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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퇴촌면, 관산-앵자봉 탐험기

........2002.03.18 08:36조회 수 725추천 수 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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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앵자봉 탐험기 

2001년 12월이었나? 아침이 꽤 추웠던 날이었습니다. 저와 왕창님과 사이클박님 세사람이 왕창님 차에 올라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으로 향합니다. 관산과 앵자봉을 잇는 능선은 퇴촌면 우산리 끝자락에 있는 천진암 천주교 성지를 고깔처럼 감싸고 있습니다. 퇴촌면에서 천진암으로 들어가는 도로변에는 여관과 러브호텔들이 즐비합니다. 여기가 聖地인지 性地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1-2-3-4
개척질은 언제나 입구를 찾는 일이 가장 큰 일입니다. 원래는 퇴촌야영수련장에서 출발하여 바로 4번 관산으로 직등하는 코스(지도에서 분홍색 화살표)를 밟을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등산로 초입을 발견치 못해 초조해하던 일행에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1번 지점. 널따란 주차장과 등산지도 게시판, 분명하게 정비된 등산로 입구에 "경 관산-앵자봉 등산로 개통 축"이라고 펄럭이고 있는 플래카드, 뭘 더 의심했겠습니까. 일행은 이렇게 쉽게 초입을 찾기는 첨이라며 서로 자축하고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잔차를 짊어지고 등산을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끌어야 하는 가파른 오르막이 버티고있었지만, 거기를 퇴촌야영수련장 등산로로 착각하고 있었던 우리로서는 "지까짓 것" 싶었습니다. 제아무리 가팔라 봐야 한 30여분만 고생하면 바로 관산 정상이겠거니... 생각했던 거죠. 정말로 한 30여분 잔차를 끌고 나니 관산인 듯 싶은 봉우리에 도달하더군요. 아, 관산이구나... 싶었는데 정상에 꽂혀있는 팻말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팻말에는 원래 쓰여있던 글씨가 지워져 있고 그 위에 매직으로 "이 산이 아닌가벼"라고 쓰여있었습니다. 일행은 잠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여기가 관산이든 아니든 우리가 관산-앵자봉 능선을 종주하려면 어찌 됐든 이 능선을 계속 타야 한다. 이런 결론에 도달한 우리는 찜찜한 마음을 챙겨 배낭에 넣고 길을 재촉합니다. 길이 참 잔인합니다. 계속 끌고 이고 지고.. 관산일 듯한 봉우리를 몇 개를 넘었나 모릅니다. 단말마의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지금 모르는 사이에 관산을 지나 앵자봉으로 가고 있는 것일게다.." 이런 생각으로 위로를 삼았습니다. "정말 저건 관산일꺼야"라고 생각했던 2번 봉우리를 지나니 제법 긴 내리막이 시작됩니다. 거봐 그게 관산이었던게야. 신나는 내리막이 끝나고 능선안부 3번 지점에 도달한 후에야 우리는 첫단추를 얼마나 잘못 끼웠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3번 지점에는 "관산 정상 직진 0.7킬로"를 알리는 팻말이 박혀있었습니다. 몹시도 허탈했지만 그래도 길을 벗어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까짓껏 0.7킬로 밖에 안되는데... 다시 맘을 다잡아 먹고 언제 내리막이 있었느냐 싶게 발딱 서있는 가파른 오르막을 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관산에 오르는 요 마지막 오르막이 정말 사람 잡는 오르막이었습니다. 말하기 싫습니다. 해산하는 산모의 비명을 내지르며 올라서니 관산 정상을 알리는 팻말이 있고 왼쪽으로 우리가 첨 오르려 했던 길 - 퇴촌야영수련장에서 오르는 코스 - 이 보이더군요. 그 길도 로프가 매져있는 만만치 않은 길이었지만 30분이면 오를 수 있는 길이지요. 우리는... 그 환영 프래카드에 속아 한시간 40분에 걸친 사투 끝에 관산 정상을 밟았던 것입니다.

