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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산 탐험기 - 온양 광덕산편

........2002.04.05 02:08조회 수 474추천 수 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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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일자 : 2002년 3월 10일 일요일

참가 잔차꾼 : 왕창님, 짱구님, 이혁재님, 산초님, 다리굵은넘님, 온바이크

개척구간 : 1-2-3-4-5-6-5-7-1


새벽에 제법 시끄러운 빗소리에 잠을 깬다. 오늘은 잔차질이 어렵겠구나... 체념하고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좀처럼 쉽지가 않다. 10년쯤 살며 겪을 일을 두시간 남짓의 꿈자리에서 다 맛보고 있던 차에 찌르르르 핸드폰 소리가 울린다. 짱구님이다.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처마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비는 그쳐 있었다. 당연히 예정대로 진행합니다 -- 그래요, 여기두 비 안와요.

전화를 끊고 부산스럽게 아침을 물린 다음 장인어른의 애물단지 1톤 포터에 잔차를 싣는다. 10여년이 넘게 장인어른과 고락을 같이한 늙은 트럭이다. 얼마 전에 송강호가 선전하는 리베로가 장인어른의 새 파트너가 된 이후로 이 놈은 집 앞 공터를 폐차될 날만 기다리며 지키고 있다. 가끔 차에 흠질 우려가 있는 거친 짐을 실어 날라야 하는 일이 있을 때만 새차 대신 차출될 뿐이다. 난 이런 트럭에 딴힐차 싣고 다니는 것이 꿈이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내 꿈은 그것이다.

약속시간은 오전 10시 30분이었으나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은 12시가 거의 다 돼갈 무렵이었다. 다리가 굵은 모씨가 약속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기다리는 시간에 왕창님, 짱구님, 이혁재님, 그리고 나 이렇게 네사람은 늦게 오는 인사를 원망하기 보담은 보다 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이혁재님의 안내로 태조산을 찾았다. 비온 후 산안개 피어오르는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 기분을 나는 태조산에서 비로소 알게 된다. 팔각정이 있는 곳까지 갔다가, 오늘의 탐험지가 태조산이 아니라 광덕산이란 걸 뒤늦게 기억해낸 일행은 왔던 길을 되돌아 신나게 내려온다. 천안 삼거리 가락처럼 덩실덩실 경쾌하고 신나는 내리막질이었다. 태조산 유람을 끝내고, 지각조와 합류한 우리는 서둘러 광덕산 아래 외암민속마을로 차를 몬다.   

외암민속마을 주차장에 도착하자 하늘은 언제 비가 왔느냐 싶게 화창하게 개어있었다. 여자에게 첫 개시를 하믄 언제나 재수가 없다고 투덜대는 오뎅 아저씨의 포장마차에서 우리는 남자인 것에 무지 고마움을 느끼면서 오뎅, 풀빵, 닭꼬치, 등속으로 점심식사를 때운다. 다리가 굵은 그 남자가 지각한 죄를 속죄하고 싶다며 먹은 값을 손수 치렀다. 모두들 겉으론 고마워했지만 속으론 앞으로 지각하믄 피해가 막심하겠구나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1-2-3

괴로운 임도 오르막질을 시작으로 광덕산 탐험의 막이 오른다(여기서 오르막질이란, 도둑질은 남의 물건을 훔치는 행위, 서방질은 남의 서방을 훔치는 행위, 뜀박질은 마구 달리는 행위를 말하듯이,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행위를 일컫는 말로서, 업힐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쓰기 싫어서 온바이크가 얼마전부터 쓰기 시작한 추한 표현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내리막질은 다운힐을 일컫는다는 걸 벌써 알아챘을 것이다). 가뜩이나 경사가 가파르고 잔돌이 많아 오르기 벅찬 길인데다 봄비에 흙범벅이 되다시피한 구간이 자주 있어, 나는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된다. 그런데도 도무지 이 세상 사람 같지 않게 이런 길을 휙휙 잘도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항상 도탄에 빠진다. 보라, 그들이다.


<왕창님과 이혁재님>

3-4

임도 오르막질이 끝나는 곳에서 잠시 휴식한 후 우리는 바로 능선을 향해 우측으로 난 등산로를 오르기 시작한다. 타고온 오르막이 끝나고 끌고갈 오르막이 시작되는 것이다. 줄창 자전거를 밀어올려야 하는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정확히 15분을 밀고 올라오니 왼쪽 앙상한 나무들 틈으로 망경산이 올려다 보이는 이름 모를 봉우리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광덕산의 등줄기를 타게 된다.


