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폭풍속의 162킬로미터.......

........2002.07.25 14:20조회 수 1030추천 수 2댓글 0

    • 글자 크기


성별 : 남, 나이 : 36, 키 : 183, 몸무게 : 79, 엠티비 입문 : 2001년 8월, 소유 차종 : giant atx 890, 직업 : 중학교 교사, 근무지 :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생활연고지 : 강원도 속초시
라이딩 주요 경력 : 오대산 투어38킬로, 속초 - 고성 통일전망대 왕복 95킬로. 동강 투어 코스 50킬로. 그 외엔 20킬로 이상 타 본 적 없음.

7월 23일.
오래전부터 꿈꾸던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신동에서 속초까지의 라이딩.
학교 방학은 20일. 짐을 꾸려 자동차에 싣고 속초로 출발, 라이딩에 필요한 장비만 남겨 두었다. 사전 준비? 거의 하지 못했다. 장마에다 방학준비, 학생들의 야영... 한시간 이상 잔차 타 본지는 한달도 넘었다.
토요일 저녁(20일), 친구들 모임에 갔다. 술은 적당히 해야 하는데(컨디션 조절상) 그게 잘 안된다. 설상가상 양쪽 발목을 삐끗, 라이딩은 커녕 병원가면 입원하라고 할 판이다. 아내에겐 애써 아픈척 안하고 태연하게 행동한다.
22일 월요일, 차비만 가지고 신동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우와 차비가 자동차(참고로 자동차는 경유차임) 기름값의 두배 이상, 시간도 두배 이상. ㅠ.ㅠ  간단한 준비를 하고 잠을 잔다.
o 준비물 목록 : 상의 3벌(긴팔 저지 포함), 방수 거의 안되는 비옷 1(상의), 양말2, 반바지1, 수건, 행동식 약간, 생수1, 스포츠음료2, 꿀물1, 펌프, 펑크패치 등
o 예상 라이딩 코스 : 신동 - 마차재 - 남면 삼거리 - 삼례약수 - 화암약수 - 임계면 골지리 - 임계 - 고단(중식) -  강릉 왕산 - 성산 - 강릉 - 주문진 - 양양 - 속초

23일, 날이 밝았다. 심상치 않다. 일기예보엔 호우주의보가 내렸단다. 걱정된다. 잔뜩 찌푸린 날씨가 금방이라도 쏟아부을 것 같다. 아침을 해결하고, 마저 정리하고, 스트레칭하고, 최종 점검한뒤 속도계 셋팅하고 잔차에 올라 출발. 현재 시간08:33분. 시원하다.