4-5
관산을 지나서도 길의 잔인함은 누그러질 줄 모릅니다. 입이 다물어지질 않아 입꼬리로 연신 흘러내리는 침을 그냥 내버려둔 채 오르막 하나를 올라서면 예의 내리막이 나오지만 하나도 반갑지 않습니다. 물론 첨에는 반가웠죠. 하지만 잔차를 끌고 관산 능선위에서 한 30분만 허부적대다 보면 그게 부질 없는 반가움이란 걸 쉽게 알게 됩니다. 관산한테 길이 드는 거죠. 우리는 비명을 지르거나 '이거 너무하네' 불평할 여력도 없이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 오르막이 나오면 나오나보다 내리막이 나오면 나오나보다, 연신 잔차를 끌었습니다. 아니, '우리'란 좀 부적절한 표현입니다. 사이클박님이나 왕창님은 그래도 기가 살아있으셔서 탈만한 구간만 나오면 부지런히 안장 위로 올라가셨지만, 요 온바이크만 유독 20킬로에 육박하는 무지막지한 잔차와 전에 없이 잔인무도한 길의 협공에 완전히 곤죽이 됐던 것입니다. 5번 지점 직전의 봉우리에 도달하고서 부텀은 어라? 제법 긴 내리막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 즐거움도 잠시...

5-6
일행은 너무도 오랜만에 만나는 긴 내리막길의 환희에 눈먼 나머지, 능선을 이탈하여 천주교 성지쪽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걸 한참을 괴성을 지르며 내려온 후에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다시 잔차에서 내려 왔던 길을 끌고 올라갑니다. 심리적인 억울함까지 겹쳐 오름길이 배로 힘겹습니다. 최초 길을 잘못 든 지점에 다시 돌아와 보니 능선길은 아주 희미하고 우리가 내려갔던 하산길이 너무도 분명하여 누구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능선을 이탈하기 딱 좋을 법 했습니다. 한숨을 돌린다음 박석거리로 내려가는 능선안부가 있는 6번 지점까지 시원하게 내려갑니다. 중간에 삼천포로 빠지지만 않았으면, 5-6은 관산 능선이 첨으로 그 잔인함을 풀고 푸근한 내리막을 선사하는 구간입니다.

6-7
그러나 6지점부터는 다시 고행이 시작됩니다. 그래도 이 구간은 훨씬 정직합니다. 감질나게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면서 사람 진을 빼지는 않습니다. 처음부터 시작하여 7번 앵자봉 정상까지 오로지 우직하게 오르막 뿐입니다. 첨에는 경사가 완만하여 타고 가지만 점차 경사가 급해지고 앵자봉 정상부에서는 숨이 막힐 정도로 가팔라집니다. 거의 초죽음이 되어 꼴지로 앵자봉 정상을 밟습니다. 아주 좁습니다. 사람 셋이 서고 잔차 세대 널부러 놓으면 꽉 찹니다. 멋진 전망입니다. 하늘과 땅이 맞닿는 지점에 우리 세 사람과 자전거 세 대가 있습니다. 앞 뒤 좌우가 다 깍아지른 절벽입니다. 올라온 방향에서 1시 방향으로 하산로가 나 있습니다만 정상에서 보이는 지형으로는 저 길이 길이 아니라 거의 절벽 수준일 거란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그러나 내려가는 길을 걱정하기엔 모두들 너무 지쳤습니다. 초겨울 치고는 제법 따사로운 늦은 오후의 햇살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한참을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7-9
다시 전열을 가다듬은 우리는 절벽임이 분명했던 한시방향 하산로를 따라 앞바퀴를 내려놓습니다. 길이 급하게 좌로 꺾입니다. 경사는 아직 그다지 급하지 않아 여차하면 엉덩이를 최대한 뒤로 뺄 작정으로 엉거주춤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뒷바퀴를 미끄러트리고 코너를 돌아나옵니다. 코너를 돌자마자 본격적인 급경사 내리막이 시작됩니다. 게다가 왼쪽 옆은 바로 깍아지른 낭떠러지입니다. 중간에 바위가 길을 가로막아 낙차 큰 둔턱도 만들어 놨습니다. 이를 악물고 튕겨오르는 뒷바퀴를 엉덩이로 내리 누르며 한 달음에 앵자봉 정상부를 벗어납니다. 다 내려와 뒤돌아보니, 세상에나 저기를 내려왔나 싶습니다. 이제부터 얼마간은 경사가 거의 평지에 가까워지면서 우산봉을 지나 8번, 9번 두 개의 헬기장을 통과합니다. 첫 번째 헬기장을 지나면서 또 한번 길을 잘못듭니다. 능선길이겠거니 하고 계속 가고 있으려니까 급경사 내리막이 시작됩니다. 첨에는 반가왔지만 경사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본능적으로 능선을 벗어났구나 하는 생각이 블현 듯 들었습니다. 뭔가 이상한 낌세를 먼저 알아차리신 왕창님이 뒤에서 고함을 치시는 통에 다시 잔차들고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하여튼 가늠하기 어려운 산입니다.

