지만 놀이터의 아이들처럼 활발하게 움직이고 싶지 않다. 마냥 앉아 있고 싶은 생각뿐이다.
자전거 상태
각이 있는 곳마다 흙이나 검은 물이 들다. 은색 림이 까맣게 도금된 듯하다. 브레이크 패드에 붙은 눈이 녹으면서 물이 되고, 그 물이 패드를 녹여내며 까만 물감이 된 모양이다. 그것이 림에 골고루 붙어 말라 있다. 브레이크 패드가 반은 마모된 듯하다. 지난 8월 자전거를 구입한 후 번개 전까지 패드가 닳은 양보다 오늘 마모된 것이 더 많다는 느낌이 들다. 그래서 브레이크를 잡으면 레버가 핸들바에 거의 닿을 지경이다. 한 마디로 닦고 조이고 기름치기를 충성스럽게 해야 할 상태다.
길 상태
9시 30분쯤 집을 나서다. 도로가 젖어 있어 보이는 곳은 영락없이 얼어 있다. 교차로에서 아무 생각 없이 좌회전하면서 미끄러지는 차가 자주 보이다. 중앙 공원에서 한 다리를 건너려고 나도 아무 생각없이 좌회전하다 넘어지다. 더럭 겁이 나다. 산은 얼음길이 아닐까? 예상대로 태재에서 불곡산 방향으로 우회전하면서 얼음길을 만나다. 마을을 벗어나면서부터 눈길을 만나다. 상상한 것보다 잔차는 잘 굴러가다. 기하한정식이란 음식점을 지나니 갑자기 심산유곡에 떨어져 버린 듯하다. 가지마다 폭신해 보이는 눈이 쌓여 있다. 멀리 보면 눈, 눈 세상이다. 눈길에서 모두 줄줄줄 끌고 가는 일이 흔하다. 어느 새 능선에 이르면서 싱글을 만나다. 등산객이 눈길을 다져 놓았지만 조그만 경사에도 자전거는 힘들어하다. 등산객이 없는 문형산 임도에서 반은 잔차를 모시고 가다. 브레이크패드와 림 사이의 눈이 얼어 레바 유격이 짧아지다. 브레이크를 잡아도 잔차는 잘도 굴러가다. 맹산 코스. 눈이 잘 다져져 잔차 타기가 좋아 보이다.
깊은 갈등 후에 참가한 번개다. 요즘 자전거가 자주 삐걱거리다. 덜컹거리는 충격에 6단에서 7단으로 자동 변속되며 들들거린다. 앞기어에서는 2단에서 몇 바퀴 돈 뒤에 3단으로 겨우 올라간다. 몇 개월 타지 않았는데 벌써 저 모양이네. 자전거를 볼 때마다 중고시장을 보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다. 물론 잔차를 바꿀 생각으로 중고시장을 기웃거리는 것은 아니다. 왈바에서 놀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길이 많이 가는 곳이 중고시장이다. 엔진도 문제다. 별로 엔진 성능을 위한 시도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몸으로 눈길을 가다 다치면 어떡하나. 민폐도 민폐지만.
그래도 아침에 부산떨며 옷을 챙겨입고 나가다. 여러 왈바분들이 궁금하다. 혹독한 조건을 이기고 설악산을 성공적으로 등반한 분의 얼굴도 확인하고 싶다. 율동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라이더들이 와 있다. 쑥스럽게 합류하다 보니 면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해서 얼른 바이크리님 앞으로 가서 인사를 하다. 이어 노을님의 새 자전거를 들어보면서 잔차가 가볍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개념이 생기다.
열시 칼 출발! 언제나 번개에는 그런 시간성을 강조하는 문구가 있다. 그러나 도착해야 할 사람은 끝까지 기다려 준다. 그래서 그 칼은 시퍼렇게 번득이지 않는다. 무리의 중간에서 태재를 오르다. 앞에 오르는 라이더를 보면 맘이 편안하다. 우리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을 느끼며 내가 이런 무리 속에서 패달질함을 뿌듯해 하다. 그래도 숨은 차다. 숨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땐 왜 이렇게 힘들게 잔차를 타나 하는 회의가 일어난다. 하지만 무리 속에서 그것은 화젯거리가 되지도 못한다.