15분 쯤 후, 빗방울이 떨어진다. 제길... 계속 달린다. 점점 빗줄기가 굵어진다. 그냥은 못간다. 마차재 아래 원평휴게소에 들러 우의를 걸쳐 입는다. 잠시 하늘을 살피는데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계속 쉴수는 없는 일. 다시 일어선다. 지금까진 완만한 언덕이었는데 이제부턴 본격적이다. 정상까지 3킬로. 아직은 초반이라 여유가 있다. 정상을 지나 남면까지는 계속 다운힐. 최고속도를 내보고 싶었는데 빗길이라 미끄러운데다 앞까지 보이질 않아 그저 조심조심(전엔 사백미터정도의 내리막에서 72킬로까지 달려봤다). 비는 여전히 거세다, 바람까지. 남면의 도로 옆 한 민가 처마 밑으로 들어갔다. 잠시 휴식,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아뿔싸. 전화기가 빗물 먹고 죽었다. ㅜ.ㅜ 어쩌나. 어쩔 수 없다. 밧데리를 분리해서 휴지로 돌돌 말아 비닐봉지 안에 집어넣어 배낭 속에 넣고 쵸코바랑 양갱이랑 먹고, 담배 하나피고 다시 출발, 이제부턴 비포장 산길이다.
처음계획은 일반도로로만 갈 계획이었는데 그럼 180킬로, 거리도 멀거니와 지루할 거 같아 거리도 줄일 겸 산악자전거인데 산으로도 가자라는 마음으로 코스를 바꿨다. 거리는 15킬로 이상 단축된다. 힘이 얼마다 더 들지는? 모른다.
본격적인 산길이다. 이 삼례약수 길은 몇 년 전 시멘트 포장이 되었고 지금은 정상부근이 아스팔트 포장공사 중이다. 초입이 어렵다. 시멘트 포장은 비포장 보다 못하다. 전형적인 산길, 굽이굽이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다. 얼마나 올랐을까? 끝이 보인다. 내리막 시작. 이 내리막 끝자리엔 화암약수가 있다. 얼마전에도 왔었지. 약수터에 들러 내리 세 잔을 들이킨다. 맛있다. 옆 개울가에 있는 의자에 짐을 풀어놓는다. 잠깐 쉬어야겠다. 온 몸 어디하나 젖지 않은 곳이 없다. 디딜 때마다 신발에선 물이 쿨렁 새어 나온다. 기왕 젖은 거 개울물에 온몸을 담근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 빼먹고, 담배 하나 물고 한참을 쉰다. 이미 열한시가 넘었다. 이제 겨우 23킬로 정도 왔는데... 열두시 전에 임계까지 가지로 계획한 건 이미 틀렸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어르신들이 이상한 놈이라는 듯 힐끗힐끗 쳐다보고 가신다. 그럴만도 하지, 날씨나 좋으면 모를까 이 빗속에 잔차를 타는 놈이라니...  여긴 공중전화도 없다. 아내가 걱정할텐데...
다시 출발, 임계까지는 30킬로, 쉬지 않기로 했다. 아마도 오늘 라이딩을 가장 험한 코스가 여기 아닐까. '벌문재', 해발 700이 넘는다. 오르막 10킬로, 내리막 10킬로, 도로는 좋다 재작년인가 포장이 되었으니... 자동차론 몇 번 지나봤지만 잔차론 처음이다. 뜨거운 날보단 비오는 날이 쉬울거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언덕을 오른다. 정상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바닥만 보고 페달링을 한다. 얼마쯤 올랐나 고개를 들어 보니 아직 반도 안왔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내려서 끌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그러나 겨우 이 정도에서... 다시 이를 악문다.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학교의 학생들에게도 큰소리 쳤는데... 악문 이사이로 쓴웃음이 새어 나온다. 몇 굽이를 더 올랐을까? 정상이 보인다. 올라올 땐 열기 때문에 몸에서 김이 무럭무럭 났는데 내려갈 땐 추워서 몸이 덜덜 떨린다. 오르막은 긴데 내리막은 왜 이리 짧은지...
고개를 다 내려와서 임계까지는 평지 12킬로. 풍경을 감상하며 지난다. 임계 도착, 그냥 지나간다. 3킬로쯤 가면 고단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그 곳에 막국수집이 꽤나 유명하다. 거기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근데 그 집까지가 또 오르막이야... 우와 죽여주는군...
이름하여 버들재, 요즘 확장공사중이라 길을 따 파헤쳐 비포장 상태이다. 길은 이미 질퍽질퍽, 말이 아니다. 바퀴가 푹푹 빠져 앞으로 가질 않는다. 내려서 끌 수도 없고,,, 그냥 간다. 지나가던 승합차에서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학생이 보기가 안됐던지 '수고하세요'하고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고맙다.