9-10
9번 지점을 지나면서부터는 낙엽이 융단처럼 깔린 구절양장의 내리막길을 만납니다. 길이 비탈 사면에 붙어서 봉우리를 돌아나가는 구간에서는 길의 폭이 너무도 좁은 나머지 낙엽에 밀려 바퀴가 길을 이탈하기 일쑤입니다. 코너를 돌아나오면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뒷바퀴가 한무더기의 낙엽을 쓸어내리며 비탈 아래로 빨려들어갔을 때, 온바이크는 혼비백산하여 옆으로 꼬꾸라지고 새로 장만한 20킬로 짜리 "프리라이딩" 잔차는 페달이 길 모퉁이에 걸린 채, 앞부분 반이 가까스로 길 위에 남아있는 탓에 추락을 모면합니다. 한번도 앵자봉 정상부에서와 같은 섬찟한 구간은 나오지 않습니다. 비단길에 평이한 경사,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이런 내리막질을 그나마 짜릿하게 해주는 것은 길이 한눈 팔 겨를 없이 좌우로 굽이치기 때문입니다.

10-13
콧노래를 부르며 10번 지점에 도달하지만 우리는 하산하는 좌측길을 찾지 못합니다. 몇 군데 길인 듯 한 자취를 따라 내려가 봤지만 이내 흔적이 끊겨 버리고 우리는 체력만 허비한 채 다시 능선으로 올라와야 했습니다. 계속 능선을 탔습니다. 이제 내리막이 거의 끝나고 군데군데 오르막도 만납니다. 체력은 거의 소진됐고 해도 기울어가는데, 내려갈 길을 찾지못한 일행은 자꾸 불안해집니다. 11번 지점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그나마 분명하던 능선길 조차 자취가 희미해져갑니다. 11번 지점으로 되돌아온 우리는, 어쨌든 천진암으로 통하는 포장길이 능선의 왼쪽에 있는 것이 틀림 없으니 길이 없더라도 무조건 경사가 완만하고 잡목이 적은 곳을 골라 왼쪽 비탈을 뚫고 나가기로 합니다.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과감히 능선을 벗어나 낙엽이 신혼부부의 원앙금침처럼 쌓인 경사 40도의 비탈을 잔차로 내리지릅니다. 한참을 뒷바퀴로 낙엽을 쓸어내리며 잡목들 사이를 비집고 내려오니 오래 사람이 다니지 않아 억새와 잡풀이 무성한 임도를 만납니다. 거기가 12번 지점입니다. 임도를 헤치고 나오니 분명한 마을길이 나오고 한참을 달려 내려오니 우산리앞 버스 정류장이 있는 포장도로로 내려설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도로를 따라 차를 세워둔 지점까지 가는데... 얼마나 먼지, 도로로 가도 이렇게 먼 길을 능선에서 헤맸으니.. 우리는 다시금 관산 오름길 능선에서 고생하던 불과 몇시간 전을 기억해내고는 잔차 위에서 오줌이라도 누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온 몸의 체온을 다 빼앗길 정도의 포장길 내리막질을 하고 나니 드디어 "경 - 관산 앵자봉 등산로 개통 - 축" 너무나 원망스럽기도하고 반갑기도 한 그 프래카드가 눈에 들어옵니다. 세워둔 차 앞에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잔차 바뀌면서 속도계는 무용지물이 돼 버렸습니다), 세상에나 우리는 무려 7시간 반동안 관산-앵자봉 능선상에서 사투를 벌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잔차꾼들의 행복한 산행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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