다운힐이 걱정되었는데 앞서 내려가는 라이더들을 보니 걱정이 다소 가라앉는다. 정말 별일 없이 스노우라이딩을 즐기다. 뒷바퀴가 좌우로 미끄러져도 겁을 먹지 않다. 앞차들이 다 그렇게 다운힐했음을 바퀴 자국으로 확인하며 내려가다. 속도를 조절하며 안전제일주의를 외치니 뒷바퀴가 뒤에서 요동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다. 이게 별맛이로구먼. 어느 무덤 앞에서 약간 겁을 먹고 자전거를 내동댕이친 것만 없으면 눈처럼 깔끔한 한판이다. 파파스머프님의 질퍽한 계단 묘기를 구경하는 행운도 누리다.
뼈다귀 해장국과 함께 마시는 막걸리 맛이 일품이다. 말밥굽님의 설악산 기행담을 직접 듣다. 누구나 말발굽님과 같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특히 아침 식사 때마다 밥알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것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런 낭만이 그립다. 산다는 일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해진다. 그러나 낭만적 생각이 실천성을 얻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말발굽님의 목소리에서는 힘이 느껴진다. 기억에 남는 점심 식사이다.
이어진 문형산과 맹산의 라이딩은 즐거움이다. 불곡산의 경험이 재생산되며 여유를 갖고 라이딩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전거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다. 탐탁지 않은 조건에서도 외로움에 움츠리지 않고 눈길을 헤쳐 온 것이다. 다른 잔차처럼 주인에게 스노우라이딩의 즐거움을 준 것이다. 함께하는 가운데 왈바분들이 내게 눈길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한 것처럼, 함께하는 가운데 내 잔차는 나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해 버린 것이다.
잔차 탄 후 몸 상태
오른쪽 장단지가 뻐근하다. 걸을 때마다 그 가운데가 아프다. 샤워하고 난 후 아이들과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를 보다. 멍하게 화면을 따라가며 몸을 느끼다. 머리가 텅 비어서 무엇을 생각해도 꼬리를 물지 않다. 어깨와 팔·다리를 쭉 뻗어 보다. 움직임이 자연스럽다. 우두둑하는 소리가 없다. 전체적으로 몸을 한없이 가볍게 느끼지만 놀이터의 아이들처럼 활발하게 움직이고 싶지 않다. 마냥 앉아 있고 싶은 생각뿐이다.
자전거 상태
각이 있는 곳마다 흙이나 검은 물이 들다. 은색 림이 까맣게 도금된 듯하다. 브레이크 패드에 붙은 눈이 녹으면서 물이 되고, 그 물이 패드를 녹여내며 까만 물감이 된 모양이다. 그것이 림에 골고루 붙어 말라 있다. 브레이크 패드가 반은 마모된 듯하다. 지난 8월 자전거를 구입한 후 번개 전까지 패드가 닳은 양보다 오늘 마모된 것이 더 많다는 느낌이 들다. 그래서 브레이크를 잡으면 레버가 핸들바에 거의 닿을 지경이다. 한 마디로 닦고 조이고 기름치기를 충성스럽게 해야 할 상태다.
길 상태
9시 30분쯤 집을 나서다. 도로가 젖어 있어 보이는 곳은 영락없이 얼어 있다. 교차로에서 아무 생각 없이 좌회전하면서 미끄러지는 차가 자주 보이다. 중앙 공원에서 한 다리를 건너려고 나도 아무 생각없이 좌회전하다 넘어지다. 더럭 겁이 나다. 산은 얼음길이 아닐까? 예상대로 태재에서 불곡산 방향으로 우회전하면서 얼음길을 만나다. 마을을 벗어나면서부터 눈길을 만나다. 상상한 것보다 잔차는 잘 굴러가다. 기하한정식이란 음식점을 지나니 갑자기 심산유곡에 떨어져 버린 듯하다. 가지마다 폭신해 보이는 눈이 쌓여 있다. 멀리 보면 눈, 눈 세상이다. 눈길에서 모두 줄줄줄 끌고 가는 일이 흔하다. 어느 새 능선에 이르면서 싱글을 만나다. 등산객이 눈길을 다져 놓았지만 조그만 경사에도 자전거는 힘들어하다. 등산객이 없는 문형산 임도에서 반은 잔차를 모시고 가다. 브레이크패드와 림 사이의 눈이 얼어 레바 유격이 짧아지다. 브레이크를 잡아도 잔차는 잘도 굴러가다. 맹산 코스. 눈이 잘 다져져 잔차 타기가 좋아 보이다.