막국수집 도착. 들어서며 자리가 바깥쪽 정원에 자리가 있냐고 묻자 깜짝 놀라며 몇 분이냐고 되묻는다. '혼자요' 라고 하자 몇 십명 오는 줄 알았다고 하신다. 막국수집에 왔으니 막국수를 먹어야 제격이겠지만 도저히 그걸 먹을 자신이 없다. 따끈한 거 뭐 있냐고 물으니 육개장이 있다고 하신다. 한 그릇 시키고 옷을 갈아입는다. 다행히 배낭 속의 옷은 젖지 않았다. 뽀송뽀송한 옷을 입으니 기분이 참 좋다. 아내에게 전화해서 걱정말라 하고, 육개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운다. 피곤한 몸 맛사지도 하고 한참을 쉰다. 정각 두 시, 다시 잔차에 오른다. 20여분 후, 삽당령 정상, 이 고개 아래가 강릉이다. 강릉까진 자그마한 언덕하나 뿐, 계속 내리막이다. 신나게 달린다. 긴팔 저지를 하나 더 끼어 입어서인지 춥진 한다. 비가 안 오는 걸 보고 출발했는데 중간쯤 내려오니 또 비가 온다. 버스 정류장 안에 들어가 다시 우의를 입고... 강릉은 그냥 지나친다. 강릉 아산병원 못 미쳐 고개 정산 부근의 작은 휴게소에서 휴식, 세시 반. 시간 참 빨리 지나간다. 계획하곤 전혀 맞지 않는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양양을 지났어야 하는데... 일반 자전거에 헬멧은 쓰고 뒤에 깃발을 하나씩 꽂은 학생들이 스무명쯤 나타난다. 지원차량도 있고, 차엔 강남구 청소년 어쩌구저쩌구 쓰여 있다. 한 학생에게 물어보니 서울서 왔는데 속초까지 간단다. '우와 서울에서 여기까지' 깜짝 놀라 물어보니 서울서 강릉까진 자동차로 오고 강릉서 속초까지 자전거 타고 간단다. 동행하려 했는데 그러다보면 너무 늦을거 같아 먼저 출발. 네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다. 삼팔선 휴게소까지 가기로 한다. 피로가 점점 누적된다. 평소에도 별로 좋지 않았던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쪽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허리, 손목도 아프다. 가장 아픈건 엉덩이다. 방법이 없다. 가끔 일어서서 타는 수밖에... 평균 25칼로 정도의 속도로 주행한다. 지나던 승용차에서 젊은이가 파이팅을 외치고 지나간다. 힘이 난다. 다시 달린다. 그러나 얼마 못간다. 피서철이라 7번 국도엔 자동차가 넘친다. 조심조심 갓길로 운행을 한다. 38선 휴게소 도착, 다섯시가 넘었다. 잠시 휴식, 동전을 바꿔 아내에게 도착예정시간을 알린다. 아이들을 데리고 마중나오겠다고 한다. 그러라고 한다. 무슨 개선장군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이런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든다. 너무 오래 쉬었나? 시간이 다섯시 삼십분을 넘었다. 이제 속초까진 33킬로 정도, 논스톱이다. 아내완 대포동 아래 설악산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양양 가기 몇 킬로 전, 이 근방에선 유명한 밀양고개가 나온다. 평소같으면 웃으며 넘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미 라이딩만 여섯시간 이상, 거리로 140여킬로 정도를 지난 상태, 금방 지친다. 헉헉.... 그나마 언덕이 비교적 짧다. 지금은 비가 오지 않는다. 가볍게 반팔 차림, 내리막에선 차들과 나란히 달린다. 60킬로 이상... 차들만 없다면 더 달리겠는데.. 욕심은 부리지 않기로 한다. 양양을 지나고, 낙산을 지나고, 멀리 대포동이 보인다. 구름사이로 설악산도 보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설악산 입구(대포동) 도착, 현재 시간 06:56분. 너무 빨리 왔나? 아내보곤 일곱시 이십분쯤 나오라 그랬는데.... 쩝,,,, 바닷가에 잔차 세워놓고 담배를 하나 피워문다. 아! 드디어 다 왔다. 이제 집까진 4킬로, 아무것도 아니다. 여기까지 158킬로.... 총주행시간 11시간, 라이딩 시간 7시간 30분. 평균속도 20.7킬로..........
아내는 오지 않는다. 그렇겠지.. 내가 너무 일찍 왔으니... 그냥 가기로 한다. 가다보면 아내가 오고 있으리라. 사랑스런 아들딸과 함께...
천천히 반대편 차선을 보며 집으로 향한다. 대포 고개를 지나 조양동으로 향한다. 반대편 차선에 낯익은 차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시계를 본다. 이제 일곱시 십분이다. 그냥 집으로 간다. 집앞 주차장엔 아내의 차가 업다. '나갔나?' 집으로 들어선다. 집엔 아무도 없다. 아내에게 전화를 하니 아내는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런... 길이 엇갈렸다.
아내에게 스프레이 파스와 담배, 맥주를 사다 달라고 부탁한다. 이것저것 빨래거리 세탁기에 집어넣고 욕탕으로 들어간다. 따스한 물이 샤워기에서 흘러나온다. 피로가 녹아 내린다.

스물 아홉시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쓴다. 여전히 몸은 말이 아니다. 다쳤던 발목은 오히려 다 나은 것 같다. 허리와 엉덩이가 많이 불편하다. 아마도 그동안 훈련을 게을리한 탓이겠지. 성취감? 만족? 솔직히 그런 거 잘 못느낀다. 그냥 밀린 숙제를 해치운 느낌뿐....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즐거운 라이딩이었다. 나를 확인했던 또 하나의 소중한 시간.....

비가 오지 않았다면 재미가 덜했겠지....

참고로 고향이 정선인데 가리왕산 등산은 해봤지만 아직 잔차론 못가봤다. 언제 한 번 가보나... 혹 가시는 분 있음 연락 주십시오.
(011-373-9434. 조동호)

라이딩 가족 여러분 즐라하세요....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용용아빠
2024.06.17 조회 65
treky
2016.05.08 조회 676
Bikeholic
2011.09.23 조회 8115
hkg8548
2011.08.04 조회 7165
M=F/A
2011.06.13 조회 6719
이전 1 2 3 4 5 6 7 8 9 10... 385다음
첨부 (0)
위로