<짱구님 뒤루 보이는 산이 망경산입니다>


4-5

원래의 예정을 무시하고 망경산행은 포기한다. 광덕산을 향해 가는 능선길은 내가 늘 쓰는 표현대로 '자유잔차질의 진수'다. 그 '진수'가 너무 많아서 발언의 신빙성이 떨어지겠지만, 어쨌든 이곳도 그 많은 진수들 중 하나다. 다만 군데군데 진창이 되어버린 가파른 오르막이 나와 일행의 발목을 잡을 뿐이다. 두세번 미끄러져 앞으로 꼬꾸라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코를 땅에 박을 뻔 한다. 사진을 보라. 벌써 저 앞에 가는 눔, 한바탕 꼬꾸라진 다음이다.




산초님의 악의적인(!) 왜곡에 속지 마시라. 요런 구간은 가끔씩 양념으로 등장할 뿐, 전체적으로 보면 충분히 즐기며 잔차질할 수 있는 환상의 능선이다. 최소한 이른바 '장군바위'라고 하는 거대한 돌덩어리가 앞을 가로막기 전까지는 그랬다.

5-6


<장군바위>

장군바위라... 왜 그렇게 불렀을까. 내가 보기엔 장군의 풍모 같은 건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고, 굳이 닮은 꼴을 찾으라면 무슨 거대한 뒤주같이 생겼다. 그렇다고 열어제껴보면 어린 사도세자가 오들오들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 같은 뒤주는 전혀 아니고, 대신에 급경사 귀신, 짱똘귀신, 바위귀신, 바위에 묶여있는 밧줄 귀신, 등등이 떼거지로 몰려나와 앞으로의 여정을 엄청 고생스럽게 만들 것 같은, 말하자면 한국판 '판도라의 상자'같은 모양새였다. 장군바위를 돌아나서자 마자 나의 이 불길한 느낌은 그대로 적중했다. 사진 한 장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장군바위 이후부터 광덕산 정상까지 최소한 4-5번 정도는 이런 구간을 지나야 했다.

꼭 정상일 것만 같은 -- 아니 정상이어야만 하는 -- 봉우리를 세 개쯤 더 지난 후에 우리는 드디어 해발 6??미터 광덕산 정상에 도착한다. 자전거를 끌고 정상에 올라설 때 늘 듣게되는 탄성들이 그날도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광덕산 정상>

오른쪽으로 멀리 아산방조제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하늘은 쾌청하고, 산 아래에서 쐐었으면 무척 차가왔을 법한 바람이 오름의 고통으로 더워진 몸뚱아리를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막걸리 생각이 간절하게 났지만 이상하게도 눈앞에 펼쳐져있는 막걸리 좌판을 보고도 아무도 -- 심지어 짱구님 마저도 -- 한잔 하자는 사람이 없다.

6-5

이제 내려갈 일을 궁리해야 한다. 해 그림자가 벌써 길어지고 햇살에는 황금빛이 짙어지고 있었다. 가장 빠른 하산길은 북쪽 능선으로 분명히 난 길을 따라 강당골로 내려서는 것이겠지만, 일행은 일단 원래 여정대로 가는데 까지 가보자는데 합의하고는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간다.

정상에서 시작되는 첫 내리막은 내가 비디오를 찍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박진감이 넘쳤다. 엉덩이를 한껏 뒤로 빼고 튀어오르는 뒷바퀴를 X꼬로 찍어누르면서, 불거져 나온 돌부리들을 요리조리 피하거나 혹은 부서져라 짓밟으면서, 잔차와 나는 한덩어리가 되어 용트림친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아 질척한 검은 흙덩어리들이 사방으로 튀어오르고, 흙덩이들이 헬멧과 고글에 사정없이 부딪혀 내는 거친 소음들은 비디오에 단골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메탈 사운드를 대신해주었다. 