깊은 갈등 후에 참가한 번개다. 요즘 자전거가 자주 삐걱거리다. 덜컹거리는 충격에 6단에서 7단으로 자동 변속되며 들들거린다. 앞기어에서는 2단에서 몇 바퀴 돈 뒤에 3단으로 겨우 올라간다. 몇 개월 타지 않았는데 벌써 저 모양이네. 자전거를 볼 때마다 중고시장을 보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다. 물론 잔차를 바꿀 생각으로 중고시장을 기웃거리는 것은 아니다. 왈바에서 놀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길이 많이 가는 곳이 중고시장이다. 엔진도 문제다. 별로 엔진 성능을 위한 시도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몸으로 눈길을 가다 다치면 어떡하나. 민폐도 민폐지만.
그래도 아침에 부산떨며 옷을 챙겨입고 나가다. 여러 왈바분들이 궁금하다. 혹독한 조건을 이기고 설악산을 성공적으로 등반한 분의 얼굴도 확인하고 싶다. 율동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라이더들이 와 있다. 쑥스럽게 합류하다 보니 면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해서 얼른 바이크리님 앞으로 가서 인사를 하다. 이어 노을님의 새 자전거를 들어보면서 잔차가 가볍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개념이 생기다.
열시 칼 출발! 언제나 번개에는 그런 시간성을 강조하는 문구가 있다. 그러나 도착해야 할 사람은 끝까지 기다려 준다. 그래서 그 칼은 시퍼렇게 번득이지 않는다. 무리의 중간에서 태재를 오르다. 앞에 오르는 라이더를 보면 맘이 편안하다. 우리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을 느끼며 내가 이런 무리 속에서 패달질함을 뿌듯해 하다. 그래도 숨은 차다. 숨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땐 왜 이렇게 힘들게 잔차를 타나 하는 회의가 일어난다. 하지만 무리 속에서 그것은 화젯거리가 되지도 못한다.
다운힐이 걱정되었는데 앞서 내려가는 라이더들을 보니 걱정이 다소 가라앉는다. 정말 별일 없이 스노우라이딩을 즐기다. 뒷바퀴가 좌우로 미끄러져도 겁을 먹지 않다. 앞차들이 다 그렇게 다운힐했음을 바퀴 자국으로 확인하며 내려가다. 속도를 조절하며 안전제일주의를 외치니 뒷바퀴가 뒤에서 요동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다. 이게 별맛이로구먼. 어느 무덤 앞에서 약간 겁을 먹고 자전거를 내동댕이친 것만 없으면 눈처럼 깔끔한 한판이다. 파파스머프님의 질퍽한 계단 묘기를 구경하는 행운도 누리다.
뼈다귀 해장국과 함께 마시는 막걸리 맛이 일품이다. 말밥굽님의 설악산 기행담을 직접 듣다. 누구나 말발굽님과 같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특히 아침 식사 때마다 밥알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것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런 낭만이 그립다. 산다는 일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해진다. 그러나 낭만적 생각이 실천성을 얻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말발굽님의 목소리에서는 힘이 느껴진다. 기억에 남는 점심 식사이다.
이어진 문형산과 맹산의 라이딩은 즐거움이다. 불곡산의 경험이 재생산되며 여유를 갖고 라이딩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전거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다. 탐탁지 않은 조건에서도 외로움에 움츠리지 않고 눈길을 헤쳐 온 것이다. 다른 잔차처럼 주인에게 스노우라이딩의 즐거움을 준 것이다. 함께하는 가운데 왈바분들이 내게 눈길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한 것처럼, 함께하는 가운데 내 잔차는 나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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