그러나 그 구간을 지나서부터는 판도라의 상자, 아니 장군바위의 마법 덕분인지 거침 없는 내리막질이 불가능했다. 우선 장군바위부터 정상까지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여럿 줄을 서 있기 때문에 정상에서 되돌아오는 구간에도 여전히 심심찮게 오르막을 만날 수 밖에 없다. 내리막구간에서도 애를 먹기는 마찬가진데, 바위들이 워낙 불친절하게 서로 엉켜있어 좀처럼 시원하게 길을 터주지 않는다. 길 좌우에서 절묘한 각도로 삐져나와있어 앞바퀴가 걸리거나, 앞바퀴를 살짝 들어 무사히 빠져나왔다 싶으면 꼭 크랭크나 페달이 사정없이 바위에 찍힌다. 이런 구간을 겨우 툴툴거리며 빠져나오면 급경사에 돌들이 삐져나온, 신나게 내려올 만한 구간이 반겨준다. 그러나 너무 광분했다가는 큰코 다친다. 한 10여미터 스릴 넘치게 내리지르고 나면 길이 우측으로 급하게 꺾이면서 바로 집채만한 바위 절벽이 앞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친절하게도 동아줄이 드리워져있다. 잔차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으려니, 다리굵은 그 남자가 무게 면에서 내 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 자신의 육중한 잔차를, 마치 의장대가 소총 다루듯이 한손으로 겨드랑이 아래 차고는 다른 한손으로 동아줄을 잡고 성큼성큼 가뿐하게 바위를 내려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뒤돌아서서 경외와 흠모가 가득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잔차 이리 주시죠. 왜 잔차람 -- 나는 그 굵은 다리의 남자 품에 사뿐히 내 몸을 의탁하고 싶었다. 멋진 남자다.

이렇게 다리굵은 남자의 헌신적이고 선구적인 행동 덕분에, 마치 화재 현장에서 물양동이를 릴레이로 나르듯이, 한사람씩 한사람씩 바위벽에 차례로 기대서서 뒷사람의 잔차를 받아 내리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이곳을 지나면서 부터는 신나게 탈 만한 구간이 장군바위까지 이어졌다. 장군바위에 도착했다. 일행은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체됐기 때문에 여기에서 바로 하산하기로 뜻을 모았다. 좌측으로 강당골 방향 등산로가 나있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어째 초입의 분위기가 으스스한 듯도 했지만 바로 능선을 버리고 그 길로 접어들었다.   

6-7

초입의 분위기가 괜히 으스스한게 아니었다. 10여미터 정도 지나자 길은 거의 50도 경사를 이루면서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바위길은 아니었으나 수북히 쌓인 낙엽과 그 아래 진창이 되어 미끈거리는 흙 때문에 우리는 잔차에서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잔차를 끌고 내려가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낙엽과 진창에 발이 미끌어져 잔차 밑에 깔리기를 여러차례...

이 무지막지한 내리막길이 끝나자 돌무더기 계곡길이 시작됐다. 여기가 바로 광덕산 탐험길의 백미였다. 관악산 서울대쪽 다운힐코스와 흡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바위들이 땅에 고정돼있는 것이 아니라 꿀렁거린다는 것. 일단 꿀렁거리는 바위 위에 올라서면 잔차와 바위의 균형을 동시에 잡아야 한다. 절묘한 재미다. 흙이라고는 한 줌도 찾아볼 수 없이 오로지 서로 엉겨붙어있는 바위들로만 이루어진 길이다. 그런데도 기특한 것은 모두 다 타고내려올 수 있는 구간이라는 점이다. 브레이크 잡는 시점을 절묘하게 잘 잡아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아마도 클립리스 페달을 사용하는 분들은 재미가 반감될 것이다. 분명 한두 군데서 클리트가 빠질 것이고 일단 클리트가 빠지고 나면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 왕창님께서는 클리트가 빠져 용솟음치는 몸뚱이를 배를 안장 위에 올려놓은 채 간신히 추스르면서, 그 바윗길을 다 내려오셨다. 사진은 이 구간에서 유일하게 흙이 보이는, 마지막 10여미터 부분이다.           




7-1

이 구간이 끝나면 대회 XC코스였던 임도와 만난다. 임도를 건너서 바로 직진한다. 요 구간은 대회 코스 마지막 구간, 즉 임도를 벗어나 계곡을 따라 식당 옆으로 떨어지는 바로 그 구간이다. 신나게 속도를 내며 내려온다. 소리도 질러본다. 쏜살같이 강당골을 지나 콘크리트 포장길을 내달려 외암리 민속마을 주차장에 도착한다. 비록 원래 계획했던 구간을 다 돌아볼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래야 다음에 또 올 구실이 생긴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삼고 귀가길에 올랐다. 광덕산의 다른 길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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